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숙(47) 씨가 이 곳 천막에서 가족과 생활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그는 재개발 공사 현장에 설치한 천막이 용역에 의해 강제로 철거된 2008년 11월 이후부터 이곳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힘든 건 셀 수 없다. 먹는 것, 자는 것, 씻는 것, 어느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별다른 수가 없다. 김 씨 가족은 바로 '철거민'이다.
▲ 김명숙 씨는 천막에서 네 가족과 생활을 하고 있다. 벌써 1년이 훌쩍 지났다. ⓒ프레시안 |
지금은 사라진 나의 집 '광명시 광명6동 383-23번지
광명시 광명6동 383-23. 김명숙 씨가 살던 집 주소다. 지금은 사라졌다. 그의 집은 2007년 11월 27일 철거됐다. 김 씨에게 이 날은 죽어도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새벽에 순찰을 돌고 있는데, 딸에게 전화가 왔어요. 떨리는 목소리였어요. 순간 용역이 우리 집을 철거하러 왔구나 생각했어요. 급히 집으로 달려갔죠. 가보니 용역이 이미 우리 집을 둘러싸고 있었죠. 안에 딸이 있다고 해도 용역은 들여 보내주지 않았어요. 남편은 일하러 갔고 아들은 학교를 갔어요."
김 씨는 어렵게 집으로 들어가 딸을 데리고 도망치듯 자신의 집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383-23번지에 있던 집은 흙먼지를 내며 철거됐다. 옷가지나 가전도구를 가지고 나온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딸이라도 데리고 나온 게 어디냐.' 딸은 이후 용역이 입은 검은 옷만 봐도 경기를 일으켰다.
그때부터 김 씨 가족의 고난은 시작됐다. 무엇을 어떻게 할 줄 몰랐다. '이렇게 허무하게 집을 빼앗길 수는 없다.' 함께 남은 사람들과 천막을 짓고 농성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공사가 본격화하자 용역이 천막을 강제로 철거했다. 결국 현재 살고 있는 강동6동 재개발 공사 현장 옆 인도에 천막을 치게 됐다.
엄마가 행여 해코지 당할까 떠나지 못하는 아이들
힘든 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좁은 공간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물이 없어 가장 곤욕이다. 남편인 김동규(47) 씨는 퇴근 후 동사무소, 소방소 등을 방문해 물을 떠오는 게 일상이다. 김명숙 씨도 빨래를 위해 3킬로미터 떨어진 천왕동 철거민 천막까지 가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 김명숙 씨의 남편 김동규 씨가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프레시안 |
아침에 세수를 하러 나올 때도 옷을 제대로 입고 머리도 단정하게 해서 나와야 하는 김 씨의 딸이었다. 이뿐만 아니다. 천막 안에 있는데 누군가 문을 열 경우도 난감하다. 가족에게는 물론 일반 사람들에게도 사생활이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도 김 씨의 딸에게는 곤욕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1년 넘게 부모님과 함께 천막 생활을 고집하고 있다. 김명숙 씨는 자식들을 친척집에 보내고 싶어했다. 워낙 힘들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그러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집이 철거되고 난 뒤,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 말이죠. 뾰족한 수가 없더라고요. 엄동설한에 아이들을 길바닥에서 키울 순 없잖아요. 그래서 큰 딸과 작은 아들을 시누이 집에 보내기로 결정했죠. 그런데 아이들이 가려고 하지 않는 거예요. 우리와 같이 있겠다면서….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랬어요."
아이들이 이곳에 남은 이유는 행여나 자신이 없는 사이 김 씨가 용역에게 해코지를 당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김미소 씨는 "엄마가 용역과 실랑이 도중 머리를 구둣발에 짓밟히는 걸 봤다. 그 뒤론 절대 엄마 곁에서 떨어지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고 말했다. 당시 이러한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우리 가족이 철거민이 되기 전에는 철거민이라고 하면 없는 척하면서 돈 받으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몰라요. 어떤 상황인지. 믿을 건 우리 가족 밖에 없어요. 그게 답답하고 슬프죠."
보증금 1000만 원으론 갈 곳이 없는 철거민들
그나마 현재 살고 있는 천막 터는 광명시 소유다. 아직까지 용역이 이곳은 건드리지 않고 있다. 광명6동으로 이사를 올 때만 해도 자신이 이렇게 길바닥에서 살게 될 줄은 전혀 몰랐던 김 씨였다.
김명숙 씨가 이곳으로 이사 온 것은 10년 전이다. 1997년 외환 위기로 운영하던 작은 사업체가 부도가 난 뒤였다. 전세 1000만 원에 방 두 개가 있는 주택이었다. 부도로 신용불량자까지 된 터라, 친척과 지인들에게 겨우 돈을 빌려 장만했다.
당시만 해도 재개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뚜렷한 이야기는 없었다. 그래서 재개발에 대한 걱정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 2007년 관리 처분이 나고 본격적으로 철거가 시작됐다. 이후 용역과 끊임없이 실랑이를 벌였다. 그때 그들과 싸운 것만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지는 김 씨였다.
현재 김 씨 가족은 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집이 철거됐을 때 수거된 옷, 가전제품 등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통상적으로 조합이 철거민에게 주는 이주비나 임대 아파트 분양권도 받지 못했다. 되레 조합 측에서는 '김 씨 가족에게 걸었던 명도소송비 300여만 원을 보증금에서 빼겠다'고 말했다.
김 씨는 "보증금 1000만 원의 전셋집은 이젠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며 "사람들은 돈을 더 받으려고 이렇게 천막을 치고 지낸다고 하지만 신용불량자라 대출도 안 되는 마당에 어딜 갈 수 있겠느냐"고 눈시울을 붉혔다.
자동차에서 먹고 잔 것이 벌써 8개월째…"밤에는 별의별 생각 다한다"
서울 용산구청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강정희(42) 씨도 마찬가지다. 2008년 8월 1일로 자신의 집이 철거됐다. 아무도 없는 사이 철거를 당해 숟가락 하나도 꺼내지 못했다. 방학이라 큰 아이와 작은 아이를 친척집에 보냈는데 그때 이후로 아이들은 그곳에 있다.
강 씨는 공사 현장 입구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했다. 번번이 용역에 의해 강제로 천막이 철거됐지만 그때마다 다시 설치했다. 그러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시공사에서는 천막 자리에 컨테이너를 설치했다. 아예 천막 자체를 설치하지 못하도록 한 것. 그것이 2009년 4월이었다.
▲ 용산구 신계동 재개발 현장 입구에서 농성 중인 강씨. 그는 차에서 먹고 자며 영구 임대 주택을 요구하고 있다. ⓒ프레시안 |
그때 이후로 강 씨는 재개발 공사 현장 입구에 봉고차를 주차시키고 차에서 기거한다. 조수석이 그의 침대다. 반 년을 넘게 이 생활을 하다 보니 안 아픈 곳이 없다. 겨울이라 날씨가 쌀쌀해지는 요즘은 더욱 그렇다. 주변에서 "뜨거운 물을 주전자에 넣어 잘 때 이불 안 다리 밑에 놓고 자면 따뜻하다"는 말을 듣고 얼마 전부터 그렇게 하고 있다.
강 씨는 영구 임대 아파트를 요구하고 있다. 전에 살던 집은 전세 500만 원에, 월세 50만 원을 줬다. 그가 이곳에 이사 온 것은 2003년께였다. 4년 2개월을 이곳에서 살았다. 하지만 조합에서는 5년 기준으로 세입자를 갈랐다. 5년 이상 기거한 경우 임대 아파트나 이주 비용 중 선택할 수 있게 했고 5년 이하인 세입자는 아무런 혜택도 주지 않았다.
강 씨는 "밤에 혼자 차 안에 있으면 별의별 생각을 다 한다"며 "자살이라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조합은 말할 것도 없고, 서울시장이나 대통령은 인두겁을 한 사람들"이라며 "최소한 양심만 있다면 이렇게까지 우리를 방치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두 번째 겨울을 맞는데, 언제쯤 이것을 끝낼 수 있을까요? 1년만 지나면 공사도 마무리된다고 하네요. 그 안에 이 문제가 해결돼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안 될까요?"
"지나친 개발자, 소유자 위주 재개발이 문제…공공기관이 재개발 주도해야"
무분별한 재개발 사업 진행으로 서민들의 가슴이 멍들고 있다. 또 다시 용산 참사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용산 참사로 인해 철거민의 문제가 사회 이슈가 됐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게 재개발 문제다.
한국 사회에서 재개발 사업은 막대한 개발 이익이 발생한다. 하지만 그 이익에서 원주민인 세입자는 항상 배제돼 왔다. 하루아침에 철거민이 된 뒤 용역에게 다치고 소외되는 게 세입자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재개발 사업에 나타난 모순들은 대부분 실정법이 만들어냈다고 지적한다. 문병효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개발 관련 법령은 헌법에 규정된 주거권 등의 기본 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02년 12월 30일 제정된 '도시 및 환경정비법'은 주거 환경 개선 사업, 주택 재개발 사업, 주택 재건축 사업, 도시 환경 정비 사업을 규정하고 있다. 이를 관행적으로 통틀어 재개발 사업이라고 일컫는다. 문병효 강원대 법학대학전문 교수는 "이 법이 주거와 삶의 질 확보는 뒷전이고 수단으로 전락한 채 재개발 사업을 통한 이익획득을 지원하거나 방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인간 존엄과 주거권 등을 위해 재개발 정책은 고쳐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개발 이익 환수 제도만 보아도 그렇다. 개발 이익을 100이라고 본다면 75를 개발 업자가 가져가고 나머지 25를 국가가 환수한다. 그렇다보니 부의 편중은 심각한 상황이다. 문병효 교수는 "재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수많은 갈등과 분쟁, 피해를 고려할 때 법률은 개발 업자에게 너무 많은 이익을 주고 있다"며 "최소한 절반만이라도 국가가 환수해 피해를 입은 자들과 지역사회에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구체적인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무엇보다도 근본 문제인 폭리와 투기를 뒷받침하는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재개발 사업이 자본에 휘둘리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이를 위해 김수현 세종대 교수는 "민간 시행자 대신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공 기관이 재개발 시행자가 되어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서울시의 경우 재개발로 인해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재개발 지역 내 13만6346호의 주택이 사라질 예정이다. 반면 공급될 주택은 6만7134호에 불과하다. 소형 주택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중대형 주택이 들어서는 셈이다. 중대형 고가 아파트가 생기다보니 원거주민의 재정착 비율은 10퍼센트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물론 세입자는 말할 것도 없다.
김 교수는 이 문제를 "개발 이익만 앞세우는 민간 시행자가 지나치게 개발자 및 소유자 위주로 개발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공공 기관에서 재개발을 주도, 장기적 관점에서 수도권 집중과 과밀화를 억제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구체적 정책 대안을 가이드라인으로 한 재개발 사업 시행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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