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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아걸'을 정말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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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아걸'을 정말 아십니까?

[나도원의 '대중음악을 보다'] 평론가가 말하는 브라운아이드걸스

2009년 여름, 난데없는 고대의 주문이 꿈틀거렸다. 걸그룹들의 각축장에서 브라운아이드걸스(Brown Eyed Girls)가 'Abracadabra'로 맹활약했다. 보컬그룹으로 데뷔하여 (타이틀곡만은) 트렌디한 댄스그룹으로 변신한 브라운아이드걸스에 대적할 자는 거의 없었다. 물론 인기 면에서 '소녀시대', '카라', '투애니원(2NE1)'의 기세를 눌렀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러니까 '거의'다. 뮤직비디오의 선정성 논란과 '시건방춤'과 같은 파격적인 콘셉트 정도의 가십에서 이야기가 그치곤 했지만, 사실 브라운아이드걸스에게는 뭔가 다른 점이 있었다.

감상보다 관람에 적합한 아이템들이 넘쳐난다. 특별히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록과 힙합에서도 복장과 장신구는 표현수단이다. 현대에는 옷 자체가 만지고 싶어지게 하거나 접근금지라고 쓰인 경고판이 되며, 나체에 대한 동경마저도 어떤 막을 거쳐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할 얘기가 적을수록 치장이 화려해진다. 버스와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 분들의 언변은 뛰어나도 요지는 특별히 싸게 드리는 허리띠 혹은 무좀약을 사라는 것이지만(비하하려는 의도는 없다), 눌변에도 내용과 깊이가 있으면 얼마든지 감동을 준다. 그런데 반대로 자극적인 콘셉트와 현란한 비주얼이 오히려 진가를 가리는 차양이 되기도 한다.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앨범 [Sound G.](2009)에 대한 엇갈린 반응은 대중음악의 다면적인 상태를 보여준다. 적지 않은 비평가들과 음악인들까지 완성도와 대중성을 인정한 반면, 다른 쪽에선 시류에 영합하여 변질되었다고 비난했다. 가창력을 중시하는 그룹으로 출발했다가 트렌드를 추종하다 정체성을 상실했고 앨범도 중구난방이 되었다는 것이다. 앨범 전체를 들어보면 초기 스타일의 곡들이 여럿 있음을 모를 리 없어 의아하긴 하지만 오랜 팬들의 애정 어린 소유권 주장 심리는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선입견에 의한 역차별은 따져볼 일이다. 이전까진 음악성을 추구했을까? 일관성을 지향하는 앨범아티스트였을까? 그렇지 않다.
▲브라운아이드걸스는 '제대로' 하고 있다. ⓒ뉴시스

뒤엉킨 관점들의 물음, 변절? 혹은 발전?

가창력은 가수의 기본 자질이지 음악의 목적은 아니다. 밥 딜런, 마이클 잭슨, 마돈나가 몇 옥타브를 넘나들며 현란한 바이브레이션을 구사해서 좋은 가수로 인정받지는 않았다. 그런 식이라면 초야에 묻혀 노래방마다 만점을 찍고 다니는 고수들을 우리는 수없이 보유하고 있으니 음악 강국이라 할만하다. 또한 가창력 위주의 가수들이 밟는 코스였던 알앤비(R&B)의 범람을 두고 흑인음악 체화의 선구자인 '사랑과 평화'의 최이철은 마음과 몸 없이 기교만 추구하고 있지 않은가 지적하기도 했다. 고유성 차원만은 아니다. '신촌블루스'는 스스로를 '한국형 뽕 블루스'라고 말했지만 그들의 음악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만약 브라운아이드걸스가 데뷔 때의 스타일만 고집했다면 잘 되었어도 '여자 SG워너비'에 그쳤을지 모른다. 실제로 [Sound G.]에서 평범한 발라드들은 상대적으로 빠지는 축에 든다. 개인적으로 브라운아이드걸스에 대한 주목은 'L.O.V.E' 이후 EP [My Style](2008)부터고, 'You'에서 '어쩌다'로 이어지는 순간엔 제법 감동까지 받았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가인에게 꽂혀 편애하느냐는 농담을 들으면서 2008년에 수차례 지지를 표한 이유는 가수로서의 자격을 갖춘 아가씨들이 감각 있는 작곡가들과 만나 손색없는 인기가요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룹의 구성원들은 이 때부터야 비로소 집에 돈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고 한다. <가위손>의 주인공이 괴상한 표정으로 가위질을 해댄다고, <화성침공>이 엉덩이를 요상하게 흔들며 걷는 외계인 암살자를 등장시켰다고 해서 시시한 영화들은 아니다.

비평가 집단과 마니아들이 댄스음악과 걸그룹을 의도적으로 차별한다는 편견은 오해이다. 비평은 꼬투리잡기가 아니며, 다양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다만 특이한 한국형 기획사 체제의 구조적인 한계와 전반적인 질적 하락 때문에 칭찬하고 싶어도 그럴 기회가 적었을 뿐이다. 그 와중에 대중예술인을 가벼이 보는 풍조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어린 나이로 데뷔하는 가수들이 많아져서가 아니다. 대중가요 초창기부터 십대에 데뷔한 가수들은 수두룩했다. 결국 연예인의 "지적 수준"을 논하고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와 같은 막말을 해대면서 정작 본인의 지적 수준을 의심스럽게 만든 진짜 버르장머리들까지 보고야 말았다.

시장논리가 쥐어준 관성적인 공식들은 엄연하다. 음악의 본질적인 출발점을 시장이 거세하는 표준화를 수용자들마저 받아들였고, 싱어송라이터 이적마저 "음악가의 자의식에 대한 냉소와 무시 풍조"를 지적하며 개탄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발굴에서 은퇴, 심지어 보육까지 모든 과정을 종합해버린 기획사들은 시장을 의식하며 리스크를 줄이고 투자비를 회수해야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모방과 벤치마킹은 당연하다. 그런데 흥행의 조건들과 시장규범이 음악적 규범까지 압도해버리자 공격과 방어가 겹치면서 관점의 혼란에 빠졌다. 아예 아이돌에 대해선 음악은 논외로 하고 전술을 분석하고 앉아 있는 유행까지 나타났다.

나아가 브라운아이드걸스의 노래들에 특정 도구가 이용되었다고 비난하기까지 한다. 어떤 효과를 잘 사용했다고 좋은 음악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효과를 사용했다고 해서 나쁜 음악은 아니다. 곡과 노래가 아니라 외모와 콘셉트로 승부하는 일부 가수들처럼 형편없는 가창력을 가리기 위해 악용한 것도 아니다. 기타의 디스토션에도 공연현장에서 부족한 연주력을 일정 정도 감춰주는 효과가 있다. 리메이크와 샘플링의 범람에 대한 지적은 창작의 빈곤과 관련되어 있었지 단순히 도구와 유행을 걸고넘어지는 차원이 아니었다. 안목 혹은 자신감의 결여가 부차적인 문제를 건드려 최소한의 정당성을 얻으려 하는 모양새다.

가요계의 트렌드 강박증이 심하긴 하다. 유행코드의 결합이 유행하면서 싫증마저 시들해진 유행이 적지 않다. 트렌드 추종과 트렌드 자체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반짝 인기를 얻는 스타일들을 스크랩해놓은 잡지, 그마저도 과월호 같은 앨범이 나온다. 오죽하면 뻔한 뽕짝보다 뻔뻔한 짬뽕에 더 짜증을 낼까. 비슷비슷해지는 연예인들의 얼굴처럼 음악도 비슷하게 성형되고, 면식수행(?) 중인 사람이 간만에 갈비탕 집에 갔다가 국수 좋아하는 손님 왔다고 국수를 대접받는 꼴이다. 하지만 어차피 주류 시장의 걸그룹들은 패션리더인 동시에 패션을 추종하고, 개중에는 음악적으로 나쁘지 않은 결과물들이 있다. 브라운아이드걸스가 그렇다.

2진에서 1진으로, 그리고 현재 시스템에서의 가능치
▲브라운아이드걸스의 3집 [Sound G.] ⓒCJ뮤직

[Sound G.]엔 괜찮은 곡들이 꽤 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히트송인 'Abracadabra'는 뮤지션 타입인 '롤러코스터'의 지누와 히트송 타입인 이민수의 합작으로 탄생된 곡으로 대중성과 완성도 모두 낮지 않은 수준이다. 가창과 편곡 센스가 절충된 'Candy Man'은 오랜 팬들의 불만을 어를만하고, 'Moody Night' 역시 재미있는 팝 트랙이다. 이중자대가 아니다. 슈퍼주니어의 [Sorry, Sorry]에 '쏘리 쏘리' 같은 노래가 몇 곡만 더 있었다면 "난 아직 이런저런 트렌드의 게으른 진열을 마냥 좋아할 정도로 성숙하지 못했다"는 단평으로 괜히 팬들을 속상하게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브라운아이드걸스는 비교적 충실했다.

남들은 앨범을 쪼개 팔고, EP의 곡들을 정규앨범에 구겨 넣는 판에 왜 끈덕지게 '앨범'을 고집하는 걸까? 이들의 소속사가 여타 기획사들과는 조금 다르게 뮤지션네트워크를 표방하고 있었다는 단서가 있다. 가요 작곡가들과 오버와 언더의 중간지대에 있는 팀들이 모인 성격이었던 터라 상대적으로 곡의 질과 앨범을 중시하는 성향이다. 두터운 음반의 한 면을 아예 전자음악의 고수들이 맡아 채워놓기까지 했다. 오래 전부터 활동한 언더그라운드의 실력파 전자음악인들의 모임, 팀 모마(Team MOMA)의 세인트바이너리, 이스트포에이(East4A), 전자맨, 프랙탈의 이름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마니아들끼리 농담반 진담반으로 희대의 걸작이라 추켜세우는 최양락의 [Night Fever](2001)에 참여한 인물들이기도 하다).

이러한 결과로 후발주자가 모방을 통해 더 높은 완성도를 달성했다. 브라운아이드걸스는 걸그룹 호황을 선도했다기보다는 후미에 좀 늦게 다리를 걸쳤다. '어쩌다'는 'Tell Me'를 모델로 했을법한 구성이었고, 'Abracadabra'는 작곡자가 같은 엄정화의 곡과 이복형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력 갖춘 아가씨들과 트렌드를 활용한 작·편곡의 시너지가 출중한 댄스 팝을 만들어냈다. 미안한 얘기지만 이전까지는 네 글자 이름으로 장안을 주물럭대던 아이돌그룹들에 비하여 좀 없어보였다면, 이제 준비된 가수들이 적절한 투자와 세련된 감각과 만나 주도자로 치고 나왔다. 미래까지 장담하지는 못하겠으나 '브아걸'과 '그들'은 현재로선 제대로 하고 있다. 주인공이 바뀐 것이 아니라 이제야 제대로 우군을 만나 주인공이 되었다.

아이돌 시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07·2008년에는 긍정적인 면이 있었다. 거시적인 안목 없이 무턱대고 반긴 이들까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2009년에 우려했던 상황이 그대로 벌어졌다. 3년 만에 모든 채널을 같은 그룹들이 순서만 바꿔가며 같은 노래를 부르고 들어간다. 과잉이다. 과점과 복제가 재현된 다음은? 이미 충분히 보아왔다. 이 풍요로운 빈혈은 이미 화려한 몰락의 기운을 예고한다. 그나마 이 속에서 기억해둘만한 과실을 하나 꼽으라면 브라운아이드걸스와 [Sound G.]일 것이다. 제작 방향과 가수들의 자질, 그리고 성향이 다른 뮤지션들의 역량이 결합하여 현재 시스템에서의 가능치를 보여줬다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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