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한국의 기독교는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 시커먼 밤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시뻘건 십자가의 반문화적 행태, 좋은 말씀을 전하러 왔다며 남의 집 문을 멋대로 두드리는 외판원적 행태, 거리와 전철에서 멀쩡한 사람들을 죄인이나 바보 취급하는 비정상적 행태, 수천억 원의 돈을 들여서 거대한 교회를 짓는 경쟁에 골몰하는 개발꾼적 행태, 수많은 신도들의 공유재인 교회를 멋대로 자식에게 세습하는 반민주적 행태, 막대한 봉급과 이익을 챙기면서 세금은 사실상 한 푼도 내지 않는 비사회적 행태,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것을 넘어서 아예 파괴하려 드는 비종교적 행태, 이권과 권력을 위해 정치꾼보다 더 강력히 정치적 활동에 몰두하는 세속적 행태 등은 그 중요한 예들일 것이다.
잘 알다시피 기독교는 구교와 신교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기독교라고 하면 대체로 신교를 뜻한다. 구교는 기독교보다는 천주교로 불리고 있다. 기독교 역사에서 보면 구교가 워낙에 권력화하고 세속화해서 '종교혁명'이 일어났고, 그 결과 기독교는 구교와 신교로 나뉘게 되었다. 신교는 구교의 지배에 저항해서 나타난 기독교의 새로운 흐름이었기 때문에 '프로테스탄트', 즉 '항의자' 또는 '저항자'의 기독교로 불렸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서 신교는 옛날 유럽의 구교에 못지않은 권력화와 세속화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그 행태는 시커먼 밤하늘의 시뻘건 십자가에서 잘 볼 수 있듯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저열하다.
'반기독교' 버스 광고에는 상당히 합당한 사회적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영혼의 구원과 그것을 위한 사회의 개혁을 올바른 방식으로 추진한다면, 아마도 '반기독교' 버스 광고는 저절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기독교에 내재한 문제들을 올바로 인식하고, 민주주의의 요청에 부응하는 쪽으로 기독교의 개혁을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사학 교수였던 존 베리(1861~1927)의 <사상의 자유의 역사>(양병우 옮김, 박영사 펴냄, 1975)를 읽을 필요가 있다. 그는 이 훌륭한 책에서 기독교의 문제를 이론과 역사라는 양 면에서 잘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구절은 종교사의 관점에서 기독교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유태교는 그 배타적이고 불관용한 성격 때문에, 관용한 이교도들이 혐오와 의혹의 눈으로 본 유일한 종교였다. (35쪽)
일반적으로 기독교도의 박해에서는 관헌보다도 민중이 주동이었다. 모든 신들을 공공연하게 미워하고 세계의 파멸을 비는 이 신비적인 동양의 종교에 대해서 민중은 공포를 느꼈던 것이다. (36쪽)
존 베리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갖는 중요성을 잘 보여줬지만, 물론 이런 업적을 이룬 것은 그가 처음이 아니었다. 존 베리보다 훨씬 먼저 더 근원적으로 기독교의 문제를 지적한 대표적인 학자로 역시 같은 영국의 위대한 인문주의자이자 기독교도였던 존 밀턴(1608~1674)이 있다. 그는 무엇보다 기독교 경전을 시화한 <실락원>과 <복락원>이라는 서사시로 유명하지만, 사실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위대한 논문인 <아레오파기티카>(박상익 옮김, 소나무 펴냄, 1999)를 쓴 학자이자 정치가로서 대단히 중요하다. 다음과 같은 그의 지적은 검열의 문제를 신과 인간의 관계라는 근원적인 관점에서 밝혀주고, 이명박 정부가 강행하고 있는 매체장악 정략의 문제를 진리와 진실의 관점에서 밝혀준다.
신은 인간을 어린아이 같은 규제 속에 항상 잡아 두지 않으시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이성의 은사를 부여하셨습니다. (51쪽)
진리와 거짓으로 하여금 서로 맞붙어 싸우게 하십시오. 자유롭고 공개적인 경쟁에서 진리가 패배하는 일은 결단코 없습니다. 진리의 논박이야말로 최선의 억압이며 가장 확실한 억압입니다. (108쪽)
진리에게 자유로운 공간을 제공해 주십시오. 그리고 진리가 잠들었을 때 묶지 마십시오. 진리는 묶여 있을 때는 진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109쪽)
한국의 기독교가 올바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존 밀턴과 존 베리의 가르침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반기독교' 버스 광고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로서 당연히 인정되어야 하는 것이지 강력한 실력 행사로 저지되어야 할 것이 아니다. 기독교가 정말로 저지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해당되는 '반기독교' 버스 광고가 아니라 신의 창조물을 산산이 파괴하는 '4대강 살리기'이다. 창조론은 과학이 아니라 종교로서 기독교의 근간이다. 창조론은 이 세상의 가치와 의미를 이 세상의 구체적인 존재들과 연결시킨다. 바로 이 연결에서 기독교의 신은 성립한다. 기독교의 창조론에서, 신의 창조물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 예수께서 포클레인에게 4대강 사업의 중단을 명령하는 모습의 '4대강 사업 저지 천주교 연대' 로고. ⓒ프레시안 |
2009년 12월 8일에 '4대강 사업 저지 천주교 연대'(천주교연대)가 출범했다. '천주교연대'는 2009년 12월 29일에 '4대강 사업 중단과 팔당유기농지 보존을 위한 천주교 비상 행동 기도회 선포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최덕기 주교님의 '취지문'이 발표되었다. '4대강 블랙홀'의 문제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이 글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끝난다.
4대강 사업에 대한 교회의 입장은 이미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환경소위와 천주교창조보전연대를 통하여 2009년 10월 30일에 나온 발표문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환경 보호가 인류의 과제이며, 공동의 보편적 의무인 '공동선'의 의무로 바라봅니다", "4대강 사업은 분명 강 생태계를 죽이는 죽임의 사업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신앙인들은 (…)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반대하며 중단한 것을 촉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마태복음 7장 21절).
우리는 하느님의 창조 질서와 국민과 미래세대의 공동선을 위하여 4대강 사업의 중단을 요구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 살리기'를 경부고속도로에 비교한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4대강 살리기'의 실체가 '4대강 죽이기'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구교와 신교를 막론하고 모든 기독교는 창조론에서 비롯된다. 여호와를 모시는 진정한 기독교도라면 창조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4대강 살리기'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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