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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역사 교과서 재현? 그나마도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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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역사 교과서 재현? 그나마도 '선택'?"

[토론회] 역사학자 "역사 교육이 위기에 빠졌다"

역사학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역사 교육에 관한 정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 8월 교육과학기술부는 2011년부터 사용될 중·고교 역사 교과서에 대한 집필기준안을 발표했다. 중학교 2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2011년 3월부터,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2012년 3월부터 각각 새 역사 교과서를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2007년 2월 7차 교육과정을 수정 고시한 뒤 교과서 집필을 시작해 오는 11월 검정 신청본 제출 마감을 불과 3개월 앞두고 발표했다는 점에서 논란을 낳고 있다. 초고 집필이 완성된 시점에 새로운 기준을 대대적으로 발표한 데에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의혹이 짙다.

이 뿐만 아니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미래형 교육과정에서 역사 교육이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가 터져나오고 있다. 학교의 자율성을 확대한다는 명목으로 과목 수를 줄이고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요 과목을 중심으로 집중 이수를 강화하는 미래형 교육과정이 추진되는 가운데, 역사 과목 역시 '선택 과목'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 25일 서울 운니동 덕성여대 평생교육관에서 열린 '역사 교육 위기 대응책 마련을 위한 역사단체 공동 기자회견 및 토론회'는 역사학계의 깊어지는 고민의 단면을 드러냈다. 이날 행사는 서양사학회, 역사교육연구회, 한국사연구회, 한국역사연구회, 전국역사교사모임이 함께 주최했다.

▲ 지난 25일 서울 운니동 덕성여대 평생교육관에서 열린 '역사 교육 위기 대응책 마련을 위한 역사단체 공동 기자회견 및 토론회'는 역사학계의 깊어지는 고민의 단면을 드러냈다. ⓒ프레시안

여섯 항목 콕 집어 언론에 발표한 '수상한 집필기준안'

토론회에 참석한 학자들이 가장 우려한 것은 무엇보다도 역사 교과서가 정치 권력에 휘둘린다는 점이다. 역사학자들은 지난 8월 교과부가 집필기준안을 만들어 언론에 공표한 것이 지난해 금성출판사 역사교과서 파동과 연장선 상에 있다고 지적했다.

윤종배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집필기준안은 2002년 7월 이후 계속된 역사 교과서에 대한 정치적인 음해, 2004년의 좌편향 문제제기, 2008년 직권수정과 같은 선상 위에 서 있으며 그만큼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 기준안은 역사 교과서 내용 가운데 일부 항목에 대해서만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신철 성균관대 교수는 "기준안에 포함된 주제는 △대한민국 건국과정 △6.25 △4.19와 민주주의의 시련 △6월 민주항쟁 △경제성장 △북한 등 여섯 가지"라며 "전체 17항목 가운데 일부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신철 교수는 "이는 뉴라이트 계열인 교과서포럼에서 만든 대안 교과서에서 새로운 해석을 제기했거나 이들을 포함한 반진보 정채세력들이 기존의 교과서에서 문제 삼았던 부분과 일치한다"며 "쟁점들만 기준을 제시한 것은 우연이 아닌 듯하다"고 밝혔다.

기준안의 세부 내용 역시 보수단체의 주장이 반영된 듯한 부분이 많다. 교과부는 이번 기준안을 두고 "특정 이념·역사관에 편향되지 않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서술하도록 강조했다"고 설명했지만, 학계의 분석은 다르다.

이신철 교수는 "기준안은 '해방직후 정세와 관련해 미국과 소련에 대한 서술에서 특정 국가, 특정 이념에 치우친 편향된 시각을 지향할 것을 적시하고 있다"며 "역사 서술의 기본 중 기본인 부분을 이렇게 사족으로 단 이유는 지난해 10월 <중앙일보> 사설이 금성교과서의 관련 서술을 비난했던 사실을 상기하면 찾을 수 있을 듯 하다"고 지적했다.

또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과 관련해 기준안이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제국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하고 (…) 대한민국은 친일파 청산에 노력했음을 서술한다"고 명시한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졌다. 이신철 교수는 "좁은 의미에서 정부는 행정부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자칫 이승만의 '반 친일청산' 정책을 '친일파 청산'으로 왜곡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기준"이라며 "이전 기준에서 농지 개혁과 반민족행위자 처벌의 주체를 국회로 밝히고 있는 것과 다르다"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그밖에도 "6.25 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됐다는 점을 '명확히' 하라", "북한 사회의 어두운 면을 기술하고 체제선전용 자료 사용에 신중하라" 등의 기준은 뉴라이트 진영이 문제를 삼거나 강조하는 사안과 일치한다고 분석했다.

"검정 심사 석달 앞둔 발표…미래형 교육과정에 따라 또 바뀔 수도"

새로운 집필기준안을 제시한 시점에 대한 의혹 제기도 이어졌다. 윤종배 회장은 "통상적으로 교과서 필자들에게 기준안이 제공되는 시기는 집필 초반이었는데 이번에는 검정 심사를 불과 석달 앞둔 늦은 시점에 발표됐다"며 "2007년 공청회로부터 2년 5개월, 교육과정심의회로부터도 1년 7개월이나 지나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라고 되물었다.

윤 회장은 "검토 절차도 생략한 채 기준안의 수정과 발표가 이뤄진 것은 결국 교과부가 임의적으로 내용을 수정했을 개연성을 말해준다"며 "내용을 보면 의도적으로 학계와의 소통을 무시한 점이 포함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 걱정스러운 문제는 기준안 발표를 계기로 역사교과서 검정 심사에 뉴라이트 세력이 개입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미래형 교육과정이 추진되면서 또 다시 집필기준이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07년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역사 교육을 강화하라는 여론에 따라 기존 국사와 세계사를 통합한 역사 과목이 등장했고, 교과서 발행 체제도 검인정 체제로 전환됐다. 그러나 미래형 교육과정에서는 고등학교의 선택 과목으로 역사A와 역사B를 신설한다는 방침이 포함됐다.

이에 대해 최병택 공주교대 교수는 "아직 미래형 교육과정에서 역사 교육의 방향이 어떻게 결정될지 알 수 없다"며 "그러나 글로벌 창의 인재 육성과 경쟁력 향상이라는 개정 취지에서는 역사 과목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후퇴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차라리 국정과 다름없다고 솔직하게 선언하라"

윤종배 회장은 "교과서 서술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당연시하게 만드는 기준안은 교과부가 항상 특정 '정권'의 일부로 기능하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정부의 교과서 규제 장치로 작동하는 기준안을 폐기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렇게 국가가 무시로 개입하고 결과를 책임지지 않는 시스템이 검정교과서 체제라면 교과부는 이것이 국정과 다름없음을 솔직하게 선언하든가, 전향적으로 인정제 또는 자유발행제를 도입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신철 교수는 "대부분의 교과서 공격 세력은 국민의 양성에 강조점을 두고 있는데 문제는 교과부가 그런 잣대를 이번 기준안에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대한민국의 정통성 강조라는 뚜렷한 목표와 그 구체적인 서술방향과 사례들이 제시된 기준안은 국정시대로의 회귀라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어 보인다"고 밝혔다.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 역시 "검인정의 틀은 유지하지만 사실상 국정으로 가기 위한 조치들이 마련되고 있다"며 "박정희 시대의 그림자가 참으로 길고도 깊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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