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들은 지난 해의 촛불을 아름답고 즐거운 저항의 순간으로만 기억하는 것 같다. 하지만 물대포가 등장하고 여름을 맞으면서부터 촛불은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과 아득함을 견디는 장기전이 되었다. 한두번 촛불을 들었던 이들에게는 촛불이 즐거운 난장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번이라도 새벽을 넘긴 시간 겨우 100여명쯤 남아 차선 귀퉁이를 서성이다 전투경찰에 밀려 좀비처럼 돌아와 본 경험이 있는 이라면 그 답답한 분노와 패배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은 겨우 면피성 사과를 두어번 했을 뿐, 체제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해 가을부터 청계천과 시청 앞 광장은 경찰 버스로 완전히 봉쇄되었고 그토록 야유를 보냈던 '주옥같은' 두 신문사의 불도 결코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겨우 1년만에 이제는 촛불마저도 다시 들기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 때 그 많던 촛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직접 재치 넘치는 구호를 써왔던 촛불들, 이런저런 먹거리를 한없이 나눠주던 촛불들, 대책회의도 준비하지 않았던 밧줄을 어디선가 구해왔던 촛불들, 손에서 손으로 모래를 퍼나르던 촛불들, 대열의 후미에서 술판을 벌이던 촛불들. 1년이 지나도 포맷되지 않는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때 그 많던 촛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즐거움과 분노와 안타까움과 절망은 지금 어디에선가 조용히 늘어나는 이자처럼 번지며 증식하고 있는 것일까?
밴드 게이트 플라워즈의 곡 <후퇴>는 바로 이러한 촛불 그 이후의 앙상하고 무기력한 현실을 주목하고 있는 곡이다.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에 '한번도 의심을 가져본 기억은 없었'지만 더 이상 우리 것이 아닌 시청 광장과 타버린 용산의 옥탑 컨테이너 잔해 너머 경찰 버스의 익숙하고 지겨운 긴 행렬들만을 마주해야 하는 현실은 우리를 한없이 남루하고 비참하게 만든다.
진실이 승리한다는 당위와 갈수록 참혹해지는 현실 사이의 괴리감은 견딜 수 없는 모욕처럼 우리를 침묵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많은 인민들이 이명박을 선택한 '방만한 선택'과 '단 한번의 실수'가 빚어낸 결과만은 아닐 것이다. 더더군다나 우리에게는 '감당하지도 못할 결말'이 아직 더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비극적인 현실을 자조적으로 노래하는 게이트 플라워즈의 곡은 거칠면서도 선명하다. 박근홍(보컬), 염승식(기타), 유재인(베이스), 양종은(드럼)으로 구성된 4인조 록밴드 게이트 플라워즈는 드물게 복고적인 정통 록큰롤을 추구하는 밴드. 이들은 한동안 휴지기를 거쳐 다시 활동을 시작하며 올해 10월 헬로 루키에 뽑혀 그랜드민트페스티벌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후퇴>에서도 금세 드러나듯 취기가 묻어나는 질박한 보컬과 묵직한 일렉기타 연주가 돋보이는 이들의 연주는 수준급이다. 특히 여러차례 이어지는 빼어난 기타 솔로는 오늘의 울분처럼 거칠고 격정적이다. 쉽게 듣기 힘든 명연주에 박수를 보내며 묻는다. 과연 우리는 후퇴하고만 있는 것일까? 우리는 언제 다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쉽게 풀리지 않는 고민은 다시 연주의 잔향보다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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