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Rap)은 말과 리듬의 음악이다. 랩에서 말은 의미를 구성하고 리듬은 음악을 구성한다. 의미는 말에서 출발하지만 비트와 사운드로 말이 다하지 못한 의미를 보충하고 리듬은 말을 음악으로 변화시키며 말의 드라마를 조절한다. 길고 긴 말이 구성하는 드라마의 개성과 말과 말 사이를 교묘하게 직조하는 라임(Rhyme)의 리듬감, 그리고 곡을 이끌어가는 비트와 사운드는 랩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핵심적인 요건이다.
가장 많은 말을 자신이 원하는 속도대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 랩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그것이다. 비트만 있다면 랩퍼는 줄을 만난 광대처럼 자유롭게 노닌다. 그래서 흑인들의 거주지에서 랩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해보인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으나 너무도 말하고 싶었던 것이 많았던 이들에게 랩은 얼마나 자연스러운 음악이었겠는가. 비참한 흑인 사회의 현실이 생짜로 드러나는 랩의 운명은 어쩌면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랩이 바다를 건너며 이 땅에서는 자연스러운 토로와 저항이기보다는 유희와 쾌락에 더 치우치기도 했다. 속사포 같은 랩의 속도감이 댄스와 결합된 힙합은 댄스뮤직의 주류로 양식화되는 일이 훨씬 더 많았다. 물론 그것이 의미가 없는 일은 아니었지만 랩의 반골 정신을 우리 것으로 만든 뮤지션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독한 비판 정신으로 한국의 힙합을 일궈온 뮤지션들이 있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실 이제 막 EP [Affection, please]를 발표한 폴 어쿠스틱은 아직 널리 알려진 팀은 아니다. 2007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목소와 더케이(th3k)로 구성된 프로젝트 랩그룹으로서 그동안 다양한 축제 현장과 반전 문화제, 작가선언 6·9의 북콘서트 등에서만 얼굴을 볼 수 있었던 신인 힙합 듀오이다. 그렇다. 이들은 이제 막 초보의 발걸음을 떼고 있는 중인 것이다. 이들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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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답게 풋풋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폴 어쿠스틱이 선보이는 곡은 <세상의 변방에서 변화를 외쳐라>이다. <프레시안>에서 발표하는 창작곡 릴레이 발표작업 가운데 힙합 곡으로는 처음 선보이는 이 곡은 별도의 사운드를 덧붙이지 않고 비트를 중심으로 랩을 풀어놓는 지극히 담백한 구조를 띄고 있다. TV나 라디오에서 들을 수 있는 곡들처럼 화려하지 않고 절제되고 간결한 사운드는 랩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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