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선 공개 입양이 드물었던 1990년 그는 일곱 살배기 사내애를 입양했다. 그 아이를 키우는 일은 생각했던 것만큼 쉽지 않았다. 많은 엄마들이 첫 아이를 낳고 허둥대듯 말이다. 그래서 한 아이를 더 입양했고, 그로 인해 얻은 사랑과 행복이 8명의 자녀를 갖게 했다.
8명, 그것도 장애아를 포함한 아이들을 키우는 일. 보통 사람은 엄두도 내기 힘든 일이다. 물론 그를 여기까지 이끈 배경에는 종교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아이들을 키운 이야기를 담담하고 풀어내면서 자주 웃었다. "지금은 저랑 남편이랑 얘기하죠. 이 나이에 이렇게 행복한 게 이게 웬 복이냐고."
▲ 한연희 씨. ⓒ프레시안 |
그는 입양을 고민하고 있는 가족에게 이런 충고를 했다. "입양을 너무 무겁게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 자녀를 계획해서 낳는 부부들도 많지만 계획하지 않고 자녀를 갖는 경우가 훨씬 더 많듯이 아이를 한 명 더 가져야 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입양을 계획하고 준비하라는 얘기다. 또 자녀를 낳을 때, 그 아이의 성별, 외모, 성격, 지능 등을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없듯이 입양시에도 '조건'에 대한 집착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충고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내가 엄마가 아니라 조교 역할을 하고 있더라"
프레시안 : 개인적으로 입양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한연희 : 1980년대부터 입양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 국내 입양은 거의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였다. 주로 해외 입양이 많았다. 이런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부끄러웠다. 나는 결혼을 하면 꼭 입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프레시안 : 결혼을 하고 실제 입양을 하기까지 남편을 비롯한 가족들의 동의를 받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한연희 : 남편과 결혼을 앞두고 1명은 낳고 1명은 입양을 하자는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막상 입양을 하려니까 남편은 좀 망설였고, 시부모님은 반대했다. 그래서 10여 년 정도 조정 기간이 필요했다.
가족들의 반대 때문에 87년부터 3년 동안 보육원에 자원봉사를 다녔다. 그렇게라도 하면 마음이 좀 편안해질 줄 알았다. 근데 더 괴로웠다. 내가 이 아이들과 아무리 친해져도 우리 가정에 올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결국 3년 뒤에 7살짜리 남자아이를 입양했다. 일부러 입양 기회가 없을 거 같이 보이는 나이가 있는 남자 아이를 입양했다.
프레시안 : 입양한 뒤 가족들과 아이 모두 적응하는데 힘들지 않았나?
한연희 : 아이는 큰 문제가 없었는데 오히려 기존 가족들이 문제였다. 남편이나 저, 아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입양에 대해 비현실적인 기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입양을 하면 기존의 자녀와 똑같이 사랑하지 못하면 어쩌나, 차별하면 어쩌나, 혹시 입양한 아이가 엇나가면 어쩌나 이런 고민을 많이 한다. 입양한 둘째는 첫째와 세살 터울이었다. 근데 솔직히 내가 두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현저하게 달랐다. 예를 들면 간식을 준비했는데 작은 애가 허겁지겁 먹으면 내 안에 이런 맘이 든다. 어떻게 이렇게 이기적인가. 형 거는 있냐고 물어보고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똑같은 상황에서 큰아들이 똑같이 행동하면 얼마나 허기가 졌으면 그러나 이런 생각이 든다. 동일한 상황에서 다르게 반응하는 나를 보고 자책감도 많이 들었다.
또 입양아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불안한 시선 때문에 큰 애와 다르게 둘째 애한테 학업, 예절 등 모든 면에서 책잡히지 않도록 다그치게 되더라. 아이가 무시당하거나 사람들에게 내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야 하니까. 그걸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자료가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좋은 직업을 갖고 이런 거다. 이렇게 4년 정도 하다가 내가 과로로 B형 간염에 걸렸다. 더 이상 애를 다그치는 일이 할 수 없게 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이 아이가 아무리 서울대를 나와도 엄마로부터 지지받지 못한다면 어떨까. 나는 엄마 역할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조교나 훈련원 역할을 하고 있구나.
그 일을 겪고 나서 편안해지고 좋았다. 이렇게 시행착오를 겪고 6년 정도 지나면서 아쉬운 생각이 많이 들더라. 미리 알았더라면 이렇게 안 했을 텐데.
ⓒ프레시안 |
"우리 안에 이런 사랑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프레시안 : 그래서 두 번째 입양은 많이 달랐나?
한연희 : 그 아이를 입양하면서 입양을 바로 보게 됐다. 물론 두 번째 입양도 여전히 두려운 일이었다. 첫 번째 같은 느낌이 들면 어쩌나. 그런데 두 번째로 입양한 아이는 내가 낳은 아이보다 더 예뻤다. 남편도 그랬고. 우리 자신 안에 낳지 않은 아이를 이렇게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는 게 참 놀라웠다.
결국 첫 번째 입양한 아이에게 느꼈던 낯설음 같은 감정은 입양의 문제가 아니라 7년이라는 생활방식이 다르고 낯선 것에 대한 차이였다. 두 번째 입양으로 입양이 주는 무게감을 벗어 던졌고 결국 그 아이 때문에 입양한 아이가 8명, 6남 2녀가 됐다. 사고가 바뀐 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 후에 아이들이 오고오고 또 와서 90년부터 올해까지 19년 동안 아이들이 늘어났다.
큰 애가 29살이고, 올해 결혼을 했다. 이렇게 가족도 많고 힘든 집에 시집온 며느리가 너무 고맙다. 둘째가 26살. 태권도 사범이다. 셋째가 고3. 국악고에 다닌다. 그 밑이 고2, 고1이 있다. 고1인 아이는 장애가 있는데 우리 집에 온지 얼마 안 됐다. 이미 7명의 자녀가 있어서 한 명 더 온다는 게 비현실적인 게 아니냐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오히려 적극 찬성했다.
여섯째가 지금 초등학교 6학년인데, 앞에 얘기했던 6개월 때 입양한 아이다. 일곱째가 초등학교 3학년, 막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다. 막내도 지적장애 3급인데 상태가 많이 좋아져서 정규 초등학교에 보냈다.
스스로 철드는 아이들
프레시안 : 아이들이 8명이나 되면 경제적인 문제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한연희 : 남편이랑 많이 고민도 했다. 그냥 막연한 생각으로 콩 한쪽이면 반쪽씩 나눠 먹으면 되지 않겠냐. 나이 50이 될 때까지 수도권에서 혜택 많이 받고 살았으니 나이 들어선 농촌에 내려가서 살면 되지 않겠냐.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해서 불행한 것은 아니다. 불편하기는 하지만.
애들 교육도 많이 걱정했었다. 근데 다행인 건 큰 아들도 장학금 타서 대학 갔고, 국악고 다니는 셋째도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돈 많이 들까봐 걱정하는데 일반 고등학교 등록금 정도도 안 낸다. 초등학생 애들한테 이렇게 말한다. '공부를 계속하고 싶으면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공부를 월등하게 잘하면 너한테 투자하겠다는 사람은 얼마든지 많다고.' 근데 아이들이 적당히 공부를 못해주기 때문에 큰 걱정거리는 없다. (웃음)
프레시안 : 90년 처음 입양을 했을 때와 비교해보면 입양에 대한 인식이 참 많이 변했다. 이전에는 비밀 입양이 절대 다수였는데 이젠 공개 입양도 많이 늘었다.
한연희 :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공개 입양 장려 운동이 시작됐는데 인식 변화를 확연히 느낀다.
비밀 입양이 공개 입양으로 가는 게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외국에선 오래 전부터 공개 입양이 이어져왔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증명됐다. 우리나라 입양기관 종사자들은 문화적 차이를 강조했었다. 전 동의할 수 없는데, 우리가 외국 문학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지 않나. 문화가 달라서 이해도는 떨어질지 모르지만 문화 때문에 공감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입양기관의 종사자들도 많이 바뀌었다.
공개 입양이 중요한 건 입양 가정이 소수이기 때문에 모여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지금처럼 입양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을 때 입양 부모로 생각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게 참 힘들었다. 소외감, 주변인 같은 느낌도 들었다. 입양 부모들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면 낯선 감정에 부딪혔을 때 대처하고 구별해 내는 힘을 갖게 된다.
프레시안 : 입양 가정으로 여러 차례 언론에 소개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곱 살에 입양된 둘째 아들이 입양과 관련해 인터뷰를 많이 했다고 들었다.
한연희 : 우리 아들이 얘기하는데 자기는 입양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어 사실 할 말이 없다,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냥 형, 엄마, 아빠다, 다만 몇 년 동안 인터뷰를 하면서 황당한 질문들이 몇 개 있다고 하더라.
첫 번째가 낳아주신 부모님이 안 보고 싶냐. 나를 낳았다는데 어떻게 안 보고 싶겠냐. 자기 외모가 누굴 닮았는지도 궁금하다. 또 자기를 낳을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 어떻게 사는지 다 궁금하다. 두 번째 황당한 질문은 부모가 잘해 주냐는 것이라고 한다. 부모자식 간에 살다보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고, 그런 거 아니냐.
입양아라서 차별 받았냐. 차별 받은 적은 없지만 부모가 특별히 잘해준 적은 있다. 다만 사람들이 불쌍한 시선으로 자기를 보는 건 느낀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불쌍한 면도 있다. 그리고 남이 그렇게 바라보는 것까지 하라 말라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냐고 하더라.
프레시안 : 아이들 8명을 보살피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한연희 : 아이들은 100% 엄마, 100% 아버지를 원한다. 엄마, 아빠가 누군가한테 치우치는지 늘 주목하고 있다가 따지기도 한다. 늦게 우리 집에 온 아이들을 우리가 더 많이 신경 쓰면 다른 아이들이 와서 따지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똑같이 해주는 게 목적이 아니라 공평하게 대하려고 한다고 설득한다. 각각의 필요에 따라 해주는 게 공평한 것이다.
공개 입양이 바람직한 이유들
프레시안 : 현재 한국입양홍보회 이사를 맡고 있는데, 단체에 대한 소개를 좀 해 달라.
한연희 : 사실 저는 애 키우는 데만 관심이 있었는데, 해외 입양인인 스티븐 모리슨(최석춘) 박사를 만나 단체 일을 하게 됐다. 모리슨 박사는 열네 살에 미국으로 입양을 가서 과학자로 성공한 분이다. 미국에서 한국의 고아들을 위해 반드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입양기관인 홀트 이사로 일하기도 했다. 해외 입양을 중단해야겠는데 특별한 대안 없이 중단할 수 없다고 생각해 99년에 한인 교포들을 상대로 입양을 홍보하는 엠펙을 설립했다. 그러다가 교포 사회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도 입양에 대해 알려야겠다고 생각하고 한국에 들어와 저와 만나게 됐다. 저는 부담스러웠는데 모리슨 박사가 그냥 우리가 사는 것을 보여주기만 하면 사람들이 입양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득해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집에서 일을 시작했다가 규모가 커져서 지금은 사무실도 얻었고 2003년에 복지부에서 사단법인 인가도 받았다.
프레시안 : 입양에 대한 홍보와 공개 입양을 장려하는 게 입양홍보회에서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인 거 같다.
한연희 : 앞에서도 잠깐 얘기했지만 공개 입양이 사회에 주는 이익이 굉장히 많다.
비밀 입양의 경우 비밀이 가능한 아이들만 입양되고 비밀이 불가능한 아이들은 입양이 불가능해진다.
비밀 입양은 입양에 대한 연구가 불가능하다. 입양 하다보면 시행착오도 있고 어려움도 있다. 입양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 보완이나 대책, 제도 개선이 가능하다. 우리 단체에서 입양 아동의 문제에 대한 연구 사업을 하고 있다. 20년 종단 연구로 올해가 4년째다. 입양 아들이 자라면서 부딪히는 문제에 어떻게 반응하고 극복하는지 전 생애를 보고자 하는 게 목적이다. 지금 130명 정도 아동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여러 교수님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열악한 상태지만 연구하고 있다. 입양에 국내 연구물이 중요하다.
또 비밀 입양은 제도 및 정책 문제를 이슈화하기 힘들다.
프레시안 : 현재 한국의 입양 정책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한연희 : 그나마 노무현 정부에서 많이 나아졌다. 입양의 날도 제정하고 국내 입양의 경우 입양 부모들이 내던 수수료도 면제해줬다. 입양시 입양기관에 200만 원이 넘는 수수료를 내야 하는데, 입양 부모 입장에서 솔직히 당황스럽고 불쾌하다.
의료비도 상당히 큰 문제였는데, 의료급여도 일정 정도 지원해주는 등 많은 발전이 있었다. 이런 제도 개선 덕분에 해외 입양보다 국내 입양이 많아지게 됐다. 지금 신생아 여아를 입양하려면 1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프레시안 : 이전에 비해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제도적으로 개선돼야할 문제가 많지 않나?
ⓒ프레시안 |
또 입양 선정 기준, 매뉴얼이 전혀 없다. 현재 272개 보육원에 1만9000명의 아이들이 보호되고 있다. 5~10년씩 친부모와 연락이 두절돼도 입양을 못 간다. 친부모와 재결합 가능성이 없다면 입양을 갈 수 있도록 친권제도도 바뀌어야한다.
프레시안 : 입양 문제의 근원은 친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없는 데서 발생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 미혼모가 혼자 힘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은 매우 힘들다. 일각에서는 입양에 대한 지원 못지않게 중요한 게 미혼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연희 : 물론 미혼모들이 입양을 선택할지, 양육을 선택할지 두 가지를 동일하게 놓고 본인이 충분히 심사숙고할 기회를 줘야 한다. 두 가지를 동시에 충분히 설명하고 제시해서 미혼모가 이성적이고 주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상담 과정을 통한 숙려기간을 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저는 반드시 양육이 바람직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사회는 미혼모가 입양과 양육이 자신들의 삶에 미칠 큰 그림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에 문제다.
프레시안 : 국내 입양이 많이 늘었다고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중국, 러시아, 과테말라에 이어 4번째로 해외 입양이 많은 나라다.
한연희 : 국내 입양이 최선이다. 이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국내에서 입양 부모를 찾지 못할 때 해외로 가게 된다. 해외 입양의 경우 아이들이 분명히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문화도 잃고 언어도 잃고 정체성의 혼란도 불가피하다. 다만 아이를 보살펴줄 가정이 있다는 것을 보고 내보내는 것이다.
해외 입양에 따른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교포들을 상대로 입양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또 제도적으로 해외 입양은 입양부모가 만 44세가 넘으면 안 된다. 그런데 교포들이 그 사회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그 나이가 넘는다. 이런 문제는 좀 풀어줘도 될 것 같다.
또 입양을 보낸 뒤에도 입양아들이 모국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 얼마 전에 미국 뉴저지에서 입양 가족들이 왔다. 입양 아동들이 자라서 모국 방문을 하고 싶어 해도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모국방문단 사업 등을 통해 지원해주면 좋을 거 같다.
"정책이 장애아를 기피하게 만든다"
프레시안 : 해외 입양이 여전히 줄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장애아동 문제가 있다. 국내 입양의 경우 장애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연희 : 장애아동의 경우 양육보조비가 매월 55만1000원, 의료비가 연간 225만 원까지 지급된다. 그러나 의료지원이 장애등급과 상관없이 만 18세까지만 지급된다. 그런데 성인이 돼도 자립이 불가능한 장애 1~2급 아동은 만 18세 이후에는 부모도 나이가 많아져 의료비 부담이 갈수록 더 힘들어진다. 그러면 형제들한테 이 부담이 돌아간다. 어느 부모가 이걸 하고 싶겠냐. 외국에는 만 18세가 지나면 사회가 책임진다. 한국의 부모들이 장애아동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입양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이다. 애착장애,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 장애로 분류되지 않는 경계선에 있는 질병은 장애에 해당되지 않아 의료비 지원을 못 받고 있는 것도 문제다.
제가 입양을 해보니까 장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분명 있다. 외국은 장애를 세밀하게 분류해서 예비 입양 부모들이 어느 수준까지 커버할 수 있는지 세밀하게 체크해 보도록 한다. 우리도 이런 세밀한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정부가 입양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입양하기 전에 위탁가정에는 수급자 지원, 학비 지원 등을 다 해준다. 그런데 이 아이를 입양하는 순간 모든 지원이 단절된다. 입양은 개인의 선택이고, 그 선택에 대해선 책임지라는 식이다. 만약 이 아이들이 입양이 안 되고 시설에 있으면 아이들이 자랄 때까지 양육 비용을 정부가 다 부담해야 한다. 어느 쪽이 사회적 비용을 줄이면서 아이와 사회 모두에 유리한 것인지 따져봤으면 한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입양을 고민하고 있는 예비 입양 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연희 : 입양을 너무 무겁게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자녀를 계획해서 낳는 부부들도 많지만 계획하지 않고 자녀를 갖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한다. 애를 한 명 더 가져야 되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모든 것을 내가 핸들링해야 겠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한다. 딸이 낫겠다, 인물이 출중해야 되겠다, 머리는 좋아야 되지 않겠냐, 원하는 조건이 너무 많아서 입양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아이를 낳을 때 그런 것을 고민하지는 않는다. 입양할 때 아이가 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구나, 어떤 일을 해줘야겠다는 정도로 머물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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