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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마음을 얻은 당신이 이겼습니다"

[추모] 이제 평생의 고난을 두고 편히 가십시오

1997년 12월 18일 늦은 밤, 저 권영길은 16대 대통령 선거 개표방송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후보의 한사람이었지만 제가 받을 표가 몇 표일까보다 더 가슴 졸이게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권영길이 받을 표는 70만표 이하일 것이라는 선대본의 분석 보고를 이미 받았기에, 선거를 마친 그 시간에 제가 받을 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생님의 당선 여부였습니다.

당시 선거 내내 제 가슴을 짓누른 압박감이 있었습니다. 동지로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이 "권영길은 사퇴하라"며 저를 떠났고, 저의 출마가 선생님의 당선을 가로 막을 수 있다는 말은 선거 기간 내내 제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었습니다.

노동운동 중심, 영남 중심, 진보표 중심의 저의 지지층이 DJ의 표와는 다르다고 나름 분석을 하고 있었지만, 표 분석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지요. 선생님은 큰 역사를 바꾸는 임무를 지고 계셨고, 저는 저 나름의 시대의 대의를 보며 뛰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떠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1997년 12월18일 늦었던 밤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요. 그날도, 그 후에도, 참으로 회한이 많은 시간들이었습니다. 못 다한 말은 이제 가슴에 묻는 수밖에 없겠군요.

참으로 야박하게 가셨습니다. 참으로 한스럽게 가셨습니다.

ⓒ연합

선생님과 제가 가장 자주 만나던 때는 선생님이 92년 대선을 마치고, 영국에 다녀오신 후부터 97년 출마를 결심하기 까지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선생님은 항상 인편으로 저에게 만날 장소와 시간을 알려 주셨죠. 막상 그 장소에 가면, 또 다른 사람이 다른 장소와 시간을 저에게 알려주면서 보안을 지켰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런 시대였습니다. 평생을 감시당하며 사셨죠. 아마도 대통령이 된 후에도 감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이른 아침, 이른바 'DJ메뉴'로 알려진 인절미와 과일로 아침을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항상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셨고,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이었던 저에게 노동운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노동운동가보다 확고한 자신의 노동관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96년 어느날, 여느 날보다 힘주어 민주주의에 대해 말씀하시다가, "함께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자"고 강조하셨죠. 맘속으로는 97년 대선 출마를 결심하셨구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만, 저에게는 다른 책임이 있었습니다.

권영길의 출마로 많이 섭섭하셨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권 위원장의 행보를 앞으로 잘 보아라"고 주변에 말하며, 애정을 주셨던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1990년 4월 KBS 노조의 투쟁 때, 해주신 말씀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창 투쟁의 열기가 고조될 무렵이었는데, 저에게 인편 메시지를 보내셨지요.

"절대 과격하게 하지 말아라. 과격해지기 직전에 멈춰야 한다. 공안기관은 과격해지기를 기다리며 유도할 테니, 과격하면 지게 된다."

그때는 "이 분이 노동운동, 특히 대중조직운동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혼자 생각했습니다. 한창 민주노조 운동과 공정보도 운동이 불이 붙었을 때였고, 저는 두려운 것이 없었습니다.

1996년 말에서 1997년 초까지 이어진 노동법 날치기 통과 무효 총파업 때도, 저에게 비슷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결국 누가 국민의 마음을 얻느냐다." 저를 만날 때면, 항상 빠뜨리지 않고 하셨던 말씀이었습니다.

"누가 국민의 마음을 얻느냐가 승패를 가른다. 국민의 마음을 얻으면 비록 패한것 처럼 보여도 반드시 승리한다."

항상 마음 속 깊이 간직하는 말입니다. 어려운 순간 항상 저에게 자문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누가 국민의 마음을 얻느냐다."

좌경용공분자, 빨갱이. 당신께 평생을 따라다닌 말입니다. 빨치산의 아들로 태어나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며 살았던 저는 당신을 따라다녔던 꼬리표가 얼마나 무겁고 두려운 것이었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당신이, 고난과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았던 당신이었기에, 당신이 말하던 인권과 당신이 말했던 민주주의, 당신이 말했던 평화와 통일은 항상 가슴에 새겨지고, 마음에 남았습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통곡하던 모습이 마지막으로 뵌 모습이라 마음이 아픕니다. 선생님의 마지막 말씀이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가슴 치는 사자후라서 마음이 너무나 무겁습니다.

절망의 끝에서 희망으로 살아나는 삶을 사셨습니다. 마지막까지 희망을 주셨습니다.

이제 평생의 고난을 두고 편히 가십시오. "국민의 마음을 얻는자가 이긴다"고 하셨는데, 오늘 국민의 마음이 당신에게 있습니다. 고난이 클수록 국민은 당신을 사랑하고 의지했습니다. 부디 평안히 영면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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