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에 대비하여 '민주당을 뺀 진보대연합'을 제안하였다. 이를 보고 한국정치 전공자로서 적지 않게 당황하였다. 거기에는 평소 존경하여왔던 소신에 찬 정치인이자 내년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예비 후보로서 자격을 의심하게 만드는 부적절한 상황 인식과 적지 않은 논리의 오류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첫째, 노회찬 대표의 발언은 연합정치의 원칙과 정신을 훼손한 정파적 분열정치의 소산이다. 아무리 읽어봐도 '대연합'에 걸맞은 정치주체를 찾아낼 수 없었다. 진보신당은 누구와 정치연합을 하겠다는 것인가? 진보신당과 일부 시민단체의 연합이 진보대연합인가? 제1야당인 민주당은 빼고, 민주노동당과의 정당통합은 지방선거 이후로 미루며, 국민참여당은 앞으로 하는 것 봐서 결정하겠다고 한다. 도대체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엇을 하자는 말인가?
정치학 교과서에서 대연합(grand coalition)은 이념적 유사성에 근거한 소연합과 달리 다소 이질적 정치세력간의 느슨한 연대를 상정한 개념이다. 대연합은 A에서 Z에 이르는 모든 항목의 엄격한 최대 강령의 완전한 사전 협약(pact)이 아니라 최소한의 합의에 근거한 다수 정당들의 느슨한 연대를 추구한다. 노회찬 대표의 주장은 민주대연합이든 진보대연합이든 연합정치가 아니라 비타협 노선의 선명한 진보를 주창하는 독자 노선의 천명으로 독해될 수밖에 없다.
▲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가 29일 2010년 서울특별시장선거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
노회찬 대표와 진보신당만이 진실의 최종적 해석자인가
둘째, 노회찬 대표의 발언을 읽다보면 마치 과거 공안검찰의 기소문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노 대표는 민주당을 배제해야 한다는 논리적 근거로서 양극화를 초래한 민주정부 10년의 과오를 준열히 꾸짖고 개과천선하지 않으면 진보의 자격을 영구히 박탈할 것이라 위협하고 있다. 노 대표의 말대로 민주정부 10년은 정치적·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된 10년이었다. 그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과(過)이자 한계였으며, 두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문제를 보다 솔직하게 구조적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진보개혁세력의 총체적 역량과 지혜의 부족에 본질적 원인이 있다. 그렇게 본다면 진보정당과 진보지식인, 노동운동을 비롯한 진보진영은 상대방에게 일방적 사죄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함께 성찰하는 자세로 국민들에게 임해야 한다.
솔직히 말해 진보정당의 분열이 노무현 탓인가? 보수언론인 조갑제가 민주화운동세력에게 좌경용공세력이라고 몰아붙이는 것과 함께 진보운동을 하였던 오랜 동지들에게 종북주의라는 주홍글씨를 붙이고 분당하는 것 사이에 어떤 도덕적 차이가 있을까?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과의 합당의 전제 조건으로 분당 당시 종북주의 논쟁을 제기한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묻는다면 연합정치가 가능하겠는가?
연합정치의 기본 정신과 원칙은 우리만이 옳았다는 과거의 정당성이 아니라 그래도 척박한 현실보다 조금은 나아질 미래의 희망에 대한 공유이다.
소수파의 피해의식과 정략적 셈법을 넘어서야 한다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한 소수 정당으로서 연합정치는 단기적으로는 독자적 노선 추구의 걸림돌이 되거나 거대 정당에 유리한 안전장치가 될 확률이 크다. 더구나 연합정치를 제도적으로 가능하게 만들 비례대표제가 부실하고 타협의 문화와 경험의 축적이 허약한 한국의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원칙과 가치의 정치를 추구하는 진보신당이나 노 대표의 입장에서 연합정치에 적극 나서지 못하는 이유 또한 헤아릴 수 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이정희 의원의 주장처럼 지방선거 이전 진보정당의 1단계 통합이 더더욱 필요하다. 진보세력들은 민주대연합의 예비 단계로 선거연합 또는 정당통합 수준의 진보연합을 성사시키는 정치적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진보연합이 성공한다면 민주대연합 단계에서 진보세력의 발언권과 협상력은 크게 신장될 것이다.
지금 당장 착수해야 할 것은 민주대연합을 가능하게 만들 여건 조성과 구체적으로 이를 실현할 공정한 후보선출 방식 등의 제도적 고민이다.
연합정치는 독점과 배제가 아니라 소통과 협상의 정치이다
연합의 원칙과 참여의 범위는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의 정파에 의해 선언되거나 통보되는 것이 아니다. 사전적으로 누구는 배제되어야 하고 누구는 하는 것을 보아 결정하겠다는 것은 고압적인 중세 교황의 파문정치이다. 정치연합이 추구해야 할 원칙과 가치, 참여의 범위와 후보 또는 정부 구성 방식 자체가 협상의 가장 중요한 의제이며, 그것은 참여자들의 합리적 소통과 토론을 통해 구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연합정치는 지고지순한 순혈주의나 계급정치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타협과 협상의 산물이다.
정치인으로서 당면한 현안으로 부각된 연합정치에 대한 당과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정치적 활동이다. 그러나 그것은 당론의 집약을 걸친 민주적 과정이자 상대방을 고려한 신중하고 사려 깊은 결정이어야 한다. 어쨌든 이왕 제기된 이상 연합정치의 가치와 방식에 대한 보다 개방된 사회적 공론화가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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