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본격적으로 달리 보기 시작했던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함께 문학동아리를 꾸렸던 선배가 건네준 김남주의 <나의 칼 나의 피>와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나니 학교 밖 세상은 더 이상 나몰라라 해도 좋을 외계가 아니라 거대한 부정과 모순을 숨긴 현실이 되었다.
호기심에 기름을 부은 것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1989년, 전국의 수많은 선생님들이 단지 전교조에 가입해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학교에서 쫓겨나야 했던 그 여름이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도 몇몇 선생님들은 탈퇴기한이 다 되어가도록 버티고 있었다. 탈퇴기한 마지막 날 선생님들의 해직을 막기 위해 교무실을 점거해 농성하려 했던 계획은 선생님들의 탈퇴각서 제출로 유야무야 되어버렸지만 그날 이후 나는 학교에는 한 명도 없었던 전교조 해직교사를 찾아 전교조 목포지회를 뻔질나게 드나드는 불량학생이 되어버렸다. 그곳에는 진실과 정의를 가르치는 가슴 뜨거운 선생님들이 한둘이 아니었고 그래서 우리는 그후로도 오랫동안 거리의 선생님과 제자로 만나야만 했다. 선생님들은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셔야 했지만 다행히 몇 년 후 모두 복직되어 학교로 돌아가셨고 우리는 그 뜨거웠던 날들을 추억처럼 말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바뀐 이후 역사는 되풀이 되었다. 가혹한 경쟁을 강요하는 일제고사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허용했다는 이유로 지난 해 선생님들은 다시 학교밖으로 쫓겨나야만 했다. 학교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 할 선생님들이 교문 앞에 가로막혀 울고, 아이들은 선생님이 보고 싶어 우는 모습을 보며 지금이 2008년인지 1989년인지 알 수 없어 참담했다. 진정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선생님들이 정권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단번에 교단에서 쫓겨나는 모습은 한국사회의 퇴행을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그리고 일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그 선생님들은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더 많은 선생님들이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밝혔다는 이유로 학교를 떠나야 할 상황이다.
안타깝고 불합리한 일이지만 이러한 선생님들의 행동과 정권의 탄압은 역으로 교과서에 쓰여있지 않은 진실을 알려주고 있다. 왜 선생님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게 하는지, 왜 그것이 해임당할 이유인지를 생각해보는 일은 가슴 아프지만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민주주의의 산 교육이다.
포크 밴드 캐비넷싱얼롱스의 김목인이 쓰고 부른 <큰 선생님>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동화적으로 재구성한 곡이다. 학교보다 크고 운동장보다 큰 선생님, 학교에서 내어놓았더니 아이들이 업어가 버리는 선생님, 교과서에도 나오질 않고 시험에도 나오질 않는 가르침, 그러나 아이들이 듣고 있는 가르침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는가.
특별히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지는 않지만 늘 소박하고 풋풋한 모습으로 거리에서 노래하는 버스킹 밴드 캐비넷 싱얼롱스는 시민사회의 행동에도 무척 자주 발걸음을 함께 하는 밴드이다. 선한 웃음이 참 매력적인 밴드의 리더 김목인은 이 노래를 선생님의 부당한 징계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졸업장을 반납하고 있는 대구 달구벌고 학생들의 신문 사진을 보고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주위에도 정말 큰 인생의 선생님들이 있지만 그들은 학교에 있지 않았고, 학교가 수용하지 못하는 그 가르침은 아이들도 알아보는 진리라는 말을 덧붙였다.
소박한 반주로 또박또박 이어지는 김목인의 노래는 고작 1분 43초. 자장가처럼 편안한 노래는 그러나 우리에게 무척이나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바람처럼 햇살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한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교직을 걸어야 하는 시대에 진짜 선생님은 누구이고 진정한 가르침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가르침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쉽게 흥얼거리게 되는 짧은 멜로디를 따라하면서도 마음 속 질문은 쉬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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