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내 법률가 출신 의원들은 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헌법학 개론서라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세종시안을 국민투표에 붙이는 것이 위헌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87년 헌법이 국민투표 부의대상을 좁힌 이유
헌법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헌법제정(개정) 권력인 국민이 각각의 헌법조항에 부여한 헌법정신을 해석하는 것이다.
80년과 87년 국민들은 대통령의 국민투표부의권과 관련하여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고 제한적으로 규정한 헌법 제72조에 동의했다.
이전 헌법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점은 72년 헌법이 국민투표 부의대상을 '국가의 중요한 정책'으로 광범하게 규정한 반면, 80년과 87년 헌법은 그것을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으로 좁혀 놓았다는 점이다.
[1972년 헌법 제49조]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
[1980년 헌법 제47조]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
[1987년 헌법 제72조]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
왜 그랬을까? 동서고금의 독재자들이 국민투표를 어떻게 오용하고 남용했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이유에 대해서도 손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 이후 헌법이 국민투표 부의대상을 좁혀 놓은 것은 그것이 대통령에 의하여 남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헌법학계의 '통설'이다.
세종시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세종시안이 '국가의 중요한 정책'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이라 볼 수는 없다.
물론 일부 사람들은 세종시안이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이 될 수도 있다며 억지논리를 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목에 가시처럼 걸려있는 존재가 하나 있다. 충남 '계룡대'가 그것이다.
현재 국방부는 서울에, 각군 본부는 계룡대에 들어서 있다. 세종시 원안이 국가안위를 위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왜 그 동안 군수뇌부 분산에 대하여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에 대해서는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이 1일 보도자료를 통해 수도이전을 전제로 한 개헌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는 "청와대, 국회, 대법원까지 모두 옮기는 수도이전을 하자"며 "국민적 합의를 위한 개헌과 국민투표를 적극 검토할 때"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대로 개헌이 이루어진다면 헌법규정 자체가 바뀌기 때문에 위헌 문제는 애초에 발생하지 않는다.
여당 절충안들, 공부하고 고민한 흔적이 없다
반면 절충안을 내놓은 사람들도 있다. 김무성, 진성호, 원희룡 의원 등이 그들이다. <한국경제신문>은 지난 22일 기사를 통해 이들의 절충안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했다.
▲ ⓒ프레시안 |
이 신문에 따르면 김무성 의원은 행정부처 대신 독립기관인 대법원, 헌법재판소 등 7개 기관을 이전하자고 주장했고, 원희룡 의원은 (2~3개의) 교육·환경 관련부처를 이전하자고 주장했다.
친이계인 진성호 의원은 교육과학기술부, 농림수산식품부, 환경부 등을 세종시로 이전하는 대신 과천의 기획재정부·법무부·지식경제부·노동부·국토해양부 등 5개 부처를 다시 서울로 옮기자고 주장했다.
이 절충안을 내놓기 위하여 이들은 어느 정도 공부하고 고민했을까? 유감스럽게도 필자의 생각은 매우 부정적이다.
K벨트의 지속성장 보장하려면 경제부처 이전 필수적
세종시 논란의 핵심은 원안과 수정안 중 어느 것이 진정으로 세종시 발전을 보장하느냐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운찬 총리는 이 도시를 일개 공업도시로 전락시키고 싶어한다. 반면 원안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국토해양부 등 경제핵심부처를 옮겨서 세종시를 명실상부한 K벨트의 중심부로 만들고 싶어한다. 세종시가 K벨트의 중심부가 되지 못하면 발전의 지속성은 보장받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K벨트 발전전략이란 강원권, 영남권, 호남권, 수도권, 충청권을 K자 모양으로 발전시킨다는 전략을 말한다. 원안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전략이 공허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성공하려면 K벨트 중심에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국토해양부 등 경제핵심부처들이 자리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필자 또한 세종시 발전에 경제핵심부처 이전이 절대적인 중요성을 가진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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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내 절충안들, 알맹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
정치학자들은 정치를 일컬어 '사회적 공동재원 배분권을 둘러싼 권력투쟁'이라 부른다. 정치권력층에 사회적 공동재원 배분권이 없다면 말 그대로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다.
물론 이 권력은 한두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 국회의원, 정부관료, 대기업 총수 등이 이 권력을 나누어 가진다. 대기업 총수들은 각종 인맥과 로비를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사회적 공동재원 배분을 유도한다.
세종시 원안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여러 정치권력층들 중 일부인 정부관료들이 세종시로 내려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로 대통령, 국회의원, 정부관료 등이 모두 내려올 수 없기 때문에 그 일부인 정부관료들만이라도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과 정운찬 총리는 그것마저도 안된다고 주장한다. 행정부처 일부를 이전하면 비효율성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더 나아가 세종시를 하나의 공업도시로 만드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행정부처 이전의 비효율성을 지나치게 침소봉대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1~2년 뒤 세종시 인근에 오송역(호남고속철도와 경부고속철도 분기점)이 들어서면 서울시와 오송역까지의 소요시간은 30분으로 단축될 것이다. 과천에서 세종로 청사까지의 소요시간이 40분 정도인 것을 감안할 때 30분은 매우 짧은 시간이다.
행정부처 이전의 비효율성이 정부주장만큼 크지 않다는 것이 드러나자 여당 일부 의원들이 절충안이라며 핵심경제부처가 아닌 부처를 이전하는 방안을 모색한 것 같다. 그러나 핵심경제부처가 아닌 여타 행정부처 이전은 그 효과가 정 총리 수정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요약과 결론
여당 내에 세종시안을 국민투표에 붙이자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헌법학 개론서라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세종시안을 국민투표에 붙이는 것이 위헌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1972년 헌법과 달리 1980년 이후 헌법이 국민투표 부의대상을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으로 좁혀 놓은 것은 그것이 대통령에 의하여 남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헌법학계의 '통설'이다.
세종시안은 '국가의 중요한 정책'인 것은 분명하지만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이라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이를 국민투표에 붙일 경우 헌법위반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세종시 논란이 장기화되자 김무성, 진성호, 원희룡 의원 등이 절충안이라는 것들을 내놓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들이 절충안을 내놓기 위하여 공부하고 고민한 흔적이 거의 없다.
세종시 논란의 핵심은 원안과 수정안 중 어느 쪽이 진정으로 세종시 발전을 보장하느냐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운찬 총리는 이 도시를 일개 공업도시로 전락시키고 싶어한다. 반면 원안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국토해양부 등 경제핵심부처를 옮겨서 세종시를 명실상부한 K벨트의 중심부로 만들고 싶어한다.
세종시가 명실상부한 K벨트의 중심부가 되려면 그 곳에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국토해양부 등 경제핵심부처들이 자리해야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로 대통령,국회의원,정부관료 등이 모두 내려갈 수 없다면 그 일부인 정부관료들만이라도 내려가야 한다.
정부의 K벨트전략이 공허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성공하려면 '사회적 공동재원의 배분'에 일정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국토해양부 등 경제핵심부처들이 이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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