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새해를 맞아 '진보와 개혁을 위한 의제 27(의제27, 공동대표 : 정해구, 홍종학, 김호기)' 소속 학자들과 진보개혁의 소신을 가진 소장 학자들의 연재 칼럼, '의제27의 시선'을 확대 개편합니다. 지난 한 해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 홍종학 경원대 교수(경제학), 고원 상지대 학술연구교수(정치학), 이태수 현도꽃동네사회복지대 교수(경제학), 정상호 명지대 국제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정치학), 김종걸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경제학)가 깊이 있는 칼럼으로 지면을 빛내주셨습니다. 다섯 분이 한 팀을 이뤄 운영되던 기존 필진에 올해에는 정해구 성공회대 사회학부 교수, 김수현 세종대학교 도시부동산대학원 교수(사회/도시/주거/교육),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가 펜을 함께 듭니다. 칼럼 연재 순서는 정해구(정치), 홍종학(경제), 김윤태(정치/사회), 김수현(사회/도시/주거/교육), 정상호(정치/지방자치), 이태수(경제/복지), 신진욱(시민사회/사회운동) 교수 순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복지 등 각 분야에서 열정적으로 현실과 이론을 고민해 온 학자들의 '시선'을 통해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꾸준한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
지난 2009년의 정치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대치하는 가운데 한나라당이 회의장소를 기습적으로 변경하여 예산안을 날치기 통과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뿐만 아니라 노조법도 1일 새벽 야당의 격렬한 항의 속에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으로 강행 처리되었다. 한나라당은 이를 승리라 주장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국회에서 발생한 이러한 사태는 우리 정치를 죽이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정치의 현주소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신년 국정연설에서 '정치 선진화'를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선진 일류국가로 가자고 한다면 모든 분야가 선진화되어야 합니다. (…) 우리의 소중한 자유를 지키는 토대인 법질서를 확립하고 또한 선진화되어야 합니다. 노동법 개정을 계기로 선진 노사문화를 정착시켜야 합니다." 예산안과 노동법을 강행 처리한 지 채 며칠도 되지 않아 그 원인 제공자가 '정치 선진화'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2009년 연말 정치권은 4대강 사업을 비롯한 예산안과 노조법에 대한 정부여당의 날치기로 마감됐다. ⓒ뉴시스 |
정치를 망가뜨린 이명박 정부
정치가 망가지는 이 같은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그 원인을 국회에서 여야가 몸싸움을 벌이는 것 때문이라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몸싸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몸싸움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고 있는 정치적 상황구조가 더 문제인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회에서 정치가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있는가? 이명박 정부의 등장 이후 국회에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었던 것은 몸싸움의 정치였다. 80여 개의 법안을 한꺼번에 통과시키려 했던 2008년 말의 상황이 그러했고, 2009년 7월 미디어법 통과 시의 상황도 그러했다. 그리고 이번 2009년 말의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도 몸싸움이 벌어졌다. 왜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는 이런 사태들이 반복되는가?
이명박 정부 아래의 국회에서 매번 몸싸움이 벌어지는 원인은 다음의 두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대통령의 국회 무시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밀어붙이기식 국정운영에 있어 야당은 단지 거치적거리는 방해물에 불과할 뿐이다. 대통령이 말하는 '정치 선진화'는 그 거치적거리는 야당을 치우거나 순치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우리 정치 전반에 걸쳐 그리고 국회 여야 의원의 숫자에 있어 힘의 균형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과 국회에서 과반을 훨씬 넘는 집권여당이 그 강력한 힘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때, 소수 야당으로서는 몸으로 막아서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 우리가 정치에서 보아왔던 것은 바로 이 같은 모습이다. 힘이 센 측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때 힘이 약한 측에서는 몸으로 버틸 수밖에 없는 구조가 바로 우리 정치를 망가뜨려왔던 상황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치를 망가뜨린 근원은 바로 이명박 대통령의 밀어붙이기식 국정운영과, 그러한 국정운영의 수단으로 전락한 공룡 한나라당의 힘자랑에 있다.
정치적 힘의 균형을 회복시켜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치를 살리기 위해서는 우선 정치적 힘의 균형을 회복시켜야 한다. 서로 힘이 엇비슷해야 힘이 센 측에서는 횡포를 부리지 않고, 힘이 약한 측에서도 몸싸움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가능한 환경은 강자와 약자의 힘이 엇비슷한 상황이다.
다행히도 정치적 불균형을 야기했던 2008년 4월 18대 국회의원 총선 이후 국민은 정치적 힘의 균형을 회복시키기 위한 선택을 해왔다. 작년 429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은 인천 부평과 울산 북구에서 소수세력인 야당의 후보를 선택했다. 또한 작년 1028 재보궐선거에서도 국민은 수원 장안과 안산 상록에서 그리고 충북 증평진천괴산음성군에서 정치적 약자인 야당 후보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상의 선거 결과를 놓고 언론들은 이를 '견제론'으로 해석했다. 일방적인 독주를 거듭하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해 국민이 이를 견제하고자 했고, 이에 따라 국민의 의사가 표출되는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은 야당을 지지했다는 것이다. 국민의 이 같은 '견제'가 우리 정치에서 힘의 균형을 회복시키고자 했던 바로 그러한 시도였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의 힘의 균형은 아직도 일방적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난 연말연초 국회 예산안 처리와 노동법 처리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그런 점에서 올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지적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의 국민 선택이 당분간 우리 정치의 향방을 결정지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이 한나라당을 지지할 경우 그것은 이명박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로 해석될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또 한 번 특유의 밀어붙이기식 국정운영을 계속할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선택이 소수세력인 야당을 선택을 경우 그것은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견제의 의미로 해석될 것이다. 그 경우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은 일정 제동이 걸릴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정치' 없이 민주주의 없다
근래에 들어 우리는 '민주주의의 역진'이니 '역사의 후퇴'니 하는 말들을 자주 듣는다. 그런 말들이 자주 언급되는 것은 '좋은 정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이끌고 가는 정치는 좋은 정치가 아니다. 거대 집권여당이 국회에서 힘자랑을 하는 정치는 좋은 정치가 아니다. 국회에서 몸싸움의 정치, 극한 대결의 정치가 이루어지는 정치는 좋은 정치가 아니다.
민주주의에서 좋은 정치란 대통령이 국민과 야당에 귀를 기울이는 정치이다. 좋은 정치란 집권여당이 국회 과반을 넘는다 하더라도 그 스스로가 나서 야당과 대화하고 협상하는 정치이다. 좋은 정치란 국회에서 상호 정당한 경쟁과 토론을 하고 이에 바탕하여 합리적인 결정을 하는 정치이다.
나는 민주주의의 출발이 그리 복잡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민주주의의 출발은 좋은 정치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그리고 이 같은 좋은 정치가 이루어지기 위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은 우리 정치의 힘의 균형이 회복되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2010년 올 한 해는 정치적 힘의 균형을 회복하여 망가진 우리 정치를 되살리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우리 정치는 바로 그 점부터 다시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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