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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집을 의심하라, 그것은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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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집을 의심하라, 그것은 권력이다

[철학자의 서재] <헤르만 헤르츠버거의 건축 수업>

뻔한 이야기의 시작

우리는 새로운 것이 최고인 시대에 살고 있다. 그것이 물건이 되었든 생각이 되었든 사람이 되었든 상관이 없다. 물론 새롭다는 것은 매력적인 부분이 있다. 굳이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새롭다'라는 어휘의 의미를 살펴보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그 뜻을 짐작할 수 있다. 사람들 대부분이 긍정적인 의도를 가지고 그 말을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건 없이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는 행동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이것과 저것이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달라서 새로운지를 알아야 한다. 심지어는 그것이 왜 그렇게 된 것인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전의 것과 지금의 것을 분석하고 비교·대조할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상황까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만 새로운 것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것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괜히 '하늘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라는 말을 들먹이면서 새로움에 대한 평가절하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분명 새로운 것은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하늘아래 없는 새로움'은 그 어떤 것이 없다가 갑자기 생겨나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주목하는 새로움은 그렇지 않다. 아무 것도 없음에서 어떤 있음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있음에 다른 있음이 더해지는 것이다. 곧 먼저 것과 다음 것이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니라 연속성을 띠면서도 다름을 말한다.

오래되고 헌 것이라는 비교 대상이 없으면 새로운 것은 그 존재 의미가 모호해진다. 비교 대상이 있어야 어떤 점에서 어떻게 다르고 새로운지를 알 수가 있다. 그런데 비교 대상인 앞의 것에 대해서 제대로 모른다면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상호 간의 비교 자체가 어려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철학·과학 등 모든 분야에서 예전의 것들을 살펴보고 알아야하는 것이다. 이것이 다름 아닌 생각하고 실천하는 공부일 것이다. 분야에 상관없이 이러한 과정을 거쳐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남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기본적인 마음가짐과 원칙이다.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

▲ <헤르만 헤르츠버거의 건축 수업>(헤르만 헤르츠버거 지음, 안진이 옮김, 효형출판 펴냄). ⓒ프레시안
지인의 소개로 <헤르만 헤르츠버거의 건축 수업>(효형출판 펴냄)이라는 책을 접했다. 평소 철학이 아닌 다른 분야의 책은 그리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인지라,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책을 설렁설렁 읽어나갔다. 그런데 건축 관련 이론들로 득실거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시간이 갈수록 책은 나의 오만과 편견을 비웃는 듯했다. 예로 든 사진들과 함께 들려주는 지은이의 건축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순간 나를 사로잡았다. 무언가 통했던 것이다.

사람은 대부분 자신의 신체를 보호하거나 보존하기 위해 옷을 입고 음식을 먹으며 집을 지어 그 속에서 생활한다. 추우면 옷을 입고 배고프면 음식을 먹으며 피곤하면 편안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잠을 청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기본적으로 충족해야 하는 성질의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의식주 중에서도 주거, 즉 사람이 사는 공간에 대한 지은이의 철학을 들려주고 있다.

건물을 짓고 활용하는 형태는 예전과 지금이 다르고 이곳과 저곳이 서로 다르다. 즉 시간적·공간적으로 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해 책에서는 "건축의 기원을 논할 때 예전부터 강조되는 것이 비바람을 막아주는 '피신처(shelter)' 개념이다. 인류 역사가 시작되고 도시를 건설하면서 피신처는 서서히 분절된 형식을 획득하며 오두막에서 주택으로 발달했다(56쪽)"라고 말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보면 원래 외부로부터 사람의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단순한 장치 혹은 수단이었던 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술이 발달하면서 지금의 형태로 바뀌었다는 말이다. 또한 이러한 점에서 사는 곳의 기후·지형과 같은 주변 환경에 따라 건축 자재의 차이가 나고 구체적인 구조에 있어서도 다르게 나타난다. 물론 시공간을 아울러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아무래도 지식의 다양화와 축적에 따른 기술의 발달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시공간의 상황과 환경은 언제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기에 무시할 수 없다. 아무리 우리의 지식이 늘어나고 기술이 뛰어나도 주변 환경을 거스르면서 살 수는 없다. 왜냐하면 상황이나 환경을 무시하고 인위적으로 주변 환경을 바꾸면 그 결과는 다시 우리의 배경이 되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우리는 지구가 멸망하거나 인류가 멸종하지 않는 이상,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그리고 그것이 좋은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악영향으로 더욱 많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환경오염과 자연 파괴 등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생각의 넓이를 넓혀도 사람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기 힘들다. 그리고 사람 중심의 사고에는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다. 하지만 주변 환경에는 그러한 의지는 없다. 단지 그냥 저절로 있거나 그대로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사람의 의지에 의해 한 번 이라도 인위가 가해진 환경은 더 이상 그전의 환경이 아니다. 그리고 인위가 가해진 환경은 다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결국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환경에 가하는 영향력은 환경의 그것보다 훨씬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반복·순환하면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에서 사람의 의도가 결부된 환경이 사람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

이 책에서 저자가 계속해서 하는 주장의 핵심은 건축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주변 환경을 고려해서 만들게 된 건축물 또한 결국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주변 환경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특정한 무언가를 의도하여 건물을 짓더라도 사용자를 비롯한 모든 이에게 무한한 활용의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것이다. 지은이의 표현들을 빌려 알아보면, 곧 특정한 의도는 건축물이 제 기능을 하는 범위 내에서 최소한으로 하는 대신,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관대하고 우호적이어서 자연스럽게 참여하고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창출하자는 말이다.

지은이는 복잡하고 구체적인 건축 기법들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건축가가 가져야하는 기본적인 마음가짐, 원칙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나아가 그러한 마음가짐과 원칙에 의거해 건축을 해야만 건축가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가장 주목할 점은 지은이가 건축가라는 직업이 사람들을 비롯한 주위 환경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투철한 직업 정신과 책임감을 가질 것을 역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물 흐르듯이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비단 건축가뿐일까? 자연스럽게 선거 때는 스스로를 국민의 하수인이라 부르고, 당선된 후로는 국민의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떠올랐다. 또 행정전문가·검찰·경찰 등을 포함한 공무원, 나라의 경제를 양어깨에 짊어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재계인들, 백년대계의 일선에 서 있는 교육자들도 다른 이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의 테두리에 들어갈 것이다. 물론 사적인 관계에서는 그 외의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 좀 더 높은 위치나 지위에 있거나 영향력의 파장이 넓은 경우를 고려해본다면 그리 터무니없는 생각은 아닐 것이다.

건축가가 건축물을 만들 듯이 정치인은 법률을 만들고 공무원은 행정안을 만들고 재계인은 경제안을 만들고 교육자는 사람을 만들 방안을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방안을 집행한다. 이것이 바로 저절로 주어진 자연과 같은 환경이 아니라, 또 하나의 인위가 부가된 만들어진 환경인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결정과 집행에 인해 조성된 환경에 의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는다. 물론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반대로 영향을 줄 수 있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경우는 소통의 원활하지 않음 등으로 인해 영향력이 미미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상황이 제대로 실현되기가 역부족인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우리들의 요구를 충분히 받아들여서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요구해야하며 그들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것인가? 그에 대한 대답을 이 책에서 '헤르만 헤르츠버거'가 말하고 있다. 아니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말해왔고, 우리도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더 강조했을 뿐이고, 이 점이 그렇지 않은 현실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뻔한 이야기의 새로움

사실 우리가 요구해야 하는 것과 그들이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은 같다. 눈앞에 있는 성과나 이익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환경과 사람과의 관계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요구하고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에는 유독 "건축가는 ……"라는 문장이 많이 나오는데 그럴 때마다 '건축가'라는 주어 대신, 더 큰 영향력을 지닌 자들을 넣어서 다시 읽곤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의미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통했다. 만들어야 할 대상이 서로 다를 뿐,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 마음가짐과 원칙은 같았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모든 것을 수량화하고 규제로 조절하려 한다. 그렇게 해서 완전한 통제를 실현하고 억압적인 제도 또는 체제의 힘으로 우리 모두를 공동 소유자가 아닌 세입자로, 참여하는 사람이 아닌 종속된 사람으로 만들려 한다. 사람들을 대신해서 일한다고 주장하는 오늘날의 사회제도 자체가 소외를 낳고, 인간미 넘치는 환경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조건의 형성을 차단하고 있다. (…) 건축가는 개개인이 자기 개성과 정체성을 표현할 여지가 많은 환경을 만드는 일에 기여해야 한다. (…) 사용자의 입장에서도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으므로 일이 공정하게 처리되는 느낌을 받도록 (…)" (147쪽)

그렇다. 지은이는 우리가 다 아는 뻔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뻔하지 않은 현실 덕분에 그의 이야기가 새롭게 다가온다. 오래되고 헌 것, 너무나도 당연해서 진부한 것의 반대, 또는 없던 것이 생겨나는 것만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여러 상황과 환경을 고려하여 잠시 잊고 있었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일깨워주는 어떤 것도 일종의 새로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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