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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 정신'과 복지는 상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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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 정신'과 복지는 상극?

[복지국가SOCIETY] "실패 두려움 줄여주는 복지는 필수 조건"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는 '기업가' 정신이 강조되고 있다. 사실, 이 말은 아주 좋은 것으로, 이명박 정부가 집권 초부터 사용한 '비즈니스 프랜들리'라는 말에서 나오는 '비즈니스' 정신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란 당대의 상식에 기대어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는 대신 불확실성에 맞서 창조적 파괴를 과감히 감행함으로써 자신은 물론 조직 전체에 더 큰 열매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진취적인 도전정신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기업가 정신의 구현자라고 하면 정주영이나 김우중 또는 빌 게이츠와 같은 저명한 기업가가 거론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기업가 정신이 꼭 통상의 기업가들만의 전유물이라고 볼 필요는 없다. 고대 그리스의 과학자 아르키메데스나 신대륙을 발견했던 콜럼부스도 기업가 정신으로 충만했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 만든 왕관에 금이 아닌 은도 섞였다고 의심을 한 왕으로부터 금관의 진실을 밝히라는 명을 받았던 아르키메데스는 목욕을 하던 와중에 물로 가득 찬 욕조에 들어가면 수위가 올라간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음으로써 금관의 구성분을 밝혀낼 방법은 물론 이후 물리학의 발전으로 이어진 '부력의 원리'도 함께 찾아냈다. 이 순간 아르키메데스가 외친 것이 바로 '알아냈다'는 뜻을 가진 '유레카'라는 말이다.

한편, 콜럼부스는 기존 통념에 맞서는 새로운 발상에 자신의 운명을 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신대륙의 존재를 확신했던 사람들은 콜럼부스 이전에도 많이 있었으며, 신대륙을 염두에 두고 대 항해에 나섰던 탐험가와 상인들은 예전부터 꾸준히 있었다. 다만, 그들은 신대륙을 찾아 동쪽으로 먼 길을 떠난 결과 인도나 중국을 신대륙으로 착각했거나 아니면 머나먼 항해의 와중에 폭풍우를 만나 선단 전체가 침몰해 버리는 비운을 되풀이 했을 따름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콜럼부스는 "지구는 둥글다"는 당시로서는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근거로, 다른 이들이 가지 않았던 길, 곧 서쪽으로의 항해를 나섰으며, 불과 1달 만에 신대륙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르키메데스나 콜럼부스는 좁은 의미에서의 기업가는 아닐지라도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기업가 정신에 부합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가의 창조적 사고와 모험은 새로운 기업이나 새로운 업종을 잉태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아르키메데스와 콜럼버스에게서 엿볼 수 있는 기업가 정신은 인류에게 새로운 학문과 새로운 대륙을 안겨 주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삶을 보다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 원동력이 되었다.

기업가 정신의 긍정적인 가능성을 보여준 최근의 인물로는 무하마드 유누스가 있다. 그는 마이크로 크레딧(microcredit)이라는 새로운 대안적 금융모델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유누스는 은행업의 속성상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면 적지 않은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당대의 통념에 맞서, 방글라데시 농촌지역의 빈곤층 여성들을 대상으로 5인 1조의 창업 전용 집단대출 프로그램을 제공해 담보나 높은 신용평점과 같은 안전장치 없이도 지속가능한 대출이 가능하다는 점을 훌륭히 입증해 냈다.

그라민 은행의 이러한 경험은, 사람들의 행동과 성과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유효한 수단을 확보할 수 있다면, 시장이나 정부가 해결하지 못한 빈곤문제를 빈곤층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무하마드 유누스의 실험에는 사고방식의 전환, 기회의 발견, 외부적 충격에 대한 능동적 적응, 조직의 변화 등 오늘날 경영학자나 경제학자들이 기업가 정신의 핵심 요소로 주목하는 주요한 특징들이 들어 있다. 나아가 그의 시도는, 기업가 정신이 '더 많은 돈을 벌겠다'는 물질적 욕망은 물론 '세상을 한층 살만한 곳으로 바꾸겠다'는 이타적 동기와도 결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로 해석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기업가 정신이 충만한 사회일수록 국민경제의 성장 잠재력도 클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기업가 정신은 외부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케 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할 뿐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혁신을 돕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가 정신은 어떤 사회적 조건 속에서 조성될 수 있는 것일까?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겠지만, 자신의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알지 못하는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기량과 운을 걸고 모험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해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경쟁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불확실성의 부작용을 사회적으로 조절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일 터이다.

▲ 디자인 관련 1인 기업을 운영하는 K씨. 그는 최근 경기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험을 무릅쓰고 창업에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이 활성화되려면, 실패에 따른 부담을 줄여주는 보편적 복지제도가 필수적이다. ⓒ프레시안
시장에서의 경쟁은 출발점에서는 그 결과를 알 수 없는 불확실한 게임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경쟁에 기꺼이 나설 수 있는 것은 경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이익을 얻으리라는 기대와 함께 이 게임이 공정하게 진행되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절차의 공정성, 출발점에서의 평등은 제대로 된 시장경쟁의 성패를 가름하는 결정적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경우, 비정규직·중소기업·자영업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는 너무 작은 권리에도 너무 많은 책임이 지워지는 반면, 공공부문·대기업·대주주·재벌총수 등 사회적 강자에게는 너무 작은 책임에도 너무 많은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 현실임을 부인하기란 쉽지 않다. 이처럼 권리와 책임이 제대로 조응하지 않거나 각 집단 사이에 현저하게 힘의 차이가 있게 된 데에는, 시장에서의 경쟁이 공정한 경기규칙에 의해 진행되지 않은 것도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불확실성은 사람들의 안정적 삶을 어렵게 만드는 위험 요인임이 분명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능력을 한껏 발휘하고 운을 당당하게 시험할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불확실성이 갖는 이러한 긍정적 측면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나 나이트와 같은 우파 사상가들에 의해 특히 강조가 되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자면, 불확실성은 변화와 혁신의 열망이 꿈틀거리는 역동적 사회를 가능케 하는 필수불가결한 인간 조건이 된다.

그러나 불확실성 속에서도 사람들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미래를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역동적 복지국가'가 작동하려면, 삶의 근본적인 안정성이 동시에 확보되어야만 한다. 사람들은 삶의 안정성이 어느 정도 확보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변화와 구조조정, 나아가 혁신에 기꺼이 동의하고, 이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존재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제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공공제도란 시민과 정부의 상호협력 속에서 진화해가는 집합적 주체로서, 개인들에 비해 보다 많은 지식에 근거해 인간 사회 속의 복잡성이 낳는 부정적인 사회적 효과를 치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수 이익과 일반 이익 사이의 갈등을 뛰어넘어 사회의 공공선을 달성하는 데 기여한다. 이 점에서 보편적 복지제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그 구체적인 모습은 다르겠지만, 잘 발달된 보편적 복지제도는 시장에서 실패하더라도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모든 구성원들에게 제공해 줌으로써, 두려움 없이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창의적이고도 활력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찬 역동적인 사회의 결정적인 전제 조건이 될 것이다.

더욱이 기업가 정신은 사회의 역동성을 높이는 반면 경제의 불평등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기업가 정신이 그 순기능을 계속해서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승자가 획득한 자원 중 일부를 패자에게 재분배함으로써 이들이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고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성장과 복지 사이의 제대로 된 균형이 세워지려면, 무엇보다도 승자로 하여금 자신의 성공이 스스로의 노력이나 실력에 더해 운과 사회 전체의 도움에 힘입은 것이라는 점을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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