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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교수 55명 "현병철 인권위원장 물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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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법학교수 55명 "현병철 인권위원장 물러나라"

열 가지 퇴진 사유 담긴 성명 발표

국가인권위원회 독립성 수호를 위한 법학교수 모임(회장 김승환 전북대 교수) 소속 교수 55명이 현병철 인권위원장의 퇴진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이들이 7일 발표한 성명에는 그간 쌓여온 현 위원장의 결격 사유가 조목조목 지적돼 있다. 정리하면, 총 10가지 사유다.

첫 번째는 현 위원장이 인권 관련 경력이 전무할 뿐아니라 인권 감수성에 대한 검증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채 취임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현 위원장이 지난달 18일 국회에서 한 발언이다. 당시 그는 인권위가 행정부 소속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를 견제해야 할 인권위의 기본 역할을 인권위 수장이 부정한 셈이다.

세 번째는 당시 그가 인권위 조직 축소에 동조하는 입장을 취했다는 점이다.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조직의 정당성에 대해 자신하지 못하는 태도다. 이런 태도를 유지하는 한 인권위 수장으로서 리더십을 행사하기는 불가능하다.

네 번째는 첨예한 인권 사안인 국가보안법에 대한 무소신이다. 취임 직후 인권단체들의 질의서에 답할 때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애쓰겠다고 했지만, 얼마 뒤 <조선일보> 인터뷰에서는 국가보안법을 찬성한다고 했다. 누가 질문하느냐에 따라 입장이 달라진 셈이다.

다섯 번째는 국가인권기구국제조정위원회의 의장이 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일이다. 당시 현 위원장은 능력 부족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인권적 가치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여섯 번째는 부적절한 사무총장 인선이다. 위원장이 인권 문외한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무총장은 인권 활동 경력을 갖춘 사람이 맡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신임 사무총장 역시 인권 문외한이 임명됐다.

일곱 번째는 행정안전부의 부적절한 요구에 굴복해서 홍보협력과장 이 모 씨를 해직시킨 일이다. 행안부는 이 씨가 새로 맡은 홍보 업무가 종전 업무인 인권 연구와 비슷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이 씨는 과거 2년 동안 홍보 업무를 맡았었으며 10년 남짓 일간지 기자로 일한 경력이 있다. 행안부의 요구는 근거가 없다.

여덟 번째는 인사 절차에서 드러난 위원장의 독선적 태도다. 신임 사무총장 제청 과정에서 인권위원 과반수가 반발했지만 위원장은 이를 무시했다. 또 홍보협력과장 이 모 씨를 해직시키는 과정에서도 내부 공론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았다. 이는 인권위의 인사 관행에도 맞지 않다.

아홉 번째는 지난 3개월 동안 인권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인권단체와의 대화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인권기구는 시민사회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인권현장의 문제점을 확인해야 하고 그들의 요구를 업무에 반영해야 한다. 이는 파리원칙을 비롯한 국제규범이 강조하는 인권기구의 업무방식이다. 하지만 현병철 위원장은 이런 원칙을 무시했다.

열 번째는 취임 이후 인권위 최고 의결기관인 전원위원회에서 인권 사안을 논의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인권 사안 대부분은 정권과의 마찰을 피할 수 없는데, 이를 꺼렸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현 위원장이 주장한 '생활밀착형 인권'에 대해서도 같은 해석이 나온다. 다음은 이런 열 가지 이유가 담겨 있는 이날 성명 전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 현병철 위원장은 물러나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의 설립은 오랜 세월 민주화와 인권신장을 열망해 온 우리 국민의 염원의 결과였다. 나아가 독립적인 인권기구를 통해 국제적 인권규범을 각 국가에 확산시키고자 한 국제인권운동의 소산이었다. 2001년 출범한 인권위는 국내외의 기대 속에서 대한민국의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해 왔고 그동안 어려운 여건 속에서 많은 성과를 내었다. 국제사회에서는 한국의 인권위를 국가인권기구의 모델로서 격찬했고 우리 국민은 인권위 존재로 더 이상 인권 후진국의 오명을 듣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인권위는 위기다. 존립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인권위는 계속적인 수난을 당해 왔다. 정권은 독립기구인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만들려는 기도를 하였고, 이것이 국내외의 강한 반발에 의해 무산되자 조직 축소라는 칼을 들이 댔다. 인권기구의 독립성을 지키고자 하는 그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권은 막무가내로 인권위 직원 21%를 감축하였다. 그뿐만인가. 정권의 인권위 침탈에 항거하다 자진 사퇴한 인권위원장의 후임으로 인권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을 임명하였다. 인권위의 인적구성을 바꾸어 인권위의 성격과 활동을 스스로 통제케 하려는 의도가 현실화 된 것이다.

현병철씨가 인권위원장으로 내정되었을 때 인권단체는 한 목소리로 그의 임명을 반대하였다. 인권에 관해 전혀 문외한이며 최소한의 인권 감수성마저 검증되지 못한 사람이 인권위원장이 되는 것은 독립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인권위에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은 그에 대한 임명을 강행하였다.

현병철씨가 인권위원장이 된 지 3개월이 흐른 지금 우리는 인권위가 나날이 무너져 내림에 비통함을 금할 수 없다. 이것은 인권기구 하나가 무너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인권 전체가 무너져 버리는 것과 같기에 그 비통함은 클 수밖에 없다. 현위원장은 예상했던 대로 인권위의 수장에 대해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져버렸다. 그는 인권위의 독립적 지위를 스스로 부정함으로써 트로이의 목마를 자처했고, 인권위의 도덕적 권위를 실추시킴으로써 다른 국가기관으로부터 인권위 권고를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리도록 하였다.

지난 3개월 동안 현병철 위원장이 보여 준 행태는 인권위원장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현위원장은 임명 초기부터 중요 인권문제에 대하여 소신 없는 처신으로 일관하였다. 그는 지난 7월 인권위원장으로서의 자질과 포부를 묻는 인권단체의 질의서에 대한 답변에서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하였다가 보수단체의 호된 비판에 직면하자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자신의 소신이라고 뒤집었다. 국가보안법에 관련된 인권문제가 무엇인지 한 번도 고민한 적이 없는 사람이 보수단체의 반발에 그대로 굴복하는 무소신을 유감없이 보여 준 것이다.

현위원장은 국가인권기구국제조정위원회의 의장이 되어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인권적 가치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릴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날려 버렸다. 지난 몇 년간 전임 위원장이 공을 들여 놓았고, 또 한국 인권위가 국제 사회에서 점하고 있는 위상에 비추어 충분히 의장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이를 포기한 것은 그의 무능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제껏 능력 부족을 이유로 국제기구 진출을 포기한 예는 없다. 도대체 이 같은 망신살이 어디에 있는가.

현위원장은 사무총장을 임명함에 있어서도 또 한 번 충격적인 행동을 감행하였다. 자신이 인권 비전문가라면 의당 사무총장은 인권 전문가를 임명하여 자신의 부족함을 보충할 생각을 하는 것이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자신과 코드만 비슷한 인권 비전문가를 불러 들였다. 현위원장은 전원위원회에서 위원 다수가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냈음에도 인사를 밀어 부쳤다. 이는 합의제 기구인 인권위의 성격에도 맞지 않는 독재적 발상에 다름 아니다.

현위원장은 무소속 독립기구인 인권위의 법적 지위를 스스로 부인하였다. 지난 18일 국회에 나가 한나라당 의원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인권위는 행정부에 속한다고 발언함으로써 인권위의 법적 성격을 단번에 행정부 산하 위원회와 같은 것으로 변질시켰다. 이것은 인권위 해체를 시도하는 사람들의 공격에 자살골로 응대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인권기구에 대한 조그만 인식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망언이었다.

현위원장은 내부 인사와 관련한 문제에 있어서 행정안전부의 지시에 그대로 순응함으로써 인권위를 행정안전부 산하기관으로 격하시켰다. 지난 4월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조직축소에 따라 인사 이동한 한 별정직 간부에 대해 행정안전부가 정부 인사원칙에 반한다고 하면서 정리를 요청하자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조직개편에 의해 전임 위원장이 불가피하게 인사한 것을 후임 위원장이, 그것도 행정안전부의 압력에 의해 다시 인사조치한 것은 독립기구인 인권위의 인사관행에서 이제껏 없었던 수치스러운 일이다.

현위원장은 인권단체와의 대화를 단절시킴으로써 인권기구의 활동의 근간을 흔들어 놓았다. 인권기구는 단순한 관료기구가 아니다. 인권기구는 끊임없이 시민사회와의 대화를 통해 인권현장의 문제점을 확인해야 하고 그들의 요구를 업무에 반영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파리원칙을 비롯한 국제규범이 누누이 강조하는 인권기구의 업무방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위원장은 임명 후 이제까지 인권단체와 단 한 번도 진지한 대화를 해 본 적이 없다. 이는 명백히 직무유기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현위원장은 지난 3개월 동안 인권위의 최고 의결기관인 전원위원회에서 이렇다 할 인권사안을 논의한 적이 없다. 정권과 마찰을 일으킬 수 있는 안건은 아예 상정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현 위원장은 그 취임 이후 직원들에게 앞으로 인권위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인권문제는 '생활밀착형 인권'이라고 강조한다고 한다. 이것은 직원들에게 껄끄러운 인권문제는 취급하지 말라는 암묵적 지시나 마찬가지다. 인권위가 인권문제를 다룸에 있어 정부와의 마찰을 두려워한다면 문을 닫는 것이 마땅하다. 현위원장은 정녕 그것을 원한다는 말인가.

우리는 인권위가 더 이상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 인권위 파행의 핵심은 이제 현병철 위원장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가 인권위의 수장으로 있는 한 인권위의 독립성은 기약할 수 없고 파국을 앞당길 뿐이다. 이에 우리들은 한 목소리로 요구한다. 현병철 위원장은 당장 사퇴해야 한다. 그것이 이 나라의 인권을 위해 현위원장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이다. 더 이상 자리에 연연해하는 것은 우리 인권역사에 크나큰 오점이 될 수 있음을 그는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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