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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팔이 의사가 앗아간 <추노>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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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팔이 의사가 앗아간 <추노>의 꿈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소현세자 죽음의 진실

요즘 드라마 <추노>를 즐겨 본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낮은 사람들의 염원이 절절히 녹아 있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안타까운 일이 한 가지 있다. <추노>의 배경이 되는 인조 때야말로 조선이 살 마지막 기회였고, 그런 기회를 살리지 못한 데에는 소현세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한몫했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추노>의 시대…조선이 '살' 결정적 순간?)

이런 소현세자의 죽음이 독살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드라마 <추노>는 물론이고, <조선왕조실록>도 소현세자의 죽음이 독살에 의한 것이라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한다. 먼저 인조 23년 6월 27일 기록부터 살펴보자.

"세자는 본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돼 병을 얻었고 병이 난 지 수일 만에 죽었다. 온몸이 전부 검은 빛이었고,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에서는 모두 선혈이 흘러나왔다. 검은 멱목으로 얼굴 반쪽만 덮어놓았으나 곁에 있는 사람도 그 얼굴빛을 분별할 수 없어서 마치 약물에 중독돼 죽은 사람과 같았다."

소현세자의 진료를 맡았던 의관 이형익을 둘러싼 사정을 살피면 독살 의혹은 더욱더 깊어진다. 우선 소현세자 죽음과 깊이 연루된 것으로 여겨지는 인조의 후궁 조소용부터 살펴보자. <조선왕조실록>의 6월 27일 기록을 보면 세자 내외가 인조의 후궁 조소용과 알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왕의 행희(후궁) 조소용이 세자와 세자빈과 사이가 좋지 않아 밤낮으로 왕 앞에서 세자를 헐뜯었다. 그는 세자 내외가 대역부도의 행위를 하면서 (왕을) 저주했다고 참소했다."

<조선왕조실록>의 또 다른 대목을 보면 조소용과 이형익 사이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소용의 어미와 이형익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를 언급한다. 조소용의 어미를 통해서 조소용과 이형익이 연결돼 있었던 것이다.

"이형익이 조소용의 어미 집에 치료를 위해 왕래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추잡한 소문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형익은 누구인가? 이형익은 정식 의관이 아니다. 충청도 대흥 지역에서 활약한 침의인데 인조 11년에 임시로 채용되었다. 실록을 편찬한 사관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대흥 땅에 이형익이란 자가 있어 약간 침법을 알아 사기를 다스린다고 세상 사람을 현혹했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이형익의 진찰 능력에 쇄기를 박는 결정적인 말도 있다.

"세자가 앓아 오던 감기가 오랫동안 낫지 않아서 이형익에게 진맥을 받았다. 이형익은 '이 병은 사기이므로 침을 놓아야 한다', 이렇게 주장했다. 인조가 세자에게 침을 맞으라고 하자, 세자는 '이것은 감기인데 무슨 사질입니까' 하고 강하게 거절했다. (침을 맞지 않았는데도) 세자는 금방 나았다."

심지어 홍문관에서는 검증 결과까지 열거하며 이형익에게 치료를 받지 말 것을 주장했다.

"이형익은 스스로 괴이한 방법과 신통한 비결로 사람들에게 자랑한 지가 오래되었다. 그러나 사대부 중에 그의 침술을 쓰는 자들이 효험을 본 사람은 없고 더러는 해가 따랐다."

심지어 침 자리를 잘못 잡는 일도 있었다. 인조 11년 10월 7일에 있었던 일이다.

"이형익에게 번침 치료를 자주 받았는데 혈이 좌우에 차이가 있어 확인하였다."

소현세자의 병환은 학질에서 시작되었다. 인조 23년 4월 23일 어의 박군이 소현세자가 학질에 걸린 사실을 판정하였다. 4월 27일 기록에는 치료 2~3일 만에 세자가 죽고 말았다는 기록과 함께 이형익에 대한 질타가 잇따른다.

"의관 이형익이 사람됨이 망령되어 괴이하고 허망한 의술로 세자가 오한증(몸이 오슬오슬 춥고 떨리는 증상)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증세 판단 없이 침만 놓았으니 국문하소서."

소현세자가 걸린 학질은 무서운 병일까? 학질은 조선 시대에 아주 흔한 병으로, 학질을 앓고 나야 사람이 된다고 할 정도였다. 세간에서는 학질을 '하루 걸이' 병이라고도 불렀다. 하루 걸러 발열과 오한을 반복하는 삼일열 말라리아의 증세를 잘 표현하는 말이다. 이 삼일열 말라리아의 치사율은 소아를 제외하면 별로 높지 않았고 보통 자연 치유가 되었다.

이형익은 이 학질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도 정통 치료와는 다른 (잘못된!) 방법을 썼다. 오한증은 양기가 허약한 것으로 내부의 저항력이 약해진 상태다. 이럴 때는 <동의보감>에도 약만 쓰고 침을 놓지 않는 것이 좋다, 이렇게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형익은 자신의 침술만을 내세우면서 원기를 훼손한 것이다.

이형익의 자랑하는 침 법은 번침술로 전해진다. 번침은 침을 불에 달구는 것으로 화침이라고도 불린다. 침을 불에 빨갛게 달군 후 잽싸게 시술한 부위에 꽂았다가 빨리 뽑아주는 치료 방법을 말한다. 이형익의 번침은 소현세자의 병을 치료하기는커녕 악화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 인조 시대 망해가는 조선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민초들의 꿈을 그린 드라마 <추노>. 드라마에서 말하는 대로 소현세자는 과연 독살당했을까? ⓒKBS

그렇다면, 이형익이 소현세자의 독살에도 관여했을까? 안타깝게도 그 진실은 알 수 없다.

만약 조선 시대에 어떻게 독살을 규명했는지 살펴보자. 조선시대 법의학 서적인 <증수무원록>을 보면, 독살의 검증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 은비녀를 이용한다. 은비녀를 조각자라는 약물로 씻고 시체의 목구멍에 넣어 입을 밀봉하고 난 뒤 한참이 지난 후 꺼내 조각자로 다시 씻는다. 그 색깔이 푸르거나 검으면 독살로 판정한다.

둘째, 백반을 이용한다. 백반을 죽은 사람 목구멍에 넣고서 한두 시간 기다렸다가 백반을 넣어 밥을 삶은 뒤 닭에게 주면 닭이 죽어야 독살로 증명한다.

셋째, 찰수수밥을 이용한다. 쌀 석 되로 밥을 짓고 찰수수 한 되를 베 보자기에 담아 쌀밥 위에서 찐다. 달걀을 깨 흰자를 꺼내 찰수수밥에 버무려 쌀밥 위에 올려놓았다가 주먹밥을 만든다. 이것을 시신의 입, 귀, 코, 항문에 붙여 막고 끓인 초에 솜을 적셔 시신을 적시면 독기가 찰수수밥에 배어 나온다.

소현세자의 죽음과 같은 증상을 나타내는 독약에는 무엇이 있을까. <증수무원록>에 기록된 독약은 고독, 과실, 금석독약, 서망초독, 비상, 야갈독이 있다. 세자가 7개 구멍에 피를 쏟으면서 죽는 증상을 나타내는 독약은 서망초다. 서망초는 목련과에 속한 협엽회향으로 양자강 중하류에서 자란다. 독성을 이용해 물고기를 잡고, 피부병에 개어서 붙이는 약물이다.

소현세자의 죽음 후에도 인조는 세자의 시신 상태를 몰랐던 것으로 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인조 스스로 세자의 독살을 방조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인조가 소현세자의 죽음 후 더 적극적으로 이형익을 비호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형익이 인조 앞에서 거침없는 언행을 하는 바람에 신하들의 지적도 몇 차례 받는다.

특히 이형익은 은밀히 인조에게 말해 형제와 자식에게 모두 관직을 제수하는가 하면, 궁궐의 저주를 푼다고 인조에게 밤중에 뜸을 뜨는 해프닝을 벌인다. 소현세자의 죽음 이면의 정치적인 맥락이야 알 수 없지만, 돌팔이의 폐해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기회마저 앗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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