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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의 '진짜 스승'? <홍길동전>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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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의 '진짜 스승'? <홍길동전>을 보라!"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허준, 그 불편한 진실 ④

허준의 스승이 허구의 인물 유의태가 아니라는 데서 시작해서 그를 둘러싼 온갖 설의 진위를 가려보았다. 이렇게 허준의 스승을 찾는 것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의 일환이 아니다. 허준의 스승이 누구인지를 확인함으로써, 우리는 한국 한의학의 특징과 <동의보감>에 녹아 있는 민족의학의 뿌리를 찾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

실제로 한·중·일의 한의학은 큰 차이가 있다. 진단 방법을 봐도, 중국과 우리가 맥진이 위주인 반면 일본은 배를 만지는 복진 위주다. 일본에서는 약물의 투여량도 우리의 3~40%다. 사실 질환의 원인도 다르다. 우리가 신경계 질환인 화병 위주인 반면, 일본은 소화기의 냉증을 호소하는 질환 위주다. 이처럼 모든 문화는 지역에 뿌리를 내리기 마련이다.

한의학 역시 오랜 시간에 걸쳐서 한반도에 뿌리를 박은 민족 의학이었다. 수세대에 걸쳐서 많은 사람이 그 민족 의학의 형성에 기여했고, 허준의 <동의보감>은 그것을 집대성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자, 이제 허준의 스승을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당대 도가의 대표 인물이었던 박지화로 지목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감이 왔을 것이다.
▲ 허준의 진짜 스승은 소설, 드라마 속 유의태가 아니라 서경덕의 제자 박지화였을 가능성이 크다. ⓒ프레시안

그렇다면, 왜 허준의 진짜 스승을 박지화로 짐작하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자. 먼저 가족 관계다. 허준을 내의원에 추천한 평생의 후원자 유희춘은 김안국의 제자다. 이 김안국은 허준의 5촌 당숙, 즉 조부 허곤의 사위였다. 이 김안국은 바로 박지화의 스승인 서경덕과 친한 사이였다. 이처럼 허준의 집안과 서경덕, 박지화는 얽히고설킨 인연으로 엮여 있었다.

이런 인연의 한 편에는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도 있다. 허균과 허준은 11촌이다. 바로 이 허균의 아버지인 허엽이 바로 서경덕의 제자다. 이런 서경덕의 영향은 허균으로 이어졌다.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 <한정록>에는 도가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이런 흔적은 <동의보감> 곳곳에 그대로 나타난다.

유학 대신 도가에 심취한 박지화, 허준이 모두 서얼 출신이며 허균은 후실의 소생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사실 적서 차별이야말로 <동의보감> 탄생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생각될 정도로 허준의 콤플렉스는 대단했다. 오죽하면 1611년 허준이 <동의보감>을 완성하자, 광해군이 그의 노고를 위로하며 그의 일생일대의 숙원이었던 서족의 불명예를 씻어주었을까?

이처럼 허준은 평생에 걸쳐서 적서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인 유학에 적대적이었다. 이런 적대의 배경에는 바로 그 자신이 서얼로서 온갖 차별을 당했던 박지화의 영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또 허준이 허균과 동병상련을 느끼면서 상당히 친하게 어울렸을 것이라 짐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의보감>의 논리 전개 방식에서도 서경덕과 그의 제자의 흔적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허준은 <동의보감>은 중국의 의학 서적을 통해서 당대 중의학의 성과를 모두 흡수하고, <향약집성방>에 기록된 토종 약물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동의보감>을 완성했다. 이렇게 전대의 학설을 흡수한 후, 자기 의견을 개진하는 방법이야말로 서경덕학파의 특징이었다.

박지화가 허준의 스승이라고 보는 결정적 이유는 바로 <동의보감>의 핵심인 '정기신론'이다. 특히 <동의보감>은 정, 기, 신 중에서 '정'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서, 그것을 삶의 근본이 되는 물질로 여겼다. 많은 연구자는 <동의보감>의 핵심 논리를 정으로 파악하고 그 뿌리에 주목한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논리가 바로 박지화의 것과 똑같다. 박지화의 원문은 전해지지 않으나, 이황이 박지화의 저술을 읽고 <퇴계집>에 수록한 독후감이 남아있다. 이 독후감을 보면, 박지화는 인간의 정(精)이 곧 모든 생성의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동의보감>의 기본 정신과 같다.

음양오행의 틀을 벗어던진 <동의보감>의 사유 구조는 서경덕, 박지화, 허준으로 이어지는, 유학과는 다른 민족 사상을 꿈꿨던 16세기 지식인의 공통 산물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민족 의학의 보고 <동의보감>을 가능하게 한 토대였다. 허준이야말로 바로 거인들의 어깨 위에서 <동의보감>이라는 화룡정점을 찍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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