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패자' GM의 역습이 시작됐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패자' GM의 역습이 시작됐다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GM대우에 드리운 '먹구름'

지난 77년간 전 세계 판매 1위를 빼앗겨본 적 없는 거인 GM의 몰락. 하지만 파산보호신청 5개월이 지난 GM이 다시 원기를 회복하며 무서운 기세로 왕위 탈환에 나서고 있다.

• 우선 GM은 지난 3일, 그동안 매각 협상이 진행 중이던 자신의 유럽 법인 오펠·복스홀에 대한 매각을 전격 취소하고 전면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오펠·복스홀은 캐나다 부품사 마그나 인터내셔널과 러시아 국영은행 스베르방크 컨소시엄에 매각될 예정이었다.

• 그뿐이 아니다. GM은 과거에 자신이 소유하고 있다가 1999년 분사시킨 거대 부품사 델파이도 다시 인수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오펠 매각 취소를 선언한 바로 그날, GM은 델파이 인수를 위해 정부 지원금 28억 달러 사용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 여기에 지난 16일, GM의 프리츠 헨더슨 CEO는 미국 정부로부터 받은 구제금융 500억 달러 중 채권 형식으로 받은 67억 달러에 대한 조기상환 입장을 밝혔다. 다음 달을 시작으로 앞으로 매분기마다 미 정부에 10억 달러, 캐나다 정부에 2억 달러 등을 합쳐 12억 달러씩 채무를 갚아 나간다는 방침이다.


갑자기 웬 GM 얘기냐고? 현재 주요 현안이 되어 있는 GM대우차의 미래가 GM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전격적인 오펠 매각 취소 선언 직전인 10월 말, GM대우차의 향후 처리를 놓고 GM은 한국의 산업은행과 벼랑 끝 협상을 진행하다가 갑자기 '협상 종료'를 선언한 바 있다. 채권 만기 연장 요청도 하지 않은 채 산업은행에 대한 채무를 갚아나가겠다고 선언해 더욱 놀랍게 했다.

몇 달 전만 해도 회생 가능성이 불투명해 보이던 GM이 어떻게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다시 강자의 면모를 보일 수 있게 됐을까? 그 이유와 더불어 GM대우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무엇보다 오펠의 처리와 관련된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오펠 매각해도 1만 명 해고, 매각 안 해도 1만 명 해고

▲ 지난해 미국 발 금융위기 직후 위기에 빠진 GM은 파산보호신청 이전부터 유럽법인 오펠과 영국법인 복스홀에 대한 매각 절차를 진행했다.ⓒ신화=뉴시스
지난해 미국 발 금융위기 직후 위기에 빠진 GM은 파산보호신청 이전부터 유럽법인 오펠과 영국법인 복스홀에 대한 매각 절차를 진행했다. 그리고 9월 초, 마그나·스베르방크 컨소시엄이 인수전의 최종 승자가 되었다. 그런데 인수자로 선정된 직후인 9월 14일, 마그나 측은 인수절차가 완료되면 1만500명의 오펠 직원을 해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펠과 복스홀은 독일·스페인·폴란드·영국 등 전 유럽에 걸쳐 5만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데 이 중 무려 20%를 정리해고 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두 달 뒤에 매각을 전격 취소한 GM은 매각 대신 전면적인 구조조정을 선언했다. 당연히 독일과 러시아 정부는 격분했고, 반대로 영국 정부는 GM의 결정을 환영했다. GM이 오펠과 복스홀에서 9000∼1만 명 가량을 감원하고 생산량도 25% 감축할 것이라는 <파이낸셜 타임즈>의 보도가 나온 것은 지난 17일이었다. GM 유럽법인 사장인 닉 라일리는 "최종 구조조정 안을 3주안에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말대로라면 12월 초, 1만 명 감원의 실상이 나올 것이다.

오펠·복스홀을 매각해도 1만 명, 매각을 하지 않아도 1만 명을 해고한다는데, 유럽의 각국 정부들은 매각 여부에 따라 입장이 달라진다. 왜 그럴까? 해고는 마찬가지지만, 매각이냐 아니냐에 따라 폐쇄되는 공장이 어느 나라가 되는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지점에 국가별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것이다.

일단 오펠이 전 유럽에 걸쳐 고용하고 있는 5만 명 중 절반에 해당하는 2만5000명이 몰려있는 독일의 반응이 가장 민감하다. 마그나 컨소시엄이 인수할 경우 독일의 해고 규모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 메르켈 정부는, 마그나 인수시 45억 유로라는 막대한 지원을 예고했었다. 이미 15억 유로는 '브릿지론' 형식으로 GM에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GM의 매각 철회 소식을 가장 환영했던 영국 정부는 독일과는 반대다. 매각되지 않을 경우에 영국 복스홀의 해고 규모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런 기대로 영국 정부는 벌써부터 GM에 막대한 지원금 제공을 약속했다. GM 측도 화답했다. 영국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며 "복스홀 해고가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GM은 오펠·복스홀 구조조정에 33억 유로가 소요될 것이라며, 이 중 20억 유로는 GM 측이 마련하겠지만 나머지 13억 유로는 유럽 각국 정부에게 내놓으라는 배짱을 부리는 중이다.

'너희 나라에서 덜 잘리고 싶으면 돈을 더 내 놔라' GM의 배짱

더 재밌는 것은 이런 이해관계의 차이, 즉 해고규모의 차이다. 독일 정부가 지지해온 마그나 컨소시엄은 독일 내에서의 해고 규모가 10%선, 약 2500명 안팎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었다. 전 유럽에서 20%를 감원할 예정인데, 10% 감원이면 상대적으로 '덜 해고하는 것'이라는 얘기이다. 반면 마그나 컨소시엄은 영국 복스홀에서 약 800명 정도 해고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는데, GM 측은 매각을 취소한 후 "800명보다는 작은 규모로 해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마디로 말해 "20% 해고할 것인가, 10% 해고할 것인가"를 놓고 각국 정부가 앞다퉈 수 조 원에 달하는 지원금을 마그나 컨소시엄과 GM 측에 약속하고 있는 형국인 셈이다. 이러나저러나 유럽 전체에서 1만 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잘려 나가는 것은 마찬가지인데도 말이다.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닉 라일리는 "유럽 정부의 자금 지원 규모에 따라 구조조정 세부안이 결정될 것"(<아시아경제> 11월 18일)이라며 유럽 각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기까지 하다. '덜 잘리고 싶으면 돈을 더 내 놓으라'는 것이다.

5000명이 아니라 2500명이 잘리는 대가로 독일 정부가 지원하겠다는 45억 유로는 우리 돈으로 거의 8조 원에 육박한다. 말이 쉬워 10% 해고, 2500명이지 이는 쌍용차에서 77일간의 점거파업을 불러왔던 정리해고 규모와 맞먹는다.

"상대적으로 덜 해고할 것"을 기대하며 돈을 지원하는 것이 마치 노동자들을 위한 것처럼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정확히는 유럽 각국 정부들도 결국 집단해고는 불가피하며 구조조정을 강행해야 한다는 점에는 자본 측과 이해를 같이 하지만, 자기 나라에서는 '좀 적게'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마티즈와 라세티가 정말 GM대우 지켜줄 '수호천사'일까?

다시 GM대우차 얘기로 돌아와 보자. 올해 출시된 마티즈 크리에이티브와 라세티 프리미어 덕에 GM대우 창원공장과 군산공장은 잔업특근이 팽팽 돌아가고 있다. GM대우 회생을 놓고 GM과 산업은행의 줄다리기 협상이 이어지고 있는데, 잘 나가는 차를 생산하고 있는 GM대우 회생의 견인차로 마티즈 크리에이티브와 라세티 프리미어가 꼽히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것도 부도 수표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GM 측이 두 차종을 해외공장에서 생산하기 위한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수보다 수출에 압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GM대우의 경우, 주요 차종에 대한 해외생산이 늘어날 경우 당연히 국내 생산물량에 큰 타격이 올 수 있다. 게다가 GM 측이 추진하는 해외생산은, 주요 수출 지역인 북미·유럽·아시아 3축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 GM 측이 두 차종을 해외공장에서 생산하기 위한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수보다 수출에 압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GM대우의 경우, 주요 차종에 대한 해외생산이 늘어날 경우 당연히 국내 생산물량에 큰 타격이 올 수 있다. ⓒ연합뉴스

우선 올해 8월에 열린 마티즈 크리에이티브 신차발표회에서 손동연 GM대우 글로벌경차개발 본부장은 "오는 12월부터 인도 공장에서 마티즈 크리에이티브를 생산할 예정이고 연달아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콜럼비아의 GM공장에서도 생산에 들어갈 예정"(<헤럴드경제> 8월 20일)이라고 밝혔다. 내년부터는 한국을 빼고도 해외 4개국에서 마티즈가 생산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GM과 중국 상하이자동차(SAIC)가 합작해 설립한 두 번째 신형 자동차 생산 공장이 중국 선양에서 문을 연 바 있다. 그런데 GM은 성명을 통해 이 공장의 연간 생산 능력은 15만 대이며 올해 2분기부터 '시보레 크루즈' 소형차를 생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보레 크루즈'가 무엇이냐고? 바로 라세티 프리미어다. 한국을 제외한 세계 다른 나라에서 라세티 프리미어는 시보레 크루즈라는 이름으로 출시되고 있다. 즉, 중국에서 팔리는 라세티 프리미어는 상하이GM이 생산한다는 얘기이다.

또한 마찬가지로 지난해 GM이 3억 달러를 투자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설립한 공장은 연간 7만5000대 생산능력을 가지고 이미 올해부터 시보레 크루즈를 생산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러시아 내수시장 공략용이지만, 언제든지 유럽 수출물량이 러시아에서 양산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 공장에서는 '시보레 캡티바'라는 이름으로 GM대우의 윈스톰도 생산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난 19일 GM대우에 따르면, 미국의 GM은 내년 4월부터 라세티 프리미어를 미국 오하이오주 로즈타운(Lordstown) 공장에서 생산한다고 한다. 이 차 역시 '시보레 크루즈'라는 모델명으로 7월부터 현지에서 판매된다. 지금까지 북미 수출용 라세티 프리미어는 군산공장에서 생산되었는데, 이제 내년부터는 미국 현지 생산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한국에 시보레 브랜드 도입"한다는 GM

어디 그뿐인가? GM은 한국에서 'GM대우'라는 브랜드와 함께 두 번째 브랜드로서 '시보레' 브랜드의 한국 도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GM의 차량은 전 세계에서 주로 '시보레' 브랜드(호주에서는 '홀덴' 브랜드)를 달고 출시되며, 'GM대우'라는 브랜드는 사실상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이름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라세티 프리미어는 '시보레 크루즈', 윈스톰은 '시보레 캡티바'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알려져 있고, 마티즈 크리에이티브는 '시보레 스파크', 젠트라는 '시보레 아베오'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그런데 이제 한국에도 '시보레' 브랜드를 도입한다는 것은 -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 점차 'GM대우' 브랜드가 사라질 것이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GM의 글로벌 소형차 전진기지가 세간의 예상처럼 한국의 GM대우가 아니라 중국의 상하이GM으로 옮겨지기 시작한다면, 이제 GM이 GM대우를 유지할 이유는 사라지게 된다.

최근 상하이GM은 자체개발 소형차를 내년 2월에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상하이차와 GM 합작 기술개발센터 PATAC에서 설계하고 개발한 시보레 브랜드의 소형차 신모델 New Sail을 내년 음력 설 이전 중국 시장에 출시할 계획이다. GM의 소형차 모델은 거의 GM대우가 도맡아 개발해오던 전통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GM대우차 신임 아카몬 사장은, 향후 GM대우차가 내수에 좀 더 집중하도록 경영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개발명 J-300의 라세티 프리미어, 개발명 M-300의 마티즈 크리에이티브에 이어, GM이 야심차게 개발하고 있는 "300 시리즈"의 소형차 T-300은 부평에서 생산되는 젠트라X의 후속 모델인데, GM측은 여전히 T-300을 어느 공장에서 생산할 것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마찬가지로 내년에 출시될 전기차 '시보레 볼트'의 생산 역시 세계의 GM 공장 중 어느 곳에 낙찰될지 미확정이라고 한다.

그리말디 사장의 후임으로 온 GM대우차 신임 아카몬 사장은, 향후 GM대우차가 내수에 좀 더 집중하도록 경영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언급은 해외에서 주요 차종이 동시 생산되기 때문에 수출물량이 줄어든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 샛바람이 잦으면 어김없이 비가 온다고 했다. 항아리 밑 독이 깨져서 조금씩 물이 새고 있는데, 아주 천천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안심해도 되는 상황인가?

GM과 산업은행의 힘겨루기…누가 이겨도 가만히 있으면 노동자만 당한다

물론 외형상 GM은 다시 원기를 회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펠에 대한 매각 철회가 발표되자 격분한 독일 정부는 당장 15억 유로를 상환할 것을 요구했는데, GM은 곧바로 브릿지론 전체를 독일 정부에 상환했다. 그러나 원기를 회복한 GM이 흔들고 있는 칼자루는, 오펠·복스홀 사태에서 보이듯이 대량 정리해고 공격이다. 유럽에서의 25%의 생산 감축 선언은 단순히 완성차만이 아니라 부품사와 연관 산업 전체의 구조조정을 부채질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GM과 산업은행은 GM대우차의 향후 처리 방향을 놓고 지리한 줄다리기 협상을 진행한 바 있다. 여기에서 산업은행은 ▲유상증자 규모 확대 ▲대출금에 대한 GM 지급보증 ▲국내 개발 차량의 라이선스 공유 ▲5년 동안 GM대우 생산물량 보장 ▲공동 최고재무책임자를 통한 산업은행의 경영참여 등을 GM 측에 요구했지만, GM 측의 답변은 "싫다(No)"였다.

겉으로만 보면 산업은행(사실은 이명박 정권)이 GM대우차의 회생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 마치 한국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에 힘을 쏟는 것 같은 착시현상이 벌어진다. 마치 독일과 영국 정부가 "덜 해고되는 것"에 돈을 쏟아 붓는 현상에서 보듯이 말이다. 물론 GM대우의 규모는 쌍용차의 2배 이상 되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쌍용차처럼 마냥 손 놓고 있을 수 있는 사안은 분명히 아니다.

하지만 쌍용차 사태 당시 회생자금을 투입하라는 절절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희망퇴직금을 비롯한 구조조정 자금 투입조차 거부했던 산업은행 아니던가. 게다가 정리해고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후에야 채권단과의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면 회생자금을 투입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사실상 산업은행과 이명박 정부의 '불개입 원칙'이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를 막후 지원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만에 하나 GM이 한국에서 철수를 결정하고 산업은행과 이명박 정부가 GM대우차의 독자생존을 추진한다고 해보자. 지금까지 GM대우차에서 생산되던 차종은 전 세계 GM의 판매망에 의존해 왔기 때문에, 독자생존은 결국 안정적인 판매망 확보가 되기 전까지는 상당 기간 생산 감축을 감수해야만 한다.

오펠·복스홀 매각과 철회가 유럽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똑같은 것이다. 1만 명의 노동자,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연관 산업 노동자와 가족들의 생활 파탄이다. 비록 국가별로 해고되는 노동자 규모가 아주 약간씩의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유럽 전체로만 보자면 엄청난 규모의 구조조정이 벌어진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반대로 GM 측은 "10%를 해고할 것인가 20%를 해고할 것인가"를 던지며 막대한 금액의 정부 지원을 경쟁적으로 종용하고 있다.

만약에 유럽 노동자들이 계급 전체의 요구를 내걸고 "유럽에서 단 한 명의 해고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으로 저지선을 친다면, GM이 밀어붙이는 분할 통치와 구조조정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편협한 자국 중심의 이해관계에 빠지게 된다면, 결국 해고는 해고대로 당하면서 덜 해고되는 만큼 노동자들의 세금으로 정부 지원금이 GM 측에 흘러들어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오펠·복스홀 매각과 철회 사태에서 한국 노동자들이 배워야 할 진실은 이것이다. 노동자들이 계급 전체의 요구를 분명히 내걸고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협상에서 GM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느냐, 이명박 정부와 산업은행이 우위를 점하느냐 하는 것과 관계없이, 패배하는 쪽은 항상 노동자들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다른 길은 정말 없을까? 러시아의 사례와 한미정상회담

다른 길은 정말 없을까?

최근 러시아 제1의 자동차 메이커인 아브토바즈가 파산 위기에 몰리게 되자 전체 노동자 10만 명의 25%인 2만5000명에 대한 해고를 추진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결국 푸틴 총리는 "해고 없이 아브토바즈를 회생시키겠다"고 밝혀야만 했다.

슈바로프 러시아 제1부총리는 11월 초에 아브토바즈 공장을 방문해 "1만5000여 명의 잉여 인력을 수용하기 위해 아브토바즈 산하에 2개의 계열사를 세우기로 했다"며 "그래도 고용에 문제가 있다면 아브토바즈에서 일했던 유능한 인력들을 위해 톨리야티에 항공기 제작 공장 등을 세우고 특별경제 구역 지정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기까지 노동자들의 상당한 저항이 있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노동자들은 "국유화가 아니면 차라리 죽음을!"이라고 외치며 국가의 책임을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는 비단 노동자들의 것만이 아니라, 최근 러시아 전역에서 활발하게 토론되고 있는 자동차산업 회생방안이기도 하다.물론 완성차 하나의 규모가 10만 노동자를 포괄하고 있다는 것은 러시아 정부의 엄청난 부담을 드러내는 단초다. 아브토바즈 공장의 파산은 자칫 러시아 전체의 부도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위협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GM대우차라고 상황이 다른가? 1만 여 명의 완성차 노동자들에다가, 연관된 부품업체의 고용 규모만 40만, 쌍용차의 꼭 2배 규모다. 노동자들이 지금 두 눈 부릅뜨고 현실을 직시하며 대안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충분하지 않은가.

최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한에 따른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FTA 관련 자동차 부문 재협상 문제가 불거져 나와 전국이 시끄럽다. 게다가 GM의 회생 과정에서 주식 지분 절반 이상이 정부 소유가 되어, 오바마 행정부는 GM의 실질적 CEO라고 할 수 있다. 산업은행과 GM의 줄다리기 협상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 오바마와 이명박 대통령이 아무 이유 없이 자동차산업 문제를 거론했을까?

'인(人)사이드 경제' 연재를 시작하는 오민규 씨는 전국비정규직노조 연대회의 정책위원이다. 노동 운동가로 현장 노동자의 곁에 있는 그는 노동자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각 산업과 우리 경제의 본질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언제나 노동자가 생존권을 위협받곤 하는 현실은 정말 불가피한 것일까? '인사이드 경제'는 독자들과 함께 너무 쉽게 가려져 버린 진실을 찾아보려 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