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와 따로 노는 대출금리
강운태 민주당 의원은 "8월 대출금리가 5.61%에 달해 기준금리에 비해 무려 2.82배나 된다. 기준금리와 시장금리 격차가 역사상 가장 큰 폭으로 벌어졌다"며 "CD금리뿐만 아니라 회사채와 은행채 금리 등을 고려해 실제 적정한 조달금리를 반영하는 모델을 한은이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 의원이 금리격차 문제를 지적하며 CD금리 통제를 언급한 이유는 주택담보대출금리 결정 기준으로 통상 CD금리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CD금리는 금융투자협회가 매일 오전과 오후 한 차례씩 시중 증권사들로부터 제출받은 91일물 CD금리 중 가장 높은 수치와 낮은 수치를 제외한 평균값을 시장에 고지하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민간 증권사들이 제출한 금리가 사실상 서민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출금리 적용지표로 이용되는 게 문제라는 뜻이다. 강 의원은 이에 대해 "지난 8월 5일부터 46일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CD금리가 0.01%포인트씩 올랐다"며 "한은법 제28조에 보면 한은이 개별 대출금리 이자율을 결정할 권한이 있는데도 시장에만 맡기고 있다. 한은이 큰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국은행법 제28조 15항은 '금융기관이 행하는 대출의 최장기한 및 담보의 종류에 대한 제안'을, 16항은 '극심한 통화팽창기 등 국민경제상 긴절한 경우 일정한 기간 내의 금융기관의 대출과 투자의 최고한도 또는 분야별 최고한도의 제한'에 대해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심의·의결하도록 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도 "CD금리와 대출평균금리 차이가 커진 것은 분명하다. 지난 2007년 12월에는 금리 격차가 1.29%포인트였는데 올해 들어서는 3%포인트를 넘어섰다"며 "한은 총재로서 금리인상이 가계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양석 한나라당 의원 역시 "초저금리 시대인데도 중소기업과 서민들은 고금리 시대를 살고 있다"며 "기준금리 인하가 대출금리 인하로 이어지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5일 서울 소공동 한국은행에서 열린 국감에서 이성태 한은 총재가 국회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기준금리 인상 없는 대출금리 관리는 불가능
국회의원들의 이와 같은 지적이 일견 타당하나, 현실적으로 한은이 시장 대출금리를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우선 지적할 수 있는 사항은 현 대출금리, 넓게 말해 시장금리는 수많은 시장 플레이어들의 기대심리가 반영돼 결정된 돈의 값이라는 점이다. 한은 총재의 입과 따로 노는 한은의 더딘 의사결정을 비판할 수는 있어도 한은에 시중금리 자체를 붙잡으라고 얘기하는 것은 무리다.
시중금리가 이처럼 오랜 기간 오르는 단초로 이성태 한은 총재의 입이 작용한 것은 맞다. 채권시장은 지난 8월 금통위 이후 이 총재의 '매파적 발언'을 확인한 이후 강세를 보였다. 이 기조는 지난달에도 내내 이어졌다. 결국 시장은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을 예상하고 시중금리를 띄웠다고 볼 수 있다. 기준금리 인상이 미칠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대출금리와 기준금리 격차가 벌어지는 현상은 따라서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바로잡아야 할 문제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다음달 금통위에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리더라도 이미 변화한 시장의 움직임을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현재 실물과 금융시장은 금리인상에 미리 대비한 상태"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날 국감에서 일부 국회의원들의 지적은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이종구 한나라당 의원은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서 통화를 소리 없이 수습하는 게 한은의 실력이고 내공 아니냐"며 유동성 수습을 주문했으나 이는 불가능한 요구다.
현실적으로 한은이 기준금리 조절 외에 시장금리를 잡을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한은이 쓸 수 있는 대표적 정책은 RP매매와 통화안정증권 발행 및 흡수다. 그런데 RP매매는 바로 기준금리 조절 수단이며, 통안증권 발행도 곧바로 시장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수단이다. 미시적으로 한은이 쓸 수 있는 정책으로 총액한도대출이 있으나 이는 한도가 10조 원대에 불과해 수백조 원에 달하는 시중 유동성을 잡기는 역부족이다. 대출금리 조절을 주문하려면 미시적인 정책 결정권을 가진 금융위원회를 찾는 게 맞다.
이 총재도 이 때문에 "한은이 가진 수단은 기준금리를 정하고 그에 맞게 채권을 매매하는 것"이라며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고 유동성 팽창속도를 조절하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지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고 답했다.
한은은 거시정책 디자이너
국회의원들의 이처럼 엇나간 지적은 한은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인지에 대한 오해와 무지에서 나왔다.
한은은 금융위와 같은 시장 규제자가 아니라 시장 내부에서 안정자 역할을 하는 곳이다. 선물시장이나 ELW 시장에서 증권사들이 유동성 공급자(LP, Liquidity Provider) 역할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적정하다고 판단하는 이자율로 시장이 이동하도록 유도할 수는 있어도 마치 금융위나 재정부의 역할처럼 일정 기준을 정하고 이를 만족하지 못하는 이를 처벌할 권한은 부족하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한은은 어디까지나 시장 내부에서 활동하는 '마켓 메이커'이다. 이자율을 법령으로 못 박는 게 아니다"라며 "한은 스스로가 판단하는 적정금리를 시장에 알린 후 수요공급 수준이 한은의 기준에 맞도록 이동할 때까지 돈을 찍는 기관"이라고 말했다.
김상조 교수도 "한은은 정책기구이자 그 정책을 시장 내부에 들어가 금융기관과의 '거래'로 지탱하는 플레이어이기도 하다"며 "시장의 흐름에 반하는 과도한 역할을 한은에 주문한다면 오히려 지난해 강만수 전임 재정부 장관 재임 당시 환율논란이 일어난 것과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의 법적 지위? 국회의원들마저 이처럼 한은의 역할에 대해 혼동하는 이유는 한은의 지위가 무엇이냐를 명확히 정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 국감에서도 일부 국회의원은 이 문제를 지적했다. 이날 김재경 한나라당 의원은 "근본적인 문제부터 짚어보자. 도대체 한은의 법적인 지위가 뭐냐"며 "행정부에도 속하지 않고 입법부나 사법부 소속도 아니다. 한은은 참 어렵다"고 혀를 찼다. 이와 같은 질문에 이성태 총재는 "저희가 알기로 현대적인 의미의 중앙은행이 만들어진지 100년 정도 되는데, 말씀하신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으나 아직 완결나지 않았다"며 "저로서도 설득할 만한 논리는 갖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한국은행법에 따르면 한은은 무자본 특수법인으로, 통화정책과 발권업무를 전담하는 '독립기구'다. 무자본 특수법인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국민연금관리공단이나 코트라처럼 준정부기관도 아니다. 그렇다고 한국전력처럼 공공의 목적을 수행하면서도 이윤을 추구하는 공사도 아니다. 검찰처럼 독립적인 업무를 수행하지만 법무부 장관의 간접적인 지휘를 받는 조직 역시 아니다. 그런데 뒤집어 보면 한은은 이들 모든 특성을 또한 갖고 있다. 정부기관이 아니지만 한은 총재는 대통령이 임명하며, 일부 예산은 기획재정부의 통제를 받기도 해 행정부와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 한편으로는 금통위 규정 등 일부를 결정할 준입법적 권한까지 갖고 있다. 한은 법규실 관계자는 "한은의 성격을 법적으로 딱히 말하기가 어렵다. 모두 학문적인 이야기"라며 "넓은 의미에서는 행정적 조직인데, 정부조직법에 근거하지 않고 한국은행법을 뿌리로 했다"고 말했다. 굳이 설명하자면 한은은 '통화정책'이라는 특수 기능을 '중립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국가기관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도록' 만들어진 한국은행법 산하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 달라보인다. 이날 국감에서도 일부 국회의원은 "한은이 여전히 '남대문 출장소'로 불리고 있다"며 한은의 독립성을 주문했다. 여전히 행정부 산하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은의 고유 업무인 기준금리 정책을 공공연히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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