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중팔구가 아니라 십중구십 난리가 났을 것이다. 보수 세력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융단폭격을 가했을 것이다. '진보는 도덕, 보수는 능력'이란 잣대를 몽둥이 삼아 몰매를 가했을 것이고 정운찬 후보자는 낙마에 따른 타박상에 괴로워했을 것이다.
지나온 과정이 그랬다. 보수세력은 어떤 야권 정치인과 어떤 진보 학자가 자식을 미국에 유학 보낸 것까지 문제 삼았다. 앞에선 사회적 약자를 위하는 척 설레발치면서 뒤로는 제 자식 챙기기에 바빴다고 힐난했다. 감수해야 했다. 이런 비난이 도를 넘어선 것이든 아니든 진보인사는 자신에게 강제되는 엄격한 도덕성에 순응해야 했다.
▲ ⓒ프레시안 |
그래서 하는 말이다. 정운찬 후보자는 그가 내릴 수 있는 최고의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다. 총리직을 수락함으로써 자신도 살고 민주당도 사는 윈-윈의 길을 연 것이다.
정운찬 후보자는 경제학자답게 비용과 리스크를 최소화 하면서 수익은 최대화 하는 길을 택했다. 한나라당 정권에 몸을 실어 '적'을 최소화 하고, '흠'을 무디게 하는 효과를 유발했다. 보수단체와 보수언론을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듦으로써 자신을 향한 예봉을 솜방망이로 만들었고, 청문회를 통해 약점을 털고 감으로써 '한 번 제기된 의혹은 더 이상 의혹이 아니다'는 속설을 나중에라도 구현할 기회를 잡았다. 도덕을 털고 능력을 내보일 계기를 확보한 것이다.
정운찬 후보자는 케인스주의자답게 좀 더 많이 지출해야 할 쪽과 좀 더 많이 받아야 할 쪽을 갈랐다. 민주당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과 손을 잡음으로써 정치적 강자인 한나라당에겐 좀 더 많은 부담을 지우고, 정치적 약자인 민주당에겐 좀 더 많은 정치적 기회를 제공했다. 중도의 입장에서 부담과 향유의 주체를 확실히 나눈 것이다.
민주당은 정운찬 후보자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제 한 몸 던져 폭탄 파편이 민주당에게 튀는 걸 막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기사회생의 계기를 부여한 정운찬 후보자에게 큰 절을 올려야 한다. '배신'과 같은 험한 언사는 이제 거둬들이고 '사랑하기에 떠난' 옛님의 심모원려를 헤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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