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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기자는 '샐러리맨', 맞다. 하지만…"

[2009년, 잊을 수 없는 사람들·①] 'YTN 해직기자' 우장균 신임 기자협회장

이제 헌 달력을 버릴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나쁜 기억은 씻어내고 좋은 기억만 남기리라 결심하곤 합니다. 하지만 올해가 유난스러웠던 걸까요. 버리려야 버릴 수 없는, 아니 두고두고 가슴에 담아두리라고 다짐하게 하는 기억들이 참 많습니다. 용산 참사, 전직 대통령의 잇따른 서거, 정부의 방송 장악 시도 등이 그렇습니다. 새로운 달력을 걸어도,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2009년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정리했습니다. <편집자>

대통령 대선 특보 출신인 구본홍 씨의 '낙하산' 사장 논란, 정연주 전 한국방송(KBS) 사장의 해임, 6명의 YTN 기자 해직 등 '언론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던 2008년에 이어 2009년에도 논란은 적지 않았다.

YTN에서는 구본홍 전 사장의 석연치 않은 해임 이후 취임한 배석규 사장의 전횡을 두고 사원들의 반발이 이어졌고 KBS에는 역시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특보 출신인 김인규 씨가 사장에 선임됐다. 또 MBC에서는 새로 선임된 '김우룡 체제'의 방송문화진흥회의 '섭정' 경영에 비판이 적지 않다.

반면 일각에서는 2009년을 '반격의 해'로 기억하기도 한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이 법원에서 해임이 부당했다는 판결을 받아냈고, 6명의 YTN 해직기자 역시 법원에서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았다. KBS에서는 '방송의 독립성'을 내세운 새로운 노조가 만들어졌고 MBC에서는 여전히 '반대'의 움직임이 진행 중이다.

6명의 YTN 해직기자 중 최고 맏형인 우장균 기자가 제42대 기자협회장에 당선된 것을 두고도 '희망의 전조'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낙하산 사장'에 맞선 '해직기자'가 당선됐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의미가 크고, 각종 '언론 장악' 논란에서 다소 경직된 대응을 보였던 기자협회의 변화를 기대하기도 한다.

<프레시안>은 우장균 기자협회장을 만나 언론인으로서 그가 겪은 2009년 한 해를 물었다. 우장균 협회장은 '기자 정신'을 이야기할 때는 결연하게, 가족을 이야기할 때는 눈물 짓기도 하고 미래를 이야기할 땐 유쾌한 모습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해직'은 구본홍 씨가 준 큰 명예였다"

▲ 우장균 기자협회장. ⓒ프레시안
프레시안
: 늦었지만 기자협회장에 당선된 것 축하드린다.

우장균 : 큰 영광이다. 지난 1년 여 동안 해직기자가 된 것도 큰 명예를 얻었다고 말해왔는데, 기자협회장이 되어 큰 세속의 명예를 차지했다. 나는 사실 청와대 출입기자로서 '구본홍 씨가 사장으로 오면 우리 젊은 기자들이 쉽게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 외에 해고가 될만한 행동을 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사측은 해고의 명예를 줬다. YTN 투쟁이든 기자협회장 선거든 동료, 후배 기자들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올렸는데 세속의 명예는 제가 혼자 차지한 것 같아 송구스럽다.

프레시안 : 지난해 9월 24일 <기자협회보>에 실은 '박선규 청와대 비서관께'라는 칼럼이 우장균 기자의 해고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지난 1년 여간 후회는 없었나?

우장균 : 후회는 한번도 안했다. 사측에서는 그 칼럼을 두고 '반정부 투쟁'을 자극했다는 식으로 몰아가며 내가 마치 '투쟁의 배후 조종자'인 듯한 흑색선전이 있어왔지만 내가 쓴 칼럼의 핵심은 'YTN 기자들의 자존심'이었다. 기본적으로 칼럼에서 밝힌 박선규 비서관과의 대화가 사실 그대로였고 그 칼럼을 쓸 때도 스스로 '만용'을 부린 것이 아니라 노종면 위원장과 상의해서 결정한 것이었기 때문에 명분과 실리가 맞아 떨어지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또 그 칼럼에서 시작된 일련의 일들이 세상과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분들이 저를 인정해주는 계기가 됐다. 그러한 역경을 겪었기 때문에 이렇게 기자협회장이라는 자리에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기자협회장을 출마하며 쓴 해직 일기에 아버지 이야기가 나온다. 지난해 12월 'YTN 노조 후원의 밤'에서도 '나에게는 나를 지탱해주는 3명의 여인이 있다'며 어머니와 동갑내기 아내, 막내딸 이야기를 해서 많이 회자됐다. 진솔한 이야기를 할 때 가족 이야기를 많이 하는 거 같은데.

우장균 : 항상… 그렇다. 내가 너무 잘한게 없어서. 아버지가 올해 85세인데 급성폐렴 때문에 응급실로 가셨다. 폐에 기관삽입으로 호흡을 하고 계시고 동시에 식사도 하지 못해 위장에 바로 튜브를 넣어 영양을 공급하고 있다. 기관 삽입을 할 때 어머니는 반대했다. 아버지가 고통만 겪다가 돌아가실 것을 걱정했고, 어쩌면 자식걱정을 하신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보호자이기 때문에 기관삽입을 결정했는데, 기자협회장에 당선된 다음날 어머니가 '우리 아들이 아버지를 살려서 이렇게 좋은 일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 지난 11월 13일 법원이 YTN 해직기자들에게 '해고 무효' 판결을 내렸을 때도 "아버지 제가 이겼습니다"라고 말씀드리니 힘겹게 오른 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시더라. 새삼 아버지께 살갑게 해드린 적이 없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 우장균 기자협회장은 이날 가족의 이야기를 꺼내자 끝내 눈물을 보였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우장균 기자 개인에게 2009년 한해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우장균 : 1년이라고 하기에 애매한데, 작년 10월 6일 해직이 되던 날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정부 내든 아니든 언젠가 복직이 되긴 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내가 언론인으로서 현장을 뛰는 것은 앞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정부 끝날 때까지는 적어도 강태공이 세월을 낚듯 화를 삭이고 세월을 관망하며 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올 12월 8일에 기자협회에 당선됐다. 다음날 아침에 술도 깰 겸 관악산에 올라갔다. 서울대 교정이 보이더라. 내가 1983년에서 1986년까지 그 학교를 다녔다. 1986년 4월에 분신하고 지금은 열사라 불리는 이재호 열사가 내 친구다. 전두환 시대, 기라성 같은 운동권 리더들이 배출되던 정치학과 출신이지만 나는 그 시대에 한번도 집시법 위반으로 걸린 적도 없다.

그랬던 내가 언론인으로서 상식을 지키고 양심을 지키려다가 해고가 되고 검찰에 기소가지 됐다. 곧 벌금형이 확정될 것이다. 그때 그렇게 친구들과 다르게, 고민은 하면서도 소시민처럼 대학생활을 보냈던 내가 2008년 해직이 됐다. 지난해의 해직, 이 두 가지가 내 인생의 사건이고 이 사건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줬다고 생각한다. 그 질풍노도의 시절, 친구들과 놀며 다니던 학교 건물을 보면서, 인간은 나약하니까 초심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정치권력과 금권으로부터의 독립, 기자 전체의 핵심 이해관계"

▲ 진보든 보수든 현장을 뛰는 기자들에게는 아무런 압박 없이 '공명정대하게' 기사를 써야한다는 공통 분모가 있지 않나." ⓒ프레시안
프레시안
: 기자협회 내에는 보수적인 언론사도 다수 포진해있다. 우장균 협회장의 '언론개혁', '기자정신' 등의 모토에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있을 수 있다.

우장균 : 나는 나름대로 선거 운동을 하면서 해직기자라는 것을 전혀 내세우지 않았다. 해직 기자중 가장 전국적인 스타라고 할 노종면 위원장도 선거 유세에 전혀 함께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미 갈라진 진보와 보수에서 너무 한쪽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고, 또 너무 정부와 각을 세워서 기자협회 재정이 더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많았다.

기자협회는 언론노조나 PD연합회와는 다르다. 언론노조와 기자협회는 당연히 다르고 PD연합회와도 또 다르다. PD연합회는 KBS, MBC, SBS 위주로 되어 있고 회원사가 많지 않다. 그러나 기자협회는 많은 회원사가 있고 그렇다보니 이데올로기 등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그런 면에서 해직기자가 협회장이 됐다고 해서 한쪽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은 내가 내세운 통합의 정신에도 맞지 않다. 우리는 언론노조나 PD연합회에 비해 상대적 보수성을 갖고 있을 것이다. 협회장이 운영위원회 등의 의견을 듣지 않고 단기 필마로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다.

프레시안 : 출사표에서 '기자협회, 언론노조, PD연합회' 등 언론 단체들이 참여하는 언론 평의회를 다시 구성하겠다'고 했는데.

우장균 : 언론 3단체 간의 연대는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론 민주주의가 꽃을 피울 때는 물론 언론 민주주의가 위축될 때는 더욱더 필요하다. 그리고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현장을 뛰는 기자들에게는 '공명정대하게 기사를 써야한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기자들이 정치권력이나 금권에 의해 위축되거나 자기 검열이 강화된다거나 하는 부분은 당연히 기자협회가 앞장서서 막아야 한다. 더군다나 YTN처럼 노동운동도, 임금 투쟁도 아닌 그저 언론 민주주의를 위한 움직임에 가혹하게 해직이나 정직의 중징계를 받는 것은 더욱 앞장서서 막아야 한다. 기자협회는 이익 단체이고, 기자들이 온당치 않은 법에 따라 불이익을 당할 때 앞장서서 막는 것이 존재 이유다.

프레시안 : 그간 언론이 처한 현실에 기자협회가 보수화됐다는 비판이 많이 제기됐다. 이를 해소할 방법이 있을까?

우장균: 최근 협회가 전체 회원의 의지와는 다르게 수구화되는 부분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 정신은 일반 회원들이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는 기자협회를 만드는데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자협회는 지회장, 간부급 중심으로 운영위원회가 소집되어 열리기에 평회원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평회원들의 권익이 반영되도록, 회원들이 직접 '1인 1표'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거나 단순한 여론조사라도 기자협회의 의사 결정에 충분히 반영되도록 할 것이다. 또 기자 연수도 몇몇 거대 언론사에서 소수만 누릴 수 있는 '대기업 1년 연수'를 확대하기 보다 열악한 재정의 젊은 기자들도 갈 수 있는 1달짜리 국내 연수를 확대하는 쪽으로 생각해보려고 한다.

"기자는 샐러리맨…그럼에도 기자정신을 말하는 것은"

프레시안 :지난 2009년의 언론을 정리한다면 뭐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우장균 : 언론이 점점 힘든 시기로 가게된 한 해라고 할 수 있겠다. 두 가지 의미인데 언론 민주주의의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었고 또 하나는 언론인의 생활의 측면, 경제적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이번 기자협회장 선거에서도 '도대체 기자정신이 먼저 있어야 하느냐, 혹은 기자가 제대로된 월급을 받는게 먼저냐'는 질문이 나의 숙제였다고 생각한다. YTN은 아마 전국 40여 개 언론사 중 월급이 높은 축에 속할 텐데 내가 '기자 정신'을 이야기하면 지역이나 열악한 회원사의 분들은 "맞는 이야기인데 그것만 갖고 할 수 없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분들을 많이 마주쳤다.

▲ "2009년은 언론이 이중고를 겪은 한 해 였다." ⓒ프레시안
이를테면 상대 후보가 내세웠던 모토 중에 "우장균이 승리하면 저널리즘의 승리고 자기가 승리하면 지역의 승리다"라는 말이 있었다. '저널리즘의 승리'도 기자협회에서는 중요한 것인데 왜 선거운동 모토로 내세웠을까. 기자 개개인들은 '저널리즘' 보다는 '먹을거리', '이익'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었을 법하다. 그것이 바로 2009년 대한민국 언론의 현실이다. 이러한 딜레마가 거대 언론이건 지역 언론이건 모든 언론인에게 있다. 많은 언론사들이 제대로 월급받지 못하면서 자력 갱생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나는 이게 큰 문제라고 본다.

프레시안 : 실제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를 돌아봐도 각종 '낙하산' 논란 속에서 YTN처럼 줄기차게 싸워온 언론사가 드물고 또 그 중에서도 우 기자처럼 '중견 기자'들이 투쟁에 나서는 것도 드물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해야할까?

우장균 : 저처럼 마흔 다섯이 넘어 자기 하고 싶은대로, 세상의 물결을 거슬러 사는 사람들을 흔히 말해 '미친 놈'이라고 한다. (웃음) 언론인도 생활인이다. 지금 21세기에 지사형 기자를 바란다는 사실은 너무나 가혹한 것 아닌가. 단순히 '보수화'의 문제가 아니라 연차가 더해갈 수록 어떻게든 회사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관점이 교차하게 된다.

그러나 KBS든, MBC든 보수신문이든 중견기자 중에도 옳고 그름을 위해 싸우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고 생각한다. 기자협회장 출사표에서 '견리사의'라는 말을 내세웠는데 그렇게 큰 일이 아니다. 부장 진급, 출입처 등의 작은 이익을 위해 옳고 그름의 문제에서 옳음을 버릴 수 있을 것인가의 질문이다.

기자협회장 연설문에 넣으려다가 너무 길어서 뺀 말이 있다. "제가 기자가 된 이후에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으나 기자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 그렇게 작은 이익에 매몰되지 않고 하는데까지는 폼나게 해보려고 한 것, 이것이 핵심 아닐까.

프레시안 : 최근 온라인 댓글 등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사회 전반적으로 기자에 대한 신뢰도가 많이 낮아진 것같다. 어떻게 생각하나.

우장균 :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언제나 기자는 불가근 불가원의 존재였다고 생각한다. 어느 시대에나 '구악 기자'는 있었다. 최근 더 문제가 된다면, 각 언론사마다 '자사 이기주의'에 매몰된 측면이 있어서 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기자들은 샐러리맨이다. 기자협회의 회비는 기자들이 한달에 만 원씩 낸다. 수입에 따라 달리내는 세무사 협회나 의사협회 등과는 차원이 다르다. 기자들은 월급쟁이니까. 그런데 기자협회가 왜 생겼나. 1964년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기자들을 법에 따라 옥죄려고 하니까 나온 것이 기자협회다. 그 정신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 ⓒ프레시안

"이명박 정부에 희망을 걸고 있다"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 들어 한국의 언론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우장균 : 문제가 있다.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이 정부 초기보다 내년 지자체 선거를 앞둔 지금의 시점에서 볼 때 앞으로 더 악화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명박 정부에 희망을 걸고 있다. 충분히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2년간 자신들의 시각에서의 '언론 개혁'을 해오고 있는데 이제 어느정도 일단락이 됐다고 본다. 또 앞으로 언론에 대해 지속적으로 강공책을 내놓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이제는 언론에 대한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일 때가 됐고 비록 해직기자가 협회장이 됐다고 해도 기자협회와도 충분한 대화가 가능하리라고 본다. 나는 정부가 대화를 원하기 전에 먼저 대화를 제의할 준비가 되어 있다.

프레시안 : 기자협회장으로서의 다짐을 정리하자면?

우장균 : 거창하지만 플라톤의 <국가론>을 보면 소크라테스와 트라시마코스의 대화가 있다. 소크라테스는 정의가 힘이라고 했고 트라시마코스는 힘이 정의라 했다. 나는 둘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의가 힘이라고 믿어서 협회장이 됐고 또 이 정의를 힘으로 만들기 위해 정부의 힘있는 분과도 손을 잡을 생각이다. 기자사회에 정의가 들꽃처럼 만발하는데 일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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