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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아무나 가니?"

[키워드 가이드를 만나다] 산과 보낸 30년, 산악인 이연희

산에 오르는 인구가 늘고 있다. 두 달에 한 번 이상 산에 가는 사람이 1800만 명에 달한다. 사람들은 풍경이 아름다워, 운동으로 산을 찾는다. 이유야 다양하지만, 전국 각지의 수많은 산을 오르고 내리는 일은 같다. 그런데 우리는 산을 얼마나 알고 찾는 것일까?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암벽 등반을 시작해 30년 동안 산과 인연을 맺어 온 산악인 이연희 씨는 "우리는 산악 국가 국민이면서도 산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상대를 잘 알지 못하니, 제대로 사랑하기도 어렵다. 대한산악회 서울시연맹 교육기술상임이사 이연희 씨가 '키워드가이드'로 나선 이유다.

▲ 대한산악회 서울시연맹 교육기술상임이사 이연희 씨. ⓒ프레시안

산은 아름다운 풍경 속에 수많은 위험을 가지고 있다. 그는 북알래스카 맥킨리 원정을 다녀왔던 지현옥 씨를 지난 1999년 산에서 잃었고, 꼭 10년이 지난 올해 다시 아끼는 후배 고미영 씨를 히말라야에서 잃었다. 두 후배의 죽음을 얘기하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던 그는 "몇 가지만 알고 가면 산을 더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자연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할 때, 진짜 산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1977년 직접 에베르스트 원정을 다녀온 김장호 시인의 노래와도 닮았다. 김 시인은 '등반학'이라는 시에서 산에 오르는 일을 "미지에서 나를 찾되 더러는 자신이 인간인지조차 잊어버릴 일, 무엇보다 자신을 알 일,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알 일"이라 노래했다.

다음은 이연희 씨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처음 산에 오르던 날, 심장 소리가 귀에 들렸다"

▲ "우리가 알고 있는 인식의 세계 말고 또 다른 세계를 만난 것 같았다. 그때부터 산에 가는 날만 기다렸다. 산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산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

이연희 : 고등학교 졸업 후 우연히 친구를 따라 도봉산에 갔다. 암벽 등반을 하는 산악회에 끼어 산에 오른 것이다. 선인봉을 오르는데 그때 암벽 등반 장비도 처음 봤다. 같이 간 친구는 무서워서 못 간다고 버텼는데 나는 '해봐야지' 마음억었다. 우리 앞에 있던 팀이 경희대 산악부였는데 장비를 빌려줘서 준비하고 기다렸는데, 막상 암벽에 붙으려니 내 심장 소리가 쿵쿵 귀에 들렸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처음 해보는 등반인데도 곧잘 올라갔다. '아, 세상에 이런 새로운 세계가 존재하는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인식의 세계 말고 또 다른 세계를 만난 것 같았다. 그때부터 산에 가는 날만 기다렸다. 산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떻게 하면 또 산에 가나 하는 생각만 했다.

암벽 탈 때 장비들이 화강암에 부딪히는 소리가 있다. 그 소리가 나에게는 너무 청명하게 들렸다. 아주 공명이 깊은 소리처럼 느껴지고 행복했다. 화강암 특유의 냄새도 아주 좋았다. 그렇게 산에 다니게 됐다.

프레시안 : 그 후로 계속 산에 다닌 것인가?

이연희 : 우리 팀은 중간에 좀 흐지부지됐다. 요즘과 달리 1980년대에는 서른 살만 돼도 노장이었다. 산행은 20대 중반까지가 거의 다였다. 남자 친구들은 군대 갔다 오니 더 이상 산악회에 안 나오고, 선배들도 많이들 안 나오고…. 그러다보니 나만 다른 팀에 섞여 등반을 계속 했다.

하계 등반, 동계 등반도 갔었다. 제일 길게는 9박 10일도 했다. 한 산을 정해놓고 며칠 동안 암벽 등반도 했다가 걸어서 답사도 했다가 다양하게 산행 계획을 짜서 다녔다. 지금은 등반 스타일도 많이 달라졌지만 그때는 따로 원정 훈련을 하지 않아도 됐을 정도였다.

물론 요즘은 그렇게 등반을 하지는 않는다. 사람들 성품도 많이 변했고 사회도 달라졌다. 등반 스타일이 변화했다. 정책적으로 야영을 제한하는 탓도 있다. 대신 오토캠핑과 같은 가벼운 레저가 더 유행이다.

"결과 중심의 사회가 등반 형태도 바꿔…정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프레시안 : 사회가 달라진 것이 사람들의 등반 형태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인가?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이연희 : 지금은 사람도 사회도 결과 중심이다. 14좌 정복이니 하는 것도 이런 풍토에서 나왔다. 산행을 할 때 정상까지 갔는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산은 과정이다. 꼭 정상에 가지 않았더라도 내가 생각했던 것을 끝내면 그것이 바로 정상이다. 산행을 준비하고자 집에서부터 계획을 세우는 게 산행이다. 원했던 곳까지 가지 못했어도 괜찮다. 기상 상태에 따라 산은 갑자기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꾸 결과만 얘기한다.

▲ 이 씨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맥킨리를 등반한 여성 산악인이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해외 원정도 다녀온 것으로 안다. 북아메리카 최고봉인 매킨리를 다녀온 여성 최초 원정대였다.

이연희 : 1988년에 다녀왔다. 당시만 해도 히말라야만 등반 대상지로 꼽았는데 1980년대 들어 좀 더 다양한 등반 대상지를 찾으려는 노력들이 있었다. 맥킨리는 그렇게 발견한 곳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맥킨리를 등반한 여성으로 기록되었다.

그때는 원정을 준비하면서 합숙도 했다. 한 달 이상 눈과 바위 밖에 없는 산에서 생활하다보면 육체적으로도 힘들지만 심리적으로도 예민해진다. 서로 사소한 일로 싸워서 막상 돌아와서는 관계가 틀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런 일을 사전에 막고자 합숙을 하는 것이다.

도보로 임진각에서 구파발까지 40킬로미터 정도를 하루에 걸어오기, 무거운 배낭을 메고 산에 오르는 하중 훈련도 했다. 히말라야 등반도 체력이 강해야 하지만 맥킨리는 더 그렇다. 짐을 대신 져주는 포터나 길을 안내해주는 셀파가 없기 때문이다. 인건비가 너무 비싸 불가능하다. 적어도 짐 하중에 대한 부담은 없는 히말라야와 달리 맥킨리에서는 짐도 다 모든 대원이 지고 가야 한다. 그런 등반 방식 때문에 사실 산악인들은 히말라야보다 맥킨리 등반을 더 알아준다.

한 달 동안 체류할 식량이 한 사람당 60킬로그램이었다. 20킬로그램은 배낭으로 매고 썰매에 40킬로그램씩 달고 갔다. 기본적으로 지구력과 근력이 있어야 했다. 훈련을 많이 했어도 허리에 썰매를 매고 등에 짐을 지고 오르는 일이 참 쉽지 않았다. 내가 가진 체력의 바닥까지 내려간 듯한 한계를 느낀다.

재밌는 일도 있었다. '미친 머리 바람'이라 불리는 코너가 있었다. 바람이 정말 너무 심했다. 바람이 세니 눈이 알갱이로 뭉쳐 아이젠도 소용이 없었다. 그 길을 힘겹게 오르는데 새하얀 눈 속에 초록색 사과가 한 알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앞의 팀이 떨어뜨린 모양인데, 무거워서 생과일은 가져갈 수가 없는데 거기서 과일을 보니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러고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느라 한 동안 산에 못 갔다. 다시 산에 간 것이 1999년이었다.

"사랑했던 후배의 죽음, 다시 산으로 들어온 계기였다"

프레시안 : 산에 다시 오르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이연희 : 그해에 친한 후배가 죽었다. 나와 같이 맥킨리 등정을 했던 지현옥이었다. 엄홍길 씨와 안나푸르나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실족사를 했다. 현옥이가 죽었을 때 번개를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그 시기가 나에게는 정체성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때였다. 현옥이를 보내면서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산에 들어왔다. 현옥이가 메시지를 줬다고 생각한다. 현옥이 생각을 하니 또 얼마 전 떠난 미영이가 생각나서…….

▲ "나와 같이 맥킨리 등정을 했던 지현옥이었다. 엄홍길 씨와 안나푸르나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실족사를 했다. 현옥이가 죽었을 때 번개를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지난 2005년부터 대한산악회 서울시연맹에서 교육기술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어떤 일을 하는 것인가?

이연희 : 산에 다시 돌아온 다음에 산악 행정으로 방향을 좀 바꿨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산에 정말 많이 온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가는 사람이 1500만 명, 두 달에 한 번 이상은 1800만 명이다. 그런데 산에 가지만 산을 알고 가지는 않는다. 우리나라는 산악 국가인데도 국민들이 산을 잘 모른다. 문제가 있다.

연맹이 시민들을 위해 교육을 하고 있다. '산은 아무나 가니'라는 기초 교육 프로그램을 포함해서 한 달에 한 번 정도씩 무료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응급 처치, 안전 대책과 함께 산에서 흔적 남기지 않기 교육도 한다. 알고 산에 가면 과정을 더 즐길 수 있다. 좋은 풍광도 눈에 들어온다.

"몇 가지만 알면 100의 힘을 60으로 줄일 수 있다"

▲ "산에서는 물과 음식물을 30~40분 간격마다 반드시 주기적으로 섭취해야 한다. 산에서 내려온 뒤에 피로가 덜해지는 방법이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산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산에 갈 때 반드시 알아야 하는 몇 가지를 설명해준다면?

이연희 : 옷 입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산은 항상 습한 곳이다. 그리고 온도도 수시로 달라진다. 이에 대비를 해야 한다. 여름에도 보온을 위한 옷이나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옷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다녀야 한다.

옷 입는 방법도 일반인들은 거꾸로 알고 있다. 보통 옷을 입고 출발해서 땀이 나면 쉬면서 옷을 벗는다. 그러나 반대로 해야 한다. 출발할 때는 겉옷을 벗고 시작해서 땀이 나서 내 몸이 선선해지면 그때 옷을 입어야 한다. 겨울에 손발이 추울 때는 목을 보호하거나 모자를 쓰면 된다.

또 산에서는 물과 음식물을 30~40분 간격마다 반드시 주기적으로 섭취해야 한다. 산에서 내려온 뒤에 피로가 덜해지는 방법이다.

등산의 핵심은 에너지 관리다. 에너지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관리하고 보존하는지가 산행 이론의 근간이다. 무턱대고 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올라갈 때 30%, 내려올 때 40%를 쓰고 내 에너지의 30%는 가지고 와야 한다. 에너지를 남겨둬야 하는 것은 언제든 만일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에서는 순식간에 에너지가 바닥날 수 있다. 바람에 노출된 채로 한두 시간만 있어도 순식간에 저체온증이 온다. 비를 맞으며 오래 걸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열 관리 등 산행의 기초 이론이 중요하다.

프레시안 : 산행이 힘들다는 이유로 산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이연희 : 몇 가지만 알면 힘을 덜 들이고도 산에 오를 수 있다. 보행법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다르다. 내려올 때 특히 힘이 더 많이 드는데, 몸을 살짝 굽혀 유인원이나 고양이 같은 자세로 내려오면 하중을 줄일 수 있다. 뛰어서 내려오는 것은 절대 안 된다.

계단에서도 걷는 방향을 다르게 하면서 지그재그로 걸어야 한다. 왼쪽으로 기울여 3~4 걸음, 다시 오른쪽으로 3~4 걸음, 중앙으로 3~4 걸음. 계속 같은 방향으로 올라가면 한 관절에만 하중을 받기 때문에 더 힘들다.

또 하나는 스틱을 사용하는 것이다. 힘을 많이 줄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틱을 들고 지팡이 개념으로 짚고 다니는데 그런 방식은 균형만 잡아줄 뿐 도움이 안 된다. 항상 2개를 동시에 사용하고 길의 각도에 따라 다르게 짚어야 한다.

이런 방식들이 익숙해지면 100의 힘을 들이던 길을 60~70의 힘만 가지고 오를 수 있다.

프레시안 : 중간에 공백이 있긴 하지만, 산과 보낸 시간이 벌써 30년 가까이 된다. 마지막으로 산의 매력을 얘기해본다면?

이연희 : 산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또 인간에게는 자기 체력을 테스트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심폐력, 지구력, 근력 등 다양한 내 기초 체력을 점검할 수 있다.

▲ "산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또 인간에게는 자기 체력을 테스트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심폐력, 지구력, 근력 등 다양한 내 기초 체력을 점검할 수 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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