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의 문장들을 썼다가 지운다. 무어라 말해야 좋을까? 용산에 대해서, 전자상가가 있는 용산이 아니라 지난 1월 20일 이후의 용산에 대해서, 그러니까 아직도 장례를 치루지 못하고 있는 용산에 대해서, 국무총리가 왔다 갔으나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은 용산에 대해서, 날마다 영안실 비용이 비명처럼 쌓이는 용산에 대해서, 고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을 찾았던 500만 명이 외면했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용산에 대해서, 그리하여 다시 겨울을 맞고 있는 용산에 대해서, 이제 참사 1주년이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용산에 대해서 무어라 말해야 좋을까?
어쩌면 용산은 1980년대의 광주가 그러했듯 살아남은 자들 모두의 십자가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날 이후 우리 모두의 분노와 우리 모두의 슬픔과 우리 모두의 망각과 우리 모두의 무관심과 우리 모두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기꺼이 나눠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쉽게 짊어지지 않으려하는 십자가로 지금 용산이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광주를 짊어지고 넘어서지 않고서는 1980년대를 통과할 수 없었듯 용산을 짊어지고 넘어서지 않고서는 우리의 2000년대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평화와 안식과 즐거움은 모두 가짜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용산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해, 그들이 용산을 위해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다. 용산에 바쳐지는 기도와 용산에 쓰여지는 시와 용산에 울려퍼지는 노래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여기 한 부부의 이름을 소개한다. 기꺼이 매주 월요일마다 용산을 찾는 '엄보컬과 김선수'라는 슬밋 웃음이 나오는 이름의 한 부부. 민중가요를 잘 아는 이들이라면 2000년대 초 천지인의 보컬과 건반으로 활동했던 엄광현과 김정은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할 이들은 그 후 부부가 되었고 이제 기꺼이 용산을 지키는 사람이 되었다.
오늘 이들이 만든 노래 <멈춰버린 시간>을 소개한다. 신희준의 일렉기타 연주가 팽팽하게 밀고 나가는 곡은 용산을 잊지 않으려는 음악인들의 진실한 기도이다. 그리고 그들이 보내온 편지를 함께 소개한다. 아마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은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 끝낼 수는 없다.
평화운동가 조약골의 제안처럼 용산을 기억하고, 자원활동을 하고, 물품을 후원(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 2가 224-1 용산참사현장 천막)해야 한다. 현금을 후원(국민은행, 295401-01-156716, 이종회)하고, 인터넷으로 용산을 알리고, 용산에서 벌어지는 활동에 참여하고, 용산에서 함께 얻어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밖에도 무엇이든 가능할 그 가능성으로 용산참사 해결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멈춰버린 인간의 시간은 그때야 비로소 흘러갈 것이다.
작년 여름 무엇이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아내와 악기를 들고 광화문에서 보신각으로, 다시 기륭전자에서 홍대 앞으로 공연을 하고 다니던 중 용산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아내와 '용산참사가 해결될 때까지만 용산에서 연주하자'고 시작한 월요일의 용산 공연이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가네요.
곡 제목을 '멈춰버린 시간-남일당 건물 앞에서'라고 붙여 보았습니다. 용산에서의 시간은 2009년 1월 20일 새벽 참사가 일어나던 그 시각에 멈추어져 있기 때문이지요. 유가족의 시간도, 철거민들의 시간도, 수녀님들도 신부님들도, 그리고 연대하러 가는 우리들도 용산에만 가면 참사가 일어나던 그 시간으로 되돌려져 버리고 맙니다. 중앙정부의 과잉진압으로 철거민 다섯 분과 경찰 한 명이 희생되었음에도 여지껏 아무도 또 무엇도 책임지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규현 신부님의 말씀대로 용산에서의 멈춰버린 시간은 '또 다른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용산은 멈춰버린 시간과 또 다른 것을 새로이 만들어내는 시간. 그 두가지가 함께 교차하는 공간인 것이지요. 노래는 지난 겨울 눈 내리고 꽃피고, 문정현 신부님의 제안으로 검은색의 남일당 건물이 신자와 연대하러 온 사람들이 가져온 화분으로 꽃밭이 되고, 다시 여름의 뜨거운 태양과 장맛비가 퍼붓던 그 시점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다시 낙엽이 지고 또 겨울이 왔지만 수개월간 일주일에 한번씩 공연을 가면서 유가족분들과 철거민분들에게 그리고 이 싸움을 함께 하고 있는 모든 분들께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하면 바람에서 만들었습니다.
그 멈춰버린 시간동안 "남에게 안주고 안받는 게 인생의 원칙이었다"라고 말씀하시던 유가족 한분은 "'나눔'과 '연대'에 대해서 뼈저리게 다시 한번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씀하시고 "나눔은 어려운 이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이들과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신부님들은 "신부들이 이 공간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용산이 보다 낮은 곳을 향했던 예수를 따르고자 하는 '사제들의 일상'을 지켜주고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몇년만에 공연을 하면서 노래와 연주로 위안을 드릴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넘어선 짜릿한 그 무엇을 느끼는 우리 부부는 말할 것도 없겠지요. 우리 또한 '딴따라'로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희열을 그곳에서 느낍니다. 미사를 봉헌하러 오시는 신자분들이나 연대하러 오시는 분들 모두들 이곳에서 나름대로의 새로운 시간들을 만들어 가고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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