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거리에서 눈에 띄는 현수막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2010년도 예산안의 복지 증가를 강조하면서 '친서민 예산'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이 예산안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들의 비판과 예산 확대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 국민연금 등 제도상 자연 증가하는 비용을 제외하면 복지 예산은 오히려 줄었고, 장애인, 노인, 아동, 청소년복지는 물론 예산 지원이 더욱 절실한 저소득층 관련 예산이 삭감됐다는 것이다. 국민들 살리는 복지 예산에 쓸 돈은 없지만, '4대강 파헤치기'를 위해 쏟아 부을 22조 원은 마련하는 것이 현 정부이다
최근 경기가 회복세가 보인다고 하지만, 서민들이 체감하는 살림살이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명목 근로소득은 통계 작성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감소했고, 가계 빚은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좀처럼 줄지 않는 교육비까지 감소세로 돌아섰다고 하니 서민의 겨울은 더욱 춥기만 하다.
▲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있는 광고. |
가난한 환자들 의료비 쥐어짜기
현재 정기국회에서 심의중인 2010년 예산 중 저소득층 지원 예산은 싹둑 잘렸다. 의료급여제도는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와 이재민, 국가유공자, 탈북자, 행려환자 등에게 의료비를 지원하는 제도로 전체 인구 중 3%정도만 이에 해당한다. 복지부는 2010년 의료급여 예산에 3조7166억 원(5.9%증액)을 배정하였는데, 정부조정안은 3조5002억 원(0.3%감액)으로 줄었다. 올해 3조5106억 원에 비해 104억 원이 감소된 것이다.
2010년 의료급여 대상자는 174만5000명으로, 올해의 137만8000명보다 크게 늘리고 예산은 오히려 줄였으니, 갑자기 의료급여 환자들의 건강이 좋아지기라도 한 것인가! 건강보험 진료비가 연평균 15% 증가하는데, 만성질환, 중복질환, 중증질환 환자가 많은 의료급여의 진료비 증가율을 -0.3%로 축소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인가?
그 해답은 복지부가 추진 중인 의료급여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에 담겨있다. 복지부는 의료급여 수급권자의 의약품 과다이용 사례를 제시하며, 이런 오남용을 막기 위해 동일성분 처방 조제일수를 초과할 경우, 그리고 선택병의원을 이용하는 환자가 진료일수를 초과할 경우에 진료비를 지원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상식의 눈으로 보자. 일인 가구 40여만 원의 최저생계비를 받은 의료급여 환자가 천 원 이상의 본인부담금을 내면서 동일성분의 약을 1년 동안 1만4000개나 처방받았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 같은 일이 있다면 의료급여 관리사가 이미 시정조치를 했어야 하는 것이고 처방받은 약들의 행방을 철저히 밝혀 법적 처리를 해야 할 사례이다. 이는 복지부가 중복처방이나 사례관리의 책임을 회피하고 힘없는 수급권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행위이다.
복지부는 이미 2007년부터 진료비 절감조치를 취해 연평균 20%를 상회하던 진료비 증가율을 2007년에 7.2%, 2008년에는 5.9%로 절감시켰다. 진료비 본인부담 증가로 수급권자들이 의료이용을 못하는 문제나 수급권자들의 건강 개선에 대해서는 어떠한 대책도 없이 또다시 의료급여 환자들만 잡겠다는 것이다.
결국 정부가 의료급여 예산을 축소한 것은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의 의료이용을 제한하여 진료비 지출을 줄이겠다는 속셈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의료급여 예산 축소로 인해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의 의료시설과 의약품을 이용할 권리가 침해받고 의료이용에서 차별이 심각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 벼랑 끝으로 떠밀기
긴급복지 지원은 올해 예산 1533억 원에 비해 1004억 원이나 삭감된 529억 원으로 1/3로 줄어들었다. 경제위기가 계속되면서 서민이라면 누구라도 위기 상황에 빠질 수 있는데, 이때 긴급복지 지원은 생계와 의료, 주거, 연료비, 전기요금 등을 제공하여 당장의 생활을 지탱해주는 안전망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그런 역할을 하는 긴급복지 지원을 1/3로 줄이는 이명박 정부는 가난에 빠진 국민을 벼랑 끝으로 떠미는 꼴이 아닌가!
또한 의료급여 수급자, 저소득층에 대해 지원하는 건강검진, 암 검진, 암 환자 의료비 지원 등은 모두 삭감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건강이 나쁘고 질병에 약하기 때문에 건강검진이나 조기발견이 더욱 필요하다. 수백만 원짜리 건강검진은 고사하고 건강보험의 건강검진도 의료급여 수급권자에게는 그림의 떡인데, 그나마 시행하는 건강검진과 암환자 지원예산이 축소되면 건강 불평등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돈 없어 병원가기 어려운 사람들을 지원하는 예산마저 삭감하는 정부는 서민을 위한 정부가 아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36조 제3항에는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보건의료기본법 제10조 제1항에는 "모든 국민은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자신과 가족의 건강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법에는 보편적 복지국가의 면모를 담고 있으나 현실에서 이명박 정부는 가난한 이들의 건강과 생명의 권리를 너무 가벼이 보는 것 아닌가. 비상식적이고 반인권적인 예산을 국회만이라도 바로 잡아주길 바란다.
(이 글은 "가난해도 아프면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라는 제목으로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에도 실렸습니다. <인권오름>기사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 알려면, http://www.freeuse.or.kr 을 찾아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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