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치며 불탈 때
나에게는 그 외침이 왜
여기 사랑이 있다
라고 들렸을까?
- 「여기 사랑이 있다」 중에서
그가 어느 날 시인이 되어 내게 다가왔다.
나는 그를 잘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의 피상적인 삶 뿐이었다. 광화문과 여의도와 용산 등 이런 저런 집회 현장에서 자주 마주치기도 하고, 눈인사 정도는 했었지만 따로 술 한 잔 기울려본 적도 없으니 막막할 따름이다. 그런데 왜 내게 하필!
시인입네 했지만 시 쓰는 일은 방기하고, 현장으로만 쫓아다니며 오히려 시를 멀리해 왔기에 오랜만에 타인의 시를 논한다는 것도 어색하다. 더더욱 시인들에게 시는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이기 십상이다.
잘 썼던 못 썼던 누구나 시를 쓸 때는 자신의 뼈를 깎아 붓을 삼고 영혼의 핍진한 피를 부족한 먹 삼아 한 줄 한 줄 정성스레 써나가기 마련이다. 그것 말고는 표현할 단 하나의 말이 없어 온밤 지새며 언어의 바다를 진주 한 알 찾듯이 헤매는 일이 시를 쓰는 일이기도 하다. 이 세계엔 아직 없는 어떤 '새로운 계절'을 불러오기 위해 내려앉을 곳이 없는 대양을 홀로 나는 새처럼 혼신의 힘으로 영혼의 탈주를 꿈꾸는 일이기도 하다. 종종 그렇게 갔다가 영영 현실의 대지 위로 돌아오지 못한 마음들도 많았다. 그래서 시는 평가의 대상이 아닌 새로운 소통과 공명의 계기일 뿐이다. 그런 내밀한 고백의 시들을 함부로 논한다는 것은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니기에 되도록 피해 왔던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근 십여 년 일방적으로 일만 부려먹어 왔던 벗, 오도엽 시인이 중간 다리가 되어 처음으로 내준 숙제인지라 거절할 수도 없었다.
노래는 불의를 뒤집을 힘은 없다
하지만 그 어떤 불의에도 맞설 힘을 준다
-레온 펠리페의 글 중에서
▲ ⓒ프레시안 |
일견 반갑다. 난 오래 전부터 '일과 투쟁과 노래는 하나다'라는 생각으로 전선운동에 서 있는 여러 동지들이 글(문화 활동)을 가까이 하기를 말해 왔었다. 활동과 더불어 기록하는 작업을 하지 않는 동지들을 직무 방기라고 힐난하기도 했다.
기록 작업은 지난 활동을 반성하고 점검하는 자기 투쟁임과 동시에, 활동 속에서 길러진 공통의 과학과 지혜를 수확하고 이 열매를 나누며 역사화하는 공적 투쟁의 일환이다. 능력 있는 누군가가 대리하거나 전담하면 그만인 일이 아니다.
더더욱 우리 운동이 꿈꾸는 세계가 구상(정신노동)과 실행(육체노동)의 차별과 분리를 넘어 누구나가 전일적이고 총체적인 사고로 무장한 자유로운 인간들의 평등하고 평화로운 연합체임을 생각할 때, 부문화 전문화 논리는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우리 스스로 재생산하며 운동을 짓누르는 악독한 일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실제로 이런 편한 논리들이 전체 운동을 관료화하는 좋은 텃밭이 되기도 한다. 노동자들 내에서도 나는 교사니까, 나는 공무원이니까, 나는 금속조합원이니까, 나는 지부, 나는 지회니까, 나는 평조합원이니까, 하는 일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 할 수 있는 일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 책임져야 할 일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우리 내부를 분열시키고, 자기 조직 중심주의로 이끈다. 만연한 부문적 사고와 대리주의에 따라 위계화가 진척되고 전문 관료들이 키워진다. 자본으로부터 할당받은 노동자라는 굴레를 벗어나, 조합주의와 계급이기주의를 넘어, 전체 사회의 변혁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는 새로운 사회의 주체들은 길러지지 않고, 뼈아프지만 기껏해야 저급한 노동자주의에 빠진 것이 우리의 현재 운동이다.
이런 딜레마에 빠진 진보정치 운동이 밑으로부터 각성된 민중권력 형성보다는 원칙 없는 이합집산을 통한 현실 권력과의 타협내지는 투항으로 나아가는 것은 자연스럽다.
자본은 노동자/민중 스스로 반성하는 힘, 구상하는 힘이 갖는 위력을 알기에 끊임없이 노동자와 민중에게서 글을, 표현을, 새롭게 구상하고 실행하는 지적 능력을 빼앗으려고 한다. 언론과 미디어를 장악하고 소수 이데올로그들과 문화생산자들을 특권화하는 대신 질 낮은 소비문화를 전파하여 대다수 사회인들이 비판의식을 상실한 무뇌아, 다만 상품화된 저질 문화를 소비하는 기계로만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만큼 좋은 착취와 수탈의 대지가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 68혁명 당시 민중들의 낙서 중엔 '모든 사회학자들의 목이 날아간 후에도 우리에게 문제라는 것이 남을까' 라는 구절이 있다. 단순 간명한 진리를 모호하고 복잡하게 만들거나 왜곡하는 일이 대부분인 지배 이데올로그들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이었다. 언어와 문자를 통해 지배 이데올로기는 물신화된다. 상징 화폐를 통해 그들이 착취와 수탈 과정의 폭력성을 숨긴다면, 언어와 문자의 독점을 통해 그들만의 왕국을 정당화하고 완성한다. 그런 연유로 맑스는 역사 이래 단한 번도 무지가 민중들에게 도움이 되었던 적은 없다고 쏴붙였다. 체게바라는 담배라는 글자를 배우지 않으려는 병사에게는 담배를 주지 않았다. 글을 모르는 병사는 자신이 왜 총을 들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래서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노동자/민중들에게 글쓰기란, 표현 영역과 기록 영역에 대한 접근이란 취미나 취향이 아닌 누구나가 되찾아야 할 생활이며, 일상 투쟁이어야 한다. 빼앗겼던 구상의 능력을 회복하는 절대 절명의 과제이다. 우리가 저들에게서 돌려받아야 할 것은 정당한 임금만이 아니라 누구나 깊게 사유하고 표현할 수 있는 인간 고유의 권능이기도 하다. 저들의 위기를 전가 받아 공포와 두려움, 패배감에 찌드는 위축된 의식이 아니라 거대한 역사의 해류를 응시하며 고요하고 적요로우며 평화로운 공동체를 꿈꿀 수 있는 맑고 깊은 역사의 눈이며, 용기이며 선함이다.
이런 까닭으로 전선운동의 주요한 위치에 서 있는 그가 시를 써왔다는 것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특히나 그가 어떤 공적 그늘에도 자신을 숨기지 않고 가식 없이 자신의 온 마음 자락을 드러내준다는 것, 어떤 무오류의 화신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고 좌절하며 때론 눈물 짓는 일상의 구체를 통해 평범한 한 인간이 되어 우리 곁으로 소박하게 다가온다는 것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온갖 거리와 공장의 투쟁 현장에서 자신과 사회를 반추하려는 고단한 그의 삶의 여정이 스러져 버린 광화문 촛불과, 용산4가의 을씨년스런 골목 풍경과, 휑한 평택 쌍용차 공장 전경과 맞물려 눈물겹기도 했다.
한때는 10만 전교조의 수장으로, 60만 민주노총의 위원장으로, 지금 역시 남한 사회 진보정당 운동의 큰 축인 민주노동당의 최고위원으로 있지만 시 속에서 그는 어떤 권위에도 기대지 않고, 오직 시대의 진실과 양심 앞에 자신을 온전히 대입하고 부끄럽지 않는가를 묻고 있다. "일상의 낯익은 분노"와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질러대는 고함들" 속에서 "상투"를 벗어나기 위해 "으르렁거린다". "나는 외로운짐승"이라 고백하며 왜 그 많은 삶의 성취와 두터운 관계망 속에서도 여전히 외로운 것인가를 절규하고 있다.
이마를 찧을 듯 땅에 대고야
비로소 나는 보았습니다
(…)
구둣발에 밟혀 허리가 꺾인
풀들의 고운 미소
잘 익어 노랗게 물든 은행잎
은행잎을 타고 앉은 여치 한 마리
이 하잘것없는 것들이 서로 몸 부비며
피워 올리는
가을햇살 같은 평화
평화는 이렇게 낮은 곳에
지극히 낮은 곳에
떨어져 밟히고 스러져가는 것들의
한숨과 눈물 속에 있습니다
고난과 분노 속에 함께 합니다
낮아져야 보입니다
- 「더 낮은 데로」 중에서
지난밤 예고 없이 하늘이 울었다
어둠을 찢으며 화살처럼 날아온
날카로운 빛과 소리 유리창에 부딪혀 깨지며
몇 시간을 으르렁거렸다
나는 꼼짝도 못하고 그냥 누워서
내 가슴으로 철철 흐르는
계곡 물소리를 들었다
알 수 없는 설움이 강처럼 흘렀다
- 「나는 왜 화가 나면 슬플까」 중에서
▲ 이수호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프레시안 |
사르트르가 '금세기의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고 했던 비타협적 혁명가 체 게바라도 시인이었다.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험난한 길속에서 그를 지켜준 것은 시였다. 1967년 볼리비아의 산악에서 붙잡힌 그의 홀쭉한 가방 속에는 게릴라 생활과 시를 적은 비망록 2권과 애송시들을 옮겨 적어놓은 녹색노트 한 권이 다였다. 거기엔 네루다와 레온 펠리페와 니콜라스 기옌과 루이 아라공의 시들이 적혀 있었다. 모두 시인이면서 혁명가였던 이들이었다.
체 게바라는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사회의 악덕 종양인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대수술하는 혁명가의 길을 택했다. 시인 이수호 역시 허위를 가르치는 교사의 길을 포기하고, '수십 년을 목도 없이 아스팔트 위로 뛰어다니며 지금까지 싸우고 있'(「아찔한 희망」 중에서)다.
체 게바라가 과테말라와 쿠바와 멕시코와 콩고와 볼리비아를 떠돌며 게릴라 활동에 나섰듯 이수호는 2009년 대한민국 서울 광화문에서, 국회의사당 앞에서, 용산4가에서, 대전 대한통운 앞에서, 평택 쌍용차 앞에서 게릴라 활동에 나서고 있다. 차이는 무장과 비무장일 뿐 '새로운 계절'을 바라는 마음의 열망과 적들에 대한 적개심은 동일하다. 체 게바라가 변절해가는 동지들을 보며 "그대들이 한때 신처럼 경배했던 민중들에게 / 한줌도 안 되는 독재와 제국주의 착취자처럼 / 거꾸로 칼끝을 겨누는 일만은 없게 해다오 / 그대들 스스로를 비참하게는 하지 말아다오 / 나는 어떠한 고통도 참고 견딜 수 있지만 / 그슬픔만큼은 참을 수가 없구나"(「먼 저편」 중에서)라고 슬퍼했던 것처럼 2009년 대한민국의 이수호는 평택 쌍용자동차 파업 현장을 지키며 어제까지만 해도 동료였던 이들이 자본의 앞잡이가 되어 구사대로 파견되는 것을 보며 슬퍼한다.
고통의 크기는 다르겠지만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 정부군에게 쫓겨가는 해발 1200미터 고원에서 대원들에게 나눠줄 의약품을 걱정하며 끝내 잠 못 이루던 것처럼 이수호 역시 공권력이 에워싼 단전 단수된 공장에서 물 한 모금, 의약품 하나에도 목 메이는 동지들을 생각하며 "잠 한 번 제대로 푹 들었던 기억이 아득하다 / 끊임없이 이어진 불면의 시간들 / 왜, 깨어 있는 것이 이다지도 힘든가"(「공장에 남은 너는」 중에서)를 아파한다. 그 아픈 마음으로 "광화문 광장 한 편에서 /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 조그만 천 조각 하나 펴 든다 / 용산 참사 해결하라! / 미처 '용'자가 펼쳐지기도 전에 개떼처럼 경찰은 덮치고 / 나의 발버둥은 부릅뜬 이순신의 눈길 아래서 / 짓밟히고 끌려 다닐 뿐이다 / 그 여름의 광화문을 기억하라 / 그 날의 용산을 잊지 마라(「다시 광화문에서」 중에서)고 "한 발만 비껴서면 / 일상의 주말 오후가 / 물먹은 바람에 펄럭이고 있을 뿐"(「꼼장어를 구우며」 중에서)인 외로운 거리에 서서 처절하게 절규하고 있다.
기실 이렇게 시대와 나라는 다르지만 전선에 섰던 투사들의 마음은 다르지 않다.
그 과제 역시 대동소이하다는 것이 도리어 슬플 뿐이다. 체 게바라의 최대 소망은 땅 없는 농민들에게 토지를 돌려주는 것이었다. 오늘 우리는 용산에서 땅 없는 현대판 도시 소작인들에게 최소한의 주거권을 돌려 달라고 열 달째 차가운 냉동고에 갇혀 싸우고 있는 열사들의 주검을 껴안고 분노하고 있다. 또 체 게바라의 소원은 소수 해외 자본이 사유화한 산업을 국유화해 그 과실을 모든 이들의 것으로 돌려라는 것이었다. 오늘 우리는 그런 해외 투기자본에 의해 농락당한 쌍용자동차를 공기업화하라는 요구를 하며 백척간두의 농성 투쟁을 해야했다.
사실 이것은 총성 없는 전쟁이다. 언제라도 전면전으로 불붙을 수 있는 소강전, 진지전일 따름이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아직도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숨겨진 진실이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올해 1월 용산에서의 전격적인 경찰특공대 투입에서 보듯 언제든 깨질 수 있는, 그 배면에 폭력성이 위장된 위태로운 거울일 뿐이다. 입만 열면 떠들어대는 사회적 합의는 비정규직 860만과 올해 쌍용차에서 목 잘려나간 2000여명의 정규직들이 증거하듯 언제나 학살을 정당화하는 무기로 활용될 뿐이다.
자본의 모든 관심은 체 게바라가 싸우던 쿠바에서나 오늘 여기 대한민국에서나 변함없다. 토지와 자연을 비롯한 생산수단의 사유화와 노동력 착취, 그리고 생활세계에서의 2차 수탈을 통한 무한 이윤 추구이다. 국가와 금융은 공공의 가치를 기업으로 이전하는 합법적인 수탈을 가능케 하는 필터로 사용된다. 체 게바라를 살해한 그들의 동맹군이 오늘 여기 용산에서 철거민을 학살하고, 860만 정상 인간들을 비정규직으로 학살하고, 박종태의 목을 조르고, 쌍용차에서 투기자본에 의한 손실을 털기 위해 2000여 정규직들의 목을 자르고 있는 것이다. 민중들의 말과 언로를 빼앗아 학살에 대한 저항을 막고, 공공언론조차 사유화하기 위해 언론/미디어의 자유를 학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본의 총체적인 공세 속에서 기실 이 사회의 누구도 평탄할 수 없다. 모든 이들의 삶이 용산의 망루처럼 처참하고, 쌍용차의 도장공장처럼 위태로우며, 대한통운 정문이 바라보이는 정문 앞 야산의 아카시아 나무 밑처럼 어둡고, 촛불이 사라진 시청광장처럼 쓸쓸하다. 제2의 용산, 제3의 기륭, 제4의 쌍용, 제5의 박종태, 제6의 절망, 제7의 죽음이 사회 전체에 널려 있다.
용산 학살의 배후가 누구인지는 자명하다. IMF 이후 도산 위기에 처한 건설자본들을 위해 정부와 건설사들은 개발 동맹을 형성하고 재개발/뉴타운 법을 완화해 '쓸데없는' 건설 투기 붐을 일으켰다. 그 내용은 앞으로도 수십 년은 사람들이 멀쩡하게 살아갈 수 있는 마을과 공동체를 '재개발/뉴타운'이라는 미명하에 쓸어버리는 것이었다. 인천공항철도나 4대강 건설사업의 본래 목적이듯이 그 '쓸데없는' 사업에 공적 자금을 합법적으로 지원해 주는 일이다. 전사회적인 건설투기 붐에 따라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 땅값 전세값 가게세를 지불하기 위해 다시 평범한 이들의 주머니가 털린다. 철거민들만 쫓겨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틈에 철거 지역이 아닌 곳에 사는 모든 이들의 호주머니가 털린다. 사람들은 그것이 경기 변동 때문일 거라고만 평범하게 생각하고 만다. 용산 철거민 문제와 자신들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의 문제는 '아직' 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쌍용차의 문제는 특수한 경우다. 그러면서 모두 왜 자신이 그렇게 몰렸는지도 모르는 절망의 망루, 고립의 망루에서 자기 가족만을 부둥켜안고 산다. 우리 시대 불행한 인간 가족들의 슬픈 자화상들이다.
이 시집은 그런 노동자/민중들의 처절한 망루 투쟁을 2009년 내내 파수꾼처럼 지켜야 했던 그의 눈에 때때로 고이던 눈물의 비망록이다. 연대를 호소하는 간절한 메아리며, 반성을 촉구하는 아픈 각성의 바늘이다. 그래서 여기저기 시편에서 그가 한숨 쉴 때, 아파할 때, 외로워할 때 함께 가슴이 무너지고 미어진다.
그는 그 모든 망루에 선 사람들 곁에 서 있음으로 봄도 여름도 느껴볼 틈이 없었다. 이제 가을이 왔지만 그는 지금 여기에서 스러져가는 것들에 대한 서러움으로 가을조차 느껴볼 수 없다. 이럴 때 그는 천상 시인이다. 릴케가 자신의 시가 굶주려 죽어가는 소녀에게 정작 빵 한 조각 될 수 없음을 느끼며 아파할 때, 까뮈가 자신의 실존주의가 정작은 몽마르트 비탈길에서 얼어 죽어가는 이에게 담요 한 장 될 수 없음을 직시하며 신음할 때 이제야 비로소 문학의 초입쯤에 다다랐음을 느끼는 마음과 같다.
가을이다
충분히 그리워하지 못하고
여름이 갔다
눈동자에 그려두려 애썼으나
눈물이 지워버렸다
들길로 나서기가 두렵다
잔바람에도 하늘거리는
그 가늘고 긴 코스모스 목을
어찌 볼까?
- 「환절기」 중에서
농성 천막에서 책 읽고 있는 신부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 저녁 일곱 시면 어김없이 열리는, (…) 미사가 끝나면 노신부님께서 흰 수염 휘날리며 팔고 다니는「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책자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 집회나 기자회견, 문화제에서 빠지지 않는 유족대표의 인사말씀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어느 결에 늘어버린 매끈한 말솜씨, 이제 몸에 붙어 제법 어울리는 상복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농성장 구석에 굴러다니는 강력파스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 철거될 벽에 그려놓은 비에 젖고 바람에 흔들리는 휴지쪽 같은, 행동하는 화가들의 그림이나 착한 시인들의 벽시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 신나게 닭다리 뜯으며 바라본, 합동분향소 앞에 추레하게 걸려 있는 빛바랜 다섯 분의 대형 그림영정, 그 얼굴의 편안하고 잔잔한 미소와 지난 어버이날에 누군가 꽂아준 시들고 말라버린 카네이션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중에서
그렇게 처절하게 싸워 왔지만 우리가 얻은 것은 많지 않다. 짐승의 시간, 망루의 시간, 독재의 시간은 길어지고 더 혹독해지고 교활해지고 악랄해지고 있다. 용산의 주검은 지금도 차가운 냉동고에 갇혀 있고, 쌍용의 전사들은 다시 감옥에 갇혔다. 박종태의 의분에도 불구하고 860만 비정규 체재는 자그만 균열조차 없다. 2008년과 2009년 내내 우리의 힘이었던 촛불 시민들은 낱낱으로 각개격파 당하고 다수가 감옥으로 끌려갔다. 우리가 갖는 절망감과 패배감이 더 커질 수도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더 이상 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저들인지도 모른다. 전 세계 자본은 이제 더 이상 헤어 나올 길이 없는 공황의 구렁텅이를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고 있다. 파생 금융상품이라는 가상자본을 통한 투기 놀음과 달러지배 체재를 통한 제3세계 자본 수탈을 통해서만 자신의 유지가 가능하던 세계 자본의 맹주 미국이 붕괴하고 있다. 과잉생산으로 인해 상품의 정상적인 생산과 거래 과정에서 이윤 취득이 불가능해진 초국적 투기자본들이 그간 행했던 신자유주의 노선은 세계 곳곳 민중들로부터 저항 받고 있다.
용산의 학살은, 박종태의 학살은, 쌍용차에서의 학살은, 언론과 미디어 부문에서 이루어진 학살은 이런 세계 자본의 마지막 발악 속에서 예비되고 계획되어진 살인이다. 저들로서도 사과할 수 없는,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 선택이다. 이렇게 모든 전선은 연결되어 있고 세계 민중과 세계 자본과의 한판 전투는 시작되어 있다. 이 싸움에서 우리는 질 수도 물러 설 수도 없다. 전술적 후퇴는 있을 수 있되 전략적 후퇴는 있을 수 없다. 역사의 벼랑 저쪽으로 밀려나야 하는 것은 저들이지 평범한 세계인들이 아니다. 끝내 밀려나지 않고 자신들의 위기를 전 세계 노동자/민중들의 위기로 전가해 다시 재생하려는 그들의 등을 힘껏 떠밀어 역사의 저 편으로 사라지게 해야 한다. 그 막중한 임무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죽어가는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에 기대 개량을 구걸할 만큼 우리는 한가하지 않다. 더더욱 860만 비정규직들과 민중들은 막다른 망루 앞에 서서 더 기다릴 틈도, 타협할 여유도 없다. 우리에겐 새로운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이 역사적 대 결전을 앞두고 그는 많이 힘들고 외롭다. 사실 나는 그것이 간혹 안타깝기도 했다. 터무니없는 승리에 대한 낙관이야 항상 경계해야겠지만, 너무 큰 상심도 우리의 밝은 꿈을 갉아먹는 좀이 될 수 있다.
그를 체 게바라에 비유해 읽어보기도 했지만, 체 게바라는 더 이상 과거가 아니라 현실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중남미의 사회주의 실험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우리가 일국의 늪에 빠져 절망하고 있을 때, 중남미에서는 자유무역협정(FTA)을 폐기하고, 민중무역협정(PTA)을 체결하고 있고, 수탈의 도구였던 달러지배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중남미 은행과 공동통화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착취와 수탈의 땅이었던 아프리카와 남미가 손을 맞잡고 반자본, 반신자유주의를 향한 저항의 요새를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지치지 않는 열정과 낙관을 유지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긴장과 반성을 통해 새로워지는 힘을 잃지 않는 것이다. 또한 다시 전투성이다. 전투성은 무작정 싸움을 선호하는 경향이 아니다. "싸움을 피할 수 있는 데도 / 싸움을 하는 자는 / 범죄자이다 / 그런 자는 / 피해서는 안 될 싸움에는 꼭 피한다"(「핀셋」 중에서)라고 체 게바라가 말할 때의 그런 주도면밀한 전투성이다.
그렇다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용산에서, 비정규직 투쟁 현장에서, 모든 노동자/민중들의 삶의 망루에서 지금 우리가 들어야 하는 것은 진정 무엇일까? 그것은 그 긴 변혁의 한 길 위를 묵묵히 달려와 이젠 우리 앞에 어른으로 서 있는 이수호, 그가 답해주어야 할 몫이기도 하다. 전선운동 위에 주요한 투사로서, 더더욱 시인으로서 나서고자 하는 그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다.
그는 물론 그것을 잘 알고 있다.
지난 겨울 나는 벌레였다
비굴했다
작은 굴이나 틈 혹은 고치 속에 숨어서
목숨이나 부지하며 살았다
비바람을 탓하고 눈을 원망했다
추위가 두려웠다
봄이 온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참고 견디기 싫었다
(…)
꿈꾸지 않으니 희망이 없고
저항하고 싸우지 않으니
강해질 수가 없다
모든 성과는 투쟁의 결과
봄이 와도 새로운 날개조차 가질 수 없었다
그대로 굳어갈밖에
그리고 여름, 굳어가는 번데기에서
하얀 버섯 하나 솟았다
푸른 각성이 포자가 되었다
내가 죽고 썩어야 버섯 하나 자란다
- 「동충하초」 중에서
바라건대 나는 그가 참교육을 지켜주던 우리들의 자애로운 스승 이수호에서 새로 태어나, 저 적들의 심장을 파헤치는 총탄 같은 단단한 노동자/민중의 송곳 버섯으로 서 주기를 바래본다. 방패막이 아니라 시대의 곤혹을 맨 앞에서 뚫고 나가는 시대의 육탄이 되어주기를 바래 본다. 푸쉬킨의 시가, 네루다의 시가, 엘뤼아르의 시가, 아라공의 시가, 애청의 시가, 레온 펠리페의 시가, 니콜라스 기옌의 시가, 게바라의 시가 그랬듯 이수호의 시가 그를 더 대담하게 밀어주기를 바래본다.
우리에게 더 많이 필요한 것은 그 많은 사회학자들이 아니라, 립서비스자들이 아니라, 조언자가 아니라, 이 꽉 막힌 시대를 자신의 고통으로 알고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기 위해 '온몸으로 온몸을 밀고 가는'(김수영 시인) 행동이며, 실천이다. 주어진 정세의 물결을 따라 이리저리 줏대 없이 밀리는 돛단배들이 아니라, 새로운 변혁의 정세를 아래로부터 끌어올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출항하는 저 그란마호(1956년 12월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80명의 동지들과 함께 쿠바 혁명을 위해 올랐던 배 이름. 정부군의 공격으로 12명만이 간신히 살아 남았다. 살아남은 이들이 2년여 만인 59년 1월 1일 쿠바 민중혁명을 달성했다)다.
필요한 것은 다시 단호한 결단과 역사와 동시대 민중들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다. 그런 단호함과 희생과 비타협성만이 자본의 노예로 살아가는 노동자/민중들로 하여금 가공할 공포와 두려움의 각질을 벗고 변혁의 대열로 나올 용기를 준다. "온건주의자는 / 두려움이 많은 사
람 / 혹은, / 어떤 형태의 배신을 / 계획하고 있는 사람을 / 가리킬 뿐이다 / 민중은, / 결코 온건하지 않다"(체 게바라 「온건」 중에서) 그가 먼저 피 흘리며 전진한 한 걸음이 전체의 한걸음으로 나아가 그만큼 해방의 대지가 넓어진다. 그때야 비로소 "자유는 긴장 속에서 햇살처럼 빛나고 / 해방은 너울대는 파도를 넘는 / 푸른 고래의 숨소리처럼 벅"(「손의 비밀」 중에서)찰 것이다.
그가 함께 지켜 온 용산만 해도 그렇다. "언감생심 집회와 시위는 흉내도 못 내게 하고 / 누구나 다하는 삼보일보도, 일인시위도 / 용산의 이름으론 말도 못 꺼내게 하고 / 걸핏하면 이유도 없이 잡아가 유치장에 처박는 / 지옥 같은 하루"들이었지만 그런 하루하루를 투쟁으
로 견디며 사계절을 버틴 이들에 의해 비로소 "용산 4구역은 섬이 되었다 / 연대의 섬 단결의 섬 투쟁의 섬 / 진실의 섬 진리의 섬 정의의 섬 / 눈물의 섬 인간의 섬이 되었다 / 그리고 남일당은 등대가 되었다 / 망망대해 캄캄한 밤에 / 이 참람한 명박하늘 아래 / 여기 사람이 있다 / 시대의 어둠 밝히는 한 가닥 불빛이 되었다"(「그 섬에 가고 싶다」중에서) 그의 말처럼 "누구를 사랑하는 일이 그리도 쉬우면 / 왜 두견새는 밤새워 피를 토하고 / 자벌레는 온몸 던져 아스팔트를 기어갈까?"(「자벌레는 온몸 던져」 중에서)
내 속에 가시가 있어
나를 찌른다
아프지만 적절한 통제
내 중심의 흔들림 막아준다
때론 불편이 나를 부지런하게 하고
부끄러움이 나를 각성시킨다
죄의식은 나의 아량과 배려의 원천이다
내 모자람이 나를 편안하게 하고
내 약점이 나를 겸손하게 한다
내 속에서 가시로 살고 있는 너
너는 오늘도 순을 뻗어
붉은 심장을 찌르고
나는 비명을 지르며
아찔한 고통의 쾌락
날선 칼날 위에 선다
- 「가시」 중에서
각진 얘기만 잔뜩 했지만 그는 "여기 사람이 있다"를 "여기 사랑이 있다"로 들은 몇 안 되는 시인 중 하나다. 대부분의 시에서 메밀꽃과 망초꽃과 채송화 아카시아꽃과 돌단풍꽃과 찔레꽃과 노랑제비꽃과 회화나무꽃과 연꽃과 밤꽃과 산살구꽃을 못 잊는 만발한 꽃의 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시들의 도처에서 그런 자연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의 마음을 잊지 않는다. 우리가 온 곳이 또 거기이기 때문이다.
간혹 투쟁의 과정에서 핍진해져 버린 동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풍요롭고 고양된 언어가 아니라 충혈된 눈과 언어로 가끔은 동지들의 가슴을 안타깝게 하기도 했을 것이다. 기다리지 못하고 아름다운 그 누군가의 마음밭을 함부로 짓밟기도 했을 것이다. 스스로를 거칠게 다루며 내가 그토록 저주하는 파쇼의 마음, 자본의 마음을 내 안에 담기도 했을 것이다. 다양함을 존중하지 못하고,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혼자 봇물처럼 달려가기도 했을 것이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부정하면서도 세월로, 몸으로 그 신뢰를 놓는 일을 게을리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 모든 건 이 사회 탓이라고 나의 책임마저 방기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수호가 그런 것처럼 싸우는 과정에서도 아름답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넉넉하고 풍요롭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시를 적고 쓰기를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딱딱한 권위에 빠져 춤을 추고 노래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아름다움과 혁명은 / 서로 /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 얼마든지, / 아름답게, / 만들 수 있는 것을 / 아무렇게나 만드는 것은 / 결코, /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 아름다움과 혁명은 /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 바로 / 나의 손 끝에 있는 것이다"(체 게바라 「나의 손 끝」 중에서)
너는 왜 그렇게 호수를 좋아해?
내가 좋아하는 건 호수가 아니고
그 호수예요
- 「그 호수」 중에서
나도 그를 따라 언젠간 '그 호수'에 가보고 싶다. 지금은 힘겹기도 하다지만 세월이 지난 후 돌아보면 참 눈물겹도록 아름다울 우리들의 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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