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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 구할 예산도 아까운 '다문화 사회'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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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 구할 예산도 아까운 '다문화 사회' 한국

[해외입양인, 말걸기]<3>입양인 정책에서 배제되는 입양인들

이명박 정부가 저출산과 고령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해외입양인은 우선적으로 이중국적 허용이 검토되는 대상 중 하나다. 해외입양인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입양이 보내지면서 자동적으로 국적이 박탈된다. 따라서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한국에서도 이중국적이 허용된다면 우선적으로 허용돼야 할 대상임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하지만 다문화 사회, 글로벌 경쟁력 등을 내세우면서 이중국적 허용까지 검토한다는 이명박 정부가 해외입양인 문제에 대해 얼마나 진전성을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지난 4일 중앙입양정보원이 주관한 한 워크숍에서 이 문제의 당사자 중 하나인 해외입양인들을 위해 통역을 준비해달라는 요구를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하는 게 현 정부 관료들의 행태다. 이중국적 허용은 결국 다른 이해관계를 염두에 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입양과 입양인에 대한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정작 당사자인 입양인들은 철저히 배제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김도현 '뿌리의 집' 원장이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우리의 참여 없이 우리에 관한 문제를 다루지 말라(Nothing about us without us).' 미국에서 자라 한국에 살고 있는 입양인 작가 제인 정 트렌카가 미국에서 발행되는 계간지 코리안 쿼털리(Korean Quarterly) 2009년 가을호에 기고한 글의 제목이다. 해외입양인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해외입양인의 목소리를 경청해달라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일처럼 보이지만 불행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4일 중앙입양정보원이 주관한 <2009 입양 실무자 워크숍>에서도 그랬다.

이날 입양 실무자 워크숍의 토론 주제 중의 하나가 "입양 사후 서비스 만족도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에 관한 것이었다. 입양인 단체의 대표들은 당연히 회의에 참석하겠다는 의사와 함께 통역을 준비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한국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입양인들은 구미 각국에서 성장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해외로 입양 가는 것과 함께 자신들의 친가족과의 결별, 한국인으로서의 성과 이름의 박탈, 모국어 습득의 기회의 상실을 겪은 사람들이다. 모국으로 돌아와서 혼신의 힘을 기울여 모국어를 배우지만, 복잡다단한 사안을 논하는 공개토론회의 자리에서 토의의 논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적절하고 기민하게 자기의 의견을 표명하는 방식으로 토론에 참여하기에는 저들의 한국어는 아직 턱없이 모자란다. 그래서 저들은 통역을 요청했고 관계부처 정부 공무원은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래서 저들은 회의 참석을 보이콧했다. 이것이 우리나라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공무원이다.

입양 사후 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들은 입양인들이다. 입양 사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정부의 관련부처 공무원들과 홀트아동복지회를 비롯한 해외입양기관들이다. 당연히 서비스의 만족도를 알아보려면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이 어떤 점에서 만족하고 행복해하는지 어떤 점에서 개선이 필요한 지는 우리가 말하거나 결정할 일이 아니다. 입양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들로부터 획득한 정보에 기초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서비스의 내용과 형식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달포 전의 일이다. 서울에 사는 입양인 한 사람이 전화를 했다. 만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오라고 했다. 오후 나절에 도착한 그녀는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일하는 '뿌리의 집'이 그날 따라 사람이 북적였다. 우리는 '뿌리의 집' 뒤편 청운공원으로 나갔다. 석양 아래 서울 시내가 거대한 빌딩의 파노라마를 연출하고 있었다. 곁에는 산수유나무가 고운 가을 때때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자리에 앉고 한 참 뜸을 들인 후 말을 시작했다.

사실 오늘 아침 나절 내게 전화하기 전까지 1주일 동안 식음을 폐한 채로 방안에만 누워 있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격렬하게 분노하는 마음으로 가득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기운이 하나도 없고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리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누워만 있었다는 것이었다. 보통 사람이 봐도 그건 치료가 필요할 만큼의 우울증이었다.

그녀는 자기에게 왜 그런 분노와 슬픔이 찾아왔는지를 말했다. 4년 전 무렵 한국에 와서 1년 동안 영어교사를 하는 중에 다른 입양인들과 교제할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때 몇몇 입양인들로부터 친가족을 만난 이야기를 듣곤 했는데, 그 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으로 돌아가 살기 시작하면서 친엄마를 찾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져서 결국 다시 미국 생활 정리하고 올해 초에 한국에 와서 먼저 대학에 영어 강사 자릴 구했다는 것이다. 영어 강사하면서 차근차근 친엄마를 찾아보리라는 심산이었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에 자리가 잡히자 자기를 입양 보낸 입양기관을 찾아가서 친모를 찾겠다고 했더니, 세 가지를 요구하더라는 것이다. (1) 미국으로 돌아가서 당신을 미국가정으로 입양시켜준 미국의 입양기관에다가 가족 찾기를 신청할 것, (2) 상당액의 가족 찾기 수수료를 낼 것, (3) 장래 만나게 될 친모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편지를 써 올 것. 거기다가 친모와 친부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우리가 가지고 있으니 조만간 연락이 갈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더라는 것이다. 그 후 여러 차례 전화했지만 답을 들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그녀의 가슴 속에 분노와 좌절, 슬픔과 우울의 깊은 상처를 낸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분노와 슬픔을 해당 입양기관의 회장에게 전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녀는 말하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 후 나는 해당 입양기관의 회장을 만나서 이런 일들에 대해서 물었다. 그는 미국 입양 기관을 통해서 신청하라는 이야기와 가족 찾기 수수료에 대해서 똑 부러지는 답변을 하지 못했다. 미국 기관의 사정이며 미국에서 혹여 일어날 지도 모르는 법적 분쟁과 그것을 감당해야 할 경우의 천문학적 비용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친모에게 쓰는 편지를 왜 요구하는지를 물었더니 친모에게 낯선 사람(입양인)을 입양 기관이 소개해주는 입장인데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 채로 어떻게 소개해주겠느냐는 말로 대강 지나갔다. 그러나 회장을 만난 후에도 아무 답이 없어 얼마 후에 이 기관의 사무총장을 만나 다시 이 일에 대한 협조를 부탁했다. 그러나 두어 주가 지난 지금도 감감무소식이다. 한 쪽에서는 우울증을 이기려고 한 사람의 사투가 매일매일 벌어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런 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입양 사후 서비스의 만족도 여부>는 입양인만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입양인의 이야기를 듣지 않겠다고 우격다짐하는 공무원을 맞닥뜨렸을 때 겪는 당혹감은 말 그대로 어안이 벙벙일 뿐이다.

관계자는 <2009년 입양 실무자 워크숍>을 개최하는 데 600만 원 들었다고 했다. 대체로 200만 원 정도만 더 들이면, 전문통역인 두 사람을 고용할 수 있다. 그리고 활기차게 소통하고 함께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상대하고 섬겨야 할 사람들이 한국어만 사용하는 나라가 아닌지는 이미 여러 해가 흘렀다. 책상머리에서 말로만 '다문화'를 논하는 시기는 지난 지 오래다. 앞서 미래를 열어야 할 담당 공무원의 다문화 의식은 옅고 현실에 맹목인 채로 목소리만 높다.

자신의 친가족과 모국 상실을 경험한 입양인이 자신의 존재를 복원코자 몸부림하는 생의 여정에 시혜자가 아닌 동반자로 나서 달라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우리의 참여 없이 우리에 관한 문제를 다루지 말아 달라!"

(*'뿌리의 집'(www.koroot.org)은 한국을 찾는 해외입양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02년 만들어졌다. 해외입양인들에게 일시적으로 숙식을 제공하고 한국 문화체험 등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또 한국인들의 해외입양인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활동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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