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는 지난 1월 20일 서울 용산 남일당 빌딩에서 발생한 용산 철거민들의 망루 농성 및 화재 참사 사건과 관련하여, 철거민들의 화염병 투척으로 인한 화재 참사로서 특수공무집행방해치자상죄 등이 성립한다는 검찰의 공소 사실을 모두 받아들여 철거민들에게 유죄를 인정하고 2~6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형사 재판은 자고로 객관적 진실을 발견하여 사안의 진상을 명백히 하고 그 실체적 진실을 전제로 국가 형벌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용산 참사 사건의 재판부는 절차적으로나 실체적으로 형사 재판의 본질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판결을 하고 말았다.
먼저,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검찰의 수사 기록 3000여 쪽의 은닉이 가지는 법적인 문제점에 대해서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판결 선고 전의 모두 발언에서 "검찰이 수사 자료 3000여 쪽을 제출하지 않은 아쉬움이 있지만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수사 기록 3000여 쪽의 비공개 문제는 단순히 아쉬움으로 달래고 지나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비공개된 수사 기록에는 진압 작전의 수립 및 결정에 관여한 김석기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을 비롯한 경찰 수뇌부들 전부의 진술이 기재된 서류, 그리고 경찰과 철거업체나 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과의 유착 관계를 밝힐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압수 서류나 물건 등이 대거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기록들은 경찰 진압 과정의 위법성 여부를 다룰 수 있는 유력한 자료들임이 명백하다.
이 사건의 핵심적인 공소 내용이었던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죄(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공무 집행을 방해하고 공무를 집행하던 공무원을 상해 또는 사망에 이르게 한 죄)의 성립 여부는 경찰의 적법한 공무 집행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공무 집행의 적법 여부를 밝혀줄 수 있는 핵심적인 기록들이 대거 비공개된 상태에서 재판부는 경찰의 공무 집행이 적법했다고 판단했다. 경찰의 진압 결정과 전개 사실을 밝혀 줄 수 있는 핵심적인 자료가 은닉된 상태에서 섣부르게도 법적인 판단부터 내린 것이다.
법적인 판단은 객관적 사실에 대한 규명을 근거로 하는 것임에도 경찰의 진압 과정에 대한 단서들을 대거 포함한 수사 기록 3000여 쪽을 검토해보려는 노력을 포기한 채 진실 발견이 가능한 것처럼 강변하고 나아가 부실한 사실구성을 바탕으로 경찰의 공무 집행이 적법하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재판부는 사실과 관련된 기록들을 보지 않고도 사실을 확정했고 법적인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보지 않고도 사물을 직관할 수 있는 예지능력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정녕 신의 경지에 이른 것인가? 재판부 스스로 실체적 진실을 전제로 국가형벌권을 행사하여야 한다는 형사재판의 가장 기본적인 이념을 내팽개쳐버린 것이다.
둘째, 재판부는 "철거민들이 약 1톤(t)이 넘는 세녹스 등 인화물질과 새총 등 위험한 시위용품을 보유한 채 1월 19일부터 인근 건물과 한강대로 변에 벽돌, 화염병, 염산병을 투척했고, 한강대로를 지나는 차량 등 일반인의 통행에 위협을 주고 있었으며, 경찰은 1월 19일부터 전철연 간부를 접촉하여 농성자들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농성자들은 경찰의 선 철수를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삼아 결국 대화가 무산되는 상황에서 경찰로서는 경찰력을 투입하여 농성을 진압할 필요가 있었고, 진압 경험이 많고 고도로 훈련된 경찰특공대를 투입하는 것이 필요했으며 경찰지휘부가 경찰특공대를 조기에 투입하기로 한 것은 위법하다고 볼 수 없으며, 경찰특공대는 방패, 진압봉, 소화기 등 최소한의 장비만을 소지한 채 진압작전을 벌였고 진압하는 과정에서 체포에 필요한 이상의 물리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므로 공무집행 또한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경찰권의 행사는 그 필요성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비례의 원칙(경찰권의 행사가 도를 넘지 않게 행사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맞게 행사되어야 한다. 경찰 진압이 필요하다고 해서 적을 토벌하듯이 경찰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농성자들의 안전과 생명, 그리고 진압하는 경찰관의 안전도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 이것이 농성 진압시 반드시 준수해야 할 안전수칙이다. 그런데 경찰특공대 진압 작전이 결정된 1월 19일 오후 시점부터 진압 작전이 전개될 시점까지 경찰과 농성자들 사이에 충돌이 없었으며 농성자들이 대로변으로 화염병을 투척하거나 새총을 쏘지도 아니하는 매우 평화로운 상태였다. 철거민들은 자신들의 농성이 공격을 받을 때 방어적으로 새총을 쏘고 화염병을 투척한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주민들을 고의적으로 공격하거나 행인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한 사실이 없음도 밝혀졌다.
이러한 상태에서 경찰은 1월 20일 새벽을 틈타 사방으로 물대포를 쏘며 인화물질이 다량 쌓여있는 건물 옥상 위 철거민들을 토끼몰이 하듯이 매우 공격적으로 진압을 시도한 것이다. 화재전문가 역시 망루 내의 인화물질을 고려할 때 불이 나는 경우 대형 화재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증언하였다. 경찰특공대의 1차 진압과정에서 망루 내에 1차 화재가 발생하여 대형 화재의 가능성이 감지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어떠한 안전 대책도 없이 심지어 이미 바닥난 소화기도 충전하지 아니한 상태로 망루 안으로의 진압을 밀어붙인 것이다. 대형 화재가 예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압을 독려하고 진압을 강행하는 행위가 과연 안전수칙을 준수한 경찰권의 적법한 행사인가?
이 사건 판결문에는 경찰권을 행사하더라도 안전과 생명을 중시하고 그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비례의 원칙을 준수하였는지 여부에 대한 어떠한 판단도 보이지 않는다. 위험요소를 방치한 채 수행되는 진압작전은 그 자체로 이미 상당한 인명에 대한 손상을 예견할 수 있는 과도한 진압 형태임에도 경찰 진압과정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구체적인 판단도 하지 않은 채 도리어 면죄부를 씌어준 것이다. 또한 경찰은 그 추운 겨울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로 사방을 공격하고, 소화가스를 망루내로 살포하고, 컨테이너와 쇠갈퀴로 망루에 대한 해체를 시도하고, 망루의 아래와 위로 동시에 공격을 시도함으로써 극도로 공포 상태로 몰아가고 있었음에도 오히려 재판부는 경찰이 최소한의 장비만을 소지한 채 얌전한 진압 작전을 벌인 것처럼 사실 판단에서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셋째, 재판부는 "피고인들을 비롯한 농성자들이 망루 내부로 진입한 경찰특공대원들에게 불이 붙은 화염병을 투척하여 망루 내부 3층 계단 부근에 불을 내 망루 안에 있던 세녹스의 유증기에 불이 옮겨 붙어 망루 전체에 화재가 발생한 것이고 누가 던졌는지 알 수 없다고 해도 이 사건 화재 당시 망루 4층에 남아 있었던 이상 책임을 져야한다"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과연 '화염병을 투척하여' 망루 내부 3층 계단 부근에 불이 났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인가? 농성자들이 4층에서 던진 화염병 불에 의해 3층 계단 부근에 불이 붙고 유증기에 옮겨 붙었다면 철거민들이 4층에서 화염병에 불을 붙일 때는 왜 아무렇지도 않았을까? 화재 전문가의 증언에 따르면 유증기는 정전기에 의해서도 발화될 수 있을 만큼 매우 민감한 것임에도 화염병에 불을 불일 당시에는 어떻게 온전할 수 있었던 것일까? 더욱이 2차 진입 당시 화염병을 직접 목격한 경찰특공대의 증언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화염병으로 인한 화재로 단정 짓기에는 너무나 의문이 많은 것이다.
또한 화염병을 누가 던졌는지도 알 수 없고, 피고인들이 화염병으로 인해 대형 화재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견하였는지 여부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화재 당시 망루 4층에 있었던 사실만으로 모두 중형의 책임을 지울 수 있는 것인가? 피고인들은 절규하고 있다. "망루 안으로 불붙은 화염병을 던지는 것은 곧 자신들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인데 망루 안으로 불붙은 화염병을 던지겠는가?"라며. 피고인들은 대형 화재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견 자체를 극구 부인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목격된 바 없는 화염병으로, 누가 던졌는지도 알 수 없는 화염병으로 인한 대형 화재 사고에 대해 단지 화재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중형의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인가? 조직 범죄의 수괴를 처벌하기 위해 개발된 공모공동정범의 법리를 자신의 생존을 위해 저항했던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적용함으로써 형벌권의 남용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 게다가 재판부는 재개발 지역의 세입자들이 자신의 생계 대책을 세워줄 것을 요구하기 위해 시작한 망루 농성을 두고 국가법질서의 근본을 유린하는 행동으로 단죄하였다. 이 얼마나 가혹한 가치판단인가? 세입자들은 재개발로 인해 자신의 생존 수단을 상실하게 될 절박한 상황에 놓인 피해자들이었다. 그들은 부실한 법제도와 건설재벌 및 재개발조합, 그리고 철거용역업체들의 일방적 폭력 앞에 단지 3개월간의 영업손실과 적은 금액의 보상금을 받고 거리로 나 앉아야 할 형편에 있던, 음식점, 옷가게, 금은방 점포 사장님 등 평범한 우리 이웃들이었다. 재판부는 그들이 자신의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망루에 올라갔고 자신들의 생계대책을 요구하려던 과정에서 경찰의 진압에 저항했던 행위를 국가법질서의 근본을 유린하는 행동으로 규정해버린 것이다.
반면 이 사건의 발단이 된 재개발 과정의 폭력성과 비인간성, 세입자들의 피해 상황 등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하는 매우 편파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렇다면 사회적 약자는 모두 강자의 논리에 따라 주면 주는 대로 내쫓으면 내쫓는 대로 그에 따라야 한다는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아버지가 또는 남편이 테러리스트가 아님을 밝혀달라고 절규하는 가족들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다섯째,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수사기관 이래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경찰과 조합, 철거용역들에게 이 사건의 책임을 전가하려만 하고 있고, 엄숙한 이 법정에서 계획적으로 재판의 진행을 방해하고 이 법정을 자신들의 정치적인 의사표현의 장으로 변질시키려 하는 등 범죄 후의 정황도 매우 좋지 않다"고 판시했다.
그런데 피고인들이 자신들의 방어권을 행사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검찰이 비공개한 수사 기록 3000여 쪽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이를 위해 재판부에 적극적으로 소송 지휘권을 행사해달라고 요구한 것이 '계획적으로 재판의 진행을 방해한 행위'인가? 경찰과 조합, 철거 용역들의 유착 관계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것이 '책임을 전가하려는 행위'인가? 사건의 본질을 보기 위해서는, 그리고 객관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절차들이 아니었는가?
수사기록 3000여 쪽을 은닉한 검찰이야말로 재판의 진행을 방해한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재판부는 수사 기록을 제출하지 않는 검찰에게 왜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가? 왜 그들에게 당당하게 수사 기록을 제출하라고 한마디도 하지 못했는가? 검찰은 권력자이고 피고인들은 힘없고 '빽' 없는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수사기록의 공개는 정권에 부담을 주는 행위임을 감지한 때문인가? 피고인들과 변호인이 공정한 재판을 받기 위하여 수사기록 공개를 요구한 것을 두고 이 사건에 대한 책임전가로, 정치적 투쟁으로 매도해버렸다. 참으로 비겁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 용산 참사 해결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벌이려던 시민단체 대표들을 연행하는 경찰. ⓒ뉴시스 |
자고로 형사 재판은 객관적 진실을 발견하여 사안의 진상을 명백히 하고 그 실체적 진실을 전제로 국가형벌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용산 참사 사건의 재판부는 실제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을 수사 기록 3000여 쪽에 대해서 눈을 감은 채 사실을 확정하고 그를 근거로 법적 판단을 강행했다. 피고인들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헌법적 권리를 재판부 스스로 부정해버린 것이다. 따라서 검찰과 재판부의 국가법질서 유린 정도는 피고인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훗날 수사 기록 3000여 쪽이 공개되어 자신이 확정한 사실과 실체적 진실이 다른 경우 재판부는 그때 가서 뭐라고 발뺌하려는가? 참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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