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5년에 도입되어 15년이 된 지방자치제도이지만 지역주민이 느끼는 편익이 매우 적다는 평가가 많다. 선거를 앞두고 사회복지를 포함한 많은 공약을 제시하지만, 재선에 도움이 될 말한 가시적인 효과가 큰 사업을 중심으로 추진하다 보니, 어려운 지역주민의 삶을 돌보고 살피는 일에는 소홀한 실정이다. 홍보 효과가 큰, 가시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는 개발 사업에만 막대한 재정을 투자하고, 지역주민의 삶과 관련이 깊은 사업들은 오히려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지방자치제도 실시 이후,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크게 받지 못 하는 복지분야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관심과 투자는 매우 부족하다. 지역주민을 위한 복지사업은 지역개발사업에 비해 사업규모가 적어서 적은 비용이 소요됨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 사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재정여력이 있는 지역의 경우에는 후 순위라도 사회복지분야에 투자하지만, 재정여력이 없는 지역의 경우 정부지원 사업 외에 자체 복지사업은 거의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재정여력이 있는 지역이 그렇지 못한 지역에 비해 복지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지역 간 복지 관련 지표의 불평등은 매우 크다.
통계청 자료로 75개 시 지역의 2007년 기준 일반회계 중 사회복지(사회보장) 예산이 차지하는 비율을 비교해 보면, 사회복지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시(26.83%)와 가장 적게 투자하는 시(10.21%) 간의 격차가 2.5배로 매우 큼을 알 수 있다. 군 지역과 구 지역을 포함할 경우 그 격차는 더 커질 것이다.
사회복지시설의 지역 간 격차도 심각하다. 인구 10만 명당 사회복지시설 수는 가장 많은 시(20.77%)와 가장 적은 시(1.28%)의 격차가 무려 16배 이상이다. 유아 천 명당 아동보육시설의 경우 수가 가장 많은 시(21.7%)와 가장 적은 시의(7.34%)의 차이가 3배이고, 노인 천 명당 노인여가복지시설 수도 가장 많은 시(20.81%)와 가장 적은 시(2.71%)의 차이가 7.7배나 된다. 최근 저 출산 극복을 위해 지역마다 추구하고 있는 출산장려정책들도 지방자치단체 별로 그 수준과 내용이 천차만별이다.
지방자치단체 간 복지수준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 스스로의 복지분야에 대한 관심과 투자, 중앙정부 차원의 복지격차 해소를 위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지방자치단체 스스로 사회복지 예산의 적정성을 아동, 노인, 장애인 등 분야별 수요에 따라 구체적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사회복지 예산수준을 높여 나가야 한다.
사회복지시설이나 기관의 수가 부족한 지역은 필요예산을 확보해 전국평균 수준 이상으로 시설을 개설해야 하고, 자치단체가 할 수 있는 복지사업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시행하는 일도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정부의 사업을 수행하는 단순한 집행기관의 위상에서 탈피하여, 지역주민의 복지수요에 기반해 독자적인 복지서비스를 개발하고 제공해야 한다. 지방정부가 스스로 사회복지 수요를 발굴할 수 있는 모니터링 체계를 갖추고, 지역 민간단체와 적극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한 예산과 담당부서도 마련해야 한다.
중앙정부도 복지수요는 많으나 복지시설이 부족한 지역을 중심으로 복지서비스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도록 재정을 우선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예컨대, 장애인 인구가 타 지역에 비해 많으나 관련 시설이 부족한 지역에 대해 장애인 복지 관련 재정을 차별적으로 많이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역 간 복지수준의 격차를 줄일 수 있게 된다.
▲ 서울 강남구 도곡1동에 855억 원을 들여 뮤지컬 극장, 골프연습장, 헬스클럽 등을 갖춘 초호화판 주민센터(옛 동사무소)를 짓기로 한 계획이 논란을 낳았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지역 간 재정 불균형이 심해진 상황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사례다. 복지 수요가 큰, 가난한 지역에 복지 공급을 늘릴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이 절실하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가 발표한 주민센터 조감도. ⓒ강남구 |
분명한 것은, 사회복지서비스 공급의 주체가 지방정부 내지는 지역사회 중심으로 체질 변화가 요청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복지의 지방화'가 필요한 것이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로 사회복지서비스 수혜계층이 요구하는 바가 점차 폭넓고 다양해지는 경향 속에서 중앙정부가 이러한 새로운 도전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음이 드러나면서, 보다 지역화 된 사회복지체계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즉, 지역주민의 복지욕구 변화에 따른 행정과 재정 수요의 변화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지방정부의 사회복지 기능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시급히 추진해야 할 사회복지사업은 매우 많다. 우선, 지역사회복지 수요의 상시적 모니터링과 복지서비스의 지역성 강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지역 내 사회복지서비스가 필요한 위험집단에 대한 상시적인 복지수요 파악과 맞춤형 복지서비스의 제공이 필요하고,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전담인력 구성이 필요하다. 예컨대, 장기간 건강보험료를 체납하고 있는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지를 확인하고 필요한 각종 사회복지서비스를 연계해 주어야 한다.
지역별 복지수요에 따라 적정예산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역 내 아동, 노인, 장애인 등 복지수요와 그 변화를 파악하고, 복지수요 증감에 따라 관련 복지예산을 연동해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지역 간 균등한 복지인프라 확보는 매우 시급한 과제이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복지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은 지역을 우선 인프라 구축지역으로 선정하고 지원해야 한다. 지역사회 내 노후 사회복지시설의 개선도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많은 사회복지시설들이 낙후된 시설과 장비로 운영되고 있다. 이는 제공되는 서비스 질과 직접적인 연관관계 큰 만큼 빠른 개선이 필요하다.
한편, 지역사회의 좋은 일자리 창출은 지역 빈곤문제를 해결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 지역사회의 다양한 사회서비스 영역을 발굴하고 취약계층에게 사회적 일자리를 제공해야 하며, 지역사회의 현실에 맞는 독특한 사회적 기업을 인큐베이팅 해야 한다. 빈곤주민을 위한 긴급지원제도나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 대한 추가지원제도와 같은 별도의 소득보장제도의 마련도 필요하다.
내년이면 새로운 지방자치단체장을 선출하게 된다. 급격한 지역사회 내 복지수요의 증가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 강화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지역 내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살펴줄 수 있는 정책을 말하고, 실제로 이를 추진할 열정이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이제는 제대로 투표해야 한다. 지역 주민들에게 보편적으로 요구되는 사회서비스를 과감하게 제공할 사람, 우리 지역을 더불어 행복한 복지공동체로 만들어줄 사람, 소외된 지역주민의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지역 수준에서 복지국가의 꿈을 꾸어 볼 계기를 마련해줄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뽑아야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와 복지는 결국 우리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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