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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친구 내쫓고, 5년 손님 반기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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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친구 내쫓고, 5년 손님 반기는 나라"

[기자의 눈] 국적법 개정안이 씁쓸했던 이유

라면이나 햄버거를 주식으로 삼아도 될까. 굳이 식품학 지식을 들먹이지 않아도 누구나 답을 아는 질문이다. 수천 년 역사를 지닌 밥과 달리, 인류의 식생활 역사에서 검증되지 않은 음식을 끼니마다 먹기란 아무래도 불안한 일이다.

언어도 비슷하다. 눈만 뜨면 쏟아지는 신조어들은 말과 글의 감칠맛을 더해주곤 하지만, 자주 쓰기에는 어색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가 전통음식으로 찬양하는 김치나 된장도 오래전에는 낯선 음식이었을 터. 한때 신조어였던 말 가운데도 이제는 언어생활의 중심에 들어선 게 많다. 이런 표현들을 밥이나 김치나 다름없는 주식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점검해야 할 때가 됐다.

'고급인력' 유감

'고급인력'이라는 말도 그렇다. 합성어로 사전에 등재돼 있지는 않지만, 정부와 언론에선 이미 익숙한 표현이다. 그러나 자주 입에 올리기엔 아무래도 거슬린다. 사람의 능력을 굳이 고급과 저급으로 나눠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 때문이다. 어느 분야에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는 다른 방면에서는 그저 평범하다. 만약 그가 능력을 발휘하던 분야가, 어느 날 쓸모없어 진다면? 고급인력이던 그는 한순간에 저급인력이 되는 걸까. 반대로 아무도 대단하게 여기지 않던 분야에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하자. 갑자기 그런 재능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다면? 저급인력이 하루아침에 고급인력으로 둔갑하는 걸까.

단지, 특정 일자리에 어울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굳이 '고급인력' 따위 표현을 써야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취임 초기 청와대 참모진을 구성할 때부터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는 말을 써가며 자화자찬했던 현 정부 앞에서 이런 지적은 무색해진다. '베스트' 가운데서 다시 '베스트'를 골라냈다며 자랑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최고'가 아니라 '최적'"이라고 말한들, 소용이 있겠느냐는 말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고급, 최고를 따지기 좋아하는 버릇 때문에 누군가 피해를 본다면, 같은 지적을 반복할 수밖에.

숙련공을 미숙련공으로 대체하는 정부

법무부가 지난 13일 국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복수국적을 허용하는 내용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결혼이민자, 해외입양인, 화교 등에게 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도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늦었지만 꼭 필요한 조치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이번 입법예고안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 '국익에 기여할 수 있는 해외 고급인력'에 대한 조치다. 이들은 '국내 5년 거주' 요건을 채우지 않더라도 국내에 주소만 있으면 바로 한국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한국 국적 취득의 문턱이 낮아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단일민족'에 대한 집착이 지나쳐서 생겨난 숱한 부작용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아쉬운 대목이 있다. 기왕 문턱을 낮출 바엔 굳이 '고급인력'에 한정하지 말았으면 하는 아쉬움이다. 우리 사회는 꼭 법무부가 규정한 '고급인력'만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가방끈이 길지 않아도, 지능지수가 평범해도 우리 사회에서 함께 어울려 지낼 만한 외국인들이 많이 있다. 한국을 잘 모르는, 어설픈 '고급인력'보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부대껴 왔던 외국인 숙련공이 더 소중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낯선 '고급인력'에게 취한 관대한 조치는, 수도권 곳곳의 영세공장에서 한국 경제의 실핏줄 역할을 해 왔던 외국인 숙련 노동자에게는 아직 먼 이야기다. 정기적으로 허가를 갱신하지 않으면 불법 체류 노동자 낙인을 찍는 '고용허가제'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 제도 때문에,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대부분 경력이 짧은 미숙련공이다. 경력이 쌓인 숙련공들은, 고용허가가 나지 않아서 불법 체류자 신분인 경우가 많다. '국익' 때문에 '해외 고급인력'에게 한국 국적을 주겠다는 정부가 산업 현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숙련공'을 배척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숙련공을 내쫓고, 미숙련공으로 대체하는 정책은 현 정부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경제논리로도 설명하기 힘들다. 하물며 '인권'의 관점에선 더욱 그렇다.

▲ 2002년 10월 18일 전태일기념사업회와 한양대 법대학생회가 공동 주최한 '열린 세상을 위한 희망콘서트-전태일의 꿈' 공연에서 노래하는 미누 씨(오른쪽). 18년 동안 한국에서 머물며 다양한 문화 활동을 했던 그는 지난 10월 네팔로 추방됐다. ⓒ미누 석방 공동대책위원회 제공
기왕이면 오랜 친구부터

검증되지 않은 '고급인력'보다 산업 현장에서 더 귀한 역할을 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바라는 것은 소박하다. 갑작스런 단속에 쫓겨날까 늘 불안해하는 생활을 면하게 해달라는 것.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번 돈을 한국에서 쓰지 않는다는 불평이 종종 나오지만, 이들에겐 사실 억울한 소리다. 언제 떠나야 할지 모르는데, 한국에서 살림살이를 마련하느라 돈을 쓸 이유가 없다. 또 갑자기 쫓겨날지 모르는 이들이 깊은 인간관계를 맺으려 할 가능성도 적다.

그래도 못 사는 나라 출신 숙련공보다 잘 사는 나라에서 배운 고급인력이 더 좋다면, 할 말이 없다. 이쯤 되면, 설득이 통하는 영역이 아니니까.

다만 덧붙이고 싶은 것은, 그나마 오랫동안 밥상에서 검증된 밥과 김치가 그렇지 않은 햄버거보다 건강에 낫다는 것. 사람도 크게 다를 것 없다고 본다. 모든 외국인에게 국적을 줄 수 없다면, 되도록 오랫동안 한국에 머물렀던 이들을 우선하는 게 낫다. 현 정부는 유난스레 고급인력을 탐내지만, 인류 역사에서 '고급인력으로만 채워진 좋은 사회'가 있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거친 음식과 기름진 음식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 밥상처럼 사람 사는 세상도 두루 섞여야 건강한 법이다.

18년 동안 한국에서 많은 친구들을 뒀던 네팔 출신 문화활동가 미누 씨(본명 미노드 목탄)를 갑자기 내쫓았던 법무부가 국내에서 5년도 살지 않은 '고급인력'에게 국적을 주기로 했던 소식이 영 씁쓸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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