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지적에 동의하면서 필자는 그동안 신자유주의에 대한 예리한 기사로 기획력을 인정받아온 <경향신문>조차 신자유주의 담론이 담겨진 외부 기고가 버젓이 실리는 현실은 신자유주의가 삼성보다 덜 무섭기 때문이기보다는 그만큼 신자유주의가 과감해지고, 유연해지고, 영민해진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제기를 하려고 한다.
지난 2월 12일자 <경향신문>에 국제산업디자인단체협의회 마크 브레이텐버그 회장이 기고한 "서울이 '세계 디자인 수도'가 된 이유"라는 제목의 칼럼이 바로 그러한 예다. 마크 회장은 서울이 디자인 수도로 선정된 사실을 놓고, "나의 흥분과는 달리 서울 시민들은 세계 최초의 디자인 수도에 대해 나보다 덜 흥분하고, 덜 기뻐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서 서울 시민들의 냉랭함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서울 시민들은 왜 디자인 수도로 서울이 선정된 사실에 외국인보다 '덜' 흥분하고, '덜' 기뻐하게 된 것일까?
마크 회장은 서울이 디자인 수도로 선정된 이유는 "서울이라는 도시는 디자인 중심으로 변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했다는 언급은 없었지만 오세훈 서울시장 임기 동안 야심차게 추진되고 있는 시정 운영 계획 '맑고 매력 있는 세계 도시 서울'의 대표 사업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 프로젝트(DDP)'를 통해서 마크 회장이 말했던 서울시의 '노력'을 확인할 수 있을 듯하다.
시정 운영 계획은 5대 핵심 프로젝트와 15대 중점 사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DDP는 5대 핵심 프로젝트에서 첫 번째 항목인 "경제 문화 도시 마케팅 프로젝트 : 관광객 1200만 유치를 통한 서울 경제 활성화"와 15대 중점 사업 중 첫 번째인 "동대문 일대를 세계 디자인 ·패션 중심지"에 해당되는 서울시의 대표적인 디자인 사업이다.
현재 서울시는 DDP가 "세계적인 랜드마크가 되어 외국인 관광객이 연간 210만 명에서 280만 명으로 늘어나고, 동대문 디자인플라자&파크 건설에서 운영 첫해까지만 1조1700억 원의 생산 유발 효과, 1만 명이 넘는 고용 유발 효과를 가져오며, 향후 30년간 53.7조 원의 생산 유발 효과, 44.6만 명의 고용 유발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며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서울시의 '노력'이 디자인 수도 선정에 있어서 중요한 기여를 한 것이다.
▲ 서울시의 디자인에 대한 집착은 오세훈 시장의 개인 취향이 반영된 것일 뿐일까? ⓒ프레시안 |
"디자인은 이제 기본입니다. 그것도 아주 절박한 기본이죠. 너무나 절박한 현실에 처해 있음에도 아무도 정책으로 채택하지 않고 심혈을 기울이지 않는 현실에 갈증이 폭발했어요. 서울시가 지난해 5월 부시장급 디자인총괄본부를 만들어 서울시의 모든 행정을 디자인으로 통할해가고 있어요. 서울시 25개 자치구에 디자인과가 생겼어요. 올해부터 본격적인 디자인 행정이 시작됩니다." (<동아일보> 2008년 2월 25일).
시민단체나 진보정당 관계자들은 오 시장의 디자인 정책이 지방선거를 위하여 디자인을 빙자한 업적 쌓기에 몰두한 것이라고 비판하지만, 필자가 관계자들을 만나보고 판단하건대 오 시장이 디자인에 애착이 있다는 점은 사실인 듯하다. 그러나 단순히 오 시장 개인의 차원으로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서울시의 디자인 정책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보다 구조적인 맥락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는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서구 도시 정부들은 분배를 강조하는 관리주의로부터 성장을 중시하는 기업가주의적으로 시정 방향이 바뀌게 되었음을 분석했다. 세계화가 심화되어 도시 간 경쟁 구도가 형성되면서 각 도시 정부들은 자신들의 도시에 보다 많은 자본과 기업을 유치하기 위하여 장소 마케팅 전략을 취하게 되었다.
그러한 장소 마케팅 전략으로 사용되는 무수한 화장술 중 하나가 디자인이다. 거리의 너저분한 노점상을 쫓아낸 자리에 세련된 랜드마크를 세우는 것은 어느 도시에서든지 만국공통이 되었다. 서울시 또한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기업가주의적인 시정 운영을 취하게 되면서 서구 도시 정부와 유사한 행보를 걷고 있다.
오늘날 서울시의 시정 운영 전략을 만들어내는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주된 화두 중 하나는 외국 자본 유치다. 직접 만나본 한 연구원이 현재 도시 정부가 추구하는 방향과 오 시장의 취향이 잘 맞아들어 갔다고 말한 것도 디자인 정책의 강조가 단순히 오세훈 개인의 취향뿐만 아니라 서울시의 기업가주의 전략이 중요하게 작용했음을 확인해준다.
그러나 만병통치약처럼 보이는 디자인 정책은 양날을 지니고 있다. 바로, 자본과 기득권층을 지키기 위한 칼날과 도시빈민을 쫓아내기 위한 칼날인 것이다.
이명박 서울시장 재임 기간에 청계천 복원을 이유로 청계천에서 동대문운동장으로 쫓겨난 노점상들은 다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하면서 신설동 풍물시장과 동대문운동장 부지 주변으로 쫓겨났다. 그 과정에서 행정대집행이라는 합법의 이름으로 노점상들은 용역들에게 폭행을 당하였다(궁금한 독자는 인터넷 검색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동대문운동장역 명칭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으로 바뀌게 되면서 동대문운동장의 장소성이 말끔히 사라졌듯이 이러한 갈등들은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그리고 그 기억의 빈자리를 서울시내, 지하철 등의 공공장소 곳곳에서 가히 소음 공해 또는 시각 공해에 비견되는 디자인수도 홍보들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동대문운동장 철거에 맞섰던 한 노점상인은 이러한 홍보 효과에 대해서 아래처럼 우려하고 있다.
"서울 시민이 다 이런 개발이데올로기에 포섭되어 있어요. 동대문운동장이 디자인 콤플렉스로 바뀌게 되면 자기의 이해관계가 뭔가 나아질 거 같은, 계속 언론에서 이렇게 떠들잖아요. 시각적 효과. 경제적 가치 등이 주입하려는 거죠. 노점상이 됐든, 상인이 됐든, 이런데 다 포섭된 거고. 이것을 깨는데 있어서 한계가 있었다고 보는 거죠."
우리는 서울시 중점 업인 DDP를 통해서 디자인을 단순히 도시 제 활성화를 위한 만능통치약으로 볼 수 없음을 확인했다. 그렇다고 비단 DDP 사례 하나만을 갖고서 오 시장의 디자인에 대한 진정성에 색안경을 끼는 것은 결례겠다!
다른 사례를 보면, 서울시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간판 정비 사업의 첫 시범 지역이었던 북촌 거리에서는 그간 북촌의 독특한 장소성을 드러내는 간판들마저 서울시의 획일화된 디자인 전략으로 만들어진 간판들로 교체되면서 상인들과 서울시 간에 마찰이 발생하였다. 과연 서울시는 누구를 위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것일까? 마크 회장이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의 마지막 문장은 아래와 같이 마무리 된다.
"서울 시민이여, 다시 한 번 열광하라. 디자인이란 바로 당신들의 내일이다."
마크 회장이 적어도 앞선 사례들 정도라도 알았다면 왜 서울이 디자인 수도에 선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민들이 '덜' 흥분하고, '덜' 기뻐하게 됐는지 쉽게 알았을 것이다. 앞으로 서울시가 추진하는 또 다른 디자인 정책들에 의하여 시민들로부터 "서울 시민이여, 다시 한 번 분노하라. 디자인이란 바로 당신들의 적이다"는 반응이 나오지 않도록 하려면, 시민들을 위한 디자인 정책이 무엇인가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적어도 오세훈 시장의 디자인 철학이 지방선거 업적 쌓기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거기 살고 있는 현존재(Dasein)를 위한 디자인(design)으로서 목적이 있다면 말이다. 끝으로 진보 언론은 '거칠고, 조악한' 신자유주의 담론을 상대로 한 비판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서 신자유주의가 '부드럽고, 영민하게' 진화되는 지점들도 포착하는 시각을 벼리는 게 필요하다. 이번 <경향신문>에 실린 마크 회장의 기고문은 아직 그러한 시각이 무디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겠다.
연속되는 다음 글은 오는 3월 10일 서울시가 주최하는 2010 글로벌 서울포럼 개최와 관련한 내용을 다루고자 한다. 특히, 포럼연사로 초청되는 리차드 플로리다의 창조도시론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창조'는 디자인과 더불어 신자유주의 도시 담론의 또 다른 수사로 각광받고 있는 핵심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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