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사장님!
잘 지내시죠? 단풍 소식에 이어 첫눈 소식까지 들리는 걸 보니 가을이 점점 깊어 가는가 봅니다. 오늘은 기업에 있어서 중요하면서도 민감한 사안 중의 하나인 후계자 육성 문제에 대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경영자들에게 후계자 문제를 거론하려고 운을 떼면 처음부터 쑥스러워하며 손사래를 치거나 아직 내가 한창인데 무슨 소리냐며 아예 입을 못 열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 이유는 지금 회사 돌아가는 일만 해도 벅차서 미래의 일에 대비할 여유가 없거나, 앞의 사례처럼 자신의 건강이나 능력을 과신해서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긴 경영자가 자신이나 기업의 먼 장래를 걱정하고 사전에 대처할 만큼 여유롭기도 쉽지는 않겠지요. 후계자라고 하면 큰 재벌들이나 신경 쓸 일이지 중소기업 하는 사람이 무슨 후계자냐고 겸손해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전문경영인들의 경우에는 내 앞날도 어떻게 될지 잘 모르는데 뒷일까지 어떻게 신경 쓰겠느냐고 솔직하게 말하는 분들도 게시더군요. 실제로 많은 기업에서 전문경영인의 교체는 본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런 상황의 경영자에게 후계자 육성까지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요.
후계자 문제에 관한 우리 기업의 이러한 현실은 대단히 우려할 만한 것입니다. 흔히들 기업의 평균수명을 30년이라고 하고, 요즘에 와서는 20년이라고도 합니다만 장수할 것 같던 우량기업들의 중도하차가 상당 부분 후계자의 잘못에 기인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사안이 그렇게 간단히 넘길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후계자 육성 문제는 기업의 지속적인 번영을 위해서 꼭 관심을 가져야 할 주요 이슈인 것입니다. 능력 있는 후계자의 양성은 최고경영자의 은퇴준비 과정에서도 필수적인 선결과제가 됩니다. 경영자의 은퇴는 본인의 의사로 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질병이나 사고 등에 의해 타의로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 아무리 우수한 경영자라 하더라도 연로해지면 판단력이나 감각이 떨어지게 마련이지요. 그것은 자연의 섭리라 인정하기 싫더라도 빨리 인정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이 현명한 선택입니다.
따라서 최고경영자라면 어떠한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후계자는 키워놔야 하는 것입니다. 후계자는 미래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현재에도 항상 고독하게 최종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최고경영자에게 훌륭한 의논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출장 등으로 회사를 장기간 비워야 할 일이 생길 경우에도 안심하고 떠날 수 있게 하는 보험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사실 후계자 양성은 최고경영자뿐만 아니라 모든 부서의 책임자가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할 숙제입니다. 평소 부서마다 책임자의 후계자를 키워놓으면 부서장이 갑자기 바뀌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업무의 단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죠. 얼핏 생각하면 상식적인 일 같습니다만 많은 조직에서 책임자가 바뀌면 새로 부임한 사람이 업무파악에 상당한 시간을 허비하고, 업무의 연결이 이루어지지 않아 직원은 물론 고객들까지 힘들게 하는 경우를 흔히 봅니다. 후계자를 미리 양성해 두었더라면 겪지 않아도 될 애로를 괜히 겪는 것이지요.
통상 경영권의 이양은 최고경영자의 가족이나 동업자, 또는 종업원에게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가족, 특히 자식을 후계자로 삼는 경우는 따로 언급할 사항이 많으므로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누가 되더라도 후계자 육성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염두에 두셔야 할 사항들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후계자를 키우기 위해서는 통상 네 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우리 회사의 미래에 필요한 리더십은 어떤 것인가를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경영환경의 변화와 업종의 특성 및 미래를 고려하여 기업의 성장에 필요한 능력을 갖춘 경영자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현재 떠오르고 있는 후계자 후보들의 자질과 잠재력을 평가해야 합니다. 당연히 장래에 요구될 경영자의 요건과 후보자의 기량이 일치하는지를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는 후보자들이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다양한 학습기회와 여러 분야의 업무를 경험할 수 있는 근무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끝으로 육성중인 후보자들의 역량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평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천부적인 재질도 중요하지만 끊임없이 노력하고 성장해 가는 인물을 선택하기 위해서입니다.
후계자가 갖춰야 할 능력은 다양하므로 평가도 다양한 측면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첫 번째 갖춰야 할 자질은 앞날을 내다보는 선견력입니다. 정보화 혁명으로 인한 변화의 시대에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 특히 자신의 기업과 관련업종의 가까운 장래를 예견할 수 있는 안목은 필수적인 역량입니다.
둘째는 위기대처 능력입니다. 후계자들이 기업을 궁지로 몰아넣는 구체적 원인의 대다수가 위기대처 능력의 부족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자격요건입니다.
셋째, 의사결정과 업무수행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넷째, 소비자 지향적인 사고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종업원들을 존중하고 인화를 이룰 수 있는 인격을 갖춰야 합니다.
여섯째, 남을 신뢰하고 자신도 신뢰받는 사람이라야만 합니다.
이러한 단계와 평가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 적임자를 선별해 나가야 합니다만, 그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점도 많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후보자들을 평가할 때 각 후보들의 단기적인 재무성과에 과도한 비중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평가가 단기이익 등의 재정성과에 치중하게 되면 후보자들이 전시효과에 집착하여 무리수를 두는 등의 부작용을 낳게 됩니다. 후계자의 선정은 회사의 먼 장래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 눈앞의 성과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은 평소의 업무에도 항시 적용되어야 하는 원칙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주의할 점은 이러한 후계자의 육성은 공개적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공식적인 승계가 이루어져야 할 시점에 결정된 후계자를 발표하는 것은 몰라도 육성과정에서 후보자를 공개하는 것은 후보에서 제외된 사람들의 사기저하와 직원들 간의 편 가르기 등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많게 될 것입니다. 후보자에 해당될만한 사람들에게 약간의 암시를 주어서 긴장감을 유발하거나 노력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정도는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후계자를 육성해 나감과 동시에 최고경영자가 꼭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업무 매뉴얼을 가능하면 상세하게 작성해 두는 것입니다. 그 매뉴얼에는 모든 업무의 우선순위와 사장으로서 꼭 챙겨야 할 사항 등 자신의 경영자로서의 평생 노하우가 담겨져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매뉴얼은 후계자가 경영권을 승계했을 때 소모적인 학습 과정을 최소한으로 줄여주고 나아가서 성공적인 최고경영자로 등극하게 하는 비장의 무기가 될 것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경영자라도 언젠가는 물러나야 합니다. 물러날 시기를 자각하고 그때를 위해 후계자를 육성하는 CEO는 더욱 훌륭한 경영자로 남게 될 것이며 그 기업도 지속적인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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