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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아! 아, 지식인아!

[철학자의 서재] 리궈원의 <중국 문인의 비정상적인 죽음>

<중국 문인의 비정상적인 죽음>(리궈원 지음, 김세영 옮김, 에버리치홀딩스 펴냄)의 원서를 구한 것은 지난 2002년이다. 자주 들러보는 중국 서점에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에 현혹되어 냉큼 사서 대충 몇 편을 읽고는 책장 한구석에 처박아 두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말 번역본이 나온 때가 마침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시점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에 이어 김대중 대통령마저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난 것이다.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입장에 따라 갈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의 죽음이 비정상적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겠다. 돌이켜 보면 노무현의 죽음에 "내 몸의 절반이 무너지는 느낌"이라는 심정을 토로하였던 김대중 대통령의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고 할 때 그의 죽음도 절반은 '비정상적'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노무현과 김대중은 정치인이었고 문인(지식인)은 아니었지만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문인다운 정치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한국 정치인의 '비정상적인' 죽음에 자극받아 읽게 된 책이 바로 <중국 문인의 비정상적인 죽음>이다.

▲ <중국 문인의 비정상적인 죽음>(리궈원 지음, 김세영 옮김, 에버리치홀딩스 펴냄). ⓒ프레시안
이 책의 저자 리궈원(李國文)은 1930년 생으로 중국의 저명한 문인이다. 젊은 시절 한국전쟁에 지원병으로 참전하기도 하고 신중국 성립 이후에 벌어진 온갖 정치 운동을 경험한 노작가이다. 처음 발표한 단편소설 때문에 반우파 운동의 와중에 우파로 몰려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문학상의 하나인 마오뚠 문학상을 획득하기도 했던 소설가였다.

환갑을 전후로 한 시기에 소설 창작을 포기하고 산문 작가로 전향하였는데 글을 마음대로 읽을 수도, 발표할 수도 없었던 시기에 읽었던 <홍루몽>, <이십사사(二十四史)>, <자치통감>과 같은 고전이 그의 산문의 학문적 깊이를 더해주었다고 하겠다. 소설가로서의 상상력과 풍부한 삶의 경험, 그리고 학자적 소양이 더해진 그의 산문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중국 문인은 사마천, 이태백, 소동파와 같이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을 포함하여 모두 36명에 달한다. 우리에게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 일일이 거명하지는 않겠지만 한 사람 한 사람 파고 들어가면 모두 일세를 풍미하였고 역사상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개중에는 특이하게도 황제도 한 명 있다. 남당의 마지막 황제였기 때문에 세칭 이후주라고 불리는 이욱(937~978)이 바로 그다. 이후주는 "시인으로서는 일류를 넘어 초일류급이었지만, 황제로서는 삼류라는 말도 과분한" 인물이었다. 작가는 황제로서의 자아보다 시인으로서의 자아가 더 우선이었으며, 시인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렸기 때문에 '중국 문인'에 그를 포함시키고 있다. "묻노니 그대의 시름이 얼마나 되는가. 봄날 동쪽으로 흘러가는 강물 같구나" 황제의 지위에서 하루 아침에 망국의 노예로 전락한 그가 읊조린 이 시는 지금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는 결국 시 구절 때문에 죽었다고 한다.

지식인의 비극적 처지

작가가 중국의 수많은 문인들 중에 이들 인물을 선택한 이유는 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그들의 "비정상적인 죽음" 때문이다. 여기서 "비정상적인 죽음"이란 자살하거나 처형당해서 천수를 누리지 못한 경우를 말한다. 작가 자신도 몇 번의 좌절과 시련을 겪으면서 자살로써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고 토로하고 있다. 이런 인생 경험이 그로 하여금 "비정상적인 죽음"에 남다른 관심을 갖게 만들었을 것이다.

설사 자살하거나 처형당하지 않았더라도 불우한 삶을 살았던 문인들의 운명에 주목한다. 사실 거세를 당하는 치욕적인 궁형을 받고도 <사기>라는 불후의 역사서를 완성한 사마천은 비정상적인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지언정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잘 알 수 없다. 이태백은 역사서에 술을 과도하게 마셔 취한 채로 배 위에서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소동파의 경우는 예순 다섯에 병사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 원인은 역시 일차적으로 정치권력에 있다.

"중국에는 삼백 명이 넘는 황제가 군림했지만 그 속에서 지식인을 높이 평가하고 진정으로 대한 현군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황제들 가운데 비교적 교양이 있었던 사람은 문인을 질투했고, 교양이 없었던 사람은 문인을 증오했으며, 반푼이 같은 이들은 아예 문인을 괴롭혔다."

그렇다고 작가가 지식인의 입장에서 황제만 비판한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판의 화살은 지식인 자신에게 매섭게 향해져 있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지식인 자화상을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다.

"요즘 문인들 가운데도 권력을 백안시하는 사람보다 그 앞에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 훨씬 많다. 이들은 권력을 얻으면 남몰래 기뻐했고, 그것을 잃기라도 하는 날에는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집 안에서는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보전을 하면서도 사람들 앞에서는 애써 꿋꿋한 모습을 보이며 '부귀영화를 뜬 구름 보듯' 하는 모습이 얼마나 볼썽사납던지. 실은 이 모두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에 불과하다."

작가는 수천 년 중국 문화의 계승자를 자처했고 문화의 명맥을 잇기 위해 노력한 중국 문인의 공헌이나 충정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중국 지식인의 핏줄에 녹아 있는 저열한 근성을 폭로한다. 그것은 "권력을 좋아하고 관직을 향해 영합하며 통치계급에 빌붙고 권력 다툼의 현장에서 떡고물이라도 얻어먹고자 하는" '관직 콤플렉스'이다.

이런 심리는 사실 중국의 문화와 깊이 연관된 것이다. <논어>에 "벼슬을 하고 남은 힘이 있으면 배우고, 배우고 남은 힘이 있으면 벼슬길에 나아간다.(仕而優則學 學而優則仕)"는 말이 있지만 여기서 말한 "배우고 남은 힘이 있으면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은 중국의 전통 지식인의 인생의 길이었다. 사대부(士大夫)라는 말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사(지식인)와 대부(관직)를 항상 연결시켜 놓고 있었다.

이게 어디 중국만의 일이겠는가. 우리 사회에서도 그래도 글깨나 읽은 사람들이 권력에 영합하기 위해 온갖 이론과 명분을 들이대며 변절하고 혹세무민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공부한 사람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황제와 같은 최고의 정치 권력자를 비판할 뿐만이 아니라 지식인(문인) 자신을 투시해보려는 작가의 냉정한 태도는 서술의 균형감을 높혀 주고 있다고 하겠다. 개성이 강한 인물이기 때문에 모두 관심이 가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책 제목과 가장 어울리는 인물이면서 내가 흥미롭게 읽은 두 사람은 혜강(嵇康)과 김성탄(金聖嘆)이다.

먼저 혜강은 유명한 죽림칠현의 한 사람으로 중국의 대문호 루쉰이 아주 좋아한 인물이다. 그는 미남인데다 당시 상당한 명망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에 정권 탈취를 꿈꾸던 권력 실세였던 사마소(<삼국지>에 나오는 사마의의 아들)는 그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그의 친구를 통해 벼슬을 제안한다.

이에 혜강은 그의 친구와 공개적으로 절교를 선언하는 편지를 보내면서 "탕무(湯武)를 부정하고 주공(周孔)을 가벼이 여긴다"고 말하였다. 여기서 탕임금과 무왕은 무력을 통해 정권을 잡는 것을, 주공과 공자는 선양(禪讓)을 상징한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이미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사마소가 정권을 잡을 수 있는 방법 모두를 공개적으로 부정한 것이다.

사마소에 의해 그가 주살당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는 거문고로 '광릉산'이란 곡을 연주하면서 자신만 알고 있는 이 곡조가 이제 더 이상 전해지지 못하게 된 것을 한탄하면서 담담히 죽음을 맞이했다고 전해진다. 작가는 이에 대해 벼슬을 하기 싫으면 완곡하게 거절하면 될 일인데 그렇게 감정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성격이 강직하여 불의를 참지 못하고 쉽게 감정을 발설한 "철부지 같은 문인의 비애"라고 평하고 있다. 이는 물론 그를 조롱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안타까운 마음에서 한 말이다. 이런 성정으로는 소인배들의 희생양이 되기 십상이라는 뼈저린 경고이다.

<수호전>을 요참(腰斬)하다

김성탄은 참으로 기이한 인물이다. 그는 유교 이념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대담하게도 천하의 똑똑한 사람은 반드시 <장자>, <이소>, <사기>, <두시>, <수호전>, <서상기>를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거기에 일일이 평을 달려고 했으나 중간에 처형당하는 바람에 <수호전>, <서상기>에만 평론을 남겼다.

단순히 평론을 남기는데 그치지 않고, 원래 120회본의 <수호전>을 송강이 조정에 투항한 이후를 잘라 버리고 70회본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것이 유명한 <수호전> 요참(腰斬)이다. <수호전>을 한마디로 말하면 공개적으로 산적 혹은 강도를 찬양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봉건시대에 공개적으로 조정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강호를 긍정적으로 묘사한 매우 특이한 작품이다.

<수호전>의 첫머리에는 악한 고구가 등장한다. 108 '영웅'이 반란을 일으킨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수호전>은 왜 먼저 108 '영웅'으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고구(高俅)로부터 시작했을까. 이에 대해 김성탄은 이렇게 평론하고 있다.

"대개 고구에 대해 쓰지 않고 108인에 대해 쓰게 되면 난이 아래로부터 발생했다는 것이고, 먼저 고구에 대해 쓰면 난은 위에서부터 일어난 것이 된다."(이 부분의 번역이 잘못 되어 있어 고쳤다. 583쪽) 다시 말하면 천하가 크게 혼란하게 된 원인은 바로 조정 때문이지 백성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다.

작자는 이에 대해 "봉건사회에서 민란의 주범이 바로 조정임을 말하는 것은 귀머거리도 귀청이 떨어질 만큼 큰 소리로 외치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통쾌한 김성탄이 처형당하지 않았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그는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통쾌했다. "머리가 잘리는 것은 아플 뿐이고, 가산을 몰수당하는 것은 부끄러울 뿐이다. 그러나 나 성탄이 뜻하지 않은 일로 그리된 것은 참으로 괴이하도다!"

그가 죽으면서 아들에게 남긴 편지에서도 이런 야릇한 말도 했다고 전해진다. "말린 두부와 땅콩을 함께 먹으면 햄(火腿) 냄새가 난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김성탄에 대해서 냉소적이다. 재주가 있었지만 알아주지 않자 통쾌한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하다가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반문한다. "누가 김성탄더러 큰 재주를 타고나라고 했던가?" 참으로 냉정한 말이지만 그의 일생에 감정이입하여 가치판단을 가하기 보다는 지식인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었던 시대의 비극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지식인들이 처한 낭패스런 처지는 봉건시대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권력과 자본의 틈바구니에 끼인 이 땅의 인문적 지식인의 삶은 어떠하며,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책을 덮으면서 나도 모르게 탄식이 나온다. 지식인아 아 지식인아.

'철학자의 서재'는 <프레시안>과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서평 연재입니다. 매주 주말 한국철학사연구회 철학자들이 심사숙고해 선정한 책을, 철학자가 직접 심혈을 기울여 쓴 서평으로 소개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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