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2009년은 아주 뜻깊은 해이다.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만들어서 천체를 관측하기 시작한 지 400주년, 허블의 우주 팽창 발견 80주년, 인류의 달 착륙 40주년, 외계 지성체 탐사프로젝트 제안 50주년 및 메시지 송신 35주년을 맞은 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09 세계 천문의 해'를 맞아 한국조직위원회를 만들어서 국제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이미 4월 2일부터 5일까지 전 세계 천문대에서는 100시간 동안 연속으로 별을 관측하고 길거리에서 천문학자·아마추어천문가가 일반인과 함께 별을 관측하는 전 지구적인 행사가 열렸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특별히 이동 천문대 '스타-카'가 소외 지역 아이들을 찾아가고, '과학과 예술의 만남'과 같은 전시회도 준비 중이다. 이런 내용은 2009 세계 천문의 해 한국조직위원회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와 웹진 <이야진(IYAZINE)>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바로 가기)
<프레시안>은 이런 '2009 세계 천문의 해'를 맞아 '문화, 우주를 만나다' 연재를 <이야진>과 공동으로 연재한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꿈을 키웠던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별, 우주, 문화, 예술 등을 화두로 매주 한 편씩 에세이를 선보인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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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1월 18일 사자자리 유성우 이벤트가 펼쳐질 때 촬영한 사진. 왼쪽의 사자자리로부터 뻗어나가는 유성우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유성우는 평소와 달리 유성이 단시간에 많이 떨어지는 현상을 말하며, 유성우의 이름은 하늘에서 유성이 출발하는 별자리의 이름을 따서 붙인다. 따라서 사자자리 유성우는 사자자리에서 유성들이 출발해 사방으로 흩어진다. ⓒ한국천문연구원(사진=안해도) |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 :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한 어느 게오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앞에 나섰더니
西山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듯한 초사흘 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작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한 어느 게오
잠자코 호올로 서서 별을 헤어보노라
- 이병기, '별' 전문.
제주 올레길을 걸었다. '올레'는 제주 사투리로 동네의 '골목'을 뜻한다고 한다.
첫날 코스는 작고 아담한 초등학교에서 시작해서 성산 일출봉 밑에 있는 광치기 해변에서 끝났다. 산과 바다로 이어진 길. 길 위에서 말미오름과 알오름, 소금밭, 시흥해녀의 집, 조개박물관을 만나기도 했고 황금붕어빵을 파는 아저씨와 바닷바람으로 말린 오징어를 파는 아가씨를 스쳐가기도 했다. '종달리' 혹은 '오조리' 같은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바닷가 마을을 지나칠 때는 '섬집아기'나 '찔레꽃' 같은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곧……인간의 마을에 어둠이 내리자 하늘 위에는 달이 뜨고 별이 걸렸다.
이튿날은 폐교를 아름답게 개조한 이름마저 무릉 2리인 자연생태문화 체험골에서 출발했다. 지방색이 확연히 묻어나는 평지교회와 녹낭봉을 거쳐 신도포구에 이르러 그 역시 이름마저 황홀한 도원횟집에서 점심으로 회덮밥을 먹었다. 그보다 더 환상적인 경관은 애달픈 남매 설화가 전해 내려오는 수월봉 정상에서 절정을 맞았다.
'녹고물오름'으로도 불리는 물 수(水)에 달 월(月)을 쓰는 수월봉의 낙조는 "하늘이 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술별(酒星)이 웬 말이고 땅이 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술샘(酒泉)이 웬 말인가?"라며 허풍 아닌 허풍(?)을 떨었던 이백의 호탕한 기개를 떠올리게 했다. 시선(詩仙)으로 불렸던 당대의 한량 이백의 예지와 통찰처럼 "지금 사람은 옛 달을 못 보고 지금 달은 옛 사람을 비추었겠지만 옛 사람, 지금 사람 모두가 흐르는 물 저 밝은 달 바라보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다는 내력을 품고 있는 제주도에 딸린 무인도 가운데 가장 큰 섬인 차귀도가 손에 잡힐 듯 한눈에 들어오는 당산봉 정상에서 새가 많은 절벽이라는 유래를 지닌 '생이기정 바당길'로 넘어가는 갈대밭은 아름다움을 넘어 자못 신비로웠다. 눈 밑에서 갈매기가 날고 깊은 바다는 옥빛으로 일렁이는 그곳 올레길에서 우주가 펼치는 장엄한 의식에 동참했던 동행들은 죽은 친구 이야기와 귀신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섞기도 했다.
문학 독자들에게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와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같은 작품으로 친숙한 1930년대의 전원시인 신석정은 당신의 시 '들길에 서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 /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일과이거늘 (…)"
그의 시에서처럼 하루하루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자 사치 아닌 사치이다. 우주를 공경하고 지극하게 받들며 사는 삶이야말로 신으로부터 축복받은 행복한 일생 아니겠는가.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 : 별은 사랑을 찾아온다
순이 벌레 우는 고풍한 뜰에
달빛이 밀물처럼 밀려왔구나.
달은 나의 뜰에 고요히 앉아있다.
달은 과일보다 향기롭다.
동해바다 물처럼
푸른
가을
밤
포도는 달빛이 스며 고웁다.
포도는 달빛을 마시며 익는다.
순이 포도넝쿨 밑에 어린 잎새들이
달빛에 젖어 호젓하구나.
- 장만영, '달. 포도. 잎사귀' 전문
시를 쓰는 친구의 소개로 2009년 세계천문의해를 기념하는 별시 축제의 연출을 맡게 됐다.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시인들의 별에 관한 시는 한 편 한 편 그 자체가 밤하늘에 폭죽이 터지는 듯한 장관이었다.
조용미의 '하늘의 무늬'와 박정대의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따라가는 삶의 사소한 선택들 혹은 소금과 별들의 순환 이동 경로'에서부터 함민복의 '누구나 별이 될 수 있다', 윤예영의 '달집에 대한 풍문'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색깔과 질감으로 수를 놓듯 밤하늘에 아로새겨지는 웅장하고 화려한 불꽃놀이 같은 시들. 노래와 춤과 연극 퍼포먼스가 곁들여진 별시 축제의 진정한 주인공들은 바로 그 시들이었다. <별은 시를 찾아온다>는 기념 시집의 제목처럼 "별은 시를 찾아와 마법을 걸고 시는 당신의 귀에 사랑을 속삭인다."고 해야 할까.
별시 축제를 준비하는 내내 시인들과 천문학자들을 만나면서 나 또한 희곡을 쓰고 연극을 연출하는 '나'라는 개인과 저 광활한 우주와의 보이지 않는 인연에 대해 생각이 미치게 됐다. 불현듯 어린시절 마당에 나가 밤하늘의 별을 헤며 사는 건 참 쓸쓸한 일이구나 하는 가당치도 않은 상념에 빠져들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별과 나 사이의 거리가 너무나 멀고 아득하게 느껴졌었다.
중학교 때 백일장에 나가 부상으로 받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도 내 인생을 바꿔놓은 큰 사건이었다. 미국의 세계적인 천문학자였던 그와의 만남은 공간을 바라보는 시야를 내가 머물고 있는 지구별을 벗어나 태양계와 우주로 확장시켜주었다. 내가 본 영화 중에서도 칼 세이건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작품들은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콘텍트>는 단연 압권이었다.
영화 속에서 젊은 천체물리학자 엘리는 외계 생명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우주선에 오르게 된다. <콘텍트>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 "인간과 우주는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연결돼 있다."는 세이건의 말이 선지자의 예언처럼 들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모든 별들은 음악 소리를 낸다'는 소설을 쓴 작가도 있고 '인간은 별에 갈 수 없다'는 소설을 남긴 작가도 있다. 그런가하면 '나는 별 아저씨'라고 선언한 시인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다윈의 진화론에 입각해서 돌연변이 가족과 우주의 교감을 다룬 폴 진델의 독특한 희곡 '감마선은 달무늬 얼룩진 금잔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열렬히 사랑하고 천체의 운행에 따라 시시각각 미묘하게 변화하는 밤하늘의 경이로운 세계를 화폭에 담은 고흐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에'에 미칠 듯이 환호한다.
돌이켜보면 아주 먼 옛날 그리스의 수학자 피타고라스는 음악에서 우주를 보았고 우주에서 음악을 들었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천체의 음악'이라는 왈츠곡을 남겼으며 현대 음악가 구스타프 홀스트는 혹성에 관한 관현악 모음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반젤리스의 신디사이저 음악은 신비롭고 몽환적인 우주의 느낌을 절묘하게 표현한다.
고대인들은 우주를 훌륭한 춤에 비유하기도 했다. 행성들과 혜성들을 포함한 모든 별들은 저마다의 리듬감을 갖고 스스로 춤을 추고 있다는 것. 그런 차원에서 별은 문학이고 예술이며 과학이다. 그와 동시에 별은 시이고 추억이며 사랑이다.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나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광섭, '저녁에' 전문
화가 김환기의 작품 세계를 나는 좋아한다. 그의 작품 중에서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고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초등학교 미술 교과서에 실렸던 1951년 작 '피난열차'이다. 장난감 같은 열차 몇 칸에 빼곡하게 들어찬 사람들의 머리 숫자가 인상적이었던, 그러나 그때는 그 그림에 한국전쟁 당시의 비참한 현실이 녹아있다는 사실은 미처 눈치 채지 못했던 그림이었다. 작품 자체가 어린이가 커다란 도화지 위에 크레파스로 쓱쓱 그려놓은 그림처럼 워낙 단순하게 처리됐기 때문이었다.
그는 일찍이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미술 수업을 마친 뒤 일시적으로 귀국했다가 한국전쟁을 거치고 난 후 다시 파리로 건너가 서양의 아방가르드적이고 자유분방한 모더니즘의 지적 세례를 톡톡히 받고 돌아왔다. '론도'와 '창', '메아리' 같은 작품이 일본 유학 시절의 김환기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면 동경에서 돌아온 후인 1948년 동료였던 유영국, 장욱진 등과 신사실파를 조직하고 활발하게 활동할 무렵의 작품들은 바로 한국적 자연의 추상화 결과인 '산'과 '나무와 달' 연작들이다.
그는 한국의 산수 외에도 유난히 우리 도자기에 매료됐는데 그래서 그의 성북동 집 마루엔 그가 수집한 그릇들이 즐비했다고 전해진다. 전통자기인 백자나 청자 항아리에서 여인의 둥근 곡선과 부드러운 체취를 느꼈던 탓일까. 한국의 산과 들, 하늘과 바다 중에서도 후기로 갈수록 달의 이미지가 불쑥불쑥 등장하는 것도 그러한 사실과 전혀 무관하지만은 않은 듯싶다.
모든 것을 접고 오로지 창작 활동에만 매진한 그의 고난의 행군은 1970에 제작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에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나는 이 작품을 언젠가 그의 전시회에서 직접 보고서 끝없는 우주의 영원에 대한 무한한 충만감에 젖어들었던 기억을 지니고 있다. 이산 김광섭의 시 제목이기도 하고 작가 최인훈의 희곡 제목이기도 한 이 작품은 우연과 필연으로 얽히고설켜 있는 인간의 운명적인 관계를 표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에서 출발한 그의 범우주적인 작품 세계는 이후 '10만개의 점'과 '고요'로 치달으면서 점점 더 그 깊이를 더해간다. 그 깊이는 상처의 내면화에서 얻어진 인생의 깨달음과 상응하는 것이었으리라.
천문학은 쉽게 생각하면 별자리를 연구하는 학문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빛을 연구하는 학문으로도 볼 수 있다. 천체가 보낸 빛을 단서로 우주의 원리를 추리한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해, 달, 별처럼 눈에 띄는 천체부터 우리 눈에 안 보이는 별까지 온 우주가 곧 실험실인 셈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별들도 인간처럼 태어나고 죽는다는 것. 우주 공간은 지구에서 보면 아늑하고 낭만적인 공간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영하 수백 도나 되는 끔찍한 얼음 냉장고라서 그 진공 지옥 같은 곳에서 별들이 폭발하고 일생을 마치면 다시 재가 되어 윤회하는 거라고 한다. 또 천문학자들은 이 드넓은 우주에서 우리 지구는 한 점 먼지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외계인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해도 서로 만날 가능성이 적다는 이색적인 주장도 내놓고 있다. 더 나아가 그 외계인들은 우리 지구인들이 이 우주의 어느 한 구석에서 같은 생명체로 숨쉬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가능성도 크다고 한다. 우습지 않은가. 우주의 크기에 비하면 그렇게 작은 지구라는 별 위에서 인간은 하루하루를 마치 전쟁을 치르듯 살아가고 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이유도 알지 못한 채 말이다.
중국의 오래된 고전 <주역>에서 밝히고 있듯 우리는 모두 근원을 알 수 없는 저 머나 먼 우주로부터 왔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시인 윤동주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서 밝혀놓은 부끄러운 고백처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것이 지극히 인간적인 삶일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 가을에도 그 누구나 뭇 생명의 존재의 집인 우주의 거울에 자신을 투영시킬 때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한 사람이 서 있으리라.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를 고즈넉하게 읊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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