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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에이즈를 '뜸'으로 치료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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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에이즈를 '뜸'으로 치료한다고?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만병통치 뜸'은 없다

뜸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치료일까? 뜸은 전통적으로 민간에서 이용해온 요법 중 하나다. 다들 무릎, 어깨가 아플 때 자가 요법으로 쑥뜸을 떠오는 장면을 많이 봤을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치료를 '아시혈 치료'라고 부른다. 병을 앓아 통증이 있을 때 그 부위를 누르면, 입에서 튀어나오는 감탄사 '아(阿)'와 '맞다'는 의미의 '시(是)'를 섞어 만든 말이다.

이런 치료는 경험에 바탕을 둔 것이지만 나름의 효과를 보았다. 이처럼 적당히 아픈 자리에 뜸을 놓아 상태의 호전을 꾀하는 방법과 전문가의 뜸은 다르다. 예를 들면 한의사는 인체의 오장육부와 연결된 경혈을 찾아서 뜸을 뜬다. 경혈에 뜨는 뜸은 인체의 허실 상태를 조정해 질병에 대한 저항 능력을 북돋운다.

한의학은 우주와 인체를 동일시하여 인체를 소우주라 한다. 전신의 경혈 수는 361개이다. 바둑판도, 음력 1년도 361이다. 바둑의 한 수가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부분, 부분이 전체와 밀접하다. 평생 이런 경혈에 침을 놓아 한국, 중국, 일본을 막론하고 동양 최고의 침의로 추앙받았던 허임은 누구보다도 정확한 진단과 정확한 취혈을 강조했다. 마치 바둑에서 한 수를 잘 못 둬 패배를 자초하는 것처럼, 경혈 한 곳에 침, 뜸을 잘못 놓는 것만으로도 환자에게 큰 해를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뜸(灸)은 글자 그대로 불기운을 몸의 양기를 북돋우는 훌륭한 치료 수단이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가령 가스레인지의 화력이 2단은 되어야 주전자의 물이 끓는다고 하자. 그런데 가스레인지의 화력이 1단밖에 안 된다면 당연히 화력을 2단으로 올려야 한다. 바로 이렇게 1단에서 2단으로 올려 물을 끓게 하는 역할을 바로 뜸이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때 따져봐야 할 조건이 두 가지 있다. 먼저 주전자의 물이 어느 정도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만약 주전자에 물이 너무 비어있으면, 화력을 1단에서 2단으로 올리자마자 물이 끓기는커녕 다 증발해 버릴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몸의 이런 상태를 '물이 부족하다' 하여 '음허(陰虛)'라고 말한다.

주의해야 할 점은 이뿐만 아니다. 본래 양기가 왕성한 사람이 있다. 이럴 때 뜸을 뜨면 자칫 화력을 2단으로 조정한다는 것이 3단까지 올려, 물이 끓어서 넘치거나 주전자를 태울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몸의 이런 상태를 '양기가 넘친다' 해서 '양성(陽盛)'이라고 말한다. 뜸을 뜰 때는 혹시 몸이 이런 두 가지 상태가 아닌지를 세심히 점검해야 한다.

뜸 치료가 어떤 사람에게는 '명약'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맹독'이 될 수 있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동의보감>은 이렇게 경고한다.

"맥이 부하고 열이 심한데, 도리어 뜸을 뜨면 실한 것을 더 실하게 하는 것이고, 허한 것을 더 허하게 하는 것이다. 불기운 때문에 기가 동하면 반드시 목구멍이 마르고 피를 토하고 뱉는다."

▲ 정확한 진단이 전제되지 않은 뜸은 '명약'이 아니라 '맹독'이 될 수 있다. ⓒ프레시안(사진=자료)
<동의보감>뿐만이 아니다. 구술로 전해져 내려온 화타의 의술을 채록한 고대의 <중장경>부터 현대의 한의학 교과서까지 한목소리로 이렇게 경고한다. "음기가 모자라거나나(물이 적거나), 양기가 많으면(불이 많으면) 뜸을 뜨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 뜸을 잘못 떳을 때, 환자에게 새로운 질환을 주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요즘 뜸이 대세다. 특히 구당 김남수 옹은 많은 이들이 뜸의 치료 효과에 큰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이런 뜸의 치료 효과를 매스컴에서 부각하면서 대중의 관심이 더욱더 쏠렸다. 구당은 자신의 '무극보양뜸'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가 수차례 반복한 얘기를 그대로 옮기면 이처럼 요약할 수 있다.

"무극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뜻이고, 보양은 건강을 증진시켜준다는 뜻이다. 8개 경혈, 12개 혈 자리에 집중적으로 뜸 치료를 하면 누구나 효과를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이런 무극보양뜸은 '이로운 점만 있고, 해로운 점은 하나도 없다.'"

필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1년에 1만 명 이상의 환자에게 침을 놓은 지 벌써 20년이 되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침이 이로운 점만 있고, 해로운 점은 없다,' 이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아마 동서양을 막론하고 의사라면 누구나 이런 필자의 마음에 공감을 할 것이다. 만병통치약과 같은 치료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의학> 5000년의 역사, 어느 문헌을 들여다보아도 '12개 혈 자리를 꾸준히 떠서 건강해진다', 이런 무극보양뜸의 근거를 찾기가 힘들다. 굳이 찾자면, 1934년 만주를 침략한 일본군이 이와 비슷한 뜸 치료를 '국민 보건 요법'이라는 이름으로 보급했었다. 당시 일본군은 전장에서 '젊은' 사병의 체력을 극적으로 끌어올리고자 뜸을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만약 이런 전시의 뜸 치료를 현대인에게 그대로 적용한다면 그 부작용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현대의 보통 사람은 체력은 비교적 좋은 반면, 스트레스로 인한 화병이 많다. 이렇게 화기가 넘치는 이들에게 뜸을 떠주는 게 과연 좋을까? 체육관에서 수천 명의 대중을 모아놓고 음양허실의 진단도 없이 뜸을 만병통치약처럼 가르치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부적절하다.

중국, 일본까지 눈을 돌려보면 무극보양뜸과 비슷한 경우를 일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몸의 정해진 자리 4곳에 꾸준히 뜸을 떠서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이 예로부터 전해진 모양이다. 그곳에서도 이 방법을 놓고 논란이 많았던지, 사신으로 일본에 간 18세기 조선의 의사 조숭수에게 그 타당성을 물었다.

"음기가 적거나 양기가 넘치는 사람에게는 뜸 치료를 해서는 안 된다."

바로 이렇게 환자의 상태에 따라서 끊임없이 가장 적합한 대응을 하는 것이야말로 의사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다. 만병통치약을 믿는 사람을 의료인으로 볼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수차례에 걸쳐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같은 전염병도 뜸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얘기한 모양이다. 말문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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