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는 오늘도 계속 패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1년이 다 되어 가는 용산참사의 진상을 밝혀내지 못했고, 함부로 파헤쳐지는 4대강의 막개발을 막지도 못했다. 미디어법과 노동관계법은 저들의 의도대로 통과되었거나 통과되기 일보직전이다.
2009년 우리에게 기쁜 일이라고는 고작 정연주 전 한국방송(KBS) 사장의 해임과 김정헌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의 해임이 부당했다는 법원의 판결뿐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비감하게 숱한 패배의 기억들로 다시 1년을 마무리해야 하는 12월 말, 패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패배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스스로 진보라 말하는 이들은 늘 패배보다는 승리에 방점을 찍어왔다. 지금 세상이 어둡고 힘들지만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말했고 그것이 필연이라 말했다. 그러나 역사는 안다. 정의의 승리는 결코 필연이 아니라 무수한 희생과 고난의 결과였으며 많은 경우 이루지 못한 꿈으로 남기도 했다. 그러나 더욱 강해지고 독하게 순결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결코 이기지 못할 싸움일지라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은 결코 승리와 패배를 예고해주지 않고 또한 무조건적인 낙관의 손을 들어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승리적이라거나 낙관적이라는 말 속에 담겨있는 주관적인 기대와 희망이 아니라 묵묵한 오늘의 쟁투이며 생활이다. 승리와 패배 이전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한결같은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 그것은 어쩌면 윤동주 시인이 말했던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는 것과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황규관 시인의 시를 빌어 곡을 붙이고 노래한 싱어송라이터 문진오의 텁텁하고 질박한 보컬 덕분에 노래는 시가 품은 고뇌의 진정성을 고스란히 복기한다. 문진오는 시를 거의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노래로 만들어내면서 좋은 기억 하나 남지 않은 올해를 가장 아프고 가장 정직하게 돌아볼 수 있게 하는 노래를 선사했다. 그것은 그가 지금 '노래를찾는사람들'의 멤버로 활동하며 시대와 역사를 품은 노래를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중년을 향해가는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바라볼 줄 아는 싱어송라이터이기 때문일 것이다.
곡에서 묵직한 그의 보컬이 절박하게 외치는 것도 뜨겁지만 염주현의 스트레이트한 일렉기타 연주와 권오준의 탄력있는 피아노 연주는 곡의 무거움을 반감시키는 대신 세련된 긴장감을 불어넣는데 성공했다. 이 곡은 문진오의 3집 [작고 푸른 점]에도 수록되었지만 지난 7월 12일 일산에서 열린 노무현 추모 콘서트 <천개의 바람이 되어> 현장에서 녹음한 버전을 골라본다. 녹음이 아주 깨끗하지는 않지만 라이브의 맛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부디 내년에는 패배로부터 우리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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