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자회견에는 독립 극장편영화 <이상한 나라의 바툼바>를 연출한 김동명 감독이 사회를 맡고, <워낭소리>의 이충렬 감독,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 <나의 친구, 그의 아내>, <반두비>의 신동일 감독을 비롯해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의 양해훈 감독, <무림일검의 사생활> 등 독립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온 장형윤 감독, <계속된다> 등 지속적으로 독립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주현숙 감독, 작년 부산영화제 초청작이자 올해 개봉을 앞두고 있는 <계몽영화>의 박동훈 감독이 참석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장의 연단에 올라 한목소리로 영진위를 비판하는 한편, 새로이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자로 선정된 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한다협)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 독립영화 감독들이 '불공정하게 선정된 독립영화상영관에서 자신의 작품을 상영하지 않겠다'며 보이콧을 선언하는 성명서를 내는 한편, 18일 오후 2시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성명서에는 총 155명의 감독이 서명을 했으며, 이 날 기자회견에는 8명의 감독이 참석해 영진위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오른쪽부터 사회를 맡은 김동명 감독, 주현숙 감독, 장형윤 감독, 이충렬 감독, 양해훈 감독, 양익준 감독, 신동일 감독, 박동훈 감독. ⓒ프레시안 |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은 <워낭소리> 이충렬 감독은 최근 영진위를 둘러싸고 있는 일련에 사태들을 한 마디로 '저질 개그'라고 잘라 말하면서,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수위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이충렬 감독은 독립영화로서는 사상 최고의 관객동원을 기록한 <워낭소리>가 "오히려 '적은 돈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는 모델'처럼 여겨지면서 오히려 <워낭소리>의 부작용이 더 큰 것 같다"며 최근 독립영화를 대하는 사회 분위기에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독립영화가 발전하는 데에 <워낭소리>가 조금의 발판이 됐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했지만, 300만에 가까운 스코어를 내면서 기대했던 점보다는 우려했던 방향으로 가는 걸 지켜보며 독립영화 진영과 관객들 모두에게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충렬 감독은 또한 "정책을 만드는 분들은 <워낭소리>를 오히려 자본의 논리와 돈의 논리에 이용하는 것 같다. 될 놈만 밀어주겠다는 식의 '선택과 집중'의 논리가 영화 정책에도 적용되고 있다"며 영진위의 정책 전반에 대해 비판했다.
▲ <워낭소리>를 연출한 이충렬 감독은 최근 영진위와 관련한 사태가 '한 마디로 저질 개그'라면서 영징뉘에 대한 수위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또한 <워낭소리>의 성공에 뒤따른 부작용을 지적하며 독립영화를 대하는 사회 분위기 전반에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프레시안 |
<똥파리> 양익준 감독 역시 "창작자가 작품이 아닌 이런 일로 언론과 매체에 직접 자신의 얼굴을 내밀어야 하는 이 상황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문화적으로 위축되고 억압돼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일"이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양익준 감독은 발언대에 선 감독들이 모두 7년에서 15년 이상 독립영화를 해온 감독들이라면서, "나도 독립영화를 10년간 해오면서 이제야 독립영화를 조금 알 것 같은데, 어떤 고민과 실천을 해왔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미디어센터와 독립영화전용관을 어떻게 운영하겠다고 나선 건지 이해할 수 없다"며 한다협의 새로운 독립영화전용관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10년간 독립영화를 해오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 또한 지금의 사태를 만화 <20세기 소년>과 동화 '신데렐라'에 비유하면서, "영화를 만들고 예술과 문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계속 죽임을 당하고 내쫓기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계속 된다> 등 이주노동자 문제를 다루는 독립 다큐멘터리에 천착해온 주현숙 감독의 우려는 더욱 절박하다. 자신을 '개봉 못해본 감독'이라며 소개한 주현숙 감독은 올해 3월 26일부터 열리는 인디다큐페스티발의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주현숙 감독은 "독립영화는 이윤 논리로만 환원될 수 없으며, 사회에 대해 자유롭게 문제의식을 표출해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독립영화를 틀 수 있는 공간인 독립영화전용관이 매우 중요하다"고 전제하면서, 영진위의 지원을 공모제로 시행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현숙 감독은 "오랫동안 독립영화제를 개최해온 인디포럼이 당연히 될 줄 알았는데, 내가 너무 순진했나 보다. 독립영화전용관을 그저 '돈 좀 되는 작은 극장'으로만 보는 사람들이 새로운 독립영화전용관을 맡게 된 건 아닌가 싶어 걱정된다"고 밝히면서, "그런 마인드로 운영하는 공간에서는 영화제를 할 수 없다. 독립영화 감독들도 그 공간에서 자신의 영화를 틀기를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주현숙 감독은 "당장 영화제가 코앞인데 영화제를 할 곳이 없다"면서, 최근의 사태들에 대해 조희문 위원장이 책임을 져야한다고 못박았다.
▲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계몽영화>를 선보인 후 올해 개봉을 추진하고 있던 박동훈 감독. 박동훈 감독은 독립영화의 '공공성'을 강조하면서 독립영화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실천을 지속적으로 해온 이들이 독립영화전용관을 운영할 때에야 독립영화의 '정당성'이 확보된다고 말했다.ⓒ프레시안 |
작년에 부산영화제에서 <계몽영화>를 선보였던 박동훈 감독 역시 다른 감독들 못지 않게 절박한 상황이다. 신동일, 양해훈, 양익준, 이충렬 감독 등 이미 자신의 영화가 정식 개봉이 되는 경험을 거친 감독들과 달리, 박동훈 감독의 <계몽영화>는 올해 여름 개봉 계획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감독이 자신의 영화를 독립영화전용관에서 상영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리게 된 이유는 무얼까. 박동훈 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했던 상상과 기대 중 가장 기분 좋았던 것이, 내 영화가 인디스페이스에서 개봉해 관객들과 소통하는 것이었다. 다년간 독립영화의 '공공성'이라는 대전제 하에 독립영화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그에 기반한 실천을 해온 이들이 운영주체인 공간인 만큼, 독립영화인으로서의 정당성을 획득한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그게 모두 올스탑 돼버렸다"고 밝혔다.
박동훈 감독은 "(지금 독립영화전용관의) 운영주체들을 보면 앞서 이야기한 독립영화에 대한 고민과 담론이 없었던 이들"이라면서, "조희문 위원장은 선정과정에서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11월에 결성돼 두 달만에 공모에 참여한 한다협이 20년 가까이 독립영화를 고민해온 이들을 따라잡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의문이 든다"며 불신을 표했다. 박동훈 감독은 "(새로운 운영주체들이) 타임머신이라도 빌려타고 그때 시간으로 돌아가 발품을 팔며 노력했던 분들과 대면이라도 한 건지..."라는 말로 심경을 드러내면서, "정당성이 훼손된 공간에서 내 영화를 상영하는 게 불쾌하고, 만약 상영을 한다면 그 민망함의 크기를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영진위의 최근 행보에 대해서도 "자꾸 3D, 3D 하시는데 사고부터 입체적으로 하라. 사고하는 걸 보면 시네마스코프나 2D는커녕 흑백TV 수준"이라며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과거 한독협이 운영했던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의 애니메이션 트레일러를 제작했고, <무림일검의 사생활> 등을 내놓으며 호평을 받았던 장형윤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은 앞서 발언한 감독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짧지만 통렬한 비판으로 영진위 비판에 목소리를 보탰다. 장형윤 감독은 "영상원에서 이론 과정을 없애고, 서울아트시네마에 공모제를 시행하려 하는 한편 독립영화전용관과 미디어센터의 운영주체를 바꾸고,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없애려 하고 있다. 영진위가 영화를 진흥한다는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채 영화를 말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형윤 감독은 "영화에 왜 정치논리를 가져와서 이런 분란을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밝히면서, "정치는 국회에서 하고, 문화나 영화를 만드는 곳은 자연스럽게 알아서 만들고 운영하도록 놔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양해훈 감독은 "이번 공모 때문에 영진위가 지원하고 있는 다른 독립영화 지원 사업들에도 신뢰가 떨어진다"고 밝혀 독립영화 감독들이 이번 공모뿐 아니라 영진위의 사업 전반에 대해 불신을 갖고 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신동일 감독 역시 작년에 <반두비>가 10대들을 위해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던 이야기를 꺼내면서, "작년에는 <반두비> 때문에 영상물등급위원회와 싸웠는데 올해는 영진위다. 양쪽 심사위원에게 느끼는 내 감정엔 차이가 없다. 전문성도 투명성도 전혀 없다"고 일갈했다. 신동일 감독은 "내가 자주 찾는 시네마테크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 문제도 마찬가지다. 결국 영화에 대한 이해도 전문성도 없는 이들이 이곳들을 계속 운영하게 될 거라 본다. 계속 잘못된 정책들이 적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신동일 감독은 이어 유인촌 문광부 장관이 어제(17일) 열린 임시국회 업무보고에서 "문제가 있다면 다시 공모하겠다"고 대답한 것을 인용하면서, "잘못된 인적구성 때문에 일이 계속 잘못되고 있다. 이 모든 일에 책임이 있는 조희문 영진위 위원장과 유인촌 문광부 장관이 앞으로 잘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기자석에서는 "그렇다면 한독협이 아니면 안 된다는 얘기냐"와 같은 질문이 나왔으나, 감독들은 한결같이 "한독협이든 아니든 독립영화를 오랫동안 고민해오고 실천해온 이들이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감독들은 "독립영화전용관 공모에서도 미디어센터와 마찬가지로 1차 공모에서 하위를 기록했던 한다협의 사업계획서가 재공모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반면 "10년이 넘도록 독립영화제를 개최하며 독립영화 감독들을 발굴해온 인디포럼이 1차 공모 당시에는 최고점을 기록했으나 재공모에서 최하위를 차지한" 사실 역시 함께 언급됐다. 최근 영진위의 공모와 관련, 미디액트 및 미디어센터 건이 워낙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던 독립영화전용관 공모는 상대적으로 묻혔음을 시사하는 언급이다. 주현숙 감독은 "미디어센터가 영상 교육을 위주로 하는 곳이라면 독립영화전용관은 극장 운영과 관련된 문제라 전혀 별개의 사업임에도 똑같은 심사위원이 두 사업을 함께 심사했다"면서 영진위의 공모 심사가 전문성과 투명성을 결여한 데다 과정마저 불공정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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