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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전 회장의 '버럭'이 무서운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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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전 회장의 '버럭'이 무서운 진짜 이유

[기자의 눈] 김용철 변호사 양심 선언 2주년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최근 '버럭' 했다고 한다. 경기도 용인의 한 가정집에서 삼성전자 지펠 냉장고가 폭발했다는 소식이 그를 화나게 했다.

퇴임한 회장의 분노는 힘이 셌다. 삼성전자는 29일 지펠 냉장고 21만 대에 대해 자발적 리콜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제품의 결함을 회사가 찾아내 수리해주는 소비자 보호 제도인 리콜을 자발적으로 하겠다는 것을 놓고 나무랄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 과정이다.

삼성 냉장고 폭발 사고가 난 것은 지난 10일이다. 소식이 전해진 뒤에도 삼성전자 측은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런데 창사 40주년 행사를 하루 앞둔 날, 갑작스레 리콜 조치를 발표했다. 이 전 회장의 뜻에 따른 조치라는 해석에 힘이 실리는 게 당연하다.

이런 모습은 지난해 4월 22일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이날, 이 전 회장과 이학수 전 부회장은 삼성 쇄신안을 내놓고 경영 퇴진을 선언했다. 당시 쇄신안에는 구조본 해체와 더불어 계열사 자율경영 약속이 담겨 있었다. 이런 약속에 대해 삼성 주변에서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오너 경영체제에 철저히 길들여진 삼성 그룹이 과연 자율 경영을 할 수 있을지 의심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온 나라의 관심이 쏠린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한 약속을 설마 뒤집겠느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이건희 전 회장은 그저 평범한 부잣집 할아버지가 아니라는 게다.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 경제 권력인 그가 허튼 소리를 할 리는 없다는 게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 속에서 이런 반론은 설 자리가 없다. 지난 9월 7일자 <조선일보>에 따르면, 삼성전자 완제품(DMC) 부문장 최지성 사장은 "다시 오너 경영 체제로 돌아가는 문제를 고민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보름 뒤, 권오현 삼성전자 반도체담당 사장도 "삼성그룹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노하우와 지혜를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런 말을 한 이들은 삼성그룹 내 최고 실세 경영자들이다. 근거 없는 말을 할 사람들이 아니다. 특히 최지성 사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이 전 회장의 진노와 삼성 냉장고 리콜 조치가 한 묶음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제 삼성 주위에서 '오너 경영 체제 복귀'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결과적으로, 이 전 회장은 2년도 채 못 돼서 약속을 깬 셈이 됐다.

▲ 지난해 4월 22일, 경영 퇴진 선언을 하는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이제 당시 약속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흔치 않다. ⓒ뉴시스

이 전 회장과 삼성이 이처럼 과감하게 굴 수 있는 이유가 뭘까. 삼성 냉장고 리콜 결정과 같은 날 나온, 헌법재판소 결정에 힌트가 있다. 헌재는 이날 신문법·방송법 등 언론 관련법 권한 쟁의 심판에서 법 처리 과정의 '위법'을 인정하면서도 '법안 가결 선포 무효 청구'는 기각하는 결정을 내렸다. 누구나 알고 있듯, 재벌과 보수 언론의 여론 장악력을 북돋워주는 결정이다. 죄가 있지만, 처벌할 수는 없다던 삼성SDS BW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 결과와도 닮았다. 이 전 회장은 법원과 언론을 장악하고 있으니, 두려울 게 없을 밖에.

29일은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 선언을 한 지 만 2년이 되는 날이다. 언론 관련법에 관한 헌재 결정이 마침 이날 이뤄진 게 유난히 마음에 걸리는 이유다. 이날, 이건희 전 회장의 '진노'와 삼성 냉장고 리콜 결정을 보도한 언론 가운데 지난해 4월 22일 쇄신안을 다시 언급한 곳은 찾기 힘들었다. 김 변호사의 양심 선언이 낳은 결과를 되돌아보는 언론은 전혀 없었다. 그게 진짜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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