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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해외식량기지 건설은 해외판 삽질"

[이야기가 있는 경제] 윤병선 교수 "애정 없는 경제학이 위기 불렀다"

사양산업. 전체 GDP의 2.9%를 차지하는 우리 농업을 설명하는데 서슴없이 쓰이는 단어다. 사양산업이므로 잘 나가는 자동차나 휴대폰 등을 위해 좀 희생해야 된다는 게 자유무역협정(FTA)를 추진하는 이명박 정부의 논리다. '국익'이라는 입장에서 보자면 이런 총량적 계산이 가능하다는 것.

이런 계산이 맞는 걸까? 농업경제학을 전공하는 윤병선 건국대 교수는 "틀렸다"고 말한다. 농산물은 공산품이 아니다. 휴대폰은 없어도 살지만 농산물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못하면 살 수가 없다. 농산물이 자유로운 교역 상품으로 작동하기 힘든 이유다. 농산물은 자국 내 소비를 우선할 수밖에 없다. 작년 곡물가 파동으로 실제 식량위기가 발생했을 때 많은 국가들이 농산물 수출을 금지했었다. '식량안보'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경쟁력'을 우위에 놓고 농업을 바라보는 이명박 정부는 '식량안보' 차원에서 만주, 연해주 등에 해외식량기지를 건설하겠다고 한다. 윤 교수는 "해외식량기지 건설은 해외판 삽질"이라고 비판했다.

"해외식량기지, 실제로는 토목건설"

▲ 윤병선 건국대 교수는 지난달 26일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해외식량기지 건설 주장에 대해 "내세운 것은 식량이지만 실제로는 시멘트"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프레시안
"각국이 앞다퉈 해외식량생산기지를 만드는 일에 혈안이 되자, 작년 8월 FAO에서는 이를 신식민주의로 규정하기도 했다. 해외식량생산기지의 대상으로 된 나라의 식량사정이 오히려 악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내 자급기반을 확대시키려는 노력이 먼저 돼야지, 왜 다른 나라를 개발해서 가져오려고 하느냐. 이건 일종의 '해외판 삽질'이다. 국내에서 하는 토목 사업을 해외에서도 하겠다는 얘기다.

몽고에 식량기지를 만들어 땅을 개간해서 경작만 하면 끝이냐. 거기가 오지다. 생산된 곳에서 선적시설까지 가져오려면 저장시설을 만들어야지, 철도도 만들어야 한다. 많은 부분이 토목공사다. 해외식량기지를 위해 필요한 토목건설을 하겠다는 얘기로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해외식량기지 정책은 내세운 것은 식량인데 실제로는 시멘트가 아니냐.

식량기지 건설은 식량위기를 대비하기 위해서인데, 지난해 실제 식량위기가 닥치니까 각 나라들이 수출을 규제하기 바빴다. 문을 걸어 잠궜다. 식량위기를 대비해서 해외식량 기지를 곳간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다. 그리고 곳간은 가까이 있어야지 멀리 있어야 되겠냐."


'종자에서 식탁까지' 초국적 자본이 지배하게 된 농업

윤병선 교수의 화두는 신자유주의와 농업이다. 어찌 보면 서로 가장 거리가 먼 것 같지만, 농업은 신자유주의로 가장 큰 변화를 겪은 산업 중 하나다. 1980년대 이후 농산물도 자유무역을 통한 교역상품으로 거래가 되면서 각국의 농업은 크게 바뀌었다.

"아이티는 20여 년 전만 해더라도 쌀을 거의 자급했다. 그러나 1986년 아이티의 독재자 두발리에가 추방된 이후 IMF로부터 2460만 달러를 차입하기 위해 아이티는 쌀 생산농민 보호 정책을 IMF의 요구로 포기하게 됐다. 그 결과 미국 쌀이 수입되면서 아이티의 쌀 시장이 붕괴됐고, 결국 아이티는 세계 3위의 미국 쌀 수입국이 됐다."

세계 곡물시장에서 수출은 미국, 캐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오스트레일리아 등 소수 국가에 한정된다. 특히 미국이 전 세계 수출물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대두의 38.8%, 옥수수의 66.3%다.

그렇다면 미국의 농촌과 농민들의 삶은 더 윤택해졌는가? 아니다.

"미국의 가족농은 행복한가? 아니다. 미국은 대규모 상업농 중심으로 농업이 편제되면서 가족농은 철저히 소외되었다.

1세기 전만 해도 미국에서 소비자가 지출한 식료품비를 1달러라고 할 때 농민에게 돌아가는 몫이 47센트였다. 최근에는 7센트로 줄어들었다. 이걸 다 누가 가져갔나. 과거 농민들이 담당했던 부분을 자본들이 다 뺏어가서 그렇다. 농업을 대상으로 이윤을 얻고자 하는 거대자본들의 이윤은 증가했지만 농민들의 생활은 어려워졌다."


결국 농산물의 자유로운 교역을 통해 이득을 보는 것은 농민들이 아니라 카길, ADM, 콘아그라 등 초국적 농식품복합체들이며, 신자유주의 농산물 교역체계는 전적으로 이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재편됐다.

"국제적 관계 속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우루과이라운드(UR)를 통해 이뤄졌다. 미국이 UR협정에서 제안한 내용의 대부분은 대표적인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인 카길사의 전직 지배인인 다니엘 암스튜츠에 의해 작성됐고, 다른 농업관련 초국적 기업들에 의해 검토됐다.

1986년 시작한 UR에서는 '무역관련 지적재산권'(TRIPs : Trade Related Intellectual Properties) 협정을 통해 종자관련 특허권 보호를 중심의제로 택했다. 과거에는 종자에 대한 특허권 규정이 제한적이었는데 종자개발업체에 이득을 주는 형태로 바뀌었다. 지적재산권 논의가 정리가 되니까 몬산토 등 종자회사는 유전자조작(GM) 작물을 개발해서 시장에 내놓았다. 종자는 사실 흔히 얘기하는 농업생산의 시작부터 끝인데, 이 순환이 이뤄지는게 외부자본에 의존하는 형태가 됐다. 신자유주의에서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 필요하다는 규제도 자본이 이윤을 얻는데 장애가 된다면 풀어야 했고, 이게 농업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났다. '종자에서부터 식탁'까지 초국적 자본의 이해관계에 복속되는 체제가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농업의 현 위기적 상황은 떼어놓고 보기 어렵다."


부시정권과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의 유착이 낳은 '식량위기'

▲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동생 잽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미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잽 부시가 부시 가문의 3번째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연합
자본의 전횡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식량위기'도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의 이해관계와 떼어놓고 설명하기 힘들다고 윤 교수는 강조했다.

"수요-공급면에서 보자면 국제곡물시장은 굉장히 얇은 시장이다. 자국 내에서 소비하고 남은 물량이 수출을 위해 나온다. 대두는 전체 생산량의 10%, 쌀은 7% 정도만 국제시장에서 거래된다. 그러다 보니 국제곡물가격은 조그만 공급 변화에도 크게 출렁일 수 있다. 작년 식량위기 때 미국 부시 대통령은 그 원인에 대해 중국과 인도에서 곡물소비가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유엔 쪽에서 미국의 바이오에탄올, 즉 농업연료정책(농산물을 연료로 사용하는 정책) 때문이라고 지적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미국은 전체 옥수수 수출 물량의 2/3를 차지한다. 미국은 2006년만 하더라도 옥수수의 수출량과 농업연료의 원료로 사용된 옥수수 양이 거의 같았는데, 2007년 부시가 농업연료정책을 발표하면서 농업연료의 원료로 사용된 옥수수의 양이 수출량보다 많아지게 됐다. 미국 정부가 농업연료에 보조금으로 쏟아 부은 돈은 2006년에만 70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의 농업연료정책이 세계 옥수수시장의 질서를 흔들어버렸다. 옥수수값이 폭등을 하니까, 대두 농사를 짓던 사람도 옥수수를 지으면서 대두도 부족하고, 이런 연쇄효과가 일어났다.

만일 옥수수의 가격이 폭락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새로운 수요처를 개발한다는 측면에서 농업연료정책을 폈다면 그나마 이해해 줄 구석이 있다. 물론 세계의 많은 인구가 기아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마저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2007년에 전반적으로 세계 곡물상황이 나빠지고 있는 가운데 이런 정책이 채택됐다. 이건 굉장히 정치적 역학관계가 반영된 것이다. 부시 전대통령 동생인 잽 부시가 아메리카간 에탄올 위원회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또 최대 농식품복합체 중 하나인 ADM은 미국 에탄올의 28%를 생산하고 있는데, 정부 보조금을 계속 받기 위해 막대한 금액의 정치자금을 후원하고 있다."


농업보조금, 미국 14.6%-EU 22.4%-한국 5%

한국의 농업도 신자유주의 질서에 빠르게 편입되면서 큰 변화를 겪었다. 급격하게 농업인구가 줄었고, 농업이 전체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축소됐다.

"농업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세계적인 전반적 흐름인데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그 속도가 매우 빨랐다. 산업화에 따르는 압축성장과정에서 다른 한편인 농촌의 사회적 변화 역시 매우 급격하게 일어났다.

인구의 절대적, 상대적 비중이 축소된 것과 함께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지속가능성 문제다. 농가인구에서 14세 이하 인구가 차지했던 비중이 90년에는 20.6%로 전국 평균(25.7%)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05년에는 14세 이하의 비중이 9.8%로 전국 평균인 19.1%에 크게 못 미친다. 65세 이상은 90년에는 11.5%였는데 지금은 무려 30% 가까이 된다. 농촌의 고령화와 후속세대 확보의 어려움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전체경제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90년에는 전체 GDP 중 7.8%였는데, 2005년에는 2.9%로 줄어들었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90년 43.1%에서 2005년 27%로 떨어졌다. 세계 175개국 중 124위, OECD 30개국 중 25위다. 그나마도 쌀을 제외하면 자급률은 5%이하다. 사료작물이나 밀의 자급률은 굉장히 낮다. 식량의 안정적인 확보를 심각하게 걱정해야할 수준이다."


문제는 한국 정부가 이런 문제에 대한 고민 없이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려 한다는 것. 노무현 정부에 이어 이명박 정부도 미국, EU, 뉴질랜드, 호주 등과 동시다발적 FTA를 추진하고 있다. 개방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며, 우리 농업도 살아남기 위해선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논리다.

"일본은 지금도 미국과 FTA에 대해 대단히 신중하다. 농업에 대한 배려 때문이다. '한 사회에서 농업의 비중 자체가 작다,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작다, 그래서 농업은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정책을 펼쳐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공산품을 많이 수출해 남는 외화로 농산물을 사가지고 오면 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총량적 판단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선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공산품은 자국 내에서 소비를 안 하고 수출할 수 있다. 예전에 우리는 칼라TV를 자국 내에서 소비하지 않지만 수출하던 때가 있었다. 반면 농산물은 자국 내 소비를 우선하고 그 다음에 나머지 여유분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농산물을 공산품처럼 파악해서 자유로운 교역이 이뤄지는 상품으로 생각한다는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이다.

'농업부문의 손실액은 얼마인데, 핸드폰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얼마니까, 국가 전체로 봐서는 이득이다' 식의 논리는 농산물이 과잉인 시기에는 성립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식량위기가 되풀이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다."


윤 교수는 또 정부가 농민들에게 '경쟁력'을 강조하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논리인지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경쟁력 강화는 국제농산물시장에서 싸우겠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국제농산물시장이 공평한가부터 따져봐야 한다.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보조금에 대한 철폐 얘기가 나오고는 있지만 여전히 선진국들은 막대한 액수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유럽 제1의 농업국으로 알려져 있는 프랑스 농가가 2005년 기준으로 농업수입에서 농산물의 직접적인 판매 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14%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정부 보조금이다. 보상지불이 72%, 환경지불과 조건불리지역지불이 각각 5%에 이른다. 미국의 경우도 농업소득의 26%가 직접지불금(쌀의 경우는 58%)이고, 2005년 농업생산액 대비 농업보조금 지원규모는 미국 14.6%, EU 22.3%, OECD 국가 평균 15.5%인 반면, 한국은 5.0%에 지나지 않는다. 보조금을 많이 받은 농산물은 그만큼 국제시장에 낮은 가격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봄에 뉴질랜드를 갖다온 다음에 "뉴질랜드식 농업개혁을 하겠다, 뉴질랜드는 보조금 없이도 잘 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뉴질랜드는 우리와 농업의 조건이 다르다. 뉴질랜드는 기본적으로 농업이 수출산업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농업은 농민이 아닌 대기업에 장악되어 있는 상황이다.

또 정부가 추진하는 경쟁력 강화 정책이 규모화, 기업농화를 의미하는데 이건 김영삼 정권의 신농정에서부터 계속 이어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농업은 여전히 위기적인 상황이다. 계속 추진해 온 정책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면 정책의 흐름을 잘못 잡은 것으로 봐야 한다. 우리 농업은 수출시장에서 싸워야할 농업이 아니라 자급을 확대시키는데 중점을 둬야 한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선 먹을거리 안전 문제 더 심각해질 것

▲ 초국적 농식품기업이 먹을거리의 생산, 유통에서부터 검역까지 좌지우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식품 안전성 문제는 더 심각한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프레시안
농업의 신자유주의화가 도시의 소비자들과는 상관없는 일일까? 아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이런 신자유주의적 질서로 인해 직면하게 된 가장 큰 문제는 식품 안전성 문제다. 지난해 광우병 사태, 멜라민 파동 등 식품 안전 문제가 중요한 화두였다. 윤 교수는 "이는 본질적으로는 먹을거리를 식품자본이 지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라면서 "식품 안전 문제는 세계 농식품 체제 하에서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WTO 같은 국제기구가 식품안전을 소비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보다는 기업의 영향력 하에서 사고한다. 국제수역사무국(OIE)도 가축질병을 통제하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만들었는데 거꾸로 교역을 장려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윤 교수는 그래서 "소비자 스스로가 중소농민들과 함께 먹을거리 안전성을 지키려는 운동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로컬푸드운동'은 이런 고민을 통해 나온 대안이다. 일정한 지리적 거리 안에서 먹을거리의 생산과 가공, 소비와 폐기가 이뤄지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하는 운동인 로컬푸드운동은 생산자에게는 대규모 자본에게 빼앗겼던 정당한 수익을 되찾아줄 수 있고, 소비자에게는 안정적이면서 안전한 먹을거리를 공급할 수 있다. 유럽의 농민장터, 일본의 지산지소운동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은 초보적인 단계일 뿐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사고에 젖은 현 정부가 로컬푸드시스템을 상당히 왜곡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정부가 작년 저탄소녹색성장을 들고 나오면서 농식품부에서 로컬푸드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 먹을거리 체계를 어떻게 만들것이냐는 실질적인 논의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는 현재 시민사회단체, 농민단체, 몇몇 지자체에서 로컬푸드 운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자체 차원의 접근이 자칫 잘못해서 지역 이기주의로 갈까봐 걱정이다

지금까지 정부 정책은 '생산자인 너희 농민은 농사꾼이므로 가공이나 유통은 자본에 다 맡기라'는 식이었다. 그 결과가 좋았느냐. 아니다. 이제는 농민도 가공을 생각하고, 유통을 고민해서 자본에 빼앗겼던 부분을 농민의 품으로 찾아와야 한다. 이런 로컬푸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선 농민들이 유통과 가공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정부의 역할인 거 같다. 현재 식품생산과 관련된 법체계가 대규모 식품자본이 중심이 돼 만들어져서 농민들이 진입하기 어렵다. 따라서 현재 식품자본중심으로 체계화돼 있는 법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유통 문제도 마찬가지로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 학교급식에서 지자체들이 조례를 정해 지역농산물을 사용하도록 하는 경우가 있다. 제주, 순천, 목포 등에서 그렇게 하고 있는데, 농민들이 직접 납품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유통회사나 농협이 유통을 담당한다. 그러면 유통업체의 이익 만큼 직접적인 혜택이 농민들에게는 가지 못 한다.

하지만 정부나 지자체에서 그런 작업을 안 한다. 오히려 대규모 유통회사 세운다. 지난 1월에는 경상남도에서는 자회사인 경남무역과 CJ푸레쉬웨이가 손잡고 로컬푸드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CJ푸레쉬웨이는 2006년도 학교급식에서 대규모 식중독을 일으켰던 CJ푸드시스템의 새로운 이름이다. 로컬푸드운동은 대자본이 매개가 돼 이뤄지는 게 아니다. 대자본의 지배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 현재의 먹거리체계에서 벗어나고자 생산자와 농민이 함께 고민하는 운동이다. 지금 정부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연장선상에서 로컬푸드를 바라본다면 이런 운동성은 완전히 사라져 버릴 위험이 매우 크다."


물론 로컬푸드운동이 지금, 당장, 세계화된 농식품체제를 대체할 대안이 되지는 못한다. 어떤 대안으로 당장 대체될 만큼 단순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지, 로컬푸드운동이 대안으로서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로컬푸드운동이 일순간의 혁명적 대안은 아니다.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은 지산지소운동이 활발히 일어난 지 15년 정도 됐다. 그런데도 전체 유통량 중 겨우 10%를 넘어선 정도다. 전체를 대체하지 못한다고 해서 이게 의미가 없는 것이냐. 그건 아니다. 더디 가더라도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를 회복하고 지역의 농촌공동체를 살려낼 수 있는 대안의 의미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동안 농민들은 스스로 살아갈 방법이 없으니까 정부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랬더니 경제적으로 자립하기보다는 부채 의존도가 커졌다. 농민들이 자립할 수 있는 방안으로 대안으로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다."


▲ 영국 런던 인근에서 열린 농민장터. 로컬푸드운동은 농민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도 매우 주목할만한 대안이다. ⓒ프레시안

애정이 있는 경제학, 애정이 없는 경제학

농업이 사양산업으로 여겨지듯 농업경제학을 연구하는 학자들 역시 소수다. 윤 교수에게 개인적으로 농업경제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79년도에 대학에 입학해서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지금은 건국대학교 명예교수인 김병태 선생님이다. 경제학에 앞서 세상의 사물을 종합적으로 관계망속에서 봐야 한다는 가르침을 선생님으로부터 배웠다. 농업과 농민, 농촌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선생님 덕택이다.

그리고 경제는 경세제민(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한다)의 준말이다. 나라가 잘 산다는 것은 있는 사람이 더 많이 가져가는 것 보다는, 없는 사람을 더 앞서서 배려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 누구보다 부지런한 농민들이 왜 생활이 어려울까 하는 부분에 관심을 갖게 됐고 농업이 어려움에 처하게 된 이유를 따지기 위해선 농업, 농민, 농촌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관계들, 특히 농업을 지배하고 있는 자본이나 대내외적 관계 속에서 농업을 보고자 했다."


윤 교수는 이어 '애정'을 강조했다. 그가 조금은 다른 농업경제학자가 된 것도 농과 농민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경제학을 자연과학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사회과학으로서 경제학은 가치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을 절대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착각하거나, 시장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공리처럼 받아들여진다. 시장의 불안정성이나 한계를 역사적, 구조적 측면에서 얘기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런 시각이 잘못됐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듯 싶더니, 좀 지나고 나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가장 안타까운 것 중의 하나가 '애정'이라는 문제다. 주류경제학의 아버지인 마샬(A. Marshall)이 이야기한 '냉철한 이성, 그러나 뜨거운 가슴(Cool head, but warm heart)'이라는 경구조차 마음에 새기고 있지 않은 경제학자도 많은 것 같다. 우리사회의 어려운 사람들의 문제를 자기의 문제로, 많은 사람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문제들을 따뜻한 가슴으로 품는 일에 너무 소홀한 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지않나 싶다."


'애정'이 없는 경제학과 경제학자들이 오늘날의 위기를 불러온 게 아닐까. 그리고 현재의 위기에 대한 진짜 대안을 찾기 위해선 모두의 가슴에 온기를 찾는 게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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