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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비밀 알렸던 또 한 명의 '미네르바', 출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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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FTA 비밀 알렸던 또 한 명의 '미네르바', 출소하다

[현장] 전 최재천 의원 보좌관 정창수 씨, 16일 만기 출소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장기적으론 제조업에서도 무역적자를 야기할 것이라는 정부 용역 보고서 결과가 언론에 보도돼 논란이 일었었다. 기획재정부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용역을 줬던 이 보고서는 지난 6월 연구 용역 기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원했던 것과는 다른 연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 2006년 노무현 정부가 한미FTA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밝힌 이래로 많은 일들이 '비밀'에 부쳐졌다. 한국경제를 크게 흔들어 놓을 수 있는, 국민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된, 그래서 국민들에게 꼭 알려야될 많은 것들을 정부는 비공개했다.

최재천 전 의원 보좌관이었던 정창수 씨가 갑작스레 감옥에 가게 된 것도 이 와중에서 였다. 정 씨는 지난 2007년 1월 '한미FTA 고위급 협의 결과와 주요 쟁점 협상 방향'이라는 문건을 유출해 <프레시안>에 이 내용이 보도됐다. 이일로 정 씨는 징역 9월형을 선고받고 구속수감됐다가 16일 오전 0시 형기를 다 채우고서야 출소했다.

정 씨는 보좌관 활동 이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함께하는 시민행동 등 시민단체에서 예산전문가로 활동했다. 보좌관 생활 이후 2007년 5월부터는 국민권익위원회 전신인 청렴위원회 홍보협력단 계약직 사무관으로도 일했다.

정 씨는 이날 서울구치소를 찾은 가족(동생)과 대학 동문, 시민단체 시절 동료, 전·현직 국회의원 보좌관, 이해영 한신대 교수 등 30여 명의 환대를 받고 곧바로 자택으로 귀가했다. 정 씨는 앞으로 예산관련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동시에 FTA의 문제점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활동도 지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FTA 잊어선 안 돼"

▲ 16일 0시 만기 출소하는 정창수 씨. ⓒ함께하는시민행동
정 씨는 구치소 생활에 대한 소감으로 "FTA가 어느새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져가는 이슈가 돼 버린 것 같다"며 "그러나 여전히 존재하는 심각한 문제다. 좋은 세상에서 사람들이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 씨는 사법부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나는 죄수번호 상 잡범인 셈이었는데, 교도관들도 '공무원이 뇌물수수도 아닌데 이상하다'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라"고 했다.

구치소에서 정 씨의 죄수번호는 3750번. 통상 서울구치소에서 시국사범 등 정치범죄자는 500번대 이하이며 3000번대 이상은 뇌물수수죄 등의 혐의로 구속 수감된 자다. 정 씨의 죄명은 공무상 기밀누설죄다.

정 씨의 기밀누설 혐의에 대한 문제제기는 당시 뜨거운 쟁점 중 하나였다. 정 씨가 유출해 언론에 보도됐던 '한미FTA 고위급 협의 결과와 주요 쟁점 협상 방향'이라는 제목의 비공개 문건은 이전에도 이미 언론을 통해 내용이 모두 알려졌던 것으로 사실상 대외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았다.

정 씨와 같은 시기 국회의원의 보좌관직을 수행했던 전 동료는 "기밀누설죄가 인정되려면 형식적 요건은 물론 내용에서도 비밀성이 입증돼야 하는데, 당시 정 씨가 유출했던 문건 내용은 이미 세간에 모두 알려져 국회 조사과정에서도 사법처리 사안이 아닌 것으로 판단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정 씨를 마중 나온 이해영 교수도 "(정 씨는) 절차를 무시한 FTA 졸속 추진이 빚어낸 일종의 촌극의 희생양이었다"며 "이처럼 안타까운 사례가 있음에도 여전히 정부의 개선 의지가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정부가 FTA에 대한 환상을 깨야한다"고 했다.

미네르바와 책 쓸까?

정 씨는 수감생활 동안 예산·경제정책분야 등의 서적 300여 권을 읽었다. 교도소 측에서 "정 씨의 책이 너무 많으니 차량 한 대가 내부로 들어와 책을 가져가 달라"고 할 정도였다. 그는 수감 기간 예산 관련 기사를 노트 45권 분량으로 스크랩해두기도 했다.

정 씨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옥살이를 하면서 박사 논문을 준비했다. 일단 논문을 마무리할 계획"이라며 "내가 생각하는 우리나라 예산 결정과 FTA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사회에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정 씨는 한국 국회의 예산심의 과정이 미치는 영향력을 분석하는 논문을 준비 중이다. 그는 "예산심의 과정을 보면 보수정당은 물론, 진보정당도 지역구 예산을 끌어오기 위해 당 철학과 모순되는 모습을 보인다"며 "우리나라 국회가 지난 40년 간 예산을 수정한 비율이 1%도 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국회의 감시기능이 무력화된 셈"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정 씨는 또 수감 기간 '미네르바'로 지난해 신드롬을 일으켰던 박대성 씨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정 씨는 서울구치소 6동 상층에 수감됐으며 박 씨도 그와 같은 동에 수감돼 있었다. 미네르바와 그는 정부의 경제정책에 반기를 들었다가 '괘씸죄'로 감옥에 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정 씨의 바로 왼쪽에는 추부길 전 홍보기획비서관이 수감생활을 하고 있었다.

정 씨는 "박 씨와 매일 운동시간마다 40분 씩 같이 걸으며 많은 대화를 했다. 예산과 금융부문 지식을 공유했다"며 "같이 많은 책을 돌려 읽었다. 박 씨는 인터넷에 의한 집단지성의 징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씨를 마중 나온 한 지인은 "정 씨가 수감생활 동안 박 씨와 공동으로 책을 쓰는 방안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안다"라고 했다.

ⓒ함께하는시민행동

"구치소 교화기능 부족"

정 씨는 또 감옥 생활에 대한 책도 한 권 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구치소가 교화기능을 갖추지 못하고 징벌적 기능만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정 씨는 "안에서 생활해보니 구치소가 재범률을 낮출 것이라는 기대가 들지 않더라. 교도관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라며 "교정행정 개선방안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실제 이날 정 씨와 같은 시각에 출소한 다른 한 사람은 조직폭력배로 보였다. 그는 출소하자마자 구치소 앞에서 대형차량을 타고 온 한 무리 사내들의 큰 절을 받고 곧바로 어디론가 이동했다. 교화됐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정 씨가 이날 출소할 수 있었던 데는 헌법재판소의 도움이 컸다. 헌재 전원재판부는 지난 6월 25일 판결선고 이전 구속기간 중 일부만 형기에 포함시킬 수 있도록 한 형법 제57조 1항이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재판관 8대 1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9월에만 264명의 출소자가 혜택을 받게 됐다.

정 씨는 1심 판결 후 상소로 인해 구속된 지 90일이 지나서야 징역 9월형이 확정됐다. 당시 법원은 미결 구금일수 90일 중 45일만을 형량에 산입했다. 헌재의 위헌 결정이 아니었다면 정 씨는 45일을 구치소에서 더 복역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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