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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의 도래'를 바라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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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의 도래'를 바라만 볼 것인가"

[화제의 책] <유비쿼터스 시대의 지식생산과 문화정치>

유비쿼터스(Ubiquitous). 생소하진 않지만 아직 일상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단어다. <네이버> 백과사전에는 유비쿼터스를 두고 "사용자가 네트워크나 컴퓨터를 의식하지 않고 장소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정보통신 환경"을 의미한다고 적혀 있다.

사실 우리는 이미 어느새 유비쿼터스 시대 속에 살고 있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며 교통카드를 찍고, 무선인터넷을 활용하고,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통해 동영상과 TV를 즐기며, 네비게이션에 의존해 길을 찾는 일은 이제 '신기한 무엇'이 아니다.

정부는 지난해 '유비쿼터스도시의건설등에관한법률'을 제정하면서, 이런 흐름을 더욱 촉진하고 나섰다. 경기도 파주 동탄, 인천 송도 등 신도시 사업에서는 유비쿼터스 도시를 추진 중이다. 교통, 방범, 방재 등의 업무가 자동으로 처리되는 미래형 첨단 도시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보면 'SF 소설'에서 보던 일들이 현실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최근 펴낸 <유비쿼터스 시대의 지식생산과 문화정치>(문화과학사 펴냄)에서 바로 이런 '환상'과 '욕망'을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다가오는 시대에 대처하는 자세에 따라 유비쿼터스는 '소외와 절망의 공간'이 될 수도, '참여와 희망의 공간'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역시 SF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디스토피아가 우리에게 현실이 되어 나타날 수 있다는 경고다.

"톱-다운식 유비쿼터스, 과학기술의 역사가 보여준 전형적 흐름"

▲ <유비쿼터스 시대의 지식생산과 문화정치>(심광현 지음, 문화과학사 펴냄). ⓒ프레시안
"최근에는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달에 따라 도시의 삶은 또 다시 대대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그동안 물리적 공간(제1의 공간)과 구별되는 사이버공간(제2의 공간)을 만드는데 집중했던 디지털 기술이 이 두 공간을 새롭게 연결하는 '제2의 정보화' 단계로 발전하면서, 소위 '유비쿼터스' 공간이라는 제3의 공간을 출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심광현 교수는 유비쿼터스 도시를 발달 단계 중 '제3의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도시는 그 기원에서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의 소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역사적으로 발달해왔다"며 "이런 측면에서 교통과 통신은 도시의 규모와 범위, 생산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철도와 자동차의 보급이 근대도시의 물리적 형태 변화를 야기했다면 전기와 전화는 도시의 외관을 바꾸고, 도시 내부의 소통을 확대해갔다"며 앞서 일어난 도시의 변화를 설명한 뒤 유비쿼터스를 두고 '현재 도시가 겪고 있는 거대한 변화'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신도시 개발 등에서 볼 수 있듯이 2009년 한국의 유비쿼터스는 국가 권력과 자본이 주도하는 전형적인 '톱-다운'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대중들이 유비쿼터스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몇몇 지방자치단체나 기업에서 세운 '유비쿼터스 체험관' 정도다. 학계에서도 유비쿼터스는 도시개발과 공학 정도에서나 연구될 뿐,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의 비평 대상은 거의 되지 못하고 있다.

심 교수는 "톱-다운 방식의 청사진과 다른 하나는 학문간 융복합을 통해 지능화된 공간운동 기술시스템을 구축해가는 '바텀-업' 방식의 흐름"이라며 "그러나 중간 방식의 흐름이 부재한 상황에서 바텀-업의 연구는 톱-다운의 시장적 전략과 계획, 즉 축적전략에 의해 일방적으로 끌려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는 수십 년간 작동해온 선진국의 거대과학기술 체제의 역사를 통해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촛불 집회, 유비쿼터스 시대의 체험

심광현 교수는 "대개는 이런 변화를 방송, 통신융합 관련 법제와 기구 재편, 언론미디어정책의 변화 정도로 인지하고 있고, 관련 이해당사자들 사이에서만 논란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하지만 유비쿼터스 기술의 상용화가 미치는 변화는 훨씬 심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미 우리가 체험한 유비쿼터스의 영향 중 하나로 지난해 촛불 집회의 경험을 예로 들었다. 당시 출현한 진보신당의 '칼라TV'를 비롯한 각종 인터넷 생중계 방송은 촛불 집회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거대한 흐름으로 만들었다. 컴퓨터를 통해 생중계를 지켜보던 누리꾼들은 경찰에 진압되는 장면을 보다 뛰쳐나와 '시위대'에 합류했으며, 다시 휴대폰이나 촬영 기기를 통해 현장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면서 여론을 확산시켜 나갔다.

심광현 교수는 "촛불 집회는 누구도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유비쿼터스 공간의 문화, 정치적 잠재력을 적극 활용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 30년 동안 정보기술의 발전을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금융 세계화를 촉진하고 새로운 산업의 창출과 노동의 유연화 및 구조 조정 등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톡톡히 재미를 보았던 자본과 국가는 새로운 유비쿼터스 공간을 자본 축적과 노동 착취를 위한 정치경제적 선택과 집중, 감시와 추적의 메커니즘으로 구축함으로서 새로운 통제와 질서의 공간으로 재전유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통제사회냐, 문화사회냐…능동적 노력에 달려 있다"

"2015년 유비쿼터스 도시의 전면화를 거쳐 2025년 로봇군대의 가동으로, 그리고 2035~40년 인간을 능가하는 사이보그의 출현으로 나아가도록 설계된 자본의 새로운 전략적 로드맵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진행 중인 새로운 과학기술혁명의 '비판적 전회'를 포함하는 과학 기술-사회과학-인문학-예술 간의 새로운 통섭 이외에 다른 곳에서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경고에 이어 심 교수는 '디스토피아'를 피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했다. 그것은 학문간 융복합을 의미하는 '통섭'이다. 최근 이른바 '한예종 사태'에서 문화체육관광부의 집중적인 '타격 대상'이 된 통섭 교육 사업의 단장을 맡기도 했던 심광현 교수는 예술과 학문, 사회를 수평적으로 이어주는 통섭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그것이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는 능동적인 진보의 자세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새 술을 담기 위해서는 낡은 부대를 수술하고 바꾸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듯이 새로운 사회적 진보를 위해서는 그간의 연구와 실천의 방법 자체를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일부터 착수해야 한다"며 "분과학문 체제라는 낡은 부대를 해체해 학문적 제도의 안과 밖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지식과 경험의 수평적 통섭이라는 새 부대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심 교수는 "그것은 오랫동안 단절돼 있던 이론과 실천, 대학과 사회, 지식인과 대중,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사이에 선순환적인 연결 구조를 만들기 위한 필수적 전제"라고 설명했다.

"21세기의 과학기술혁명과 더불어 다가오는 유비쿼터스 시대. 이 열린 가능성을 오직 인구의 10%에게만 허용하며 자연을 유린하는 반민주적 반생태적 통제사회로 나아가려는 흐름을 거슬러 자연과 인간의 공진화를 촉진하는 민주적 생태적 문화사회로 나아가는 동력으로 어떻게 삼을 것인가의 여부는 오직 사방으로 두 팔을 활짝 벌려 손을 잡고 함께 도약해 나가는 우리의 능동적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책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 너무 난해하다는 점이다. 물론 이 책이 '이론서'로 분류돼 있긴 하지만 유비쿼터스 시대에 생소한 독자들이 흥미를 가지고 이 테마에 접근해 볼 것을 권하기엔 책의 내용이 너무 낯설다. 유비쿼터스를 대할 때 '매혹적인 환상'은 가깝게, '경계의 필요성'은 멀게 느끼는 대다수를 위한 배려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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