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우주의 행운아 지구, 또 다른 주인공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우주의 행운아 지구, 또 다른 주인공은?

[문화, 우주를 만나다] 엔트로피의 증가와 우리의 존재

2009년은 유엔(UN)이 결의하고 국제천문연맹(IAU), 유네스코(UNESCO)가 지정한 '세계 천문의 해'이다.

실제로 2009년은 아주 뜻깊은 해이다.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만들어서 천체를 관측하기 시작한 지 400주년, 허블의 우주 팽창 발견 80주년, 인류의 달 착륙 40주년, 외계 지성체 탐사프로젝트 제안 50주년 및 메시지 송신 35주년을 맞은 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09 세계 천문의 해'를 맞아 한국조직위원회를 만들어서 국제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이미 4월 2일부터 5일까지 전 세계 천문대에서는 100시간 동안 연속으로 별을 관측하고 길거리에서 천문학자·아마추어천문가가 일반인과 함께 별을 관측하는 전 지구적인 행사가 열렸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특별히 이동 천문대 '스타-카'가 소외 지역 아이들을 찾아가고, '과학과 예술의 만남'과 같은 전시회도 준비 중이다. 이런 내용은 2009 세계 천문의 해 한국조직위원회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와 웹진 <이야진(IYAZINE)>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바로 가기)

<프레시안>은 이런 '2009 세계 천문의 해'를 맞아 '문화, 우주를 만나다' 연재를 <이야진>과 공동으로 연재한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꿈을 키웠던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별, 우주, 문화, 예술 등을 화두로 매주 한 편씩 에세이를 선보인다. <편집자>


▲ 충청북도 보은 KT위성통신 지구국을 배경으로 촬영한 별들의 일주운동. 엄청난 크기의 안테나들이 마치 SF 영화에서 나오는 전파망원경처럼 외계생명체가 보내는 신호를 받고 있는 듯 보인다. 북반구 일주운동(diurnal motion)은 지구의 자전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별들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시간당 15°(또는 분당 15')씩 반시계방향으로 움직인다. ⓒ한국천문연구원(사진=안해도)

서울에 자리 잡은 지 10년을 훌쩍 넘겨 이제는 아파트 생활이 익숙해졌다. 인구밀도가 세계적으로 높은 도시에서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크지 않은 집단 주거 형태일 것이다.

천안 고향집에 며칠 전에 다녀왔다. 내가 자란 천안의 집은 주택가에 있는 작은 집이고 아버지가 애써 가꾸셨던 작은 화단이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앵두와 모과와 감나무가 여전히 살아 있다. 특히, 감나무는 너무 무성하게 자라서 이웃집을 침범하고 있었다. 가끔씩 한밤중에 감이 이웃집 지붕에 떨어지면 벼락치는 소리가 나더라고 이웃집 아주머니의 불평과 또한 때마침 가지치기를 하러 온 우리 형제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딸 아이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봄이면 늘 챙겨 주시던 빨갛게 익은 앵두를 계속 먹을 수 있는지 물어 봤다. 따뜻한 봄 기운에 상큼한 앵두의 맛은 아이 뿐만 아니라 나 역시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다.

작은 화단이 주는 즐거움을 포기한 뒤에 서울에서 찾은 다른 즐거움은 내 신체의 에너지를 이용하는 자전거이다. 여느 도시에서는 찾기 어려운 넓은 한강의 강변을 달릴 때에는 얼굴에 와닿는 시원한 바람에 회색 도시의 삭막함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큰 방해 없이 시속 20킬로미터의 속력을 낼 수 있고, 도시의 거리 규모가 10킬로미터라고 한다면 자전거는 도시에서 매우 쓸모 있는 이동 수단이다. 화석연료를 뿜어내는 자동차가 질주하는 도심에서 생물학적 에너지를 작은 운동에너지로 전환하면서 주변을 천천히 감상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자전거는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첫 서울 생활은 대학의 기숙사에서 시작되었다. 지방에서 올라 온 친구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기숙사는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을 사귀기에 좋은 장소였고 경제적이면서 강의실에 가깝다는 여러 가지 장점을 한꺼번에 갖고 있었다. 교통 상황이 유동적인 출퇴근 시간대에 대중 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서울 친구들에 비하여, 기숙사에 거주하고 있던 나는 아침 1교시 강의에 출석 점검이 미처 끝나지 않는 시간대인 1분 이내로 지각할 수 있는 드문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친구들과 많은 토론을 했던 기억이 있다. 기숙사에서 같이 오랜 밤을 보낼 수 있는 친구들과는 술 한 잔과 많은 대립과 모순에 둘러 싸인 사회 문제와 함께 물리학 자체도 할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다. 공식들만의 나열이라는 딱딱함과 재미없음, 어려움의 선입관을 안겨 주는 물리학이지만 정작 전공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이 제시하는 보편적 원리를 논리적이고 통일적으로 이해하려는 자연 과학 가운데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매력이 넘치는 학문이다.

현대물리학의 한 축이며, 반도체의 개발을 이끈 양자역학에는 많은 이야기 거리가 있었다. 특히, 아인슈타인이 그처럼 혐오했던 확률론적인 해석을 두고 오갔던 역사적인 일화들은 여전히 양자역학의 근간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현대물리학에 대한 높은 관심에 비하여 고전물리학에 대해서 나는 시대에 뒤쳐진 학문이라는 선입관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고전물리학이 보여 주는 높은 경지를 생각하면 이러한 당시의 생각은 참으로 철이 없었던 생각이다.

아직도 뇌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대화가 있다. 이웃 동에 거주하고 있으며 수학에 유난히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한 친구가 어느 날 내게 인간이 우주에서 갖는 물리적 의미를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냐고 물어 왔다. 뜬금 없는 질문에 어안이 벙벙한 내게 자기가 생각한 답을 제시하였다. 그 친구에 따르면, 인간은 우주의 엔트로피가 더욱 더 빨리 늘어나게끔 가속화하는 존재이다. 통계 물리학을 배운 지 얼마 안 된 당시에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엔트로피는 줄지 않으며, 엔트로피는 무질서도의 척도가 될 수 있다는 정도의 간단한 지식만을 갖고 있었다.

인간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엔트로피는 어쩔 수 없이 늘어나게 되어 있지만, 인간이 지구 위에 등장하여 산업 사회를 일으킨 이후에는 자연 파괴의 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커지고 있다. 산업화 이전의 인류들이 자연에 동화된 삶을 영위했다면, 산업화 이후의 인류의 삶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아 자연을 바꾸는 시도까지 하고 있다. 요즈음 중요한 화두 가운데 하나인 지구 온난화도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옛 사람들이 늘 보아 왔던 밤하늘의 은하수는 산업화와 도시화 물결에 휩쓸린 우리들에게는 작심하고 멀리 오지로 여행을 떠나야 볼 수 있는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지구 위의 삶과 자연에만 시야를 고정하여 바라본다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지구의 무질서도를 필요 이상 빠르게 늘려주는 사악한 존재이다. 지구의 무질서도 증가가 인간이라는 존재 때문에 더욱 가속된다면 우리에게서 선함이라는 속성을 찾을 수 있는 희망은 없는 것일까?

이와 같이 인간에 의하여 늘어나는 지구의 엔트로피 증가는 종말을 향한 되돌아 올 수 없는 행진이지만 그래도 나는 불안함을 느끼지는 않는다. 여전히 지구에 엔트로피가 적은 에너지원이 계속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저명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로저 펜로즈가 <황제의 새 마음(New Emperor's Mind)>(박승수 옮김,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펴냄)에서 제시한 명쾌한 대답은 다름 아닌 햇빛이다. 엔트로피가 낮은 형태로 많은 양의 햇빛 에너지가 지구에 입사하면, 엔트로피는 크지만 에너지가 작은 적외선 형태로 외부 공간으로 다시 되방출된다. 엔트로피가 낮아서 유용한 햇빛 에너지는 생물들이 사용하고 있는 에너지의 근원이고, 지구 대기에서 기상 변화의 원동력이며, 바닷물에 에너지를 공급하여 전 지구적 규모의 바닷물 순환을 일으킨다.

우리 산업 사회를 구동하는 화석연료도 그 근원을 추적한다면 태양 에너지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태양 에너지의 손길이 닿아 있다. 애써서 예외를 찾아본다면 지구 내부에서 나오는 지열이나 방사성 원소를 사용한 핵에너지, 혹은 달이 주요한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밀물과 썰물의 차이를 이용한 조력 발전 정도가 태양 에너지의 범주에서 살짝 비켜서 있는 듯하다.

사실 지구 위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존재하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나름대로 우주 전체의 엔트로피를 높이고 있다. 대기 중에 산소를 공급하면서 생태계에서 생산자 역할을 하고 있는 식물들도 한없이 평화로운 존재는 아니다. 식물 역시 생존하기 위하여 끊임 없이 화학 작용을 하고 있으며, 자신에게 필요한 유용한 영양분을 만들기 위하여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우주 전체의 엔트로피를 높인다. 지구라는 작은 장소로부터 시야를 확대하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우주의 무질서도룰 늘리고 있다. 무질서도 증가가 악한 것이라면, 인간이 빠져 있는 생태계도 선한 존재라고만 볼 수는 없겠다.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가 이처럼 엔트로피를 낭비하면서도 여전히 푸른 지구를 대표할 수 있는 물리학적 이유는 중력이라는 만유인력의 특징일 것이다. 천문학자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이후에도 나는 만유인력이라는 이름에서 보이는 매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물체를 잡아당기면서 물질들을 끌어 모으는 만유인력에 의하여 천체들이 형성되면 천체들이 갖는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외부에 낮은 엔트로피를 갖는 복사마당을 제공하는 기회를 갖출 수 있다.

가장 높은 엔트로피를 갖는 천체는 중력이 가장 극단적으로 적용된 블랙홀이라는 사실을 스티븐 호킹을 비롯한 여러 천재적인 물리학자들이 밝혔다. 블랙홀이 복사를 한다는 그의 설명도 놀라움을 금하기 어렵지만, 평범한 별 정도 질량의 블랙홀이 사건의 지평선 안에 담고 있는 엔트로피가 같은 질량의 별이 갖는 그것보다 무려 1019배 가량이라는 사실이 주는 놀라움은 형언하기 어렵다. 만유인력이 우주의 온갖 장소에서 엔트로피를 크게 높여 놓았기 때문에 지구에서 늘어나는 엔트로피는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의 극히 사소한 양이라고 안심해도 될 것 같다.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우리는 여전히 태양이 흘려 주는 많은 양의 유용한 에너지의 지극히 일부분만을 사용하고 있지만, 더 중요하고 극복해야 하는 문제는 활용 방법이 지나치게 원시적이라는 점이다. 넓은 우주를 생각할 때에 인간이라는 존재가 참으로 미미하다.

얼마 전에 충북대학교 한정호 교수를 비롯한 뛰어난 천문학자들이 중력렌즈 현상을 이용하여 작은 질량의 외계 행성을 발견하는 성과를 <사이언스>에 발표하였다. 지난 세기말부터 다양한 기법이 사용되어 외계 행성이 발견되기 시작하였으며, 이미 발견된 외계 행성의 개수도 수백개이고, 그 수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지구와 비슷한 성질을 갖는 외계 행성의 발견도 대부분의 천문학자는 단순히 시간 문제로 보고 있다. 천문학자들이 갖는 이러한 자신감의 배경에는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정밀 자연과학으로서 천문학이 대표하는 보편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천문학의 지식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위치는 우주의 중심이라는 특수한 장소에서 계속 변두리로 내몰려 이제는 우주에서 지극히 평범한 장소로 위치 이동을 마쳤다. 태양이라는 별과 나선 은하로서 우리 은하는 우주에서 평범한 천체이기 때문에 지구와 같은 외계 행성도 드물지 않으리라고 조심스럽게나마 전망할 수 있다.

지구와 같은 외계 행성계 발견이 시간 문제라고 하더라도, 지적 수준이 높은 생명체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은 우리 존재와 관련하여 의미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생물이 발현하고 진화하는 과정은 물리학의 관점에서는 지나치게 복잡한 과정인 것이다. 또한, 높은 지적 수준의 발현에 기인하는 문명의 건설과 유지에는 사회 과학적 상호 작용이 수반한다. 인류의 역사에 기록된 많은 전쟁이 문명을 이루는 데 혹은 파괴하는 데에 필수적인 요소인지 혹은 무분별한 산업화가 문명을 한 없이 드높이는 요소인지 문명의 최후를 앞당기는 요소인지 불분명하다. 높은 지적 수준을 갖춘 외계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의 지구와 닮은 외계 행성계 존재 가능성에 대한 비율은 우리가 이룩한 학문의 수준에서 계산할 수 없는 숫자이며, 어느 특정한 학문 분야에 속하는 문제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천문학이 다루는 우주의 모든 천체의 형성은 중력이 보편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한껏 부풀려 놓은 엔트로피 때문에 보잘 것 없이 매우 비좁은 장소에서나마 상대적으로 낮은 엔트로피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태양에 속한 지구와 그 생태계가 갖는 의미를 새겨 본다면, 우주의 가장 보편성 있는 물리 법칙에 따라 약간의 덤이 지구와 생태계에 덜어진 것이 아닐까? 그리고 아마도 이러한 덤은 은하의 구석구석에 골고루 덜어져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오랜 시간 스스로 존재하여 더욱 수준 높은 문명을 이루어, 아주 멀리에 존재할지모를 다른 문명에게 우리 존재를 알릴 수 있도록 한다는 것도 늘어나는 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엔트로피 법칙의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지구 위에서 태양의 축복을 누리면서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은 코스모폴리탄적 의미가 있는 듯하다. 이제 코스모폴리탄은 지구 세계를 망라하는 세계 시민이 아니라 우주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우주의 지적 존재로 확대해석하고 싶다.

매년 8월 한가위 보름은 가슴에 한 아름 풍성함을 준다. 햇빛에 담긴 저 엔트로피의 산물들인 햇과일은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면서 지구가 선사한 순환의 선물임을 다시 한 번 느낀다. 돌고 돌면서,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계속 이어지면서, 내 얼굴을 부딪치는 바람의 공기 부자들이, 어제 흐른 한강물이 내일 흐를 한강물과 같지 않으면서도 같아 보이는 자연의 법칙들에서 조금 더 의미를 찾아보고 싶다. 딸과 아들이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 짓는 흐뭇한 표정이 이제 보니 더 없이 소중하고 아름답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