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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을 외면했던 당신, 지금 행복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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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용산'을 외면했던 당신, 지금 행복합니까?"

[2009년, 잊을 수 없는 사람들·③] 용산 참사 희생자

이제 헌 달력을 버릴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나쁜 기억은 씻어내고 좋은 기억만 남기리라 결심하곤 합니다.

올해가 유난스러웠던 걸까요. 버리려야 버릴 수 없는, 아니 두고두고 가슴에 담아두리라고 다짐하게 하는 기억들이 참 많습니다. 용산 참사, 전직 대통령의 잇따른 서거, 정부의 방송 장악 시도 등이 그렇습니다. 새로운 달력을 걸어도,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2009년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정리했습니다. <편집자>


오르고 또 올라가면
모두들 얘기하는 것처럼
정말 행복한 세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는 갈 곳이 없었네
그래서 오르고 또 올랐네
어둠을 죽이던 불빛
자꾸만 나를 오르게 했네


12월 10일 발매된 '루시드폴' 4집 '평범한 사람' 중 한 대목이다. 발매 3일 만에 1만 장이 팔렸고 각종 가요 차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진 게 없는 사람들, 죽어간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고 밝혔다. '평범한 사람'은 용산 참사를 모티브로 삼았다.

용산 참사. 2009년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중요한 문제다.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다 되도록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용산 참사를 덮어두기 급급하다. 참사 초반에 관심을 가지던 대중도 용산을 잊은 지 오래다.

▲ 용산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까지 변화된 건 아무 것도 없다. 용산 참사가 발생한 남일당 건물. ⓒ프레시안

한순간에 철거민으로 전락…정영신 "철거민하면 달동네, 판자촌만 생각했다"

1년 가까이 사태 해결을 촉구하고 있는 고인의 유가족. 이들은 지난 9월, 8개월 넘게 생활하던 순천향병원을 나와 용산 참사 현장에서 살고 있다. 현재 구속 중인 이충연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 부인 정영신(38) 씨도 마찬가지다. 이충연 씨는 용산 참사에서 죽은 고 이상림 씨의 아들이다.

정영신 씨 가족도 처음부터 철거민은 아니었다. '사장님' 소리를 들으며 호프집을 운영하던 평범한 시민이었다. 정 씨가 운영하던 호프집의 권리금은 1억5000만 원에 달했다.

"한 순간이었다. 남편과 나는 철거민이라고 하면 달동네, 판자촌만을 생각했는데 말이다. 당사자가 되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이 일을 당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다. 철거민의 심정을 말이다."

정 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돈 버는 일이었다. 돈을 벌어 빚 갚고 가족을 부양하는 거 말곤 어떤 관심도 없었다. 자신이 가게를 운영하던 용산4가에 재개발이 시작되기 전 용산5가에서 먼저 철거가 시작됐다. 당연히 철거민이 생겼고 재개발 현장에 천막이 설치됐다. 정 씨는 "천막을 보면서 '돈 더 받으려 저런다'고 생각했다"며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럽다"고 말했다.

철거민이 되고 나선 세상이 달라졌다. 어디에서도 정 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은 없었다. 돌아오는 건 주먹뿐이었다. 정 씨는 "조합, 경찰, 용역은 우리가 억지를 쓴다고 하지만 하루아침에 자신의 일터가 사라졌는데 가만히 있겠는가"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정 씨가 보상금으로 받은 돈은 3개월치 영업 손실금. 이 돈으론 다른 곳에서 소규모 가게도 열수 없다. 그래서 망루 위에 올랐다. 이로 인해 정 씨는 시아버지를 잃고 남편이 구속됐다. 남편은 1심에서 징역 6년형을 선고 받았다.

정영신 씨가 느끼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는 대단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용산 참사를 바라보는 일반 대중의 무관심에 대한 안타까움도 깔려 있었다.

"전쟁터 같은 곳에서 하루하루 살면서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회의도 든다. 왜 사람들은 재개발 문제를 남의 일로만 생각할까? 지금 겪지 않는다고 무관심한 거 같다. 이런 식으로 재개발이 계속 이어 나간다면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용산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그게 답답하다."

▲ 추모제에 참석한 정영신 씨. 그는 하루 아침에 철거민이 됐다. 철거민이 되기 전에는 자신이 이렇게 되리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프레시안

사적 재산권의 보호를 어디까지 인권으로 보아야 하는가

용산 참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경찰의 강경 대응으로 철거민이 죽음을 당했다'는 철거민을 피해자로 보는 시각과 '철거민의 질서 유린으로 생긴 불가항력 사고였다'는 철거민을 가해자로 보는 시각, 마지막으로 '경찰이 과잉 진압을 한 건 문제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철거민의 요구는 무리하다'는 다소 유보적 시각이 그것이다.

이렇게 용산을 두고 여러 시각이 엇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적 재산권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고민해야 풀리는 부분이다.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사회과학부)는 "사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성급하게 개입하는 게 현명했는지, 사적 소유 재산의 어디까지를 우리가 인권으로 볼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거 초기 자유주의 시절, 재산권을 규정하는 방식은 절대적이었다. 생명은 빼앗아 가도 재산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합의가 기저에 깔려 있었다. 이러한 초기 자유주의에서 나타난 재산권이나 소유권이 인권의 절대적인 부분으로 작용, 지금까지 소유권을 신성하게 보는 게 현실이다.

물론 현대로 넘어오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국제인권법에 따르면 소유권은 더 이상 개인이 절대적으로 향유하는 권리가 아닌 일시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권리로 변화됐다. 또한 국가 일반 이익이나 공공복리를 위해서는 재산의 통제도 가할 수 있게 됐다. 소유권이 과거 절대적 권리였다면 지금은 조건부 권리로 변화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소유권이 절대 권리로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용산 참사'다.

조효제 교수는 "우리가 고전적 소유권에 굉장히 경도돼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소유권을 둘러싼 국민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조 교수는 국가가 소유권 분쟁에서 앞으로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국가의 이중적 역할을 언급하며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용산 참사는 국가가 소극적 의무와 적극적 의무를 모두 저버린 대표적 사례에 해당한다. 국가는 자제해야 하는 부분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되레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부분에서 자제했다. 모든 국가의 행동은 소극적 측면과 적극적 측면이 생기는데, 이걸 어느 정도로 자제하고 개입할 것인가는 늘 고민해야 한다.

용산 참사는 이 경우가 뒤바뀌었다. 손대지 말아야 할 부분에는 개입해 사람을 죽이고, 갈등 분쟁을 줄여야 할 때는 중재를 포기했다. 반면 미리 개입해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으로 분쟁의 갈등을 제거했어야 했는데 이 부분마저도 자기 임무를 방기했다. 국가의 임무를 정반대로 실행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봤을 때, 용산 참사는 국가의 반인권적, 극단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고 한대성 씨의 부인 신숙자 씨가 남일당 건물에 마련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이날은 영하 10도의 칼바람이 부는 날씨였다. ⓒ프레시안

뉴타운에 부푼 대중…"용산 참사는 대중들의 꿈을 건드린 사건"

용산 참사를 바라보는 일반 대중의 시선이 무관심한 이유도 재산 소유권에 대한 확고한 맹신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로 인해 용산 참사를 인권적 시각에서 접근하지 않고 있다는 것. 조효제 교수는 "국가가 철거민을 일부러 죽인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본격적인 인권 문제로 다루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즉, 용산 참사를 바라보는 시민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부조리한 것에 절규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용산 참사의 희생은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한다는 이야기다. 용산 참사가 발생한 것을 두고 시민들이 안타까워는 하지만 적극적으로 애도하기 어려운 이유다.

정용택 제3시대 그리스도 연구소 연구원은 "용산 참사가 일반 대중으로 하여금 당연시 되는 세계를 건드린 사건이기 때문에 애도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도시 개발에 대해 우리는 너무나 익숙해져 있고 길들여져 있다"며 "이로 인해 용산 참사가 잘못됐다고 하기엔 어려움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정용택 연구원은 "용산 참사로 인해 뉴타운이 문제라는 것은 인식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뉴타운의 꿈을 버리지 못한다"며 "용산을 애도한다는 것은 자신의 선택을 부정한다는 것 밖에 되지 않기에 차마 용산을 애도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유가족들은 이곳 용산 참사 현장에서 지난 9월부터 생활하고 있다. ⓒ프레시안

엄기호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원은 용산을 외면하는 대중의 심리를 두고 "의식적인 무의식"이라고 표현했다.

"아예 몰라서 용산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의도된 무의식으로 거부하고 있다. 용산 참사의 문제는 다들 알고 있다. 그럼에도 애써 무시하는 것은 율법 때문이다. 집이 없거나 재산이 없는 사람들은 남의 재산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율법 말이다. 이게 가장 핵심이다."

엄기호 연구원은 "재산이 없는 사람들도 재산만이 나를 보호해준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가난한 사람일수록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것과 똑같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한국 사회가 개발을 통해, 부를 증식시키는 방식으로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배제되고 탈락되는 사람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엄기호 연구원은 "이것이 한국 현대사에 대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이해"라며 "이것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용산을 보면서도 안 됐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회피한다"고 말했다.

엄기호 연구원은 "자본주의, 즉 재산 소유권을 일반 대중은 어쩔 수없는 질서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노력을 통해 자신 역시 재산 소유권을 가지려는 욕망이 현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며 "용산을 대면한다는 것은 이제껏 살아온 우리 삶의 방식 자체를 외면하는 것인데 그게 가능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조효제 교수는 '인권의 대전환'을 촉구했다. 그는 "과거 자유주의 형태의 절대권으로서 재산권을 인정하던 것으로부터 조건부, 잠정적 권리로서 소유권을 제한하는 전환이 필요하다"며 "국가는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인권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런 전환이 없이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을 포함한 누구나, 용산 참사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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