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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행복' 신기루에서 벗어날 날은 언제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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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성장=행복' 신기루에서 벗어날 날은 언제쯤?"

[복지국가SOCIETY] "천민적 출세주의를 넘어서"

필자가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1970년 초, 즉 유신 쿠데타가 있기 직전에, 박정희 정권은 국민소득 천 불 시대가 오면 마이카, 마이홈에 마치 유토피아가 곧 도래하는 듯한 홍보를 했다. 그리고 이를 핑계로 파쇼적, 국민동원적, 재벌집중적 사회경제체제를 정당화하였다. 그래도 그 시절에는 앞으로 펼쳐질 핑크빛 청사진이 있었고, 창출된 잉여가치의 일부가 시민사회로 순환되면서 피부로 느낄 만큼 생활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통계수치로도 지니계수가 점차 개선되고 있던 시절이었고, 이후 터져 나온 중동 건설 붐 등으로 일자리 걱정은커녕 고급인력난을 겪던 시절이기도 했다. 지속될 수 없다는 게 명백한 정치사회경제 구조였건만, 서민들은 고달픈 하루하루 삶이지만 조금만 참으면 좋아지리라는 꿈을 꾸면서 세월은 흘러갔고, 이후 정치적 격동을 거치면서 조만간에 사람 살 만한 세상이 도래하리라는 기대는 국민소득 기대치를 천 불에서 만 불, 그리고 이만 불로 엄청난 인플레를 일으키고 있었다.

이러한 신기루적 환상은 1997년 IMF 구제금융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사실상 깨어졌다. 이만 불 시절이 눈앞에 도래하였어도 대부분의 시민들은 생업을 잃을까 조마조마한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고, 수백만에서 확대일로에 있던 빈민계층은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했고, 새로 사회에 편입되는 세대들은 미래에 대한 열정과 희망보다는 먼저 현실에 대한 좌절과 냉소를 배워야 했다. 참으로 IMF라는 거대한 외부충격은 우리에게 나름대로 의미 있는 긍정적 교훈과 참으로 고통스런 부정적 상흔을 각각 남긴다.

긍정적 교훈은 그저 일만 열심히 하면 사람 살만한 세상이 온다는 신기루적 믿음이 깨지면서 냉혹한 사회경제적 구조와 국제사회의 현실을 직시하게 하고, 세계화에 무방비로 편입된 체제조건 속에서는 단순히 GDP로 표현되는 국민소득 계수가 결코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한 점이요, 부정적 상흔은 양극화가 확대되면서 자신의 삶은 국가가 책임져 주는 것도 아니요, 회사(시장)가 대신해 주는 것도 아니요, 오로지 스스로가 책임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철저한 생존경쟁 속에서 이겨내야만 한다는 정글법칙이 작동하는 사회가 전면화 되는 계기가 됐다는 점이다. 이러한 부정적 요인은 참여정부가 실패함으로서 증폭되었고,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눈치 볼 것 없이 전면화 되어버렸다. 이명박 자신의 인생행로가 보여준 대로 세상이 더럽더라도 출세하면 그만이고, 그래서 사랑하는 가족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것은 내가 못난 탓이고, 삶이 고달픈 것도 내가 성공하지 못한 까닭이 되어버렸다.

▲ 이건희 전 삼성 회장. 한국 사회는 극소수 재벌만을 위한 곳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자연스레 현재 대한민국은 천민적 성공과 출세의 논리만이 활기를 치는 세상이 되었다. 진보를 논하는 사람들조차 성장을 담보하지 못하면 진보는 설 땅이 없다는 식의 망발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성공과 출세의 논리가 만들어내는 신기루의 행선지는 극도로 불안한 사회의 전면화이다. 성공과 출세의 논리가 만들어 내는 것은 일반시민들의 풍요로운 삶이 아니라 끝없이 탐욕스런 개개인 욕망의 재생산구조이다. 이웃보다, 남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하면 스스로 불행해지는, 그래서 대한민국은 이건희와 정몽구 같은 부류의 종족들만이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 10%도 아닌 5%, 아니 단 1% 종족을 위해 정치도 법률도 언론도 교육도 존재해야 하는 사회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죽도록 달리지 않으면 불행해지고 쓰러질 수밖에 없는 외발자전거 신세가 이명박 정권이 그려내는 성공하고 출세한 한국인들의 모습이다(그래서 이명박 정권은 자전거 타기를 그토록 권장하는가?). 끊임없이 지대추구와 투기를 일삼아야 하고, 남들이 넘볼 수 없는 특권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자식들을 허망한 사교육이란 감옥(참다운 인생을 포기해야만 하는)에 가둔다. 동시에 시장의 논리라는 설명으로 효율성의 미명 하에 천만에 가까운 시민들이 항상적 빈곤에 갇혀있고, 4백만이 넘는 극빈층이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고 같은 논리로 국민소득 2만 불의 국가에서 초등학교의 무상급식조차도 거부하는 극단적인 야만성을 드러내고 있다.

필자는 조국의 근대화와 공업입국의 기치를 믿고 70년 초에 공과대학에 입학했다, 30여년이 흐른 지금 동창모임에 나가보면 당시 공대를 졸업했던 대다수의 동료들이 50대 초반 이후 직장에서 쫓겨나 백수로 지내고 있음을 목격한다. 사실 한국사회는 이미 경제규모에서 세계 10위권을 운위하는 선진국클럽 OECD의 모범 회원국이며, 올해 G20 국제회의를 개최하는 의장 국가이며, 제조업 생산력 기준으로는 6~7위를 넘나드는 강력한 산업 경제국이다. 이러한 산업적 기초는 현장노동자와 더불어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반평생을 현장에서 땀 흘린 엔지니어들의 대가이기도 하다. 그런데 조국 근대화, 공업입국의 일등공신인 엔지니어 출신들의 현재 모습은 위에서 목격하는 바이다. 그토록 어려운 공부에 석·박사학위를 취득한들, 50살을 넘기면 소모품 취급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생산 공정에 투입되는 자원과 동일하게 취급되고 소모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GDP 천 불을 논하던 1970년대의 의제 '조금만 더 참고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다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온다'라는 허구의식에 갇혀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4만 불에 접근한 미국 시민사회가 우리가 바라던 이상 사회인가? 이러한 상태에서 지구는 과연 지속가능한 조건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인가?

반면 세계 행복지수 1위를 차지한 국가는 우리의 GDP 경제력에 겨우 2~30%에 도달한 중남미의 조그만 나라, 코스타리카이다. 정말 심각하게 되돌아보고 고민해야 하는 주제이다. 되풀이 되지만, 현재 한국사회는 정글의 법칙, 적자생존의 논리가 자연현상이라는 신자유주의적 궤변으로 합법을 가장하여 강력한 수탈체제를 강화하고 있는 셈이다. 19~20세기에 자기발전을 통해 강화된 이러한 논리가 자본가계급, 일부상류층 사회를 위해 얼마나 강력한 이데올로기의 무기로 형성되고 작동해 왔는지, 칼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이란 저서를 통해 상세히 폭로했다. 수세기간 유럽의 근대사를 관통했던 수탈체제는 비극적인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보편적 복지체제를 도입하면서 새롭게 재구성되었다. 이것이 함의하는 바는 실로 중차대하다 할 것이다.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결말처럼 한국사회의 미래가 폭력적 과정을 통해 해결될 것인가, 아니면 유럽사회의 역사적 경험을 거울삼아 공화주의적인 보편적 복지체계로 전환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가 점차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동시에 사회경제적 체제의 지속성과 혁신적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경제운용의 방식을 성장에서 배분으로 과감하게 전환해야 한다. 이는 필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정치경제학의 할아버지격인 리카도 이후 위대한 정치경제학자들의 끊임없는 조언이자 경고이다. 생산과 성장의 체계가 산업기술이 고도화되고 사무자동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자본과 기술의 집중을 요구하게 되고 동시에 독과점을 결과하면서, 양질의 일자리가 급속히 사라지면서 생산과 소비의 순환적 과정이 붕괴된다. 이는 선진제국 모두에서 경험하는 바이며, 문제를 현상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통화와 금융기술을 고도화하여 도입시켜 보지만, 작금의 세계 금융위기에서 경험하듯이 한계가 분명하며, 우리 삶의 불안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게 된다. 근본적인 것은 정부가 강력히 개입하여 창출된 가치를 모든 시민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적정한 배분의 과정을 통해 선순환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생산적 경제체계를 계속 유지하고 발전시키려면 오히려 배분, 즉 복지체계를 반드시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필자는 다소의 무리가 있다하더라도 진보진영의 일부에서 주장하는 기본소득의 도입 취지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필자도 생산체계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정한다. 단 21세기 현 시점의 기준에서 인류가 보편적으로 획득한 공정한 게임의 규칙이 지켜지는 범위 내에서다. 동시에 존 롤스가 <정의론>에서 제기한 기초적인 공화적 원칙이 작동되는, 그래서 타자의 제한 없이 의사표현을 하고 조작된 언론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주체적 삶의 언어와 권리로서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회, 지위와 소유와 출생이 다음 세대의 운명을 좌우하지 않는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 사회경제체계가 만들어낸 부의 배분을 사회적으로 어려운 계층에게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사회라는 조건에서, 그리고 지속가능한 조건 속에서 자원과 에너지를 활용한다는 전제 하에서, 현대적 생산체제는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소중한 영역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고 소수 특권계층의 이익을 위해 작동되는 것이라면, 그래서 대부분의 시민들을 피폐하게 만들고 한번 뿐인 소중한 삶을 소모하게 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중세의 자연 순환적 생산체계로 되돌아가는 것이 한국 시민사회, 그리고 인류 모두를 위해서 현명한 판단일 것이다.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사회적, 경제적 불안요인들을 개개인이 개별화해서 해결하려 하면,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정글의 생존경쟁법칙이 작동하게 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를 자연스런 법칙과 현상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조건이 오히려 발전과 효율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는 소수의 특권층을 위해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무장된 달콤한 교언일 뿐이다. 오히려 이러한 불안요인들에 함께 대처하고 함께 해결하려는 공화적 노력들을 통해 불안은 거짓말같이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가능성과 의미 그리고 행복으로 가는 통로를 제공해준다.

생산체계와 공화적 보편적 복지체계, 즉 생산체계의 또 다른 일면이자 목표이며 재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분배의 체계는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우리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생산체계와 소중하고 주인 된 삶의 가치를 저해하는 의존적 노예적 분배체계는 지양되어야 하며, 21세기 한국사회가 확보한 생산력에 기초하여 단순히 의식주를 해결하는 수준을 넘어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추구되어야 한다. 필자는 이를 인문적 삶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해가는 과정이자, 각자에게 주어진 탁월성의 실현과정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훌륭한 운동선수는 운동의 기록을 통해서, 현장 작업자는 열정을 다하면서 보다 우수한 제품의 생산을 위해서, 화가는 끊임없는 재창조를 통해 만족할만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다시 말해 모두가 삶의 현장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가능성에 도전할 수 있는 사회, 정치인들은 자신의 출세와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개개인 모두가 그러한 가능성에 도전하도록 하는 조건을 만들어가는 사회, 그러한 탁월한 사회를 추구해가는 2010년 한국을 꿈꾸고 싶다. 이웃을 시기하고 끌어내리고, 그 위에 서야 하는, 성공과 출세의 허망한 욕망체계를 끝장내고 참으로 산다는 것에 가치와 의미를 느끼며, 함께하는 이웃과 동료가 외화된 또 다른 내 자신으로 삶의 축복과 의미의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는 사회를 꿈꾸고 싶다. 현실 속에서 능력과 기회와 노력에 의해 남이 나보다 높은 지위와 많은 부를 누린다 해도 그들을 축복할 수 있는 여유로운 기준과 원칙이 작동될 수 있는 사회를 꿈꾸고 싶다.

그것은 천민적 출세주의와 1% 성공신화의 담론을 단호히 배격하고, 참다운 인문적 가치와 함께하는 행복을 새롭게 발견하고, 인권적 연대적 복지체계를 우리 사회의 중심 의제로 우뚝 세울 때 가능할 것이라 믿는다. 이것은 우리가 함께 꿈꾸고 만들어가야 할 미래한국의 모습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현재적 조건이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시대적 요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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