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부가 국세인 종부세를 지방세로 전환하겠다는 이유는 올해 세수가 1조 원에 그치는 등 국세로 유지하기엔 세수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윤증현 재정부 장관은 "2008년 종부세 제도 개편에 따라 종부세 연간 세수가 약 1조원 수준에 불과해 단일 국세 세목으로 유지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면서 "종부세는 보유세로서 지방정부 서비스의 대가로서 수익자부담원칙상 지방세목으로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방침을 밝혔었다.
재정부는 종부세 뿐 아니라 양도세에 대해서도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를 폐지하거나 중과 완화를 계속 유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MB정부 종부세 개편으로 과세자.과세액 '절반'으로
▲ 이명박 정부 들어 '부동산 세제 정상화'라는 명분으로 추진된 종부세 완화는 결국 폐지될 운명에 처했다. ⓒ청와대 제공 |
국세청에 따르면, 종부세 주택분 납세자는 지난해 30만8000명에서 올해 16만 명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대상 세대가 줄어든데다, 경기침체로 인해 주택 공시가격도 하락했다.
또 종부세율이 낮아짐에 따라 고지세액까지 크게 줄어들게 됐다. 올해 주택분 세액은 2416억 원으로, 지난해(8448억 원)보다 무려 6032억 원이나 감소했다. 토지분 세액 역시 지난해(1조4832억 원)의 절반에 불과한 7819억 원에 그쳤다. 올해 총 고지세액은 지난해 2조3280억 원에서 1조235억 원으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
'보유세 강화-거래세 인하' 사회적 합의 뒤집은 MB 정부
결국 종부세가 초라한 국세로 전락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종부세 대못 뽑기' 덕분이다. 강만수 전 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9월 국회에 출석해 종부세 폐지를 주장하면서 "종부세는 고소득층에 대못을 박는 것이다. 부자에게 대못 박는 것은 괜찮냐"고 항변하기도 했다.
문제는 '종부세 폐지'가 정치, 경제적으로 미칠 영향이 '부자 대못 뽑기'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토지정의시민연대는 18일 정부의 종부세 폐지 방침에 반대하는 논평을 내고 "종부세 폐지는 진보-보수, 여야를 막론하고 누구나 인정해온 사회적 합의인 '보유세 강화와 거래세 인하'를 뒤집는 개악"이라고 비판했다.
'부동산 불패신화'를 이어온 한국에서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한 한 방편으로 보유세는 올리고 거래에 부담을 주는 거래세나 소득세 등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부동산 보유에 대한 세부담을 증가시켜 부동산을 통해 얻는 불로소득을 환수하되, 실수요자들 사이의 부동산 거래에 있어 거래세는 낮추는 게 경제정의 뿐 아니라 시장주의적 원칙에 맞다. 토지정의는 "보수언론인 <중앙일보>마저도 지난 12월 2일과 12월 17일 두 차례의 사설을 통해 보유세는 올리고 거래세와 소득세 등은 낮춰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종부세 폐지'는 이와는 반대 방향으로 가자는 것이다. 보유세인 '종부세 폐지'는 결국 부동산을 통해 불로소득을 얻는 이들의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토지정의는 "한마디로 말해 부동산 부자들에게 선물보따리를 던져주겠다는 것"이라며 종부세 폐지 중단을 촉구했다.
내년 6월 있을 강남구청장 선거에서…
재정부는 종부세를 폐지하고 지방세인 재산세에 통합해 운영하지만 이는 사실상 보유세 강화를 하지 않겠다는 말로 볼 수 있다.
종부세는 고가주택과 토지 보유자를 대상으로 해 납부자가 특정 지역에 집중돼 있다. 2008년 종부세 납부자의 86.2%가 수도권에 몰려 있었다. 특히 서울 강남3구와 목동, 분당, 용인, 평촌 등 '버블 세븐'에 거주하는 종부세 납부 대상자가 전국 대상자의 절반인 49.6%에 달했다. 세수가 넘치는 '부자 지자체'에서 과연 주민들의 인심을 잃어가며 (종부세가 편입된) 재산세를 더 걷으려할지는 의문이다.
특히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재산세 공동과세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강남-강북간 재정 격차를 줄이기 위해 구의 주요 세원인 재산세의 50%를 서울시가 가져와 25개 구청에 균등하게 배분하는 방식이다. 강남구 등 '부자구'에서는 이런 공동과세제도에 대해 위헌소송을 낼만큼 거부감이 심하다. '재산세 공동과세가 구의 지방재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강남주민들이 제기한 위헌소송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지난 8일 '각하' 결정을 내렸다. "강남·서초구의 경우 특별시세로 전환되는 재산세 액수가 서울시로부터 다시 교부받는 액수보다 많아서 결과적으로 재정수입이 감소되고, 그로 인해 주민들이 받는 공공서비스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불이익은 간접적이고 사실적·경제적인 이해관계에 불과해 기본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강남 3구가 종부세 편입을 이유로 재산세를 더 걷겠다고 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토지정의는 종부세가 지방세로 전환되면 선거 등 정치적 영향력을 받을 가능성이 커져 더욱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지방선거철이 돌아오면 보유세는 후퇴될 것이 불을 보듯 훤하다"면서 "주민들의 인심과 표도 잃고 걷어서 (특별시세)로 다른 지자체에 줄 재산세를 어느 지자체가 힘들여 걷겠냐"고 강조했다. 재정부 일정대로 종부세가 내년 11월부터 지방세로 전환된다면 내년 6월 있을 지방선거에서 후보들의 정책 공약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출구전략과 부동산 거품
한국개발연구원(KDI)는 지난 10월 '부동산 시장과 국민경제'라는 보고서를 통해 "부동산 보유세를 인상하고 동일한 규모로 소득세를 내릴 경우 평균적으로는 가계의 후생이 높아진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용 토지와 주택(건물+토지)에 1%의 보유세를 부과하고 이를 통해 유입된 세수를 기반으로 소득세를 내리면 평균적으로 가계의 후생이 증가되고 유산 상속 없이 태어날 미래 세대의 후생이 크게 증가된다. 따라서 부동산 보유세를 완화하고 부족한 재정을 보전하기 위해 소득세를 올리는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
현 시점이 지난해 세계 경제위기를 맞아 각국이 유동성을 늘리고 금리를 인하하는 확장 정책의 '끝물'에 있다는 점 때문에 이명박 정부의 종부세 폐지, 양도세 완화 전략이 갖는 위험성은 더 커질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내년 5% 경제성장률 전망을 제시하는 등 사실상 '위기국면의 종료'를 시인하면서도 "출구전략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재정부는 18일 "상반기 중에 재정의 60% 내외를 조기에 집행하여 재정이 안정적인 경제운용을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면서 "특히 동절기인 1/4분기 중에 일자리와 서민생활 안정 지원을 위한 예산의 집행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지방선거가 있는 내년 6월까지 경기가 침체되는 것을 막기 위해 확장적 재정정책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한국경제가 올해 다른 나라에 비해 빠른 회복속도를 보인 것은 정부의 공격적인 재정정책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 경제는 아직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접어들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금리 인상 등 긴축 정책이 시기상조라는 정부 입장을 크게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문제는 정부가 푼 돈이 사상 최저금리 상황에서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으로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리먼 브라더스 파산 직후인 지난해 9월 1일과 1년 후 주가를 비교하면 세계주가는 평균적으로 20% 정도 떨어졌다. 미국의 다우지수는 1년 전에 비해 19% 하락했다(1만1544→9311). 한국은 코스피지수가 1474에서 1623으로 오히려 15% 올랐다.
집값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집값은 2007년 말에서 2009년 5월 말까지 25% 하락했는데 한국의 집값은 같은 기간 2.5% 상승했다. 특히 서울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 등은 올해 상반기 급등해 한때 전고점이었던 2006년 가격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가 '출구전략 시기상조론'을 주장하려면 주식,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 돈이 몰려 과도한 거품을 키우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정책도 병행해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거꾸로 부동산 투기를 부추길 수 있는 종부세 폐지 등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토지정의는 "지금 상황에서 종부세도 폐지하고 양도세 중과도 폐지한 후 내년 이후에 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되면 부동산 투기 광풍과 부동산 가격 폭등은 불을 보듯 훤할 것"이라면서 "이명박 정부가 계속 부동산을 통한 경기부양과 소수를 위한 부동산 불로소득 파티를 벌인다면 이 나라 경제는 회생불능의 상태가 되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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