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도와 함께 기세가 오른 정부의 일패도지(一敗塗地)를 논하는 것은 성급한 일로 보인다. 특히 향후 새로운 변화의 모습을 보여 줄 지도 모르는데, 미리 예단하는 것은 실례가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모습으로 보면 이명박 정부의 일패도지는 불가피해 보인다. 경제를 중심으로 정치를 이해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근거로 삼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명박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의 역량을 과소평가했다. 단기간 내에 산업화와 동시에 명예로운 민주혁명을 달성한 역동적인 대한민국 국민을 강압적 통치의 대상으로만 취급한 것은 매우 중대한 실책이었다. 그들의 행위가 우리 국민의 자존심을 얼마나 상하게 하는지 이 정부로서는 이해하지 못한다. 김제동이 눈물을 흘릴 때, 많은 사람들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그들은 볼 수 없다.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그렇게 강변하던 세력이 전·의경에게만 그 쇠고기를 먹였다는 사실이 우리 국민을 얼마나 분노케 하는지 그들은 모른다. 신문방송이 그 중대한 사실을 보도조차 하지 않는 끔찍한 나라로 만든 것에 대해 치를 떨고 있는 마음을 그들은 모른다.
둘째, 이명박 정부는 늙은 보수세력을 대변하고 있다. 국민경제의 입장에서 보수의 집권은 과거 정부의 타성을 벗어나 새로운 사고를 도입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구시대적인 친기업주의와 시장만능주의, 토건주의에 파시즘적 행태가 합쳐진 기형적 보수주의를 고집하고 있다. 이것은 지난 10여년 간 줄기차게 보수가 집권한 후의 장밋빛 환상을 그려왔던 보수세력 스스로를 부정하는 일이다. 그래서 내세울 수밖에 없었던 실용주의는 늙은 보수주의와 충돌하고 있는데, 이론적 토대가 빈약한 실용주의는 혼란을 야기할 뿐이다. 보수에 대한 일반 국민의 실망이 깊어가면서 보수 진영 내부에서부터 이명박 정부를 배격하기 시작할 것이다.
셋째, 감시견을 다 잡아먹은 이명박 정부는 필연적으로 부패할 것이다. 비판세력을 잠재우기 위해 무리수를 둔 세력들은 대가를 챙길 것이고, 이는 부패로 이어진다. 한편에서 친기업주의로 인해 부패가 성행할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 친위세력의 무리수는 기업에까지 부담을 주어 전통적인 지지세력까지 등을 돌리게 만들 것이다. 경제계 일각에서부터 과거와 비교하기 시작하고 있다. 대통령의 사돈 일가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스캔들은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약점은 쌓이게 되고 대형 부패 사건이 터지는 순간 이명박 정부는 통제력을 상실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제 퇴로를 준비해야 한다. 촛불집회로 인해 행정력을 상실한 것을 탓하기 전에 자신들의 국정운영 철학의 문제부터 되돌아봐야 한다. 준비가 미흡했음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그 길만이 비극적 종말을 피할 수 있다.
▲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
개혁시대의 종언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이명박 정부는 어떻게 평가될까? 산업화나 민주화나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기형적인 이명박 정부의 출범을 적극 지지한 한국 국민의 정서를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까?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인해 새삼 1929년의 대공황 공부를 하다가 당시 미국의 정치상황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미국에도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개혁을 부르짖던 1920년까지의 진보시대가 있었다.
전쟁이라고 하는 특수상황이 있었지만, 1920년 선거에서 집권 민주당은 처절하게 패배한다.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콕스(James M. Cox)는 당시 집권 중인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을 철저하게 부정하면서 캠페인을 벌였다. 승리를 확신한 공화당 지도부는 자신들이 요리하기에 편한 하딩(Warren G. Harding)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하딩은 상대방인 콕스에 대해서는 무대응으로 일관하며 대신 캠페인 내내 현직 대통령인 윌슨에게 대립각을 세웠다. 여당의 후보는 새로운 당을 만들어 현직 대통령과 차별화하며 거리를 둔 대신 야당은 집요하게 현직 대통령만 공격하던 2007년 한국의 대선을 떠올리면 소름이 끼칠 정도다.
하딩이 내세운 구호는 정상화(return to normalcy)였다. 전쟁이 종료된 이후 평시체제로 전환하자는 의미도 있었지만, 진보시대(progressive era)의 비정상을 해소하자는 공격적 구호이기도 했다. 선진화와 잃어버린 10년을 적절하게 결합하여 공격해 댔던 한국의 보수세력을 연상케 한다. 결과는 선거인단 수 득표에서 하딩 404, 콕스 127로 공화당의 대승이었다. 유권자 투표에서의 하딩 60.3%, 콕스 34.1%간의 득표율 차이는 1820년대 이후로 최고 수준이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기록이다. 한 마디로 진보시대에 대한 미국 국민의 냉정한 심판이었던 것이다.
아직 진행 중인 상황이라 미리 규정하기 어렵지만, 필자는 사실 1987년 이후 20년이 향후 한국의 개혁시대로 평가받지 않을까 추정하고 있다. 일반적인 관측과는 달리 필자는 김영삼 대통령의 개혁적 입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국민들의 개혁에 대한 열망을 반영하며 보수적 개혁을 주창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본다. 보수적 개혁의 한계는 외환위기로 귀결되었고, 새로운 진보적 개혁의 대안으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출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역시 철저하게 부정되면서 진보개혁세력의 큰 패퇴로 이어진 것이다.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하딩은 자신의 오랜 친구들을 대거 등용하고, 무능했던 친구들은 권력에 취해 월권을 일삼다 결국 대대적인 부패스캔들에 연루된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기록되는 오명을 뒤집어 쓴 하딩은 부패스캔들이 한창 언론을 장식하던 1923년 서부를 여행하며 직접 대중을 상대로 정책을 설명하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대통령을 계승한 부통령 쿨리지(Calvin Coolidge)는 곧 부패한 하딩의 친구들을 철저히 단죄한다. 미국경제의 호황과 더불어 1924년 다시 압도적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며 보수의 시대를 활짝 연다.
진보시대 이후의 진보개혁세력
1924년 선거에서 미국 민주당은 분열로 패퇴한다. 진보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1920년 선거에서 완전히 무너진 민주당은 1924년 선거에서는 보수적인 데이비스(John W. Davis)를 내세운다. 민주당내 리버럴로 불리는 개혁세력은 이에 반발하여 명맥을 이어오던 진보당 라 폴레(Robert M. La Follette)를 지지한다. 결과는 쿨리지 54.0%, 데이비스 28.8%, 라 폴레 16.6%로 공화당의 압승으로 이어진다. 진보개혁세력의 몰락으로 탄생한 기형적 정부가 몰락한다고 해서, 곧 진보개혁세력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아직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보수의 정예사단이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딩은 자기 친구들과 함께 당시 보수를 대표하는 쿨리지나 재무장관 멜론, 상무장관 후버 등 쟁쟁한 실력파들을 입각시켰었다.
이명박 정부의 일패도지는 보수의 정예사단을 전면에 부각시키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기형적인 이명박 정부의 토건주의와 파시즘적 행태를 부정하며 합리적 보수에 의한 선진화를 내세울 것이다. 전두환 이후의 노태우, 김대중 이후의 노무현 같은 방식이다. 다시 새로운 보수가 집권하면, 더욱 강력한 보수 정부가 될 수 있다. 물론 건전한 보수세력이 얼마나 합리성을 유지하며 이명박 정부와 거리를 두는가에 실현가능성이 달려있다.
반면 개혁시대 이후 진보개혁세력이 중심을 잡기는 쉽지 않다. 개혁에 열광하던 시대에도 집권하기 어려웠던 진보개혁세력이 개혁에 냉담한 국민들을 되돌려 다시 새로운 개혁의 시대를 열어야 하는 과제는 지난하기만 하다. 무엇보다도 도덕적 우위를 내세웠던 진보개혁세력이 자기부정을 하기는 어렵고, 내부에서는 정치적 자멸행위로 여길 것이다. 오늘 진보개혁세력의 모습이 그러하지 아니한가? 국민들에게 철저히 버림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 더 이상 아무도 성찰하지 않는다. 모두 자기는 잘 했다만 반복하고 있고, 잘못된 것은 환경적 요인이나 남 탓으로만 돌리는 모습만 보인다. 진보개혁세력은 덫에 걸렸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의 삶은 나날이 더 궁핍해지고 있다. 이것이 1920년대 미국과의 차이다. 당시 미국은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결국 대공황으로 이어지긴 했으나 물질적 풍요가 넘치던 시기였다. 지금 한국은 일부 재벌기업을 제외하고는 나날이 경쟁력을 잃고 있고, 국가와 가계는 빚에 허덕이고 있는 상태다. 언제 제2의 IMF 사태를 맞을지 알 수 없다.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기다. 새로운 실력파 보수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국민적 불만을 잠재우기 어렵다. 반면 진보개혁세력은 성찰이 없으니 대안도 없다. 뼈아픈 성찰의 과정을 거쳐 새로움을 내세울 수 없는 진보개혁세력은 서서히 늙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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