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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 62쪽 공문의 '수업 방해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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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 62쪽 공문의 '수업 방해 행위'

[기자의 눈] 누가 교육의 미래를 어둡게 하나

오는 13~14일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서 또 다시 일제고사가 치러진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전집형 진단 평가, 학업 성취도 평가라는 이름으로 부활한 일제고사는 이제 4회째를 맞는다.

짧은 시행 기간에도 일제고사는 전국을 발칵 뒤집었다. 일제고사 대신 체험 학습을 안내했던 교사들은 줄줄이 파면, 해임됐다. 교사와 교육청이 학생의 성적을 조작하고 묵인한 사실도 밝혀졌다.

이 일들의 책임은 모두 시험을 시행하는 교육 당국으로 돌아갔다. 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일제고사에 투입되는 인력과 비용은 횟수를 거듭할수록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9월, 서울시교육청이 모든 중학교에 내려 보낸 62쪽 분량의 일제고사 세부 시행 계획은 그 단면이다. 이 문건은 일제고사에 임하는 교사, 학생, 학교장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시하고 있다. 체험 학습 불허 지도, 부정 행위 기준, 매시간 안내 방송 시나리오에 이르기까지, 교육청의 세심한 '배려'가 눈물겹다.

세부 계획에는 시험 전 이 자료를 이용해 '전체 교직원'을 대상으로 교내 연수를 시행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또 각 학교에 배부한 수십 장의 홍보 포스터를 활용해 학생들도 일제고사 시행의 '의의'를 알도록 교육해야 한다. 시험 당일까지 각 학교의 지침 이행 여부는 일일이 유선 통화와 인터넷 보고로 통제된다.

시험이 끝난다고 교사의 임무가 끝나는 게 아니다. 서울 지역만 1500여 명, 전국에서는 약 1만 명 가까이 되는 교사가 2박3일 또는 3박4일간 서답형 답안지 합숙 채점에 참여해야 한다. 이 교사들이 별도로 참여해야 하는 연수까지 고려하면 적어도 4일 또는 5일 이상 약 1만 명의 교사가 수업에 들어가는 대신 일제고사 채점에 차출되는 것이다.

지난 9일, 일제고사를반대하는시민모임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이를 종합한 서울 지역 내 수업 결손 시간을 발표했다. 채점하는 교사의 수업 결손은 1만5140시간, 시험 보는 학생들의 수업 결손은 136만6755시간이었다. 순수한 시험 시간과 합숙 채점 시간만 따진 것이었으니, 별도로 일제고사를 위한 '연수'와 '지도', '회의' 등에 들어가는 시간까지 따지면 수업 결손이 두 배는 클 것이다.

▲ 일제고사 답안지를 채점하는 교사의 수업 결손은 1만5140시간, 시험 보는 학생들의 수업 결손은 136만6755시간이었다. ⓒ뉴시스

일본에선 3년 만에 표집형 '유턴'…한국은?

지난해 10월 일제고사 대신 체험 학습을 안내했던 교사를 두고 서울시교육청, 강원도교육청 등은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했다"며 파면·해임했다. 지난 6월 시국선언에 참여한 1만7000여 명의 교사를 두고 교육과학기술부는 "적극적 참여 행위로 인해 학생들의 수학권(修學權)을 침해하여 국민 생활의 전반에 영향을 미쳐 일반의 공익을 침해할 개연성이 크다"며 참여 교사 전원 징계 방침을 발표하고 전교조 조합원 88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단 몇 분에 불과한 서명 행위, 시험 대신 체험 학습을 안내하는 가정통신문을 발송한 행위가 얼마나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한 것인지 양적으로 계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일제고사를 치르는 전국 초·중·고 학생과 교사의 수업 결손이 더 크다는 사실은 복잡하게 따지지 않아도 명백하게 드러난다.

모순 덩어리 교육 행정이 낳은 결과는 어떤가. 공개되는 성적에 안절부절 못하는 교육청 공무원과 학교장이 몰아치는 0교시, 보충 수업, 야간자율학습, 모의고사 등 파행 사례가 전국에서 발생하고 있다. 성적을 내신과 연계하는 파행이 빈번해지면서 사교육 시장은 한층 탄력을 받았다.

시국선언을 이유로 고발된 교사들은 과잉 수사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9일 전교조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이 기소된 전교조 간부 88명 전원의 개인 통장 계좌와 3년치 개인 메일을 압수수색하면서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1년째 교단에 돌아가지 못하는 14명의 일제고사 해직 교사도 있다.

마침 이날은 일본에서는 일제고사식 초·중학교 학력 고사를 폐지한다는 가와바타 다스오 문부과학성 장관의 발표가 있었다. 가와바타 장관은 "개별 학교가 성적 경쟁만 해서는 의미가 없으며, 지역의 교육 수준을 균등화하고 향상한다는 목적 달성은 물론이고 비용 대비 효과를 생각하더라도 표집형 시험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2007년 이른바 '유토리(여유) 교육'을 반성한다며 학업성취도 평가를 표집형에서 전집형으로 바꾼 지 꼭 3년 만의 일이었다. 문부과학성은 이 같은 조치로 58억 엔(750억 원)의 예산을 10억 엔 이하로 줄이고, 시험 대비 과외 수업 등 부작용도 대폭 줄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지금 한국 교육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암담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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