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가 다양한 논란을 낳고 있다. 주요 언론은 삼성 관련 칼럼 게재를 거부하는가 하면, 심지어 김 변호사의 책 광고까지 거부했다.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삼성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1등 기업 삼성은 왜 공포의 대상이 됐을까. <프레시안>은 독자들로부터 삼성에 관한 다양한 생각을 듣는 기획을 마련했다. <삼성을 생각한다> 독후감을 포함해, 삼성과 이건희 전 회장이 우리 사회에 남긴 숙제에 관한 내용이라면 누구의 글이건 소개할 계획이다. 독자들이 삼성을 생각하는 글은, 이 메일 주소mendrami@pressian.com로 보내면 된다. <편집자> |
한국에서 삼성은 특별한 존재다. 가끔 이유없이 삼성을 언급한 원고가 게재하기 곤란하다는 통보를 받기도 하고, 삼성을 분석한 부분이 들어간 책이 출판사에서 반려가 된 경험을 나도 가지고 있다. 전부 지난 정권에서 벌어진 일이다. 한국에서 삼성이라는 회사는, 카프카의 <성>과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국민들은 삼성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한 때는 남산, 국정원, 청와대 같은 이름들이 절대 공포를 상징했지만, 지금은 삼성, 조선일보 정도가 그런 절대 공포의 상징이다. 조선일보와의 관계에 대해서 우리나라 국민들은 한 번쯤 고민을 하게 된다. 삼성도 그러한 존재이다.
▲ 존 데이비슨 록펠러. 스탠다드 오일 창업자로 세계 최고의 부자로 꼽혔던 그는 시장 독점, 무자비한 노동자 탄압 등으로 악명이 높았다. |
지난 정권은 삼성 정권이었다고 생각된다. 진보 혹은 야당이 연합전선을 형성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를 쉽게 설명하면 한미 FTA 문제이다. 왜 민주당에 힘을 실어주지 못하고, 왜 한명숙이나 유시민을 지지하지 못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날탕으로 한미 FTA를 추진했던 사람들을, 그리고 그에 대해서 아직 한 번도 다시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들을 어떻게 지지할 수 있느냐? 한미 FTA는 민주당의 한가운데를 가르고 있는 사건이고, 여전히 살아있는 의제이다.
고인이 된 노무현 대통령의 여러 가지 정책 중에서 아직도 사람들이 가장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는 사건이 한미 FTA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한미 FTA와 뉴타운, 이 두 가지로 민주당은 정권을 잃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여전히 정치적인 재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왜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 FTA를 그렇게 급작스럽게 추진했을까? 영원한 미스테리가 될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누가 그 실무자였는지는 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라고 알고 있다.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는 여러가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김용철은 삼성 구조본의 법무팀장이었고, 검사 출신으로 처음으로 삼성에 갔던 사람이다. 삼성전자의 법무팀 사장으로 바로 이 김현종이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후에 옮겨갔다. 이런 일을 우리는 아직도 눈을 뜨고 보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동계올림픽 유치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대통령은 삼성의 이건희 회장에게 특사를 단행했다. 이게 '선진 한국'을 주장하는 한국에서 도대체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삼성의 후계구도와는 별도로, 대략 두 가지의 사회적 의제가 우리에게 남아있다. 첫 번째가 아주 오래된 질문이지만 '무노조 경영'이다. 우리나라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해외에서도 무노조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성과를 올리고 있는 현대 자동차는 강성 노조로 유명한 곳이지만, 세계화 국면에서 노조 없이 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주주들의 의사만으로 경영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 다른 의제는 삼성반도체의 화학물질로 인한 종업원들의 보건적 피해 문제이다. 삼성반도체는 첨단 산업으로만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사실은 화학공장 아닌가? 그 속에서 노조 없는 노동자들이 겪게 되는 피해는 당연한 일인데, 이걸 삼성의 힘으로 덮고 있는 것은, 정상적인 기업으로서는 이제는 그만 해야 하는 일이다.
물론 삼성이라는 대기업이 우리에게 주었던 피해는 많지만, 언젠가 삼성이 지금의 음침하고 공포스러운 이미지를 벗고, 정말로 국민의 기업이 되기를 바란다. 삼성 망하기를 바라고, 삼성을 이유없이 미워하는 사람은 한국에는 없다. 그러나 한미 FTA의 김현종이 그랬던 것처럼, 정부 인사인지, 삼성 인사인지, 도무지 분간이 되지 않는 듯한 실타래처럼 얽힌 이 복마전을 그대로 두고 우리가 다음 단계로 새로운 진화를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런 우리에게도 손해이고, 삼성에게도 손해이다.
삼성은 아마 오랫동안 국민을 두려워한 적이 없던 것 같고, 소비자를 진정으로 무서워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럴만도 하다. 그것이 진보 정권이든, 보수 정권이든,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삼성의 관리라면 그럴 만도 했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 모두를 위해서, 이 어두운 역사는 과거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내가 삼성의 여러 가지 문제 중에서 요구하고 싶은 것은 딱 두 가지이다. 노조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삼성 내의 보건적 폐해 등 지금까지 삼성의 힘으로 누르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서 최소한 인간적인 사과와 형식적으로라도 보상을 해주는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 초기에 있엇던 이런 문제들을 그대로 안고 성숙한 자본주의로 넘어가지 못한다.
우리 집에 있는 물건 중에서 삼성 브랜드를 살펴보았다. 일단 내 핸드폰이 애니콜이고, 스캐너 복합기가 삼성 것이다. 그리고 아내가 혼수라고 자신이 샀던 유일한 물건이었던 DVD와 결합된 TV가 삼성 것이다. 기왕이면 국산을 사자고, 나도 이것저것 삼성 물건을 솔솔치 않게 가지고 있다.
이병철의 유훈인지, 국민의 사랑인지, 이제 삼성도 고민을 하시기 바란다. 삼성이 유훈 대신 국민을 선택하는 그날까지, 나도 삼성 불매 들어간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리고 상식을 가진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대답을 해주시기 바란다. 그러면 나도 다시 삼성 물건을 구매하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의 어둡고 음침한 삼성이 아니라, 밝고 투명한, 그래서 장부를 믿을 수 있는, 그런 정상적인 기업으로 삼성이 변하기를 바란다.
나는 김용철 변호사를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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