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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후버빌의 비극'을 막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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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후버빌의 비극'을 막으려면

[의제27 '시선'] 후버와 이명박, '원더보이 엔지니어'의 모순

이명박 정부 3년차를 맞았다. 필자는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대공황 당시의 대통령인 후버와 유사점이 많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지난 2년간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을 지켜보면서 그런 유사점을 재삼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후버빌의 비극

미국의 제31대 대통령(1929-1933) 후버는 퀘이커교도로 인도주의자로서의 명망이 드높았다. 거의 당대 최고의 인도주의자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제1차 세대대전 당시에는 민간인을 대피시키고 피난민을 구호하는데 책임을 맡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대통령직에 있을 때는 전 월급을 기부했고, 이런저런 복지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항상 가난한 이들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기에, 미국의 풍요가 모든 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겠다고 취임사에서 밝히기도 했다. 그는 누구나 집을 소유하고 모든 농민이 농장을 소유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후버의 이름은 대공황 당시 여기저기 들어섰던 무허가 판자촌에 붙여졌다. 대공황 이후 대거 늘어난 노숙자들이 모여 살던 곳을 미국인들은 조롱삼아 후버빌(Hooverville)로 불렀다. 그토록 가난한 이들에 대한 자애심이 넘쳤던 후버의 이름이 어떻게 노숙자들의 집단 판자촌에 붙여지게 되었을까?

▲ 판자촌 후버빌의 모습

원더보이 후버

후버는 광산개발업자로서의 성공으로 부와 명성을 쌓은 후 공직에서는 착수한 사업은 모두 대성공을 거두어 당대에 '위대한 엔지니어'(Great Engineer)로 불렸다. 일반에게도 잘 알려진 업적으로 후버댐이 있다. 미국 라스베가스 남동쪽 48Km지점에 위치한 이 댐은 로스엔젤레스를 출발하는 한국의 관광버스들도 대부분 찾는 대표적 관광명소이다. 착공 당시에는 세계 최대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주목을 받았지만, 사실 더 힘든 일은 7개 주를 관통하는 콜로라도 강의 강물에 대한 권리를 각 주에 배분하는 일이었다. 1922년 상무부 장관으로서 후버는 연방정부를 대변하여 각 주 정부간의 첨예한 이해관계를 잘 조정하여 이른바 콜로라도 강 협약(Colorado River Compact)을 맺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협약이 있었기에 후버댐 프로젝트가 가능했다. 후버댐은 후버가 대통령이 된 후 1931년 착공하여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6년 완성되었다.
▲허버트 후버 대통령

이렇듯 후버의 조정능력은 뛰어났고, 후버는 이러한 조정의 중요성을 잘 알고 활용한 대표적 행정가였다. 상무부 장관 시절 그는 이해관계자간의 협의회를 수없이 많이 주재했다. 산업별 협회를 조직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표준화를 이끌고 이를 통해 효율성을 높였다.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것이 조정능력이라면 그는 최고의 자질을 갖추었다. 조정능력을 바탕으로 손을 대는 것마다 성공하는 '원더보이'(Wonder Boy)였다.

위대한 엔지니어의 모순

한국인들은 왜 이명박 대통령에게 열광했는가?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자랑하듯 많은 이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청계천 주변 상인들의 반발을 극복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들에게 약속한 것은 이제 와 보면 모두 공수표가 되었지만, 그의 능력은 인정할 만하다. 대단히 빨리 공사를 진행해서 자신의 임기내에 청계천에 물을 흘려보내는데 성공했다. 현대건설에서 최연소 사장으로 업적을 쌓았던 성공신화가 행정가로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고도성장의 모순이 빚어낸 첨예한 사회적 갈등을 일거에 불식시킬 원더보이를 한국인들은 마침내 그에게서 발견했다. 다시 성장동력에 불을 붙여 사회적 갈등을 종식시키리라 기대했다.

후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1920년대는 미국이 급속하게 성장하던 때였다. 산업기술이 발전하고 자동차의 대량 보급이 시작되면서 물질적 풍요가 풍미하던 시대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빈부의 격차가 커지면서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던 시기였다. 마피아가 횡행하고 급진적 인종차별주의자의 결사체인 KKK단이 세를 넓혀가던 혼란의 시대였다. 미국인들은 영웅을 필요로 했다. 후버의 조정능력을 바탕으로 미국경제가 새로운 신천지를 열어갈 것으로 기대했다.

위대한 엔지니어의 가장 큰 특징은 성과주의다. 뚜렷한 목표를 설정하고 갖은 역경을 이겨내 성과를 냄으로써 사람들을 열광케 한다. 성과를 내는데 있어 이념이나 원칙은 거추장스럽다. 이명박 대통령이 실용을 강조하는 것과 후버 대통령이 실용적 이상주의자(practical idealist)로 불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상적인 목표를 설정했다면 그 목표를 달성하는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현장에서 예상치 못한 역경에 끊임없이 부딪쳐야 하는 엔지니어들에게 실용주의란 금과옥조가 아닐 수 없다.

시장과 의회를 인정하지 않는 리더쉽

엔지니어의 입장에서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 단계에서 예상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논의하고 토의하는 것은 생산적이다. 그래서 후버가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수없이 많은 회의를 주재했으며 이명박 역시 청계천 주변 상인과 수없이 만나 설득하는 과정은 모두 자연스럽게 공학적 과정에 포함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을 남의 의견을 경청하는 가장 민주적인 지도자라고 믿는다. 민주적인 지도자가 설정한 목표에 대해 재론을 요구하거나 아니면 끊임없이 비판을 일삼는 것은 커다란 사회적 비용으로 치부한다.

두 대통령이 모두 다 친기업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바로 이러한 태도와 연결된다. 경제성장의 주역은 기업이기 때문에 기업을 중심에 두고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국가 경영을 공학적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각 경제주체가 조화롭게 합의를 이루는 것이 가장 비용을 줄여 효율성을 달성한다고 생각한다. 후버는 기업간 이견을 해소할 수 있는 협의회를 각 산업에 조직하고 이러한 협의회를 주축으로 해서 노동계와 소비자의 이해를 반영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 회의체 내에서 노동계와 소비자의 불만이 제시되는 것은 환영하지만, 기업의 이익에 반하는 주장을 하는 노동운동이나 소비자 운동은 모두 불필요한 비용일 뿐이었다. 엔지니어로서의 시각에서 자연스럽게 이러한 운영 방식이 생겨났기 때문에 두 대통령간 공통점이 많다.

후버와 이명박은 모두 법치를 강조한다. 조화로운 경제운영을 위해 법치는 필수적이다. 특히 과격한 노동운동은 철저히 배격한다. 그러나 반면 이들은 시장의 규칙을 인정하지 않는다. 시장의 규칙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때론 규칙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는데 그런다고 성과가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치를 강조하는 것과 특정기업인만 사면한다거나 민간 금융기관의 인사에 개입하거나 민간 기업에게 미소금융에 출자하도록 강요하거나 세종시에 투자하도록 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모순을 느끼지 못한다. 필자와 같이 시장의 규칙을 중시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모순된 행태를 성과주의자들은 합리적 선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의회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이 결정한 사항에 대해 쉽게 동의하지 않고 시간만 끄는 의회는 낭비적인 조직이고,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일삼는 척결의 대상에 가깝다. 둘 다 국민의 높은 지지율을 얻어 당선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야당과의 타협을 무의미하게 여기고, 설사 지지율이 하락할 때에도 당대 최고의 엔지니어로서의 자부심으로 인해 자신의 선지자적 통찰력에 대한 신념을 꺾지 않는다.

서민에 대한 무한한 자애심을 가졌지만 두 사람 다 국가가 개인을 돕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복지는 낭비적 비용으로 생각하며 굳이 그런 지원이 필요하다면 자신이 했듯이 교회를 통해서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 모두가 집을 한 채씩 소유하는 사회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만, 경제적 곤궁으로 인해 노숙자가 된 사람들에게는 자신처럼 열심히 노력해서 다시 재기하라고 권고한다. 그렇기에 감세와 친기업 행보로 인해 대기업과 부자만을 위한 정책을 펴고 그 결과 기업과 많은 서민들이 고통을 겪지만 스스로는 가장 친서민 대통령으로 자부하고 실제로 그렇게 믿는다. 이런 모순적 행동에 대해 비판하는 학자들은 자신들의 박애정신과 그에서 비롯한 친서민 정책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일 뿐이다.

조화·효율과 견제·균형의 차이

인류는 오랫동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발전시켜 왔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역사적으로 전제군주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기본원리인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을 실현하기 위해 법치와 의회주의를 정립해 왔다. 시장경제 역시 공정한 경쟁을 위해 시장의 규칙을 만들어 왔으며 그 기본적 원리 역시 견제와 균형에 가깝다. 그런데 이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공통의 목적을 위한 통합의 원리와 결합하지 못할 때 민주주의도 시장경제도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게 된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제대로 성숙하지 못해 사회적 갈등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할 때 경제는 정체상태에 빠지게 된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경험이 일천한 국가의 국민 입장에서는 추상적인 제도보다는 성과를 내는 영웅을 갈구하는 경향을 띄게 된다. 한국과 같이 전제적 통치하에서 경제성상을 달성한 국가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렇듯 성과주의가 만들어낸 영웅들은 국정운영방식으로 조화와 효율을 내세운다.

조화와 효율, 얼마나 좋은 이야기인가? 그런데 이 조화와 효율이라는 성과주의의 원리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민주주의를 껄끄러워하는 분들은 대체로 견제와 균형을 피상적으로만 받아들인다. 우리 주변에서도 정관재계의 실력자 등 많은 분들이 조화와 효율을 강조하는데, 그 중에 반민주적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리는 성과주의의 입장에서는 부정적인 원리이고 대중에게도 부정적인 어감을 준다. 반면 조화와 효율은 대중적인 호소력이 매우 큰 긍정적 통치이념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긍정적인 원리를 권력자가 내세울 때는 압제적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 민주화 세력이 권력을 잡았을 때도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서 완장을 휘두르고 다녔던 인사들이 많았다. 야당일 때는 견제와 균형을 이야기하다가 여당이 되면 조화와 효율을 이야기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의 구조적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면서 성과를 내는 방법, 또는 역으로 조화와 효율을 강조하면서 견제와 균형의 취지를 퇴색시키지 않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현대국가의 영원한 과제이다. 우리는 지금 그런 과제를 학습하고 있는 중이다. 그 학습을 통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얻게 될 것이다.

성과주의 사회가 낳은 엔지니어 대통령

후버 대통령은 행정부에 입각하기 전 전세계를 돌아다녔기에 당시 미국이 필요로 하던 제도를 잘 알고 있었다. 그 덕분에 각종 표준 설정, 선박항해, 수로, 전력 개발, 홍수 통제, 교통규칙 제정 등의 수없이 많은 분야에서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시장경제의 균형보다는 친기업주의에 의한 조화를 강조했기에 예상치 못한 대공황을 불러왔다. 대공황이 발발한 이후에는 자신의 철학과 현실과의 괴리를 누구보다 잘 깨닫고, 노선의 변화를 꾀하지만 때는 늦었다. 그가 배려했던 서민들은 후버빌에 들어가 살며 그를 조롱했고, 그는 대공황의 한복판에서도 빈민 구제에 정부 예산을 쓰지 않는 잔인한 지도자라는 오명을 쓴 채 쓸쓸히 물러나야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불행히도 세계화와 지식정보화 혁명이라는 당대의 화두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국정을 운영하게 되었기에 합리적인 목표를 세우지 못했다. 집권 여당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함에 따라 연이어 시대를 역행하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성과 지상주의를 신봉하는 지도자가 설정한 목표가 국가와 국민의 합리적 욕구와 괴리될 때 비극은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무엇보다도 시장과 의회를 무시하는 그의 태도로 인해 시장경제와 의회주의의 가장 큰 장점인 분권은 무너졌다. 향후 한국에서의 모든 의사결정은 모두 청와대의 직계부대가 내려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모하게 벌려놓은 많은 일들을 제대로 수습하기는 쉽지 않다. 조기 레임덕의 조짐이 보일수록 더욱 성과주의에 집착하게 될 것이다.

한국인이 성과주의에 몰입해 있지 않았다면 이명박이라는 대통령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무엇인가를 보여주겠지 하고 기대하는 심정이 없었다면 불법과 탈법으로 얼룩진 후보가 대통령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인이 청계천에 열광하지 않았다면 전국에서 제2, 제3의 청계천 공사를 한다고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또 수없이 많은 정치인들이 개발을 하고 세우고 부술 공약을 내세울 것이다. 그런 국민들의 성향을 기대하지 않았다면, 민주주의 제도에 의해 수년간에 의해 합의된 사항을 어느 날 갑자기 선지자처럼 번복하는 무모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성과주의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안정적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후버댐은 계획보다 2년 먼저 완공되었다. 그 과정에 사망한 인부가 공식 통계상으로도 112명에 달한다. 압도적 지지로 후버가 대통령이 된지 1년이 채 안되어 자본주의 역사상 최악의 대공황을 맞았고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후버빌에서 굶주려갔다. 우리 역시 그런 성과주의의 폐해를 목도하고 있을 뿐이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새삼 섬뜩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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