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박지성의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합류에 대해 말들이 많다. 대표팀은 15일 덴마크 전과 18일 세르비아 전을 유럽에서 치르는데 박지성은 10일 덴마크 현지에서 합류한단다. 쟁점은 박지성이 독감과 무릎 부상으로 9월 말부터 연속 11경기 결장 중이라는 점, 특히 소속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 퍼거슨이 그의 경기 출전에 부정적임에도 대표팀 감독 허정무는 그의 차출을 강행했다는 점이다.
그의 무릎 상태는 일단 '회복'된 것으로 보는 게 맞는 듯하다. 그러나 문제는 '연습'도 아니고 '연습 경기'도 아닌, 'A매치'에 투입될 만큼 완전히 회복됐냐는 점이다. 특히 허정무는 "덴마크와 세르비아는 유럽예선을 1위로 통과한 강팀이다. 월드컵 본선에도 이처럼 강한 팀들이 나올 것이다. 본선 무대같은 평가전이 될 것"이라며 "강팀을 상대로 월드컵 본선같은 경기를 치르겠다"고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 상황이다.
부상에서 혹 회복됐다 하더라도 소속팀 경기를 11차례나 연속 결장한 선수가 갑자기 이런 경기에, 그것도 나흘 간격으로 두 경기 연속으로 나선다면 또 부상 당할 확률은 꽤 높아진다. 어딘가 불안한, 걱정에 조바심 나는 경기가 될 것이다. 박지성이 후반 10분 남겨 두고 경기에 뛰어들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선수는 업적을 위한 도구인가
▲ 박지성 선수. ⓒ뉴시스 |
허정무는 "절대 무리하게 훈련하거나 출전시키지 않을 예정"이라면서 "선수 보호는 우리의 의무"이고 "무리하게 출전시킨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부상이 확실한 선수들조차 몽땅 대표팀에 선발했다. 그가 기자들에게 한 말을 종합해 보면 결국 '별 무리가 없으면 출전시키겠다'는 것 아닐까. '보호'할 생각이 정말 있다면 그냥 쉬게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번에 박지성 뿐 아니라 부상이 확실한(?) 박주영조차도 차출됐다. 프랑스 AS모나코에서 뛰는 그는 지난 8일 발 부상에서 회복된 이후 첫 경기였던 그로노블과의 경기에서 다시 부상을 입어 전반 후 교체됐다. 허벅지 근육을 다친 것이다. 그러자 AS모나코는 이번 유럽 원정에서 박주영을 제외해줄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대한축구협회에 보냈다. 그러나 허정무는 "선수 자신이 대표팀에 합류하고 싶어한다"는 이유로 박주영을 합류시키면서 박주영의 소속팀엔 대표팀 의료진이 진단해 완전한 몸 상태가 아니면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겠다는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우리 의료진 판단에 괜찮아 보이면 뛰게 하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오랜 부상 끝에 출전한 첫 경기에서 45분만에 다시 주저앉은 선수를 그 일주일 후 강팀을 상대로 한 A매치에 내보내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우리 의료진은 앉은 자도 일으켜 세우는 신유의 능력이라도 가졌단 말인가. 축구장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이라도 바라는가.
부상 입은 선수의 '본인 의사' 중요하다는데…
▲ 박주영 선수. ⓒ뉴시스 |
제대로 된 팀이라면 부상 회복 여부나 연습참여 또는 경기출전에 대한 판단은 선수가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감독이 하는 것도 아니다. 선수와 감독의 의견은 참고사항일 뿐 최종 결정은 전적으로 의료진이 한다. 혹 월드컵 본선이라면 모를까 평가전에 부상을 무릅쓰고 나가는 경우가 어느 나라에 있을까. 우리나라는 선수의 부상을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협회와 지도자들이 반성해야 할 점이다.
사실 이번에 가장 황당했던 것은 (결국 협회가 선발을 취소했지만) 세네갈 전을 위한 소집 당시 뇌혈류 장애로 쓰러져 결국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러시아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김동진까지 선발했던 점이다. 김동진의 소속팀이 안정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축구협회에 대표팀 선발 제외를 요청해 다행히 빠지게 됐지만 이는 대한축구협회의 행정이 얼마나 독선적이면서도 주먹구구식인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 축구의 나쁜 관행
허정무는 1998년 차범근 이후 12년만에 갖게 되는 국내파 월드컵 대표팀 감독이다. 영광스러운 자리이지만 사실 뼈가 타들어가고 피가 끓는 듯 고통스런 자리다. 예수의 고난과 석가모니의 고행에 비견될 만큼 가시밭길이요, 곳곳이 낭떠러지다. 그러나 그는 작년 11월 월드컵 최종 지역예선에서 사우디 아라비아를 적지에서 격파하며 국내파 감독으로서의 불안감을 씻어 냈고 지난 9월엔 호주를, 10월엔 세네갈을 연파하며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역시 '국대 감독'이란 여론에 의해 폭풍우 속 돛단배 신세가 되기도 한다. 기사 한 방이면 감독도 바꿔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자들은 널렸다. 무엇보다 월드컵은 아직도 멀었다. 내년이다, 내년. 이제까지 대표팀이 26전 무패(14승 12무) 가도를 달린다고 하는데 이는 주로 아시아권 국가들과의 경기에서 쌓인 전적이고 이번 유럽 원정은 다르다. 유럽예선을 조 1위로 통과한 덴마크와 세르비아다. '허정무 호'가 과연 내년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항해할 것인가를 가름하는 중요한 일정이 될 것이다.
허정무는 당연히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선수들을 차출하고 어떻게든 출전시키려 하는 것은 이제 없어져야 할 한국 축구의 나쁜 관행이다. 눈치 빠른 축구팬들은 지금 그가 박지성과 박주영을 방패막이 삼으려 한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 사실 이제까지의 한국 축구는 그런 혐의를 받고도 남는다.
팬들은 '장기적 안목'을 원한다
협회나 구단들이 꼭 유명 선수 출신들을 감독에 앉혀왔는데 이는 실상은 책임회피용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를 두고 한 유명 축구전문가는 대단히 '비겁하다'고까지 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특히 축구계에서는 히딩크나 무리뉴 같은 감독이 절대로, 아니라면 적어도 반세기 동안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나쁜 관행은 선수 선발에서도 이어졌다. 감독도 선수 선발 때 유명 선수 위주로 해왔는데 이는 책임회피용 방패막이를 고려한 것이다. 경기 결과가 좋으면 내 탓이고 나쁘면 선수가 부진한 탓이고 말이다.
요즘 작전이나 선수 선발을 가지고 감독을 공격하는 경우는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 또 과거처럼 결과만을 가지고 열불을 내며 감독 탓하는 축구팬도 줄었다. 요즘 축구팬들은 수준도 많이 높아졌지만 한국 축구의 현실을 고려할 줄도 안다. 그러나 대표팀 소집 문제와 특히 부상 선수 차출에 대해서만큼은 과거보다 더 날카로워졌다. 과거엔 프로구단이 대표팀 차출 거부하면 붉은악마가 구단 홈페이지에 몰려가 "감히 국대에서 부르는데…" 하며 위력 시위를 하곤 했지만 지금은 그 반대 현상이 시작됐다. 이번 박지성, 박주영 차출 문제도 '장기적 관점'에서 의견을 개진하는 팬들이 차출론자보다 많은 듯하다.
이런 축구팬들은 합리적이고 장기적 안목의 선택을 하는 허정무호를, 축구협회를 지지할 것이다. 뜬금없이 대표팀 흔드는 기자가 있다면 그를 '매국노'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이렇게 합심해서 남아공까지 쭈욱~ 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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