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노동부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렵거나 부정적인 용어' 107개를 바꾸겠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감시적 근로자', '준고령자', '경력단절여성', '쇼셜벤처' 등을 예로 들었다. 노동부는 전문가, 이해당사자 등의 의견을 수렴해 결과를 5월에 발표하고, 필요한 법령도 개정하겠다고 했다.
노동부는 '이해가 어렵거나 부정적인 용어'에 '비정규직'과 '중간착취'를 포함시켰다. '비정규직'이라는 용어는 "정규직과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집단이라는 부정적 가치를 확산시킨다"는 이유였고, '중간착취 금지'는 "착취라는 용어에 부정적 어감이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용어 '비정규직', '중간착취'를 바꾸겠다고?
노동부의 '언어순화운동'은 3년 전 현대자동차가 했던 것과 판박이다. 현대자동차는 2007년 10월 8일 한글날을 하루 앞두고 "거부감이 일거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담은 용어에 대한 순화운동"을 벌인다고 발표했다.
현대차는 재가는 결재, 상신은 여쭘, 소비자는 고객, 네고는 상담 등 "대외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는 내포하고 있거나 본래 취지와 달리 사용되는" 총 64개 단어를 대체한다면서 슬쩍 '하청'을 끼워 넣어 '협력사'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사내하청 노동자는 공장에서 정규직 노동자가 오른쪽 바퀴를 끼울 때 왼쪽 바퀴를 달고, 정규직이 오른쪽 문짝을 달 때 왼쪽 문짝을 조립하는 노동자다. 비정규직(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자본이 당연히 정규직으로 채용했어야 할 자리에 불법으로 사용해 '착취'한 노동자들이다.
2007년 현대차 언어순화운동, '하청'이 아니라 '협력업체'?
2003년부터 현대차 아산, 울산, 전주공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거센 투쟁이 일어나면서 사회적으로 사내하청 노동자의 문제가 심각해졌다. 그러자 현대자동차는 이를 은폐하기 위해 '하청'이라는 '부정적' 단어를 '협력'이라는 '긍정적' 단어로 바꿔 "사내하청 노동자는 협력업체의 정규직"이라고 주장했다.
심각한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의 문제를 은폐하기 위해 현대자동차가 벌인 '꼼수'를 국가기관인 노동부가 똑같이 따라하고 있는 것이다.
5월에 노동부는 비정규직을 무슨 단어로 바꾸자고 할까? 자유롭게 자를 수 있으니까 '자유직'이라고 바꿀까?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지니 '유령직'이라고 할까?
말을 바꾼다고 진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비정규직 단어를 지운다고 저항이 없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굴지의 재벌과 이명박 정부가 사내하청과 비정규직이라는 '부정적인 말'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본의 말로 진실 흐리기가 목적이다
말과 언어가 정신세계를 조금씩 갉아먹어 진실을 흐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노동유연화'가 대표적인 말이다. 국민들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차별에는 반대하지만, 똑같은 의미인 '노동유연화'에는 찬성하고 있다. '노동유연화'라는 기막힌 말로 진실을 흐리게 만든 것이다.
자본의 말은 조금씩 노동자들에게 스며들어 정신세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지난 1월 27일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서 만난 현대제철 정규직 노동자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얼마나 늘었냐는 물음에 "협력업체 노동자요?"라고 되물었다.
자본의 말에 감염된 적지 않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사내하청 노동자를 '협력업체의 정규직'이라고 생각하고,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차별받는 비정규직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노동자'라는 말만 사용해도 '빨갱이'로 몰아 잡아가던 군사독재시절, 노동자들은 '노동자'라는 단어를 끝까지 버리지 않았고, '근로자의 날'이 아닌 '노동절'을 되찾았다. 노동자의 정신과 함께 노동자의 말과 언어를 지켜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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